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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밀경소 대의문 해설
부처님의 도가 도가됨을 추구하면 가득차서 깊고 현묘하되(湛爾冲玄) 그 현묘함이 사이가 없고 매우 커서 넓고 멀되 그 멂이 끝이 없다.
이에 유위법과 무위법은 허깨비의 변화와 같아서 둘이 없고,무생과 무상은 안과 밖을 포괄하여 함께 없애버린다 .함께 없애버린다는 것은 번뇌의 속박과 경계의 속박을 벗어나서 괴로움이 해소되는 것이다.
둘이 없다는 것은 한 맛을 같이 하여 담백하고 신령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세에 노닐면서 평등하게 관하고,시방에 휴행하면서 몸을 나타내며,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을 제도하고,미래를 궁구하여 더욱 새롭게 한다.
해설
*佛道:空性,일심의 근원
<기신론소>에서 “대승의 본체는 고요함이 텅 비어 적막하고, 가득차서 깊고 현묘하다(湛爾冲玄). 깊고 깊으니 어찌 만상의 겉으로 드러날 것이며, 고요하고 고요하나 오히려 일설하는 사람들의 말속에 있습니다. 만상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지혜의 눈으로도 그 형체를 볼 수 없고, 말속에 있으나 지혜로운 언변으로도 그 모습을 말 할 수 없습니다. 크다고 말하자니 안이 없는 것에 들어가도 남음이 없고, 작다고 말하자니 밖이 없는 것을 감싸고도 남음이 있습니다(至小無內,至大無外). 있다는 것으로 끌어보자면 한결같음이 그것으로 인하여 비어 있고, 없다는 것으로 마땅함을 얻으려 하나 만물이 그것을 타고 생겨났습니다. 무엇이라고 말할지 몰라서 억지로 이름을 붙여 大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논소 별기>에서 “그 몸체는 광활함이 커다란 허공과 같아서 사사로움이 없고, 넓고 넓음이 큰 바다와 같아서 지극히 공평합니다. 지극히 공평하기 때문에 움직임과 고요함이 따라서 이루어지고,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더러움과 깨끗함이 여기에 섞여 합해집니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섞여 합해지기 때문에 속제와 진제가 평등합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름과 내림의 차별이 있는 것입니다. 오름과 내림이 차별되기 때문에 감응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속제와 진제가 평등하기 때문에 생각으로 헤아릴 길이 끊어졌습니다. 생각으로 헤아릴 길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체득하는 사람은 작용(影𧬰)을 타고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감응이 통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이름과 모습을 초월하여 돌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타고 가는 작용은 형상이 아니고 말이 아닙니다. 이미 이름과 모습을 초월하였으니, 무엇을 초월하고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이것을 이치가 없는 지극한 이치라 하며, 그러하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무량수경종요>에서 “가르침의 큰 뜻을 말하겠다. 저 중생심의 성품(衆生心性)은 밝게 통하여 막힘이 없다. 크기는 허공과 같고 맑기는 넓은 바다와 같다. 허공과 같기 때문에 그 체성이 평등하여 차별된 모습을 얻을 수 없는데 어찌 깨끗하고 더러운 곳이 있겠는가! 넓은 바다와 같기 때문에 그 본성이 빛나고 부드러워 능히 인연을 따를 뿐 거역하지 않으니 어찌 움직이고 고요할 때가 없겠는가! 이러하니 어떤 사람은 번뇌의 바람으로 인하여 오탁에 빠져 바람을 따라서 구르고, 고통의 물결에 잠기어 오랫동안 흐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선근을 이어서 사류를 끊고 돌아오지 않으니, 저 언덕에 이르러 영원히 고요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과 고요함도 모두가 커다란 꿈속의 일과 같아서 깨어나면 고요함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예토와 정토는 본래 일심이요, 생사와 열반도 궁극에는 두 경계가 없다.”((言大意者 然夫衆生心性~穢土淨國本來一心 生死涅槃終無二際)) 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미타경소>에서 “가르침의 큰 뜻을 서술하겠다, 저 중생심의 본성(衆生心之爲心地)은 모양도 없고 성품도 없으니,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다. 허공과 같기 때문에 모양이라 하여도 통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어찌 동쪽이다 서쪽이다 할 곳이 있겠는가! 바다와 같기 때문에 성품이라 하여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없으니 어찌 움직이고 고요할 때가 없겠는가! 이와 같으니 어떤 사람은 오염된 행위로 인하여 오탁을 따라 오랬동안 흐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정한 연에 힘입어서 사류를 끊고 영원히 고요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과 고요함도 모두 커다란 꿈속의 일과 같아서, 꿈에서 깨어나 바라보면 흐름도 없고 고요함도 없을 것이다. 예토와 정토는 본래 일심이요,생사와 열반도 궁극에는 두 경계가 없다.”((第一述大意者 夫衆生心之爲心地~穢土淨國本來一心 生死涅槃終無二際))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기신론소>에서 “왜 일심이라 하는가? 더러움과 깨끗함(染淨)의 모든법(색법)은 그 성품이 둘이 없고, 진심과 망심의 두 문(심법)이 다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일一’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 둘이 없는 자리가 모든 법 중에 가득하나 허공과 같지 않아서 성품 자체가 신령하게 알기 때문에 ‘심心’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何爲一心 謂染淨諸法其性無二 眞妄二門不得有異 故名爲一. 此無二處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爲心))“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유위법과 무위법
<色法> 색이란 変碍(변애)하는 까닭.시간적으로 변하고,공간적으로 장애하는 성질
색은 五境(색.성.향.미.촉)과 五根(안.이.비.설.신)과 무표색(법처색)
<心法> 心: 集起집기 모아 일으키기 때문, 갖가지로 차별되기 때문
意: 思量 생각하고 헤아리기 때문, 所依(소의) 다른 것에 대하여 의지할 바가 되기 때문
識: 了別(요별) 식별하기 때문, 能依(능의) 능히 의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
<心所法> 심법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심리활동과 정신현상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심소라 하며, 심법은 경계를 총괄적으로식별하나,
심소법은 선악.애증.정사의 판단으로 취사선택 하게한다.
