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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당한 예루살렘 1:1~4
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비웃음거리가 된 예루살렘 1:5~11
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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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레미야는 적막해지고 과부같이 된 예루살렘성을 보고 애통합니다. 죄로 인해 시온의 영광이 떠났고, 예루살렘은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유다 백성은 환난과 고난 가운데 사로잡혀 갔습니다. 대적은 모든 보물을 빼앗고, 이방인이 성소에 들어갔으며, 유다 백성은 굶주려 탄식하며 양식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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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당한 예루살렘 1:1~4
죄는 삶을 파괴합니다. 바벨론 침공으로 파괴된 예루살렘(유다의 수도)을 바라본 예레미야의 첫 음성은 “슬프다 이 성이여”(1절)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뒤바뀐 처지를 ‘전에는’과 ‘이제는’이라는 시간적 대비로 설명합니다.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열방 가운데서 강대하고 존귀했던 예루살렘이 지금은 비참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사랑하고 의지하던 대상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에돔은 바벨론과 연합해 유다를 공격했고, 유다와 동맹을 맺었던 애굽은 위기 때에 유다를 외면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순례자의 발길이 끊기니 제사장들은 제사를 집례하지 못하고, 청년들이 포로로 끌려가니 결혼을 앞둔 처녀들은 탄식합니다. 죄는 성도의 존귀함과 영광을 빼앗아 갑니다.
● 더 깊은 묵상
예레미야가 본 예루살렘의 처지는 어떻게 뒤바뀌었나요?
내 삶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움을 잃어버린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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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거리가 된 예루살렘 1:5~11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대적들이 위세를 떨치고, 유다의 어린 자녀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백성을 참된 길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은 힘없이 도주할 뿐입니다. 타락한 예루살렘은 ‘옷을 벗은 여인’ 곧 창녀나 간음한 여인에 비유됩니다. 우상 숭배 등 수많은 죄악으로 더러워졌는데도 그들은 죄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대적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비천해집니다. 성소가 약탈당하고 백성이 극심한 궁핍에 빠진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예루살렘이 곤고해진 것은 죄가 많아 하나님께 징계받았기 때문입니다(5절).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 더 깊은 묵상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죄 때문에 곤고해진 나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향한 예레미야의 애통함이 저와 교회를 보시는 하나님 마음은 아닌지요. 하나님이 없는 형통은 쉽게 무너지고, 하나님을 잊은 기쁨은 이내 탄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소망이 사라져 갈 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76 아버지여 이 죄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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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추구하며 의지하는 것은?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삼하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에레미야애가는
하나님 거룩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눈물의 선지가 예레미야 만큼은 못되더라도
하나님의 그 마음을 품고 그 사랑을 품고
이 민족에 거룩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고 중보 기도해야 겠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경고 말씀에 들어야 합니다. 남 유다가 멸망할 때에 많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평화를 예언했지만 우상 숭배를 선동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이며 자신의 배를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예레미야 선지자는 단호하게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온갖 핍박과 저주를 받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지탱했던 다윗의 언약과 성전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린 죄악을 고소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경고했던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을 때의 예레미야 선지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가 경고했던 심판과 진노 속에서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탄식에 응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며 우리의 죗값을 치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을 진노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셨던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여호와의 돌보심이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삶이 드러나길 소원합니다. 신랑 예수님을 기다리는 순전한 신부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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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איכה"(에카)인데 감탄사
"어떻게"로 "어쩌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1:1)
어쩌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까요?
