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처(無言處)
1. 강에 잉어가 뛴께 사랑방 목침이 뛴다
뭔가를 버리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법인데 후련해지기는커녕 한바탕 드잡이를 놓은 듯 도리어 가슴이 더부룩해질 때가 있다. 책을 버릴 때이다. 나의 성명을 틀리게 쓴 책은 우편함에 그대로 둔 채 ‘수취거부’라는 빨간 글씨를 쓴 딱지를 붙여 둔다. 내 이름을 잘못 써서 기분이 언짢기도 하거니와 이런 책이, 보낸 사람이 지은 것이라면 보나마나 그 내용이 정밀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정밀하지 못한 건 많다. 이를테면 ‘계간평’이라고 되어 있는 계간 문예지가 있다. 그런 책을 내 서재에 둔다면 다른 책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책을 마구잡이로 버리기도 한다. 문단 간부의 선거 때가 되면 평소에는 송아지 개 보듯 하던 사람들이 책을 시새우듯 보내 준다. 뱃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불결하여 다른 사람을 찍든지 기권을 하게 되는데 그 책을 내가 공짜로 가질 수야 없지 않는가. 불결하지는 않더라도 냉소를 짓게 될 때가 있다.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미화된 기념문집 같은 것을 대하면 엉터리 송덕비나 날조된 묘비를 보는 것 같아서다. 냉소를 짓게 하는 경우는 많다. 사람은 자칫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듯, 글은 이론과 실제가 일치하기가 쉽지 아니한 모양이다. 수필문학의 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던 윤오영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윤오영은, “문장은 또 평이해야 한다.…(중략)…남의 말을 빌려 오는 것이 탈이요, 다 아는 것을 혼자 아는 체하는 것이 탈이요,…(후략)…”라고 했다.(尹五榮,『隨筆文學入門』「문장과 표현」, 서울:관동출판사, 1975) 짧은 글인 수필에 남의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겨를이 없다는 건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떤가? 흔히 수작으로 꼽히는 「염소」에서는 총 1,169 자 가운데 방소파의 말 61 자와 페이터의 말 187 자를 합치면 248 자가 되어 인용문이 글 전체의 5분의 1(약 21.21%)을 웃돈다. 인용이 없는 글이 없다시피 그의 수필에는 인용이 많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陶潛,「飮酒」),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申欽,『象村集』「野言」),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杜甫,「登高」),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癡人)”(白居易,「對酒五首詩」), “風來疎竹에 風過而竹不留聲이요, 雁渡寒潭에 雁去而潭不留影”(洪自誠,『菜根譚』)과 같은 한문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번역도 하지 않은 채 원문 그대로 인용하기도 한다. 인용에 관한 그의 지론을 스스로 파기한 거다. 이러한 인용은 독자에 따라서는 ‘평이’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반면에 ‘다 아는 것을 혼자 아는 체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시문(詩文)을 원전에서 인용한 자가 윤오영만은 아니겠지만 윤오영이 인용하고 나서부터 이런 인용이 부쩍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인용문의 원전을 물으면 대답을 못하거나 얼버무리는 걸 보면, 원전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남이 인용한 것을 말도 없이 재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오영 덕분에 수필계에는 제법 유식하게 된 에피고넨이 수두룩하게 된 거다. “강에 잉어가 뛴께 사랑방 목침이 뛴다.”더니 무슨 이끗을 보겠다고 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 젊은이라면 장래성이 없고 늙은이라면 추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와 있는 한국의 수필 이론서며 수필 논설이란 것들이 대개 앞에 말한 윤오영의 『隨筆文學入門』을 교묘히 변형시켰거나, 단장취의(斷章取義)의 수법이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기저기에서 글을 따 와서 조각보를 만들었거나 하는 수준이 아닌 걸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으니 딱한 현상이 아닌가. 글을 읽다가 쾌재의 문장을 만나면 벌떡 일어나서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한다는 어느 교수의 문장을 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한 어느 여류 수필가의 글을 읽고 나는 모처럼 박장대소를 했던 적이 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간서치전」(看書癡傳)에서 자신을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라고 빗대면서, “심오한 경지를 만나면 기쁘기 그지없어 일어나서 돌아다닌다.”(得其深奧 喜甚 起而周旋)라고 했다. 그 교수의 말은 이덕무의 이 말과 같지만 이런 표현은 글줄깨나 읽은 사람이라면 결코 놀랄 일이 아니요 사랑방 목침이 뛴 것도 아니다. 여자를 꾀어 여관에 들어가서 방 한복판에 앉혀 놓고 여자를 둘러 돌고 도는 색한도 있다지만 나는 문득, 매화가 좋아서 매화를 둘러 돌고 돈다는 고인의 경지를 생각해 본다. 인간의 이런 본능은 수천 년 전에 이미 『주역』이 ‘반환’(磐桓)이라 한 것에 나타나 있거니와 “무고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이라고 한 도연명(陶淵明)이 뭘 좀 알고나 磐桓 대신에 盤桓이라 했는지 모르겠다. 역(易)을 말하는 자 치고 磐桓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아는 자 나는 여태껏 들은 적이 없다.
