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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6년 가을, 한 건의 빅 뉴스가 신문 헤드라인에 떴다.
그 해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가 복싱-레슬링 이종격투기 쇼를 보여주고
알리가 태권도 사범 이준구랑 한국을 방문한 후 한 달 쯤 후였다.
소련 미그 25 일본에 불시착. 조종사는 미국 망명 요청.
소련 국토방공군 소속의 빅토르 벨렝코라는 전투비행사가 자신의 전투기를 몰고 도망쳐와
일본 북해도의 하코다테 공항에 불시착한 것이었다.
하코다테 공항에 착륙한 미그 25. 조종사 벨렝코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관계자들에게 기체를
케이프로 덮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곧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미국 대사관 관계자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연락을 받고 미 대사관과 주일 미공군 관계자가 달려왔다. 조종사는 빅토르 벨렝코 중위. 미국망명을
요청했다. 곧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련은 외교부를 통해 기체와 조종사의 송환을 요구했다.
난처하게 된 일본정부는 일처리를 미국에게 미뤘다.
미국은 항공 전문가들을 보내 미그기의 기체를 완전히 분해해서 정밀조사하고 컨테이너에 담아서
소련으로 돌려줬다. 다만 조종사 신병문제는 자의적 망명인만큼 돌려보낼 수 없다고 맞섰다.
소련은 조종사가 방향을 잘못잡고 불시착한 것이며 자기들이 조종사의 의도를 알아야 되겠다고
주장했다.
얼마 후 소련측 관계자와 벨렝코 중위의 면담이 성사되었다. 미국의 입회하에 소련측 관계자가
벨렝코 중위를 심문했다. 돌아오면 1계급 특진에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게 해주겠다고 꼬셨지만
벨렝코는 완강하게 미국행을 고집했다. 그걸로 끝.
제랄드 포드 대통령은 그의 미국망명을 받아들이고 시민권을 부여했다. 성형수술을 해 외모를 바꾸고
미국정부로부터 연금과 미공군의 컨설턴트라는 직업도 얻었고 음악교사와 결혼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 (CIS)로 재편된 1995년 그는 사업차 러시아를 방문했다.
공군장교가 비행기를 몰고 망명한 사례는 벨렝코 외에도 많으며 그가 최초도 아니다.
1950년대 북한 공군의 노금석이나 폴란드 공군이 날아온 등, 서방으로 넘어온 사례는 무수히 많다.
더불어 1980년대 이응평도 마찬가지.
그런데 왜 벨렝코의 망명이 그시절 미소 양진영에 그토록 큰 충격을 몰고왔을까?
군사전략과 무기체계의 설계사상에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양 진영 군산복합체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2.
1960년 소련 상공을 비행하던 U-2 정찰기가 소련 방공망의 SAM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조종사 게리 파워즈는 비상탈출에 성공해서 체포되었다. 미 당국은 기상관측 중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재판에 회부된 게리 파워즈는 정찰비행을 시인했다.
이후 또 한대의 U-2 기가 쿠바 사태때 격추되었다.
U-2 기는 아음속기다. 27Km 까지의 초 고고도에서 마치 글라이더처럼 오래 비행하면서
사진을 촬영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U-2 기가 더 이상 안전한 정찰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하지만 그후 60년이 흐른 지금도 U-2 기는 짱짱하게 떠 다닌다) 미국은 SAM 미사일을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정찰기를 계획한다. 그것을 R-70 이라 불렀다.
그리고 같은 기체를 폭격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기존의 B-52 폭격기를 대체하려고
(그 후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B-52는 짱짱하게 떠 다닌다) 한 것이다.
이것을 B-70 이라고 불렀다.
B-52는 33 톤의 폭탄을 싣고 1만 1천 킬로를 비행한다. 미국에서 모스크바를 때리고 귀환할 수 있다.
다만 역시 아음속이라 베트남전쟁에서 월맹군이 보유했던 SAM 미사일에 자주 격추되었다.
