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곳곳에 여신 신앙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바위신앙과 결합하여 여근을 닮은 바위를 지바위라고 부른다. 바위가 갈라진 틈이 있는 곳도 지바위라 부른다. 경주 남산의 상사암도 지바위이다. 이곳은 기자 신앙터로 아주 인기가 높다. 아들을 바랐던 조선 시대에는 더욱 더 인기가 많았다. 지바위가 있는 곳에는 거의 대부분이 멀지 않는 곳에 남근석이 있다. 모신신앙이 남신신앙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기의 출산에 남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음양의 조화를 통하여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였던 흔적이다. 말하자면 여근을 상징하는 굴불사의 석굴에 상응하는 남근이 있어야 한다. 남근석의 자리가 바로 갓바위라고 하였다.
모신은 태초의 신앙형태이다. 우리의 토속신앙에는 여신신앙 흔적이 아주 많다. 그러나 팔공산에는 불교가 뒤덮고 있어서 모신신앙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굴불사의 암부처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암부처에 상응하는 숫부처 즉 남근의 상징을 갓바위에서 찾았다.
시골에 가면 예부터 내려오는 바위의 이름에 촛대바위, 상투바위, 필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많다. 노골적으로 ㅈ바위라는 이름도 있다. 모두 남근석을 나타낸다. 그런 바위에 갓을 쉬우면 아래 마을의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 전설도 많다. 이런 유형의 설화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만큼 ‘갓바위’라는 이름도 전국에 흩어져 있다.
방언학자 신승원 박사는 ‘갓]이라는 말의 고어는 여인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였다.(한국문화상징사전-동아출판사) 남근석에 갓을 쉬운다는 것은 남성이 아래에 여성이 위에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남녀의 성행위에서 여성상위 체위를 ’감투(갈거리)‘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에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갓부위 부처님이 여기에 좌정하시기 전에 어떤 신앙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모신신앙이 성기신앙으로 이행하면서 성결합은 음양의 조화로 보았다. 갓바위에서 이와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전라도 지역에는 흔한 토속 신앙으로는 마을 앞에 당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남근석을 두고 당산이라고 불렀다. 신앙의 대상이다. 당산 위에, 즉 남근석 위에 갓바위 부처님의 머리 위처럼 편평한 돌을 얹어 둔 당산이 있다. 이를 갓당산이라고 하였다. 역시 성결합의 상징이다.
불교가 도입되면서 토속 성지는 불교의 성지로 바뀐다. 남근석도 불교식으로 개명을 한다. 가장 흔하게 바뀐 이름이 미륵 바위이다. 미륵불은 서민과 가장 친화력이 강한 부처님이다. 민초의 신앙이었던 남근석이 미륵 바위로 바뀐 것은 이해가 간다.
팔공산의 갓바위 부처님이 계시던 이곳도 아득한 옛날에는 촛대바위니, 상투바위니 하고 불렀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불교라는 거센 폭풍 앞에서 토속 신앙의 모든 것은 날아가버리고 지금의 불교 성지가 되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