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월내역에서
자연학교 동선을 길게 잡아 길을 떠나는 오월 초순 월요일이다. 이른 아침 외동반림로를 따러 걸으니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가 싱그러워 한 수 남겼다 “도심 속 높이 자라 눈길 끈 가로수길 / 나목은 나목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 계절이 바뀌어 가는 나침반을 삼는다 / 우람한 둥치에서 연초록 잎이 돋자 / 방추형 세모꼴은 하늘로 솟구치어 / 늠름히 짙푸른 기상 뙤약볕에 맞선다”
퇴촌삼거리 창원천 수변 산책로 운동기구에 매달려 한동안 몸을 단련하고 창원대학 캠퍼스를 지난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갔다. 순천을 출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객차를 이동도서관으로 삼아 가바사와 시온과 다시로 마사타카 공저 ‘감사하는 뇌가 인생을 바꾼다’를 읽었다. 차창 밖 풍경은 익숙한지라 눈길을 보내지 않고 구포와 사상을 지난 부전역에 닿아 동해선 전철을 탔다.
근래 경전선 선로에서 하동역으로 나가 섬진강을 물줄기를 따라 트레킹을 나서고 부전역에서 동해선 전철로 바닷가를 거닌다. 이번은 후자에 해당해서 해운대를 돌아간 월내역이 산책 기점을 삼을 요량이다.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지공거사 무임승차를 마다하지 않고 객석에 앉아가니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승객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기장에서 일광과 좌천을 지난 월내역에서 내렸다.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가까운 월내인데 임랑해수욕장으로 걸었다. 시야에는 탁 트인 검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드러났다. ‘임랑(林浪)’이라는 지명은 해송이 우거진 바닷가 파도라는 뜻인데 해수욕장과 인접해 소나무가 있기는 하나 택지에 잠식되어 일부만 남았다. 모래밭으로 나가기 전 철길 굴다리를 일주문으로 삼은 묘관음사를 찾으니 고승이 염불을 외어 법당 밖에서 손을 모았다.
몇 차례 찾은 적 있는 묘관음사인데 어느 날은 공양 때라 법회를 마친 신도들과 공양실에서 점심을 같이 먹은 적 있다. 벽면에는 성철 선사 청년기 사진을 확대해 붙여 놓아더랬는데 스님이 한국전쟁 혼란기 한동안 머물렀던 절이었다. 법당 안으로는 들지 않고 문설주에 기대 문살무늬를 살펴보고 추녀에 뎅그랑거리는 풍경을 치올려봤다. 바람이 세게 불어 은은한 종소리가 났다.
절집을 나와 임랑해수욕장으로 나가자 원드스핑을 즐기는 해상 레저들이 보였다. 전날 내린 비가 그친 쾌청한 하늘에 검푸름 바다는 파도가 밀려와 모래밭에 부서졌다. 지난번 일광해수욕장이나 다대포해수욕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 걷기를 했다. 모래톱을 따라 발을 디디니 황톳길을 걸을 때와 다른 촉감이 느껴졌다. 모래톱 구간이 길지 않아 천천히 걸었다.
해수욕장 남단에 이르니 장안읍에서 흘러온 좌광천이 바다로 합수했다. 발에 묻은 모래를 털고 배낭에 넣어둔 신발을 꺼내 신고 해수욕장과 인접한 마을 어귀 박태준 생가를 찾으니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포항제철과 포항공대를 세워 우리나라 현대사 커다란 획을 그은 인물이 태어난 마을에 기장군이 세운 기념관이다. 지난번 거기를 둘러보고 생애에 감동 눈시울이 붉어졌다.
차도로 나가자 해안을 따라 운행하는 버스로 좌천역으로 향했다. 역사로 들어 태화강역을 출발해 부전으로 가는 전동차를 탔다. 승객이 붐벼 해운대를 지나도록 서서 가다가 빈자리가 생겨 앉았다. 동래와 연산 도심을 거쳐 부전역 종점에 닿았다. 늦은 점심때였는데 끼니를 해결하러 부전시장을 둘러보자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골목에서 순대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랜 요기를 했다.
다시 부전역으로 되돌아와 목포로 가는 새마을호를 탔다. 예전에는 무궁화호만 다닌 경전선에 근래 새마을호가 하루 한 차례 왕복으로 운행한다. 구포를 벗으나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다 잠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열차는 삼랑진에서 철교를 건너 한림정을 지나왔다. 깊숙한 터널 두 곳을 빠져나간 창원중앙역에 닿으니 오후의 햇살은 무학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2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