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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샬롬’에 흔들릴 때 (시2-73)
2026년 4월 1일 (수요일)
찬양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본문 : 시73:1-28절
☞ https://youtu.be/ruPUn-GXfiI?si=-hk91G0ZAZ7_qqGT
어제 중보기도 세미나와 공동체 예배 그리고 스페이스 알 사역으로 라마나욧선교회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사역을 마치고 오늘 아침은 육체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여기저기 보내는 육체의 싸인에 겸손히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수요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내일 있을 목회사관학교를 준비해야 한다.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진 오늘 주어진 자리를 체력을 고려하되 작은 체력이지만 진심과 전심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을 통해 나의 삶을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은 시편의 세 번째 책의 시작으로 아삽의 시다.
이 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뻥 뚫린 가슴을 만지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2-3절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12-14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가?>를 살피면 살필수록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헛되다’ 생각할 정도였음을 자백한다. 그래서 만일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으면 이랬을 것이라고 한다. 15절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이것은 <신앙생활 정직하게 해 봐야 다 소용없구나! 라고
공개적으로 발설하고 다녔더라면> 주의 아들들의 세대
즉 하나님의 언약 백성, 특히 연약한 성도들을 상처주고 실족하게 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는 악인들처럼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였다고 한다. 16절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이를 ‘알까’하여>
히브리어 야다에 전치사가 결합된 단어로 이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받는 이 끔찍한 모순을 자신의 이성과 논리로 '완벽하게 해석하고 납득해 보려' 시도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의 결론은 고통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발설하지 않았다.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책임감으로 그는 그 이해되지 않는 현실을 끌어안고 하나님앞으로 나아간다.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여기 성소란 히브리어 מִקְדָּשׁ, 미크다쉬로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말한다. 물리적 장소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속으로 들어가 보니 시인이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16절까지 아삽은 세상의 한복판에 서서 수평적인 시각으로 악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형통(샬롬)과 평안(샬롬)에 마음이 미끄러졌고, 이해되지 않는 현실에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하며 당하는 고난이 없고, 재앙도 업속,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다.>
하늘을 향해 대적하며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말하는 자들인데 말이다. 이러니 어찌 흔들리지 않으랴 ~
그러나 성소에 들어선 순간,
그분의 통치안에 들어가 보니 수평적으로 보이던 시선이 수직적으로 바뀌며
하나님의 심판아래 버려둔 인생들의 참혹한 삶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8절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수평적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 나라의 관점으로 보니 그들의 삶이 샬롬이 아닌 <파멸로 이어지는 미끄럼틀>이란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회개한다. 21절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이것은 히브리어 하메츠(חָמֵץ)란 단어로 본래 '누룩이 들어가 발효되다, 시큼해지다'라는 뜻이다. 악인의 가짜 샬롬을 부러워하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원망과 질투로 마음이 시큼하게 상해버린(embittered) 영적 소화불량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히브리어(킬요트 샤난)의 의미를 빌리자면, 자아의 가장 깊은 지성소인 내 콩팥이 날카로운 칼에 관통당한 듯한 통증을 의미한다.
앞에서 악인의 형통을 어떻게 머리로 이해하려고 고통당했던 시인이, 썩어 없어질 가짜 <샬롬>을 부러워하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했던 삶에서 회복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27-28절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가짜 ‘샬롬’으로 휘둘렸던 시인은 샬롬이란 단어를 외면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진정한 <복>이라 선언하고 있다.
시인은 현재 자신의 삶을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고백하며
그 이유가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임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오늘 나도 육체적으로 너무 피로하다. 한 달을 넘기면서 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버겁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동행하시는 그 복(토브)이 있기에 오늘도 주님을 피난처 삼아 주님의 행적을 전파하는 자로 설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누구에게나 이런 수평적 시선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고난주간 셋째 날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수평적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이들의 반대와 공격과 수치에 흔들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향해 걸으신 주님을 묵상하게 된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도 시인의 고백처럼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 것처럼 느껴지고, 악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는 현실을 보면서 마음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수평적 시선으로 살 수밖에 없는 저의 약함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진정 하나님의 통치적 시선을 영혼과 삶을 해석하며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하는 복있는 삶 누리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십자가의 은혜로 가짜 평안(샬롬)을 진실을 볼 때, 비로소 주님께 착 달라붙는 진짜 복(토브)이 시작됩니다.>
적용 질문 :
1. 내 삶에서 하나님 없이 승승장구하는 세상의 '가짜 샬롬'을 부러워하며 속앓이를 했던 적은 언제입니까?
2. 수평적인 시선을 멈추고 하나님의 통치적 시선을 회복하기 위해, 오늘 내가 억지로라도 발걸음을 옮겨야 할 나만의 '성소'는 어디입니까?
3. 고난주간 셋째 날 주님의 삶을 묵상하며 내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