<心不相應行法> 색심불상응법 색도 심도 아니나 색심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적
현상의 존재를 뜻함.생멸을 가진다
<無爲法> 생멸,변화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
(허공,택멸,비택멸.부동무위.상수멸무위,진여)
*번뇌장과 소지장
번뇌의 속박(相應縛):근본번뇌(근본무명의 미혹)
경계의 속박(所緣縛):경계를 보거나 사유함을 따라 일어나는 미혹
<무량수경종요>에서 “부사의지는 성소작지다. 이 지혜는 능히 불가사의한 일을 짓는다. 여섯자를 넘지않는 몸이지만 정수리를 볼 수 없고 털구멍 양만큼도 늘이지 않고 시방세계에 두루하며, 일념으로 명호를 부르면 여러 겁의 무거운 죄업을 영원히 소멸하고, 십념으로 명호를 생각한 공덕은 능히 삼계밖의 수승한 과보에 태어나게 하는 일과 같은 것을 일컫는다. 이와같은 일들은 낮은 지혜로 헤아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사의지라 이름한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이에 여래께서 일생보처의 대사를 마주하여 저 깊고 깊은 비밀한 뜻을 해설하시고,
18가지 원만한 국토에 머무시면서 이 요의의 법륜을 굴리셨다.
그것이 가르침이 되었으니 정밀하고 순수하다.
무성하고 화려한 것은 버리고 실다움만을 기록하였으니,
긴요하고 묘한 것을 모아서 끝까지 펴 보였다.
유위와 무위의 법상을 열어서 승의의 양변을 여윔을 보이고,
지관의 본말을 밝혀서, 세움과 깨뜨림으로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였으니,
가르침은 삼장의 성스런 교법을 궁구하였다.
*요의경(了義經)에 대하여
법상종(法相宗:唯識) 입장
제1.사제법륜 : 有敎이며, 『아함부』의 경전
제2.무상법륜 : 空敎이며, 『반야부』의 경전
제3.요의대승 : 中道敎이며, 『해심밀경』
법성종(法性宗:삼론종) 입장
1. 초시교 : 소승의 교법
2. 2시교 : 대승법상의 교법(법상교), 『해심밀경』
3. 3시교 : 대승무상의 교법(파상교), 『반야부』의 경전
회통: 법상종과 삼론종은 서로 자기의 교법(소의경전)이 요의경 이라고 주장 하는바
성사께서 이르시길 “야 이놈들아 진여의 성품과 생멸의 모습이 하나야? 둘인냐?
일심의 이문(二門) 안에 다 포함되는 것이니라” 하시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으시다.
*오행(木.火.土.金.水)의 이치를 나무에 적용하여
봄이 되면 나무에서 순이 올라 오는것을 木이라 하고, 순이 자라 가지가 되고 가지에서 잎이 무성히 피어나는 바를 계절로는 여름이요 오행으로는 火라 하고, 가을이 되면 잎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고 떨켜가 생겨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나니, 그러하지만 큰 고통의 산고를 이겨내고 열매를 맺으니 이를 오행으로는 金이라 하고, 겨울이 되면 그 열매가 더욱 굳어지고 꼭꼭 숨죽여 숨어서 새 생명의 씨앗을 맺으니 이를 오행으로는 水라 합니다.
이러한 목화에서 금수(木火→金水)로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든바 그 작용을 도와주는 힘이 꼭 필요하므로 초목도 바로 열매를 맺지 않고 꽃이 필요하듯 오행에서도 그 운화의 작용이 있어야 함을 土라고 합니다.