배교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살후2:3)
배교자는 추락할 것입니다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애1:9)
자녀들은 대적의 종이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애1:5)
배교자는 환난에 잡힐 것입니다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애1:3)
배교자는 쉴 곳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애1:3)
참 하나님을 버리고 짐승을 자기 하나님 삼은 배교자는 세세토록 환난을 당하고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14:11)
그렇다면 배교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십자가의 도를 걷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정욕을 따라 맹인이 되어 십자가의 도에서 떠나 십자가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그러나 우리는 배교를 미워하기 원합니다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시101:3)
오직 십자가의 완전한 도에 주목하여 주만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시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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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당한 예루살렘의 참상
1절: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적막하다/ 열국 중에 크던 자가 과부 같이 되었다/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2절: 위로하는 자가 없다/ 친구들도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다
3절: 포로가 되어 핍박하는 자로 인하여 쉴 곳을 얻지 못하였다
4절: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였다
5절: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다
6절: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갔다
7절: 돕는 자가 없다/ 대적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다
8절: 업신여김을 받았다
9절: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다
10절: 대적에게 보물들을 빼앗겼다
11절: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는 비천한 상황에 처하였다
도움말
1. 지도자(6절):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그의 어리석은 신하들을 말한다.
모든 전쟁의 폐해는 근본적으로는
인간들의 시대적 죄악의 결과이다.
열왕기하 25:4-7
전쟁의 비참한 상황을 기록한 성경
예레미야 52:6
열왕기하 6:25-29
이 모든 비참한 상황은
결국은 인간의 죄의 결과로
성령이 떠나갔을 때 발상한다.
그러므로 정결함과 거룩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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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다는 자각, 그로 인해 전에 영광을 돌리던 사람들이 벌거벗은 시온을 보고 업신여깁니다. 위로할 자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위로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열방의 공주였던 이스라엘,
그러나 과부가 되어버린 이스라엘은 이제 “여호와여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하고 나옵니다. 그녀의 기도는 고통을 헤아려 달라는 호소로 시작해 같은 호소로 끝납니다.
대적들이 성소에 들어가 모든 보물들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이방인들이 들어가는 상황이 마음이 아픕니다.
예루살렘이 보았다는 말과 과부, 공주는 모두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표현들입니다.
신부로서의 교회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들이기도 합니다.
결국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아 달라고 기도하면서 첫 번째 단락이 끝납니다.
회한과 후회와 슬픔이 가득한 시편입니다.
기회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 땅을 친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이 기회의 시간에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슬픔과 탄식의 시간이 찾아온 뒤에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 성, 과부, 공주, 시온의 도로들, 딸 시온은 ~~모두 쇠락한 예루살렘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9절의 나, 11절의 나도 역시 시온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징계가 찾아오고
그때 슬퍼하고 후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네 인생에 회한과 후회의 시간들이 찾아오기 전에 깨어 오늘을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말입니다.
슬픔의 노래를 묵상해야 하는 날들이 벌써부터 커다란 아픔과 부담으로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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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애가 Lamentations
슬픔의 노래’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다섯 장의 짧은 시 형식으로 이루어진 조가(弔歌)다.
BC 586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된 직후 기록된 이 노래는 장마다 22절씩 알파벳순으로 운율에 맞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1)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함락을 잊지 못하고 아브 월(다섯째 달) 9일마다 이 책을 읽곤 한다. 자식의 시체를 먹을 정도로 참담한 현실을 겪어야 했던 그들의 고난과 슬픔이 이 책에 가득 차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전편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당신의 언약을 영원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이다.
저자: 예레미야
기록 연대: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직후
기록 목적:
유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교훈을 삼기 위하여
여호와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하나님이 되심을 가르치기 위하여
멸망으로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소망을 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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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유다가 고통과 고된 노역에 시달리더니, 이제는 사로잡혀 뭇 나라에 흩어져서 쉴 곳을 찾지 못하는데, 뒤쫓는 모든 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덮쳐잡았다‘는 말입니다.
열국에서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했다는 말은 포로지에서 갖은 구박을 받았다는 것으로,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설움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따라 잡았다는 말은 아무리 도망 다녀도 결국 붙잡혀 또 포로지로 끌려갔다는 말로, 그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나 있었다는 고발입니다.
