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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심 2:1~5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4 원수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성전과 성벽을 무너뜨리심 2:6~10
6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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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진노의 날에 주님은 그분의 발판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야곱의 거처를 삼키시며, 모든 뿔을 자르십니다. 원수같이 활을 당기시고, 대적처럼 죽이시며, 진노를 불처럼 쏟으십니다. 초막과 절기와 제단과 성소를 버리시고 성벽과 성문을 허무시니,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묵시를 받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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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심 2:1~5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원수 되게 합니다. 2장은 두 번째 애가로 ‘하나님의 진노’를 묘사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시온을 덮은 ‘구름’으로 표현합니다(1절). 예언서에서 ‘구름의 날’은 ‘심판의 날’을 암시합니다(겔 30:3). 예루살렘을 구름으로 덮으신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져 버리신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쏟아부으신 진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신 하나님은 모든 거처와 궁궐과 성채를 파괴하시고, 모든 뿔을 잘라 나라와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국가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두렵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결과는 파괴와 수욕과 죽음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쏟아부으신 진노는 어떠했나요?
원수같이 여겨 진노하실 만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내 죄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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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성벽을 무너뜨리심 2:6~10
하나님이 적대시하시면 모든 것이 허물어집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성전을 무너뜨리십니다(6절). 동산의 초막을 헐어 버리듯 그분의 성소를 파괴하시고, 절기와 안식일도 사라지게 하십니다. 죄와 우상 숭배로 오염된 성전이 ‘하나님의 집’으로서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견고함을 자랑하던 예루살렘 성벽도 허무십니다(8절). 성문의 문빗장이 떨어져 나가니 왕과 지도자들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의 땅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선지자들이 더는 하나님의 묵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온전한 회개와 돌이킴뿐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성전과 성벽을 무너뜨리신 결과는 어떠했나요?
사랑하는 자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한절묵상:예레미야애가 2장 4절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시면 그보다 두려운 재앙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신 하나님은 본래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던 하나님, 이스라엘 앞에 군대 대장을 보내시던 하나님입니다(출 14:14, 수 5:14). 의로운 재판장이신 그분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칼을 갈고 활을 겨누십니다(시 7:11~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서기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두려움이 소망으로 바뀝니다.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면서도 그 잘못을 고치길 계속 거부하는 이에게 주님은 진노하신다 - 트램퍼 롱맨 3세
오늘의 기도
하나님, 고통과 슬픔이 삶을 뒤흔들 때 제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은 아닌지 속히 돌아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오른손이 심판을 위해 펼쳐지기 전에 제 마음과 삶에서 죄악을 몰아내게 하소서. 하나님만 기뻐하고 하나님만 자랑하는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찬송(새 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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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얼마나 철저하게 징계하셨는지를 예레미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상하지 못하는 고통과 아픔을 예루살렘은 받았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보금자리도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들도 욕되게 하셨습니다. 힘도 다 빼앗아 가지고 권세도 거두셨습니다. 예루살렘을 원수와 같이 대하시고 주변 나라들의 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끝날 때 내려지는 징계는 무섭고 상상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하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크고 아픈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의 시간을 소중하고 감사함으로 지내야 합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가?
2.허물어진 성전
하나님을 위해서 지은 솔로몬 성전이 힘 없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지어진 성전이 처참하게 무너지게 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참된 마음으로 제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사라졌습니다.
형식에 치우쳐서 종교적인 행위는 하지만 참된 신앙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 성전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그곳은 거저 한 건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지어진 건물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무리 잘 지어진 성전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의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 된 성전을 바로 세우고 그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진정한 성전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의 성전은 거룩하고 성결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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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하나님의 진노
애가에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황폐로부터 그것의 파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로 그 주제를 바꾸었다. 바빌론은 오직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그 성을 멸망시킨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혹독하게 황폐케 된 것에 대한 직접적인 목격자로서 기록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빌론인들을 사용하여 모든 종교적인 관행들을 철폐하셨고, 제사장들, 대언자들, 왕들을 흩으셨으며, 성전과 궁궐들을 무너뜨리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자초한 백성들의 고통을 슬퍼했고, 예루살렘의 탄원을 노래함으로 본 장의 애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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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수없이 경고했지만 ‘듣지 않는’ 백성에게 ‘말씀하신 대로’ 진노를 쏟아 부으십니다(예레미야 7장 20절; 15장 14절). ‘노’와 관련된 단어가 여섯 번 나오고, 표현된 동사마다 하나님의 격한 감정을 보여줍니다. 사랑이 강렬했던 만큼 진노 역시 강렬합니다. 하늘 높이 아름다웠던 이스라엘이었지만 땅에 내던져버리시고, 눈동자처럼 아끼던 모든 사람을 죽이십니다. 과거가 현재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남용하여 죄에 거한다면, 더해지는 것은 은혜(로마서 6장 1절)가 아니라 근심과 애통일 뿐입니다(5절).