<무성하고 화려한 것은 버리고 실다움만을 기록하였으니> 이 기록으로 놓고 볼 때 성사께서 꼭 오늘같이 가을이 익을대로 익은 스산한 바람이 낙엽을 날리고 국화꽃 향이 은은히 코 끝에 스미어 드는 11월 어느 x요일 오후 분황사 앞뜰의 추국(菊傲水碧국오수벽)을 바라보면서 정토를 찬탄하시며 해심밀경소를 편찬하지 않았나 상상해 봅니다.
“발심의 열매는 지혜이지만 그 꽃이 피는 과보는 정토에 있다”
이 의미도 깊이 사유 해 봅니다.
*삼장(三藏)
경장(經藏)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성전을 통틀어 경전이라 합니다.
율장(律藏)은 부처님이 불자들에게 생활규범에 대하여 말씀하신 경전
율장의 청정한 계행은 부처님의 행이며, 우리들이 지켜야 할 삼업의 원칙
논장(論藏)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장과 율장에 대하여 선지식이 알기 쉽게 풀이한 해설서
논은 묻고 답하며 분석하고 자세히 밝혀서 지혜로운 학문을 글로 전하는 것
이치는 사종도리를 다하고, 행은 육바라밀을 분별하였으며,
지위는 십지를 널리 설하였으니, 십지의 행이 성취되는 때에 원만한 전의를 증득한다.
전의한 법신은 불가사의하여 모든 쓸데 없는 논설을 끊어 버린다.
궁극은 하는 바가 없으니, 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짓지 않는 바도 없다.
궁극을 논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바도 없다.
짓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팔상의 교화는 팔방에 두루 하여 문득 일으킨다.
말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삼륜의 가르침이 삼천세계에 유통되어 더욱 떠들썩하다.
더욱 떠들썩하게 설함도 일찍이 말이 있지 않고,
문득 일으킨 모습도 본래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를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의 장교라고 일컫는다.
지금 이 경은 비밀한 장교를 열어서 밝혔기 때문에
제목을 세워 '해심밀경'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사종도리(四種道理)
① 관대도리(觀待道理) : 모든 법의 상대적인 것을 관찰하는 도리.
② 작용도리(作用道理) : 유위법은 因과 緣으로 生起한다(연기의 도리).
③ 증성도리(證成道理) : 현량(現量), 비량(比量), 성교량(聖敎量)에 의해 증명된다.
④ 법이도리(法爾道理) : 불교의 진리는 부처님의 출현과 관계없이 본래 그러한 법칙이다.
*육바라밀:오행문(五行門)
①시문(施門)
②계문(戒門)
③인문(忍門)
④진문(進門)
⑤지관문(止觀門) :정혜(定慧)
*전의(轉依):의지함을 바꿈
① 번뇌장과 소지장을 버리는 轉捨
② 무루지(無漏智)를 증득하는 轉得을 말함
무루는 번뇌가 없다는 뜻이다. 번뇌가 없으면 공덕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번뇌가 없어지는가? 첫째, 번뇌의 원인이 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면 자유롭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둘째, 혼미한 의식을 끊어버리고 깨어있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셋째, 대상 경계를 끊고 경계가 소멸하여 서로 응하지 않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넷째, 끊어야 할 경계를 상대하여 관행으로 다스리니 자성이 상속하여 해탈하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관행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경계 자체를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 경계를 마음 밖의 실체로 바라보지 않고 공과 무상으로 관하고, 일심의 도리에 의해 관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끊어야 할 번뇌를 상대하여 수행의 힘으로 다스리니 자성이 상속하여 해탈하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청정한 자성이 상속하기 때문에 해탈한다는 것이다.
첫댓글 일심 광명 화신
귀명합니다 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파 ()()()
이러한 시도를 하신것을 찬탄합니다.
저는 이해하기도 힘드네요!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모든 것이 이해되고 통달되어야만 이렇게 술술
역시 법사님
이렇게 정리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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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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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차고 깊고 넓고 아! 좋아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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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의 열매는 지혜이지만 그 꽃이 피는 과보는 정토에 있다"
위대한 논서를 보고 듣고 사유하여 행으로 꽃이 피어나기를 발원합니다.
여러 논서를 비교 분석하셔서 한 눈에 볼수있게 해주신 백공님 찬탄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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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공님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요즈음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복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자유의지가 중생심아닌가? 자유의지가 일심?
18세기 이후 인본주의가 계속 이어지고, 지금이 최고로 인간이 중요한 인본주의 시대가 아닌가?
왜냐하면 앞으로 오는 시대는 기술발달로 인간중심보다는 기술중심으로 갈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사람은 더 행복한가?
행복하려면 어떤 정책이 우리 삶에 전제되어야 하나?
기술발달과 함께 불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또 해야하나? 등등
그 모든것이 일심의 바다, 일심의 근원에서 보면 둘이 아니고
생사가 따로 없지만요!
불교가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문득문득 그런생각들이 계속...
나무아미타불
해심밀경
감사합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벽공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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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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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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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벽공님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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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찬탄합니다!
무량광 무량수 나무아미타불 ()
공부는 이렇게!!!!!!!
벽공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도반이 스승이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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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공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심 광명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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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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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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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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