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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정부가 갈등하고 있다. 의정갈등의 와중에 어느 의사가 말했다* “이과 국민이 부흥시킨 나라를 문과 지도자가 말아먹고 있다고,” 다소 파격적인 말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一理)가 없지 않다. 의료대란에 의사단체와 현 정부의 관료와의 힘 싸움이다. 이과인 의사와 현 정부의 고급관료인 법조인과의 대결에 빗대어 시작한 말이다. 국가 경제의 발전에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이바지한 바가 크고 이는 이과가 이룬 것이지 법률가가 이룬 것은 아니다. 그래서 늘 문과를 공부한 사람들은 문과를 나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줄여 ‘문송합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기술을 천시하는 문화가 팽배했다. 하지만 국민이 직접 선거로 정치인을 뽑는 지급도 문과 출신, 특히 법률가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국민적인 관심사인 모 아파트 개발 사건에 토목이나 건축 기사는 보이지 않고, 법조인 등 문과 출신 이름만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는 기현상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수십 년 동안 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단 몇 시간 만에 대수롭지 않은 기술로 해결했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국도와 붙은 긴 담을 돌아서 논 사이에 난 정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긴 담장 가운데에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사이 문” 또는 “새 문”이라고 불렀다. 그 문으로는 선생님만 다닐 수 있고 학생들은 위험하다고 다닐 수 없도록 교칙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의 걸음으로 사이 문을 지나치고 돌아 정문으로 들어가면 15분은 족히 걸리는 멀리 있는 길을 둘러가야만 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걸음은 어른인 선생님의 걸음보다 느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도 교칙이니 준수하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것이었다. 교통사고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학생들의 출입을 전면 금지한다는 이유도 타당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등교 시에는 도로 쪽에서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오기에 교통사고의 위험이 없다고 학생들의 사이 문 이용을 허용했다. 다만 하교 시는 운동장에서 사이 문으로 급하게 뛰어나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금지했던 것이었다. 학생들이 교칙을 어기고 하교 시에도 몰래 사이 문으로 나가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다가 등ㆍ하교 모두 학생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유는 학생들이 편하게 다니는 버릇이 생겨 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학칙을 강화했다. 당번을 정해 사이 문에 학생 출입을 통제하도록 했다. 사이 문으로 출입하다 들키면 화장실 청소 일주일 하던 것을 한 달로 늘였다가 급기야 일 개월 정학 처분으로까지 강화했다. 통제와 벌칙이 강화될수록 교통사고는 늘어났다. 연간 몇 건의 교통사고로 다치는 학생의 숫자는 해마다 교통사고로 다치는 학생과 사망하는 학생의 숫자까지 보태졌다. 운동장에서 기회를 엿보다 당번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쏜살같이 뛰쳐나가다 달려오는 버스에 치여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번이 몰래 친구의 출입을 눈감아 주다 사고를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교통사고는 벌칙에 비례했다. 선생님들의 회의에서 사이 문을 막아버리자는 안건도 나왔지만, 선생님들이 불편하다고 반대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돌아서 다니는 것은 시간의 낭비라고 불편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지켜보던 학교의 목공 일을 하던 급사가 사이 문 도로 쪽에 ㅠ자 기둥을 하나 세웠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ㅠ자 기둥에 걸려 도로로 직진할 수가 없어 담에 붙어 갓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ㅠ자 기둥을 따라 들어오다 사이 문으로 들어오면 되었다. 다시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 대학을 나온 20여 명의 선생님이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을 초등학교를 겨우 나온 목수가 해결했다.
모든 학칙과 당번도 감시도 없앴지만, 교통사고는 더는 없었다. 나도 문과 출신이다. 이를 때는 나도 “문송 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2024.4.6일 "이과 국민이 나서서 부흥시킨 나라를 문과 지도자가 말아먹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