SAM 미사일 67 발이 발사될 때마다 한 대의 B-52가 격추되었다.
명중율 1.5%는 대단찮은 것 같지만 미사일을 "소세지처럼 찍어내" (흐루시초프가 한 말) 한꺼번에
수십 발을 폭격기 편대를 향해 쏘아올리는 교리는 조종사들에게는 큰 공포였다.
전봇대만한 미사일이 수십 발 일제 발사되어 폭격기 편대로 날아오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그래서 소련의 미사일방공망을 뚫고 안전하게 폭격임무를 수행할 새 기체를 개발하려 한 것이다.
정찰기는 R-70, 폭격기는 B-70으로 계획했다. (R= Reconaissance 정찰, B= Bomer 폭격)
후에 B-70 개발계획은 취소되고 (폭격기는 이후 카터 행정부 때 B-1 계획으로 수정됨) 정찰기
R-70 계획만 추진되어 최종적으로 SR -71 초음속 정찰기가 태어난 것이다. 그 이름도 원래는
RS-71 이었는데 존슨 대통령이 SR -71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대통령 체면 세워준답시고
그냥 SR-71로 불러준 게 그대로 제식화 되어버렸다.
SR - 71 블랙버드 정찰기. 1960년대에 개발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최고속도의 비행기다.
마하 3.3 (초속 1,100 미터, 시속 4,000Km)으로 비행하는 이 기체가 360도 선회하려면 한반도
절반의 면적이 필요하다. 마하 4의 소련 극초고속 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미사일이 24Km 고도까지
올라오면 이미 기체는 미사일 사거리를 벗어난다. 1998년 퇴역.
그런데 이 개발계획이 소련의 정보기관에 입수되었는데 엄청 과장되게 부풀렸다.
어떤 놈은 심지어 핵추진 폭격기 (핵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게 아니라 핵을 연료로 한 3년간
하늘에 떠있을 수 있는 비행기)라고 추정하는 놈들도 있었다.
핵추진 비행기라니... 항속거리가 무한대인 비행기란 얘기다.
냉전시대, 상대방에 대한 무지와 공포가 빚은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그리고 무기 회사들은 이런 공포가 끝없이 확대되면 될수록 좋다.
소련은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다. 초고고도를 초고속으로 비행해 오는 비행물체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SAM 의 개량계획부터 새 전투기를 개발하는, 다양한 대응책이 강구되었다.
후에 B-70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소련은 그 대응책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 결과 미코얀- 기레비치 설계국에서 만들어낸 것이 MIG -25 폭스배트이다.
소련에는 설립자나 유명 공학자의 이름을 딴 설계국이 있다. 항공기의 경우,
MIG 설계국 : 미코얀과 기레비치가 설립한 설계국으로 MIG 넘버를 부여한다. (MIG- 21, 23, 25, 27,29...)
수호이 설계국 : 수호이 박사가 설립한 설계국. SU 넘버를 부여한다(SU-27, 31, 35.)
야코블로프 설계국 : YAK 넘버를 부여한다 (YAK -38)
일류신 설계국 : IL 넘버를 부여한다. 주로 정찰기(IL-76)
투톨레프 설계국 : TU 넘버를 부여한다, 주로 폭격기, 수송기(TU-95, TU-22 백파이어)
군사무기의 조달과정은 미국은 철저하게 민간회사 중심이다. 군에서 ROC(작전요구서)를
내면 록히드든 보잉이든 민간회사가 경쟁하여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시험평가 후 가격을
써내고 한 기종이 살아남아 조달되고 그 회사는 돈 번다.
하지만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투자대비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전혀 무시되므로 때때로
개발을 위한 개발, 연구를 위한 연구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주도형 개발이다.
(한국은 ADD가 회사들 모아서 공돌이 쪼인트 까니까 그 절충형이다)
그 결과 탄생한 아주 기형적이고 괴상한 기체가 미그 -25 였다.
3.
MIG-25가 최초로 서방(미국)의 정보망에 포착된 것이 그 몇 년 전이었다.
