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이력의 이 영화는 매우 빨리 수입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영상물 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었답니다. 이유인즉슨 "마약 복용 장면의 과다한 묘사"가 문제였던 것이지요..-0-;; 등급보류라니..마약먹고 해롱거리는 그런 영화냐구요? 찬찬히 함 살펴보십시다^-^
줄거리는 '그레이스'라는 한 아줌마가 바람 피우고 속썩이던 남편의 갑작스런 자살 이후 알지도 못하던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집을 잃고 거기로 나앉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지닌 단 하나의 재능-화초돌보기(gardening)를 가지고 대마를 재배하여 마약사업(?)에 뛰어들지만 결국 그 일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모든 일은 행복하게 마무리된다는 조금은, 아니 다분히 동화같은 이야기지요.^^
음..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레이스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여성성에 대한 너무 수선스럽지 않은 찬미와, 이해와 배려라는 (여성적) 덕목으로 충만한 공동체 -그레이스가 살고 있는 마을과 그 사람들입니다.
남편 혹은 가정이라는 허울에 의존해 살아가던 그녀가 그 모든 것들을 박탈당하고 벌거숭이가 되었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홀로서기까지를 따라가보면 이 기분좋은 동화를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녀가 대마를 키우게 된 이유는 빚을 갚을 돈이 필요해서이기 이전에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병든 화초로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요.
경제적인 관념도 없고, 대마_마약(산업)에 대해서도 모르던 그녀는 주변에 다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해지자(정원사와 그의 연인이 봉착하는 난관) 과감하게도 혼자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가정..이라는 작은 틀에 갇혀있던 그레이스는 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고, 외부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뻔뻔스런 음모이론을 깨뜨려버리기도 하고, (런던의 정부와 서로 마음을 나누게 되는 모습) 외부세계의 코드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고생도 하지만 (우아한 옷을 입고 마약장사에 나서기도 하구요 ^^) 천성적인 따스한 마음씨와 여성적인 부드러움으로 무서운 마피아까지도 누그러뜨리는 힘을 발휘하지요.
그녀가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는 때는 누군가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영화에서 그레이스를.. 'Gardener'로 설정한 것은 모성성을 직업(혹은 능력)으로 구현한 뛰어난 아이디어임다.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엄마보다 더 잘할 이는 없지요 ^-^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마피아들의 험악한 세계에서도 그녀는 부드러움과 우아함으로 상황을 타개합니다. 투쟁이 아니라 이해와 조언을 통해서.. 남성을 모방하고, 남성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부각시키면서 부드러운 혁명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비밀과 거짓말'에서 딸을 내다버렸던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주책스러운 하층계급의 여인을 완벽하게 연기했던 브렌다 블리신, 이 영화에서는 친근하고 편안하고 지적이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너무나도 매력적인 중년여성을 연기합니다. 이 아줌마..정말이지 맘에 듭디다.^0^
그런가하면 마피아 두목까지도 반해버린 그녀의 마을과 마을 사람들 역시 매우 독특하답니다.
신이 영국에 내린 선물이라고 말해지는 자연의 절경, 콘월해변의 풍광이 멋져서..라기 보다는 (사실 그저 보아넘기기에는 풍광이 넘 멋지기는 합니다..) 그 아늑하고 옹기종기.. 정겨운 풍경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더욱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이 마을에는 비밀이 하나도-거의 없습니다만, 그것은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씹어대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애정이 바탕이 된 이해와 배려에 의한 것입니다. 신부님과 경찰관,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그레이스와 매튜가 대마초를 재배한다는 사실을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른 척, 그저 내버려둡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관은 무관심과는 매우 다릅니다. 상대방을 믿고..지켜보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마을 사람들이 주욱 앉아서 불빛구경을 하는 장면은 단순히 우스운 유머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바보스러우리만큼 서로 서로를 믿고 상대의 곁에 남아서 끝까지 바라보아주는 이 마을 사람들의 애정은 죽은 남편과 그레이스로 대변되는 허울좋은 형식적인 부부라는 가족관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가족애란 무엇인가, 진정한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양념거리는 이 영화에서 '대마초'를 말하는 방식입니다. 아시다시피 대마초란 마약의 일종으로서 현대엔 반사회적인 약물로서 금지된 품목이지요. 그러나.. 전통 부족국가처럼 보다 작은 단위의 공동체에서는 지금 마약으로 불리우는 약물, 즉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은 스스로의 인성과 비전을 계시하고 공동체의 집단무의식을 탐구하는 매개물의 역할을 했었지요.
영화 속에서 그레이스가 키운 질 좋은 대마초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대로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올바로? ^^) 쓰여졌답니다^^
처음 대마의 효과를 경험한 그레이스는 감춰오던 불안함을 숨김없이 표현하게 되고요, 우연히 대마초 이파리를 차로 마셔버린 노파들은 그레이스에 대한 애정과 유쾌한 성정을 폭발시키고,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지요. 영화 말미에 온 마을 사람들이 대마초 연기를 들이마신 후에는 한 바탕 사육제와도 같은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지요.
마약과도 같은 약물들은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을 해방시킨다고 여겨져 정신과에서 치료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레이스의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천국과도 같은 즐거움은 그들의 마음 속이 그만큼 밝고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가 모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을 찬미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성에게 모성을,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남녀차별적인 그것과는 매우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레이스는 희생함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꺼이 행동하였고 그 누구보다도 그레이스가 행복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현위치를 바꿔놓으려는 여성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껍데기뿐인 페미니즘의 시각과도 매우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남성을 흉내내거나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을 바싹 움켜쥐고 그걸 무기로 삼아 사회에 부딪쳐갔기 때문입니다.
보고 있는 동안은 즐겁고, 유쾌하고, 우습지만 보고 나면 가슴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영화입니다. 그레이스와 함께 따스한 겨울의 한 때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임* 우리나라 홈은 그저 평범하지만 영화의 원래 홈페이지는 똑 그 분위기로 만들었네요. 구경해보세요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