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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 통과하는 시간 (시2-66)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찬양 : 너 시험을 당해
본문 : 시66:1-20절
☞ https://youtu.be/TdBT9J8Cb6c?si=lkDd38ppR9DB0F1I
어제 중보기도 세미나 3주 차를 진행했다. 세분이나 시험과 노회의 일들로 빠져서 휑한 자리에서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나를 맡기는 시간, 그럼에도 최선을 경주하시는 사역자들을 위해 나도 최선을 쏟아낼 수 있어 감사했다.
오늘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나누는 시간과 내일 있을 목회사관학교를 준비하고 또 주말 사역을 준비하는 날이다. 준비의 시간은 사역의 시간보다 귀하다. 오늘도 최선의 준비로 주님이 쓰시기 합당한 자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시편 66편은 고난에 대한 해석의 길잡이가 되는 말씀이고 고난을 통과한 자가 드리는 찬양과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시편 66편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되었으나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으로 승리했을 때 지어진 시로 보거나 포로 귀환 후 아니면, 출애굽 사건 이후로 알려진다. 그중 제일 유력한 것은 히스기야 왕 때 일어난 산헤립의 침공과 승리의 순간이다.
이런 장면을 묘사하는 구절이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나온다. 10-12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5절에서 시인은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하나님께서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신 것과 무리가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으며 거기서 주님으로 기뻐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9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라고 고백한 후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로 10-12절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한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데 은을 단련함처럼 하고,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허리에 매도록 하고, 사람들이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란 사실이다.
보통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만나면
사탄의 방해나 사람들을 향해 원망하거나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시인은 이 시험의 배후가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임을 드러내고 있다.
<은을 단련함 같이>
은은 금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지만,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은 훨씬 까다롭다고 한다. 찌꺼기가 정련되는 과정에 얼굴이 은에 비칠 때까지 불의 온도를 조절해 찰나의 순간에 정련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을 통해 당신의 얼굴이 비추는 사람으로 은을 단련한처럼 세심하게 단련하시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자기 의와 세상적 욕망을 태우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에 비춰지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이다.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짐승처럼 내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와 막힘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절대적 한계와 빠져나갈 수 없는 막힘의 자리에 나를 두신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신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고 오직 주님 외에 소망이 없음을 발견하는 자리일 것이다. 지금 나의 삶도 이런 자리를 겪고 있다. 내가 의지했던 모든 것을 주님은 완전히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시고 계신다.
<어려운 짐을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허리'는 인간의 힘과 중심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허리에 무거운 짐을 지우셨다는 것은 내가 가진 힘의 근원을 무력화시키셨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은 전부 내게 하시는 말씀이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려운 짐을 내 허리에 매어 두셔서 나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 되게 하신다. 오직 주님만 내 힘이 되셔야 사는 법을 배우게 하신다.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고대 근동에서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목이나 머리를 밟는 행위는 극도의 굴욕과 완전한 패배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한 마디로 세상의 조롱과 멸시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상황이다.
이것은 자존심의 상처를 넘어, '나'라는 자아가 완전히 죽는 지점이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시간이다. 사순절의 영성일 것이다. 종려주일을 앞두고 주님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나를 보게 하신다.
오늘 본문의 기가막힌 구조는
<주께서>로 시작된 고난의 자리가
<주께서>로 시작된 끌어내심과 풍부함으로 들이셨다는 표현이다.
고난의 자리로 초대하신 것도 주님이시며,
그곳에서 끌어내심도 주님이시다.
그 사이에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가 나온다.
<통과하여>의 히브리어는 '바누(Banu)'로 기본 동사 '보(bo)'의 1인칭 복수 완료형이다. 기본적 의미는 '들어가다(enter)', '오다(come)', '이르다(arrive)'라는 뜻으로, 여기서 '완료형'이 쓰였다는 것은, 시인이 지금 불과 물 한복판에서 비명을 지르는 상태가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이미 겪어내고 마침내 빠져나온 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선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고난과 연결될 때 가지는 독특한 뉘앙스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옆으로 지나가는(pass by)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enter into)' 것을 의미한다. 불의 뜨거움을 피부로 느끼고, 물의 차가움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직면의 자리'로 우리를 밀어 넣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자아의 가짜 안전장치들이 모두 해체되는 '벌거벗겨짐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로 '보(bo)'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나, 우리가 지성소로 '들어갈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과 물속으로 들어갈 때(bo), 역설적으로 하나님도 그 고난의 자리로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bo).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 이미 '네 번째 사람'이 계셨던 것과 같다. 통과는 혼자 하는 행군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가장 깊은 밀월(密月)의 시간으로 그분의 임재를 가장 뜨겁게 경험하는 시간이다.
세 번째로 히브리어 '보'는 어딘가에 이르는 목적지를 품은 단어다. 불과 물은 목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풍부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현관문'이다. 문을 통과해야 거실로 들어가듯, 고난을 '보(bo)' 해야만 하나님의 '레바야(풍부한 곳)'에 도착할 수 있다. 바로 통과하여란 문을 열고 나와 그 풍부함을 보는 감동을 품은 단어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을 주님은 <통과하여>라는 단어를 통해 알려주신다.
지금 나는 직면의 순간을 걷고 있다.
또 임재의 순간을 걷고 있다.
아직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후반전의 삶을 위해 나를 은처럼 단련하시며
나를 만나시고 나를 빚으시고 계시다는 사실과
이 모든 것이 <주께서>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시니 감격할 뿐이다.
시인은 특히 완료형으로 표현하여 주님이 주어가 되시는 일(주께서 하시는 일)에는 결코 실패가 없기에, 고백되는 이미 그물을 찢고 '풍부한 곳'에 닿아 있다고 고백함이 은혜가 된다. 이것이 신앙생활이 아닌가?
시편 기자가 16절에서 고백한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란 말씀을 나의 후반전 삶의 사역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행하신 일을 온 세상에 찬양하며 증거하는 종이 되겠나이다. 당신이 이미 나를 통과하게 하셨나이다.
한줄 묵상 :
<나를 태우는 불과 덮치는 물조차 '주께서' 허락하신 정련의 과정임을 믿고, 내 삶에 행하신 주님의 주권을 당당히 선포하라.>
적용 질문 :
최근 나의 삶에서 내 힘과 지혜가 전혀 통하지 않는 '그물'이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그 상황의 배후에 "나를 은처럼 정련하시는 주님의 세심한 손길"이 있음을 인정하며 내가 내려놓아야 할 가짜 안전장치는 무엇인가요?
3. 나는 고난의 물과 불을 통과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의 임재 아래서 이미 통과한 이후의 풍부함을 바라보며 찬양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