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높은 청약 경쟁률로 관심을 모았던 '대연 롯데캐슬레전드' 대연2구역 주택 재개발 사업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관리처분계획변경 취소 소송
부산고법, '사정판결'로 기각
최근 판례와 배치…논란 예고
부산고등법원이 관리처분계획(변경) 취소 소송에서 2003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정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정판결은 행정처분이 잘못돼도 공공복리를 감안해 법원이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판결이다.
부산고등법원 제2행정부(손지호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남구 대연동 1595 일대 16만 5천70㎡에 추진 중인 대연2구역 주택재개발사업과 관련, 사업시행 변경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해 달라는 원고 측 주민의 항소를 기각했다. 원고는 대연2구역 내 토지 등 소유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 47명이다.
대연2구역은 2007년 최초 사업시행 인가를 받아 사업을 진행했으나, 법률 하자로 2012년 10월 사업시행 변경인가를 새로 받았다. 사업비(5천500억 원→8천537억 원), 세대 수(2천850세대→3천149세대) 등 주요 부분이 대폭 바뀐 사실상의 새로운 사업시행 변경인 셈.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조합이 2013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으면서 그 기준 시점을 최초 사업시행 인가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상대책위는 관리처분계획 기준 시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법제처도 지난해 유권해석을 통해 '주요 부분이 변경된 사업시행 변경인가의 경우 토지와 건축물의 감정평가 기준일은 사업시행 변경인가 고시가 있은 날'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결국 2012년 10월 이후 주민의 자산을 감정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정평가 시점이 2007년이냐 2012년이냐에 따라 주민 재산엔 큰 차이가 발생한다. 대연동 일대 공시지가는 5년간 10~50%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을 기준으로 하면 주민 입장에서는 가격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는 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부산고법도 이번 판결을 통해 '조합의 관리처분계획이 위법하다'는 부분은 인정했다. 그러나 부산고법 관계자는 "일반분양이 끝났고 사업이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기존의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하면 입주 지연 등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최근 2~3년 다른 고등법원 판결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법원이 대연2구역과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준 판결이 5건이나 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원이 판결 전 소송 중인 대연2구역 사업 절차를 보류하는 문제를 검토할 만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원고 측은 '대연 롯데캐슬레전드' 일반 분양 7개월 전인 지난해 4월 집행정지 명령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심리 없이 판단을 미뤘고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연2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 최종규 조합장은 "재판부에서 일반 분양자와 조합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중하게 판단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판결은 부산의 대연6·7구역과 주례2구역 등 유사 소송이 진행 중인 다른 재개발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임태섭·이승훈 기자 tsl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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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위법해도 그대로 강행한다는 것 아닌가." "법대로 판단해야지 도대체 어떤 공익 때문에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가?"
법원 "현장 원주민 이익보다
일반 분양 '공공의 이익' 앞서"
대연 6·7구역, 주례 2구역 등
유사 소송 사업장 '예의주시'
"분양 전 위법 알았을 텐데…"
법조계 일각에서도 의구심 부산고등법원이 지난 15일 대연2구역 주택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사정판결'을 내리자 부산의 다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향후 파장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대연2구역과 유사 소송을 진행 중인 대연6·7구역, 주례2구역, 재송2구역 등 재개발 사업장은 직접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법정에서 위법을 밝혀내도 '공공의 복리'라는 대연 2구역의 사정판결 사유가 똑같이 적용될 수 있어 답답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
부산재개발재건축시민대책위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사정판결의 영향이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시민대책위 김성태 위원장은 "현재 80% 이상 철거된 부산 사업장만 해도 1만 세대 정도며 여기에 관리처분단계를 밟고 있는 세대까지 포함하면 정관신도시 급"이라면서 "대연2구역 사정판결의 논리가 다른 사업장에 원용돼 소송을 진행 중인 재개발 현장 원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해 대연파크푸르지오 아파트가 들어서는 대연6구역은 2013년 11월부터 사업시행인가 취소, 관리처분계획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2년 사업시행변경인가에 따라 이듬해 5월 관리처분을 받았지만 2008년 최초 사업시행인가일을 기준으로 한 감정평가액을 적용했다. 일반분양은 올해 6월로 예정돼 있다. 대연6구역 비대위 측은 "우리와 같은 상황인 대연2구역 사정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다섯 군데를 취소시킨 서울고법 판결을 무시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SK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대연7구역 비대위도 비슷한 입장이다. 대연7구역 비대위 측은 "우리도 지난달 최초 관리처분인가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됐다"면서 "사유가 '일반분양과 함께 사업 진척이 많이 돼 공익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인데 도대체 우리 서민의 이익은 누가 보장하느냐"고 지적했다.
대연7구역은 2012년 4월 최초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이후 6월 일반분양에 나섰고 2013년 5월 관리처분인가가 났다.
이어 사업계획이 변경되면서 2013년 11월 사업시행변경인가를 다시 받았고, 2014년 1월까지 재분양이 진행됐다. 하지만 최초 관리처분인가의 감정평가액이 그대로 적용됐다.
계룡건설이 시공사인 재송2구역도 비슷한 반응이다. 사업시행변경인가와 관련해 소송 중인 재송 2구역 비대위 측은 "원래 모든 일을 법원에 맡긴다는 것은 법리적인 해석을 보자는 것 아닌가"라며 "위법임에도 공공이 아닌 다수의 복리를 위해 사정판결을 내린 것은 결국 힘의 논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송2구역 비대위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를 준비 중이다.
롯데건설이 시공사인 주례2구역도 지난해 6월 사업시행변경인가를 받고 올해 3월 관리처분계획을 위한 총회를 열어 서면결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2009년 최초 사업시행인가 당시 감정평가액 기준이다.
더불어 주례2구역 비대위 측은 2014년 1월부로 최초사업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사업시행변경인가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주례2구역 비대위 측은 "아무것도 모른 체 사업이 진행돼 왔다"면서 "지금 시세를 반영한 새로운 감정평가를 통해 모든 분담금을 밝혀놓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이 시공사인 서대신 5구역도 소송까지 가진 않았지만 논란이 거세다. 2009년 최초 감정평가액을 그대로 가져가다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려고 하는 상황이다. 서대신5구역 비대위 측은 "이번 대연 2구역 사정판결을 이제야 알았다"면서 "우리 구역은 15평이 대부분이고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은데 2009년 감정평가액 4천만~5천만 원을 가지고 어디 가서 살란 말인가"라며 한탄했다.
법조계도 부산고법의 사정판결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진행된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사회적 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라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한 법조인은 "대연 2구역의 경우 일반 분양 이전에 이미 관리처분계획의 위법성이 드러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서둘러 일반분양을 감행해 사정판결을 유도했다는 의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법치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사정판결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임태섭·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사정판결은?
대연2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에 적용된 사정판결은 행정소송법에 명시돼 있다. 행정처분이 위법해도 그 파장과 공공복리를 감안해 행정처분을 취소하지 않는 판결이라고 보면 된다. 법치주의의 예외조항이어서 엄격한 요건 아래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연2구역의 경우 주민의 재산권 침해와 조합원·일반 분양자의 피해가 대척점에서 다퉈졌다. 법원은 후자 쪽으로 기울며 그걸 공공복리로 판단했다.
사정판결이 나면 법원은 판결 주문에 처분 위법성을 명시해야 한다. 실제로 부산고등법원은 '2013년 4월4일 남구청장으로부터 인가받은 관리처분계획변경은 위법하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