애가는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 함락기념일 즉, 이스라엘 달력으로 아부월(8월) 제 9일에 낭독됩니다. 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민족적인 각성을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다시 한 번 영광된 이스라엘을 회복하자는 것으로, 나라 잃은 설음을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다가 망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차례나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포로를 잡아갔다는 말은 지도자의 말살을 뜻합니다. 곧 왕족들 그리고 리더 급들과 유력인사들의 전멸입니다.
지도자들을 제거해야 유다 땅 곧 점령지를 원활히 통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자들의 고난은 더욱더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정부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안전과 질서가 무너진 사회가 되니 곧 약탈, 방화, 폭력, 결국 살인까지 일어나도 힘이 약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민심이 사나워 진다는 점입니다. 자기 생존과 유익을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부랑자들이 판을 치게 되니, 아비귀환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지옥 같을 것입니다. 그것을 극렬하게 묘사한 것이 먹을 것을 보물로 바꾸었다는 입니다.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돈, 금, 보화 아무 필요 없습니다, 당장 먹지 못하면 굶어 죽기 때문입니다. 전쟁 후 양식 난은 전쟁보다 더 비참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일(우크라이라)이기도 합니다. 근래 1950~1953년 때에 전쟁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3년간이었지만 그 황폐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 때 지식층들이 북으로 많이 끌려갑니다. 군인들은 물론 수많은 국민들이 무참히 죽습니다.
전쟁고아의 이야기가 지금도 영화나 T.V. 에서 나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당시 전쟁을 고스란히 겪었던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적군에게 점령당한 뒤 제일 무서운 것은 동네 부랑자들이라고 합니다. 기존 체제를 붕괴시키고 적이 원하는 체제를 세우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완장을 채워주고 즉, 권력을 주어 기존체제를 허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몰려다니면서 각종 악한 일을 도맡아 놓고 했답니다. 한 밤 중에 자고 있는 집에 들어가 간단한 인민재판을 한 뒤 때려죽이는 일은 예사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수많은 경고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수 없이 권고합니다. 한 두 번이 아니고,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경우는 내 놓고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완악한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 종들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도리어 선지자들을 협박하고 옥에 가두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보내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참으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죄가 넘치면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망한 후에야 유대는 그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국가는 멸망하고 사회는 무너지고 가정은 파괴된 뒤입니다. 그들은 경고가 있었을 때 돌이켜야 했습니다.
애가는 그 옛날 망한 유대 왕국의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이야기도 됩니다. 50년 대 전쟁이 있었던 나라에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악 된 세상에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죄를 지었고 오늘도 그럴 가능성이 있으며 내일도 거룩한 삶을 자신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잘 알고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돌이킬 것이 있으면 빨리 돌이켜야 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급히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서둘러도 결코 빠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지자들을 보내고 계십니다. 수많은 설교자들, 선교사들과 목회자들, 무엇보다도 성경말씀과 성령님 등등 온라인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부하지 않으면, 사모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보내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경고할 때 들어야 합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애가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살같이 가고,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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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는 5편의 시로 된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은 첫번째 시의 전반부로써 예루살렘의 파멸을 보며 슬퍼하는 이야기입니다.
1.파멸의 모습
2.죄로 인한 파멸
파괴된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시인은 참으로 많이 아파합니다. 그러나 그는 칠흑같은 어둠에서 빛을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멸된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항하여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눈 길 한 번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이 모습은 참으로 강렬한 빛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꺠달아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는 것은 가장 큰 존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매우 슬프면서도 매우 희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많이 슬플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루살렘 성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하며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파멸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내면이 자신의 비참함을 꺠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가장 큰 파멸입니다. 그래서 많이 슬픕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에루살렘 성의 간절한 고백이 있습니까? 파멸에 이르러 그런 고백을 하려 하지 말고 오늘 당장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깊이 바라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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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는 고통과 근심, 번뇌와 곤비함, 굶주림과 포로로 잡혀감, 살육과 사망의 원인, 즉 멸망의 원인이다. 반면에, 의는 생명과 평강과 기쁨의 원인이다(사 48:18).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자. 유다는 동맹국들이 있었으나 전쟁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속임을 당했다. 자녀들은 포로로 잡혀갔고 식물들은 고갈되었다. 사람을 의지하는 자는 절망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징벌 중에서라도 회개해야 한다. 유다 백성은 재앙을 당하면서도 금방 회개하지 않았다. 선지자만 그들을 대표해 회개의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재앙을 당하면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행 11:18).