미국 정찰위성이 고속으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포착했는데 놀랍게도 속도가 마하 3.2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토 코드네임으로 그 비행체를 폭스배트 (Foxbat) 라 명명했다.
폭스배트는 미군이 붙인 이름이지 정식 이름은 소련이 붙인 MIG-25다.
새로운 소련 전투기가 출현하면 미군은 코드네임을 붙인다.
가령 미군 비행기는 앞에 붙는 문자가 비행기의 용도, 역할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름을 보면 전투기인지 폭격기인지 정찰기인지 알 수 있다.
F (Fighter, 전투기) : F-16 팰콘, F-18 호네트, F-15 이글
A (Attacker, 공격기) : A-3 스카이레이더, A-6 인트루더, A-10 썬더볼트, A-50 골든 이글.
B (Bomer, 폭격기) : B-52 스카이 포레스토, B-1 랜서, B-2 스피릿
C (carrier, 수송기) : C- 5 갤럭시, C-130 허큘리스
R (Reconaissance, 정찰기) : SR 71 블랙버드.
하지만 소련전투기에 붙는 MIG나 SU는 설계국의 이름이지 임무나 역할이 아니다.
그래서 미군은 새로운 소련 비행기가 출현하면 이름을 붙여주는데 그것을 자기들 방식대로
붙인다. 가령 MIG 나 SU는 전투기이므로 F로 시작하는 단어를 골라 이름을 지어준다.
MIG-21 : 피시베드(Fishbed)
MIG-23 : 플로거(Flogger)
MIG-29 : 풀크럼(Fulcrum)
Su-27 : 플랭커(Flanker)
폭격기는 지들 방식대로 B로 시작하는 이름을 붙여준다.
Tu-22 : 백파이어(Backfire)
Tu-160 : 블랙잭(Blackjack)
자, 마하 3.2로 비행하는 새로운 기체가 발견되었다. 대경실색 (한 척)한 미군당국은 소련놈들이
B-70을 두고 난리쳤던 것처럼 똑같은 난리를 친다.
그리고 그때까지 최고성능으로 평가되었던 F-4 팬텀으로는 저걸 갈굴 수 없다는 판단하에
새로운 제공전투기를 계획한다.
(후일 이게 구현된 형태가 F-15이다)
팬텀기는 큰 기체에 막강한 폭장량을 가졌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간간히 구닥다리 미그기에
당하는 망신을 사기도 했다. 한국전 당시 미군 F-86 세이버는 같은 급의 MIG-15에게 10대 1의
격추교환비를 기록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는 4대 1로 떨어졌다.
순수 공중전에서 미그기가 4대 격추될 때 팬텀기도 1대 격추되었다는 말이다.
4.
공포는 공포를 낳아 (공포 좋아하네, 새끼들. 다 알면서 예산 많이 따내고 무기 팔아먹고
돈 벌려고 하는 거 다 아는데)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미군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차에
벨렝코가 그 MIG-25를 몰고 하코다테에 착륙했다는 소식이 왔다.
미 공군, 보잉인지, 제네랄 다이나믹스인지 항공기 공학자들, 주일 미대사관 할 것없이
우르르 달려 가보니 활주로 저 끝에 갑빠가 씌워진 비행기가 있었다. 갑빠를 벗겨내고 곧 육안
관찰이 진행되었다. 맨 먼저 미국 전문가들의 눈길을 끈 것은 비행기 날개 일부에 칠해져있는
벌건 도색이었다. 저걸 왜 칠했지?
의문은 곧 풀렸다. 미군이 날개에 자석을 갖다대자 철컥 소리를 내며 붙어버린다.
비행기 날개를 알루미늄이 아닌 양철 쪼가리로 만들어 녹이 벌겋게 슨 것이 도색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분해를 해보니 더 기막힌 광경이 벌어졌다.
레이더 본체에 쌀알 모양의 물체가 무수히 보였다.