1,6~9절 성전과 언약궤(발판)와 성벽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예배의 장소(그의 초막)와 시간(절기)을 폐기하시고, 시온이 자랑하던 철옹성도 허물어버리십니다. 은혜를 구할 모든 통로를 차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이고 하나님의 성소였지만 유다 백성이 오염시켰기에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통로, 은총의 수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말씀에 대한 신실한 순종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입니다.
3,4절 보호와 구원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시고, 징계와 심판의 오른손을 드십니다. 같은 오른손이고 같은 대상을 향하지만, 때로는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징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언약적인 축복과 심판을 선포할 때 모두 “예” 하고 받았지만(신명기 27,28장), 어느덧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축복만 베푸는 말 못하는 우상처럼 대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께서 심판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언약 백성의 의무를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5절 “원수 같이” 되셔서 자기 백성을 무자비하게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이사야 59장 2절).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원수’가 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화해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원수로 만들 만큼 심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은 그 죄를 말갛게 씻을 만큼 크고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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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들 가운데에 성전을 두시고 성벽을 두르셨습니다
그러나 진노의 날에 성전을 헐어버리셨습니다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애2:1)
하나님께서 항상 그 발을 두신다하여 성전을 하나님의 발판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발판을 봉안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대상28:2)
성벽도 헐어버리셨습니다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애2:8)
주께서 원수가 되셔서 성전과 성벽을 헐어버리신 것입니다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애2:5)
왜 원수처럼 되셨을까요?
세상과 짝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요한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는
① 세상을 사랑함과 아버지를 사랑함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며(15절)
②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만 세상의 것은 잠깐 있다 지나가 버리는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16,17절).
*요일 2: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요일 5:19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이 세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할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요일 2:18, 22, 4:3, 요이 7, 계 13장).
사탄은 물질적인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결국에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모든 것을 그의 머리 아래로 통일할 것이다.
바로 그때에 세상 체계는 그 정점에 이를 것이고, 세상 체계를 이루는 모든 단위가 그리스도인을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적용
오늘날에는 세상이 우리를 찾아온다.
오늘날 도처에 사람을 사로잡는 세력이 있다.
돈과 먹는 것과 마시고, 입는 것 등...
어디를 가든지,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화제의 중심이 다 세상적인 것들이다.
세상은 이미 교회의 문 앞에까지 와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성도를 그의 손아귀로 이끌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탄이 모든 것과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체계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사탄에게 체계화되지 않으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안으로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피난처이며 우리의 보호이다.
주님!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도록 말씀이신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게 하소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과소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질투하시기까지 사모하시는 사랑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5)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면 질투의 불에 삼켜질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4:24)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랑을 멸시하려고 하면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면 자기 백성이라도 아끼지 않고 치셨던 것처럼 우리도 치실 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사63:8~10)
참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멸시하니
그 질투의 불에 살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습1:18)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과 벗된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사랑하기 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또한 형제를 미워하던 것에서 돌이켜 뜨겁게 서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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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없는 제사, 진심이 담기지 않은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이용하려 했던 이들에게 임했던 심판과 수치처럼
그들이 우상으로 여겼던 성전과 성벽은 적들의 손에 의해 무너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일상은 여호와의 손길에 덮여 온갖 위험과 공격으로 인해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신실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존중해 주지 못할 때
그 사랑의 마음이 식어지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동행을 인정하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지 못할 때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둘기 같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사그라들지 않기를
날마다 구하며 그 보호하심의 손길 아래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 사무엘상 1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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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생활에서
계시적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배우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의 방법과 우상의 가르침을 따르면
어떠한 일을 당하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신 것 같다.
아는 것은 많아 졌는데
행할 능력이 없는 나약한 믿음
종교의 형식과 종교적 모양은 갖추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나의 모습을 지적하신 것 같다.
하나님으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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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줄을 띠고’라는 표현은 건축물의 수직을 정확히 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줄이 이스라엘의 죄를 측량하시고 거기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건축물까지도 심판의 대상이 되어 성과 성곽까지도 통곡하게 하셨으며 함께 쇠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었습니다. 성문이 없다는 것은 적에게 당한 완전한 패배를 의미합니다. 그 결과 네 그룹의 사람들이 고통 속에 헤매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급인 ‘왕과 방백들’은 율법 없는 자들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종교 리더십의 무너짐으로 인하여 장로들은 슬픔으로 티끌을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고 장례식의 모습으로 앉아 잠잠하고 있습니다.
처녀들은 희망이 없음으로 머리를 땅에 숙였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감히 울부짖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 여호와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픈 것입니다.
