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
신라 천년의 역사가 집중된 지역을 꼽으라면 궁궐이 있었던 월성 주변이 아닐까 싶다. 전각이었던 임해전지와 안압지 첨성대 계림이 모두 월성 주변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잘 보여주는 국립경주박물관도 월성 바로 코앞이다. 월성은 도성으로 현재도 부분적으로 성벽과 건물지가 남아있다. 그 모양이 반달 같다하여 반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곳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하는데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서의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있는 계림에는 느티나무 등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졌고 북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돌아 흐른다. 계림은 경주김씨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이 이곳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는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걸려 있더라는 것.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려 뚜껑을 열자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하여 성을 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과 ‘구림’으로 부르던 숲을 계림으로 부르면서 신라의 국호로도 쓰이게 되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왕위가 계승되어 왕이 되지 못했고 후대 내물왕대부터 신라김씨가 왕족이 될 수 있었다. 계림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 3년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탈해왕은 알지를 거두어 길렀는데 성장하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알지’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도 알지 설화가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삼국사기와 약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다. 즉, 박·석․양씨보다 먼저 경주 지역에 정착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뒤에 비중이 커진 김씨 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그들의 조상을 연결해 이 같은 설화를 탄생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알지’라는 명칭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것이 ‘아기’라는 뜻이라고 했으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를 따르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Ar’ 부족, 즉 금金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알지의 아들은 세한勢漢이며 그 뒤의 계보는 아도阿都·수류首留·욱보郁甫·구도俱道로 이어지고 구도의 아들은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다. 미추이사금은 알지의 7대 손이 된다.
계림은 신라 왕성 가까이 있는 신성한 숲으로 신라김씨 왕족 탄생지로 신성시되고 있으며 지금도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숲을 이루고 있다. 왕버들 느티나무 외에도 팽나무 등 고목이 100여 그루나 울창하게 서있고 특히 회화나무는 계림 정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둘레직경이 2미터나 되며 수령은 1300년 정도로 추정한다. 한자로는 槐花나무로 표기하는데 중국발음을 따라 ‘회화’로 부른다. 홰나무를 뜻하는 槐자는 나무와 귀신을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를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회화나무를 많이 심었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한다. 3년 전 여름 창경궁 경내에서 만난 고목 회화나무가 아직도 기억에 남은 것은 고목이 거의 직각으로 꺾여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뒤주 안에서 생을 마친 사도세자가 그 나무 바로 옆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그곳에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둥치는 심하게 갈라져 죽었을 법한데도 상체 잔가지는 연둣빛 잎들을 무성하게 달고서 건재한 게 신비롭다. 마지막 두 컷 이미지가 그것이다.
계림 경내엔 특이하게도 왕릉이 하나 있다. 미추왕 조카로 석씨인 흘해왕이 아들 없이 세상을 뜨자 그 뒤를 이어 첫 김씨 왕이 된 내물왕이었다. 그로부터 52대 효공왕까지 김씨가 신라의 왕위를 이었고 내물왕은 재위기간에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외교와 국방에 힘썼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경주의 봄을 찾아가면서 첫째 목적지로 꼽았던 월성은 담장으로 굳게 막혀 있었다. 금년 말까지 3년 동안 벌이는 해자정비공사 안내판도 붙어있었다. 정비 후 벚꽃 흐드러진 풍광의 조감도는 내년 봄을 손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