우리는 징벌 중에서라도 회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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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5,8절 애지중지하던 딸 시온을 벌하십니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시온이 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하셨지만(예레미야 7장 13절), 듣지 않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었습니다(예레미야 22장 21절). 혹독한 징계를 통해서만 깨우칠 수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겨주고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다. 평안한 때일수록 주님의 경고를 귀 기울여 들읍시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절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남겨진 사람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북적이던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고성처럼 적막하기만 합니다. 공동체의 비참한 현실을 직면하는 시인의 눈물은 마를 틈이 없습니다. 참된 애가는 진정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도 교회와 세상 구석구석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애가를 부릅시다.
5~8절 외적인 비참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은 정서적 냉담함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잡혀가는데 지도자들은 도망하기 바쁘고, 돕는 자도 없고 위로할 자도 없습니다. 전에 영광을 돌리던 자들은 이제 업신여기며 떠나갑니다. 지위와 힘에 따라 친구도 관계를 달리하는(2절) 냉혹한 세상을 마주하니 정서적 고통은 극에 달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나부터 함께 슬퍼하고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4,10절 예배가 사라지고 성전이 더럽혀진 것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는 사실 더럽혀진 지 오래였습니다(예레미야 7장 4절). 삶이 세속화(마당만 밟는 예배, 이사야 1장 12절)되고, 성전이 세속화(우상이 가득한 성전, 열왕기하 23장 5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영 떠나시기 전에, 나의 삶과 예배에 침투한 세속의 정신을 제거합시다.
9,11절 시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을 수용하면서도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공동체의 비참한 현실을 보며 남 일처럼 정죄하며 꼬리표를 달지는 않습니까? 마음 깊이 아파하고, 회복을 위해 탄식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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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역사의 중추를 두축은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 생활'이다.
'출애굽'은 자유를 선사 받은 구원 이야기 즉 결정적 구원 이야기이다.
해방인 동시에 춤과 노래가 뒤 따르는 환희의 경험이다.
반면에 바빌론 포로 생활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
심판 이야기,결정적 심판 이야기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바빌론 종으로 끌려갔다.
이는 비극이며 통곡이 따르는 참옥한 경험이다.
출애굽과 바빌론 유배는,구원이 가져다 주는
기쁨으로부터 심판에 따르는 고통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광범위한 경험들이 좌표를 정해주는 두개의 축이라 할수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배경으로 하는 에레미야 애가는
상실과 고통을 다루는 형식으로 쓰고있다.
비극의 시작인 예루살렘 멸망사건은 열왕기하 25당과 예레미야 52장에 기록되어있다.
멸망에서 부터 바빌론 포로 70년간 이어진 포로생활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본문 1:7절에 "예루살렘이 그날을 떠올린다.
자신의 전부를 잃은 그날을. 그녀의 백성이 적군에
손에 넘어간 그날. 아무도 그녀를 돕지 못했다.
적들이 보며 웃으며 조소했다.
망연 자실한 그녀를 보며 비웃었다.
모든것을 잃었고 모두는 죽어갔다.
훼파된 예루살렘 거리에서 '식인'과 '신성모독'이 행해졌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여진 유월절.맥추절.초막절에 드리는 제사가 없어지니 제사장은 더 이상할일이 없어졌고 예배때 드리는 춤추는 처자들도
더 이상 할일이 없어져 거리는 죽음의 빛이
가득한 거리가 되어버린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몸과영혼 개인과 국가에 일어날수있는 최악의
상횡이 모두 일어났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 당신 명예를 지키기위해 우리를 치겠는가?
