노천명(1912~1957)
조그만 정거장
노천명
땡볕에 채송화가 영악스럽고
코스모스 외로운 조그만 정거장
수건 쓴 능금장수 여인의 말은 거세고
나는 아는 이가 없어 서글프다 ...
장날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루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이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여성'1939')
가을은 깨끗한 새악시처럼
노천명
가을은 깨끗한 새악시처럼
맑은 표정을 하는가 하면 또
외로운 여인네같이 슬픈 몸짓을지녔습니다
바람이 수수밭 사이로
우수수 소리를 치며 설레고 지나는 밤엔
들국화가 달 아래 유난히 희어 보이고
건너 마을 옷 다듬는 소리에
차가움을 머금었습니다
친구여! 잠깐 우리가 멀리 합시다
호수 같은 생각에 혼자 가마안히
잠겨 보구 싶구려..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푸른 오월
노천명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풀 냄새가 물큰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
노천명 (1912~1957)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진명학교시절 뛰어난 어휘력으로 '국어사전'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의 빼어난 시어와 서정성은 그가 활동했던 때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어색하거나 전혀 촌스럽지 않다.
'눈물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보이고
거기 자유가 닫혀지지 않는 곳이라면-'
노천명의 1951년 작 '고별'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시는 그녀의 벽제 천주교묘지에 묘비 대신 무덤 앞에 세워진 시비에 새겼다.
'고별'은 노천명이 한국전쟁 중 부역죄로 수감돼 쓴 옥중시다.
그의 대표작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도 옥중에서 쓴 작품으로, 두 작품 다 시집 '별을 쳐다보며(1953)'에 실렸다.
- 노천명은 생전 산호림(1937), 창변(1945), 별을 쳐다보며(1953) 시집과 수필집 나의 생활백서(1954)를 남겼다.
죽기 1년 전인 1956년(44세) 모윤숙씨와
노천명은 일제강점기 ‘군신송’등에서 전쟁을 찬양하고,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 에서는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다면 귀한 부르심을 입었을 것을'이라며 조선 젊은이들을 강제징병에 선동하고 찬양하는 시를 썼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임화, 김사량 등 월북 작가들이 주도하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 문화인 총궐기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하여 부역했다.
서울 수복 후, 조경희와 함께 부역죄로 체포되어 20년형을 받았다.
여류를 넘어 탁월한 문재와 감성으로 한 시대의 뛰어났던 시인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험난한 시기를 지나면서 친일과 부역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시대의 아픔이다.
그의 작품집
왼쪽부터 시집 산호림(1937), 별을 쳐다보며(1953), 사슴의 노래(1958),
수필집 나의 생활백서(1954) (한국현대문학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