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124위의 복자들은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순교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각 지역에서 현양되던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이다.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 복자의 순교일은 12월 8일이지만, 이날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라, 그가 속한 전주교구의 순교자들이 많이 순교한 5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하였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이날을 성대하게 지내며, 교구장의 재량에 따라 성 바오로 6세 교황 기념일도 선택하여 거행할 수 있다(주교회의 2019년 추계 정기 총회).
본기도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영광스럽게 고백하도록 부르셨으니
그들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복음의 명령에 언제나 충실하게 하소서.
제1독서
<나는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
▥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입니다.6,18.21.24-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1999년에 개봉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레스터 버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레스터는 중년의 직장인으로, 단조롭고 무의미한 일상을 살아가며,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가족과의 소통 부족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습니다. 아내 캐롤린은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며 성공을 추구하지만, 역시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부동산 재벌과 외도에 빠집니다.
레스터의 삶은 딸 제인의 친구인 안젤라를 만나면서 급격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젤라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레스터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몸을 단련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꿈꿔왔던 스포츠카를 구매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결국에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전에 행복했던 오래된 가족사진을 보며 끝을 맺게 됩니다.
영화에서 레스터는 종종 상상 속에서 안젤라와 함께하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이때 등장하는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 삶의 의미와 열정을 상징합니다. 장미는 레스터의 욕망과 새로운 시작을 향한 갈망을 나타내며, 그의 무의미한 일상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장미는 상상 속에만 있지 않고 영화 내내 등장합니다. 각자가 삶의 열정인 장미를 찾고 싶어 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장미가 아닌 상상속의 장미를 추구하게 되면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목숨을 걸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되고 목적이 됩니다. 그 목숨을 걸 것은 분명히 내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열정(passion)을 불러일으키고 나의 땀과 피를 쏟게 합니다. 그래서 열정은 수난(passion)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이 없는 삶은 무기력합니다. 사람은 삶의 이유가 있어야 살기 때문에 내가 선한 목적으로 쏟지 않는 피는 죄를 위해 사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죄라도 삶의 이유로 삼아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 율법학자 엘아자르라는 노인도 돼지고기를 먹이려는 이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죽음을 택합니다. 어차피 죽는 목숨, 죄짓는 목적이 아닌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데 쓰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죄짓기 위한 에너지가 남지 않습니다. 하느님 뜻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못하면 그만큼 죄를 짓는데 사용됩니다. 매를 맞아 죽어가면서도 엘아자르는 말합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마치 소크라테스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가 되어가면서도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동경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목숨을 너무 아까워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어차피 사라져버릴 우리 목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기자가 우사인 볼트에게 왜 빨리 은퇴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더는 뛸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올림픽 3관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 번의 올림픽에서 세 개씩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면 그는 에너지를 어디에 썼을까요?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마지막 올림픽이 끝나고 광란의 파티를 하여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죄를 왜 짓게 될까요?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에너지가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 계명에 우리 목숨을 걸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죄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에게 100억짜리 명마가 있다면 술을 먹이고 지방을 먹이고 잠만 재우겠습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내어놓지 못하는 목숨은 모두 저절로 죄를 짓는 데 사용되게 됩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것인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것인지는 우리 결단에 달렸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렸을 때, 아침이면 집안이 시끌벅적했습니다. 6남매이다 보니, 회사 출근과 등교 준비로 늘 바쁜 아침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쁜 아침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바로 화장실 문제입니다. 가족 모두 이용해야 하는데, 화장실 숫자는 마당 구석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장실 앞에 줄이 서 있을 때, 저는 곧바로 앞 건물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이 앞 건물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1분만 뛰어가면 바로 성당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당 화장실을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집처럼 편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 많이 이용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정 급하면 사정을 이야기하고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이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당은 제게 너무나 편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편한 곳이 된 것은 그만큼 성당에 자주 갔기 때문입니다. 매일 미사를 했고, 또 복사를 서면서 성당은 집처럼 편해졌습니다.
주님과 편한 관계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많이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과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가깝고 편한 관계가 되는 길입니다. 즉, 기도를 통해 대화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들 때, 주님께 얼른 달려가서 그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주님 안에서가 아닌 세상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들은 아직 성인품에 오르지는 않으셨지만,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셨으며 이로써 지금의 한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신 우리의 선조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실제로 우리 순교 선조들은 자기 죽음을 통해 이 땅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신 분이셨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크기에 배신할 수 없었고, 그 사랑이 너무 편안해서 주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을 행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 우리 순교자들이 보여주셨던 주님께 대한 사랑을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가득 담을수록 주님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편한 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과유불급)(논어 선진 편).
사진설명: 김형주(이멜다),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