또한 하나님과 예루살렘은 특별한 관계이며
다윗의 자손이 예루살렘에서 통치 하실거라는
특별한 약속을 다윗왕에게 하셨다.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여 명예를 더했으나
이제는 패배와 적막감만 감돌고있다.
주전 586년의 예루살렘 운명은 모든 시대를 향한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과 자만심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붙들고 있는 '희망'을 경계 해본다
한때 신실했다고 ,한때 묵상 잘했다고, 과거에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그 어떤것도 사죄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을 말씀에 비추어 죄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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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영광(1:1~6)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리에는 탄식과 슬픔이 가득합니다. 전에 예루살렘 성은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아름답고 활기찬 성읍이었습니다. 열방 중에 공주처럼 존귀하던 성읍이 이제는 과부처럼 딱한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다 백성을 사랑했던 이들도 이제 위로해 주지 않고, 친구들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고, 쉴 곳을 얻지 못한 채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궁지에 빠졌습니다. 원수들은 적막감이 감도는 시온의 거리를 활보하며 조롱과 핍박을 일삼았습니다. 지도자들은 힘없이 도망쳤고 어린 자녀는 대적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것은 백성의 죄악 때문입니다.
죄악은 삶을 황폐하게 하며 영혼을 곤고하게 합니다.
묵상 질문: 예루살렘 성의 이전 모습과 지금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적용 질문: 내 삶과 공동체에서 죄악으로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조롱과 탄식(1:7~11)
죄를 범하면 조롱과 수치가 따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도성을 업신여김과 조소의 대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대적의 손에 넘어가 파괴되었지만 돕는 자가 없고, 대적에게 비웃음을 당할 뿐입니다.
지난날 아름다웠던 예루살렘을 향해 찬사와 영광을 돌리던 자들이 이제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업신여깁니다.
이런 수치와 조롱은 예루살렘의 범죄 때문입니다. 자기 옷깃에 더러운 것이 묻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멸망 한가운데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할 만큼 예루살렘은 죄악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결국 원수들이 예루살렘의 성전 기구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 갔습니다. 이방인이 거룩한 성소를 유린한 것입니다.
죄악의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 자신에게 멸망이 임하는지도 모릅니다.
묵상 질문: 예루살렘이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적용 질문: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조롱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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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개관: 예레미야애가는 구약성경 전 체에서 가장 슬픈 책이다. 저자는 거대 한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의 슬픔을 여 기에 적고 있다(애 11-2). 그러나 슬픔 가운데서도 저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한다(애 1:18). 모든 것이 큰 슬픔으로 보이지만 미래에는 기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항상 신실하신 분이시다. 예레미야애가의 핵심 구절 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 3:22-23)이다. 장별로 본 애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애가: 죄로 인한 예루살렘의 훼파(애 1장)
두 번째 애가: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애 2장)
세 번째 애가: 예레미야의 반응 - 그의 고뇌와 희망과 기도 (애 3장)
네 번째 애가: 여호와의 진노(애 4장)
다섯 번째 애가: 남은 자들의 반응(애 5장)
애가에 담긴 메시지 -이미지화
예루살렘의 멸망 - 예레미야애가는 수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애가이다. 성전이 훼파되고 왕들이 끌려갔으며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던 상황을 바라보며 그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었다.
죄의 결과 - 하나님은 계속되는 백성들의 반역에 대해 진노하셨고, 그 결과로 멸망하게 하셨다. 인간의 영광과 교만의 헛됨을 말하였다.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을 통한 고통을 경험하게 하셨다. 그분은 고통을 통해서 신실하지 못했던 백성들이 되돌아오게 하실 만큼 자비로운 분임을 말했다.
소망- 하나님은 남아있는 백성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분이며 하나님과의 진실되고도 뜨거운 사랑의 관계 가 회복되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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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 영광을 잃어버린 예루살렘
성경은 예루살렘이 이전 영광을 잃어버리고 적막한 성으로 변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결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 영광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 때에 참된 영광과 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를 하나님 안에서 누리며 사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영광을 주님을 위해 바로 사용하고 있는가?
