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봉 언덕을 올라
신록이 싱그런 오월이다. 전날 김해로 나가 인제대 한국학 아카데미 강좌를 수강했는데 목요일은 한국사 청강생이라 이른 아침 걸음을 나섰다. 어제 오전은 대산에서 농촌활성화지원센터가 주관한 도예 교실을 수강하고, 점심 식후 김해로 서둘러 자리를 옮겨갔다. 한국사 청강은 오후이나 아침 일찍 창원천 수변 산책로 운동기구에 가볍게 몸을 단련함이 하루를 시작한 첫걸음이다.
이후 김해행 버스를 타려고 창원대 삼거리로 가는 천변에서 시퍼런 잎줄기가 솟은 창포가 꽃을 피워 피사체로 삼아 ‘창원천 노랑꽃창포’를 남겼다. “생태천 복원시켜 산책객 즐겨 찾아 / 징검돌 디뎌 걷는 도심 속 수변 운치 / 교외로 나가지 않고 계절감을 느낀다 // 냇바닥 수초에는 물고기 헤엄치니 / 백로가 날아와서 먹잇감 겨누는데 / 시퍼런 창포 잎맥은 노란 꽃을 피운다”
앞 단락 인용절은 김해로 가는 58번 버스에서 앞서 천변에서 본 노랑꽃창포꽃을 소재로 한 수 남겼다. 창원터널을 거쳐 장유에서 시내로 들어 내외동을 지난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내렸다. 바로 곁 연지공원은 창원 용지호수만큼 경관이 아름다운 곳인데 지난주 김학수 그림전을 관람하는 길에 한 차례 거닐었다. 야간에는 분수 쇼 조명이 용지호수와 같이 펼쳐지는 곳인 듯했다.
해반천을 건너 김해 국립박물관 뒤 가야사 누리길로 올랐다. 소나무 산책로 언덕길을 걸어 구지봉에 이르러 신령스러운 바윗돌 곁을 서성였다. 삼국유사에 하늘에서 내려온 여섯 개 황금알이 놓인 자리는 둥글게 광장을 이루고 남향 가장자리 커다란 고인돌이 지켰다. 산책로 따라 동편 생태터널 건너 허황옥 무덤으로 향했다. 담장을 둘러친 구지문을 지나 수로왕비릉 묘역이었다.
허황옥은 오라버니 장유화상을 대동해 인도 아유타에서 머나먼 뱃길로 진해 용원 망산도에 닿았다. 그때 알에서 깨어난 수로왕은 자신이 배필이 오고 있음을 계시받아 신하를 보내 맞이하도록 했다. 녹산을 거쳐 금관가야 도성으로 입성하였을 듯하다. 그 당시 안전한 항해를 위해 뱃전에 싣고 온 봉돌은 호계사에 두었는데 조선 후기 김해 부사 정현석이 수로왕비릉 곁으로 옮겼다.
오래전 답사를 다녀간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수로왕비릉 앞 파사각에는 우리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붉은 보랏빛 무늬가 보인 자연석 더미를 층계로 탑을 쌓아 보존했다. 지질학자가 바윗돌 성분을 분석해보니 한반도에서는 없는 성분이라고 한다. 바람과 파도를 진정시켜 준 바위여서 진풍탑(鎭風塔)으로도 불리는 파사석탑이다. 천 삼백 년 세월을 건너 지켜옴이 신비롭다.
구지로를 걸어 동상동 시장 칼국수로 점심을 먹으면서 묘하게도 그곳에 동남아인들이 모여듦이 허황옥 모국이 연상되었다. ‘수로왕비릉’을 남겼다. “가야사 누리길로 올라선 솔숲 언덕 / 바윗돌 덩그러니 수로왕 탄생 설화 / 맞은편 홍살문 경내 허황옥이 잠들다 // 아유타 떠나오며 안전한 뱃길 위해 / 뱃전에 무게 실어 풍랑을 잠재워준 / 남방산 자연석 더미 봉돌탑이 지킨다”
이어 오후 일과로 어방동 인제대 캠퍼스로 가서 한국사 강좌를 청강했다. 이번에는 청강생이 한 명 늘었는데 나와 예전에 같이 근무한 적 있는 교장이었다. 교사 시절 사회 교과를 가르쳐 우리 역사와 문화에 식견이 높은 분이다. 열정이 넘치는 배 교수는 지난 시간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주자학으로 성리학이 융성해짐에 이어 조선 정신사를 가른 두 거인 퇴계와 율곡을 다루었다.
퇴계와 율곡 문하생은 동인과 서인으로 사림을 이뤄 출사와 낙향을 거듭하며 한국 유학사를 지배했다. 이(理)와 기(氣)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국가 경영에서 군왕을 보좌해 입신양명에 힘썼다. 여럿인 후학들의 학문적 성취가 빛남에도 두 스승을 뛰어넘은 청출어람을 보이지 못함이 한계였다. 연줄로 이어진 붕당과 학맥 폐단은 오늘날도 현재 진행형임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