주께서 심판하시는 날, 진노하시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시기에 진노하실 수 있고, 그들이 무당종교처럼 섬기던 성벽이나 성전, 제사제도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격적인 순종과 올바른 신앙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 끝나는 날에는 그들이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던 것들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꾸 기독교를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끌고 가지 않고 이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맹목적인 무당종교로 치부하려는 자들이 우리시대에도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믿었던 성전, 성벽, 제의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진노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올바른 신앙의 초점을 맞추고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올바른 예수를 믿고 올바른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도 분명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기회의 시간으로 주어진 오늘이 잘 살아야 하는 날인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또 새로운 날을 선물로 주셨으니 잘 살아봅시다. 기쁘고 감사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격적인 순종으로 하루를 채워봅시다. 후회와 회한이 찾아오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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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삶의 터전(2:1~5)
하나님의 진노는 천둥 같은 기세로 유다 땅을 덮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언약 백성으로 그 아름다움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하자,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영광을 땅에 던지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할 의무를 무시하고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언약을 저버린 백성의 터전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고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아름다운 뿔처럼 높아졌던 그들의 권세와 영광을 모두 자르시고 영광의 도성을 불로 태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의 원수가 되셔서 그들을 향해 진노의 활을 당기셨습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의 결국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께 받은 복으로 마음이 높아져 자기 자랑에 빠지지 않았는지 돌아보세요.
무너진 제단(2:6~10)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던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성전의 절기와 안식일을 폐하셨습니다. 왕이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의 제사장들이 탐욕에 빠지고, 장로들이 성소 안에서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셨습니다. 유다 지도층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시고 성소를 미워하시며 제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을 짓밟고 성전 기물을 자기 나라로 옮겼습니다. 그 결과 유다 왕과 지도자들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한 심령과 정결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엎드릴 때까지 연단하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진노가 왜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임했을까요?
- 적용 질문: 교회가 거룩함과 영광을 회복하도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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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하시는 하나님
본문:애 2:1-9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심판의 하나님이신 것에는 박애주의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고 지옥을 만들어 놓으신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공의와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2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아주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목도한 예레미야의 보고를 들어 보십시오. 예레미야는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문장들의 주어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문장들이 '주께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아니라 주께서 파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겉보기에는 지금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예레미야가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세상에서도 심판하십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의 심판은 모든 이를 심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심판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은 그들이 바르고 이스라엘은 악인이기 때문에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이긴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바벨론이 이스라엘 보다 더 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것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이 끝나고 새하늘과 새 땅이 시작할 때입니다. 이 세상이 있는 동안에의 심판은 국지적 심판입니다. 곧 모든 이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판단하실 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파괴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그들이 지금 파괴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린 것이라 하여도 실재로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겉보기에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자동차일 수도 있고, 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을 당할 때 우리는 그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심판 당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심판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보아야 복된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 때 그 사람은 그 심판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심판의 악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바른 길로 인도되어집니다.
심판과 시련을 구분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우리가 바른 길로 인도되어지기 위해서는 심판과 시련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다 심판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당한 어려움을 보십시오. 그가 종으로 끌려갈 때 그것은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힐 때 그것도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사울에게 쫗길 때 그것은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심판인지 아니면 더 나은 것을 위한 시련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심판인지 시련인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심판이 있을 때는 주로 당사자가 가장 먼저 압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우리는 심판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고 서원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심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시련인데 심판으로 알고 알절부절 못하고, 심판인데 시련으로 알고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심판인지 시련인지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치 예루살렘이 수십개월 포위되어 있는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그것이 심판인지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데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그것이 심판인지를 알고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역경을 대처하는 쉬운 방법은 고난이 있을 때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그래서 고쳐야 할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고치십시오. 그러나 이 때 하나님은 완전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온전함이란 우리의 마음이 순전하여 정직히 하나님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내가할 수 없는 것까지 요구하시는 것은 완전이고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을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온전입니다. 시련이 있을 때 온전함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평안하십시오. 내가 모르는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도 모르고 알 수도 없는 죄 때문에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일전에 '가계의 저주를 끊어라'같은 책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만약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어서 이 땅의 선과 악에 대해 심판이 없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심판이 없다면 이 땅은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판은 주님의 백성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심판은 우리를 선한 길로 가게 만들고, 새땅에서의 심판은 우리를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각주>
1절 발등상 발을 올려 놓는 대. 따라서 그(의) 발등상은 하나님의 발을 올려 놓는 대라는 의미로 성전을 의미한다.
3절 뿔을 자르셨음이여 도깨비 뿔이 도깨비의 힘의 근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뿔을 자르셨다는 뜻은 이스라엘의 왕가가 잡혀간 것을 의미하거나 이스라엘의 명망있는 사람이나 강인한 성이 파멸한 것을 의미한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삶을 눈동자처럼 지켜보시고 강한 팔로 붙들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는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여호와를 더 깊이 알고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원의 손길에 감사를 잊지 않는 제자 된 삶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