2. 터전을 떠난 백성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그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금 발 딛고 있는 땅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만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귀한 땅들에서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행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땅을 가벼이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은 내가 밟고 선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알고 항상 감사와 겸손함으로 행하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내게 주신 터전을 귀히 여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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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참한 유다(6-8)
하나님을 떠난 유다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닥친 환란은 상상하지 못했던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바로 하나님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에 진정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것을 거부하였고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하나님인 것처럼 신뢰하였습니다. 그곳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은 형식적이고 정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평안을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묵상하기
나의 삶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신뢰하고 있지 않은가?
2. 응답없는 부르짖음(9-11)
유다는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을 겪은 후에 하나님께 자신들을 돌아 봐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에 귀를 닫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시간 동안 그들에게 돌아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에는 그 말씀을 외면하고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신 후에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 없는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지 않으십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는 민감성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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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중심내용
‘슬프다’로 시작되는 애가는 다양한 화자를 통해 슬픔을 표현한 다섯 편의 시입니다.
화자는 적막한 도성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며 슬픔의 노래를 부릅니다.
적막한 도성1절~4절 / 대적들의 조롱5절 ~7절/죄 고백과 구원 호소8절~11절
도움말
전체) 예레미야애가는 히브리어 알파벳을 따라 지은 시이며, 사건이나 논리의 흐름보다 처참한 현실에 대한 여러 측면을 다양한 목소리로 묘사하고 있다. 주전 586년, 18개월의 포위 끝에 바벨론에게 함락당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1절) “슬프다”(히, 에카)는 ‘아!’, ‘오!’ 등 슬픔의 감탄사인 동시에 책의 제목이다.
6절) “지도자들”은 유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과 그 일행을 가리킨다. 이들은 도피를 시도하다 결국 잡히게 되었다(열왕기하 25장 4~7절; 예레미야 39장 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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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연대와 배경
예레미야애가의 역사적인 배경은 예레미야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직후(렘29, 52), 포로 기간이 시작되는 초기에 기록되었다.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588년 1월부터 586년 7월까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그 성은 7월 19일에 함락되었다. 성전은 8월 15일에 불에 타버렸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그가 그의 완고한 동족들에 의해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가기 이전에 이 다섯 개의 애가를 지었을 것이다(렘43:1-7).
주제와 목적 :
예레미야의 다섯 애가는 세 가지 주제가 전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1) 이 중에 가장 현저한 주제는 예루살렘의 대학살에 대한 통곡이다.
그 거룩한 성이 잿더미가 되어 황폐하게 되었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경고)된 심판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그는 슬픔에 싸여 자신과 포로 유배자들, 그리고 때로는 의인화된 그 도시를 향해 대언했다.
(2) 두 번째 주제는,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인정, 그리고 유다를 향한 거룩한 심판이다.
(3) 세 번째 주제는, 그렇게 현저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주신, 미래의 회복에 대한 희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쏟으셨지만, 긍휼하심 가운데 그의 언약들을 끝까지 충실하게 이루실 것이다.
"주의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지 아니하였으니 그분의 동정심은 끝이 없도다.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이 크시니이다."(애가3:22-23)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슬픔.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성도들이 그분과 교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수신자 : 멸망한 예루살렘 거주민들
핵심:(1) 핵심 단어 : 눈물/(2) 핵심 장 : 3장 /(3) 핵심 구 : 애곡과 고통(2:5)
(4) 핵심 절 : 사람이 가득하던 도시가 어찌 외로이 앉았는가! 그녀가 어찌 과부같이 되었는가!"(1:1)
7. 영적 교훈 : 너희 죄가 말소되도록 회개하라(3:25, 행3:19).
하나님,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향한 예레미야의 애통함이 저와 교회를 보시는 하나님 마음은 아닌지요. 하나님이 없는 형통은 쉽게 무너지고, 하나님을 잊은 기쁨은 이내 탄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소망이 사라져 갈 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