자세히 보니까 이게 진공관이었다. 당시 서방에서는 이미 트랜지스터를 넘어 IC (집적회로)가
등장하고 가전제품에서도 IC 칩이 도입되려던 시기였다. 하지만 소련은 그때까지 반도체
기술이 모자라 진공관을 깨알같이 축소해서 사용했던 것이다.
벨렝코 중위가 가져온 MIG -25 운용 매뉴얼을 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G 포스 4 이상은
기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G (Gravity) 포스란 비행기가 급선회할 때 기체에 가해지는 중력부담이다. 평상시가 G 1
상태이고, 놀이공원 청룡열차가 G 3 정도 되고 건강한 성인은 G 5를 넘으면 기절하며
조종사는 G 7까지 견디도록 훈련받는다. F-15의 기동한도가 G 9까지 견디도록 설계되었고
최고기록은 미공군 F-16 이 (우연히 실수로)세운 G 11.2 이다.
말하자면 MIG -25는 G 4를 넘는 급기동을 하면 날개가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날개를 알루미늄이 아닌 강철로 만든 것은 마하 3.2 까지 속도를 내면
공기와의 마찰로 날개가 가열되는데 섭씨 659도에서 녹아버리는 알루미늄을 사용할 수
없었고 열에 강한 강철을 사용한 것이다. 다만 강철은 알루미늄보다 3배 무겁기 때문에
중량을 줄이려고 얇게 펴서 사용했다
(이걸 전문용어로 양철, 통조림 용기로 사용되면 깡통)
당시 서방측은 신소재로 티타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티타늄은 알루미늄보다
조금 무겁지만 용융점이 1,700도에 가까워 강철보다 오히려 열에 강하다. 그리고 질기다.
하지만 비철금속의 야금술이나 합금기술이 모자랐던 소련은 무식하게도 강철을 항공기
날개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강철은 알루미늄이나 티타늄만큼 질기지 못하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조금만 급선회하면 날개가 떨어져 나간다. 오직 속도를 위해 나머지
기능을 모조리 희생시킨 것이다. 좌향 좌, 우향 우도 맘대로 못하는 비행기가 무슨 전투기냐.
MIG -25의 임무는 오직 한가지, (존재하지도 않는) B-70 이나 SR -71 이 나타나면 최고속도로
직선으로 날아올라 대공미사일 두 발을 쏘고 그냥 착륙하는 것이었다.
전투기가 초음속 비행을 하려면 애프터 버너(After burner), 곧 후연기 혹은 연료 재연소장치를
가동한다. 간혹 에어쇼에서 보는, 전투기가 급상승할 때 분사구에 시뻘건 불꽃이 보이는 게
그거다. 후연기를 가동하면 연료가 3배 이상 소모된다. SR-71 초음속 정찰기나 지금은 퇴역한
콩코드 여객기는 후연기 없이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전투기는 음속돌파를
위해서는 후연기를 켤 수밖에 없다.
후연기 없이 음속 돌파를 할 수 있는 전투기는 미공군의 F-22 랩터가 유일하며 랩터는 순항속도를
마하 1.6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슈퍼 크루저 기능이라 한다)
애프터 버너를 이빠이 켜고 급상승하는 MIG -25는 20분 비행하면 연료가 모두 소진된다.
기체를 완전 분해하고 촬영까지 끝낸 미군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괜히 쫄았잖아, 새끼들.
한편 MIG-25가 미군에 의해 완전히 분석되었다고 결론내린 소련은 지금까지 극비로 취급해왔던
이 물건을 수출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시리아에 수출되었다.
엉터리 물건이란 걸 양키들이 알아버렸으니... 에이, 돈이나 뽑아서 보드카 마시자구.
일본도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벨렝코가 소련에서 북해도로 날아와서 하코다테에
착륙할 때까지 일본의 방공레이다는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했다.
방공망이 뚫렸다는데 충격받은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F-15 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미쯔비시 중공업에서 라이센스 생산해 항공자위대에 배치했다.
그 이후 일본의 재무장, 군비증강론이 힘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