2. 해시불변(亥豕不辨)
이이(李珥)의 「역수책」(易數策)에 있는 ‘天津鵑叫’(천진견규)의 天津은 天津이라는 지명이 아니라, 지금은 없어졌다지만 낙양의 남쪽 낙수(洛水)에 있었던 부교(浮橋)인 天津橋를 뜻한다. 내가 이를 알지 못한 것은 『소씨문견록』(邵氏聞見錄)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朴籌丙,『까치밥』, 서울:미래문화사, 1995. p. 234, p. 320) 공덕룡이 “지나침(過猶)보다 미치지 못함(不及)이 속편하다”라고 하여 ‘지나침’을 ‘過猶’라 한 것이라든가,(『에세이문학』「계절의 미각, 요리」, 2006, 겨울호, 서울:에세이문학사. p. 208. 이하『에세이 문학』이라 한다) 심경호가 “낙백(落魄)한 문인들은 노랗고 둥근 국화를 동전에 비유해 자조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에서 낙탁(落魄:零落)이라 해야 할 경우에 낙백(落魄:넋을 잃음)이라 한 것은 아마도 실수인 것 같다.(李御寧 책임 편찬,『국화』, 서울:종이나라, 2006, p. 80)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나의 아버님은 천수(天壽)를 누리셨다.”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자가 있으니 상제가 방립(方笠)을 쓰는 뜻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일 거다. 김규련은 「거룩한 본능」에서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지 않은가.”라고 하고는 이것은 황새의 거룩한 본능이라고 했다. “서로 목을 감고”라는 표현에서 산 황새가 죽은 황새와 더불어 본능이든 아니든 서로 목을 감을 수는 없지 않는가. 사람을 제외한 동물은 정사를 하지 않는다 하거니와 따라 죽는 것이 본능도 아니다. 아마도 암컷도 부상이 심하였던 모양이어서 죽은 수컷 황새 곁에 와서 죽게 되었을 뿐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니다. 김규련은 「개구리 소리」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의 불길을 불어서 끈다는 취소取消(nirvana)의 뜻이 아닌가.”라고 했다.(金奎鍊,『강마을』, 서울:汎友社, 1982 /金奎鍊,『귀로의 사색』, 대구:도서출판 그루, 2003 /金奎鍊,『즐거운 소음』, 서울:좋은수필사, 2007) 여기서 取消는 吹滅이라야 옳다. 굳이 ‘취소’라고 하려면 吹消라고 하면 모를까. 한낱 단어 하나를 두고 트집잡는다 할지 모르지만, 이 문장은 이 단어가 틀리면 문장이 아니요, 이 문장은 이 글의 추뉴(樞紐)의 하나이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이 오류는 실수가 아니라 무지의 소치인 것 같다. 이 글이 그가 내세우는 대표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지면에 실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규련 자신이 이 글을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는 말이다. 같은 글 서두에 나오는 “서성거려 본다.”는 “어정거려 본다.”로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사전에 보면 ‘서성거리다’라는 말은 “자꾸 서성서성하다”라는 뜻인데 ‘서성서성’이란 “[어떤 일을 결단하지 못하거나 불안하여] 한곳에 서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글 서두에는 어떤 일을 결단하지 못한다거나 불안하다거나와 같은 그런 상황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 글에서, “개구리 소리를 밤이 이슥하도록 혼자 듣고 섰으면 드디어 열반의 경지에서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을 느끼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라고 한 것은 적절치 않다. 불학에 판무식인 나 같은 사람도 아는 얘기이긴 하지만, 우선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不思善 不思惡)라는 이 말과 관련하여 불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를 지루하나마 다시 음미해 보기로 한다. 의발(衣鉢)을 빼앗으려는 혜명상좌(慧明上座)한테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남방으로 쫓겨 대유령(大庾嶺)에 다다랐다. 혜명상좌가 당도한 것을 알아차린 육조는 의발을 바위 위에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의발은 믿음을 표시하는 것인데 완력으로 어찌 다툴 것인가. 그대가 가지고 가려거든 가지고 가라.” 혜명상좌가 그것을 들려고 하니 산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말했다. “내가 법을 구하러 왔지 의발 때문은 아니요. 원컨대 행자 육조는 가르쳐 주시오.” 혜명은 상좌요 육조는 행자였지만 깨달음에 있어서 그런 지체며 위계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에 육조가 말하기를,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 이러할 때 어떤 것이 (혜명)상좌의 본래면목인가?”(不思善不思惡 正當恁麽時 那箇是上座本來面目)라고 했다.(『無門關』제23칙 抄) 위에서 “내가 법을 구하러 왔지 의발 때문은 아니요. 원컨대 행자 육조는 가르쳐 주시오.”라는 혜명상좌의 말끝에 육조가 한 말이,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였다. “내가 법을 구하러 왔지 의발 때문은 아니요.”라는 혜명상좌의 말은 겁에 질려서 한 거짓말이었다. 실은 의발을 빼앗으려고 온 것이 아니었던가. 이것이 육조가 말한 악이다. “원컨대 행자 육조는 가르쳐 주시오.”라는 혜명상좌의 말은 잘못을 뉘우친 말이다. 이것이 육조가 말한 선이다. 요컨대 육조는, 비단 선악뿐만 아니라 일체의 상대적 분별심에서 초탈하여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쳐야 한다는 뜻으로 ‘불사선 불사악’이란 말을 한 것이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니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이니 하는 말들 또한 이 본래면목이란 말과 맥락을 같이 하거니와, ‘불사선 불사악’이 되어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쳐야만 구경의 경지인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것이거늘, “열반의 경지에서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을 느끼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라는 김규련의 말은 갑자을축이 을축갑자가 되었으니 우습지 아니한가. 이 말 한마디를 잘못 하는 바람에 김규련의「개구리 소리」는 귀때 떨어진 주전자요, 족자리 깨진 중두리며, 귀퉁이 터진 귀잡이, 굴타리먹은 호박이 되고 말았다. 김규련은 같은 글에서, “문명의 소리가 동動이라면 자연의 소리는 정靜이다. 그리고 개구리 소리는 선禪인지도 모른다.”라고 한껏 멋을 부렸다. 개구리 소리도 자연의 소리다. 개구리 소리만을 자연의 소리에서 분리하여 선의 소리라고 하고 이를 자연의 소리에 대비시킨 것은 논리에 어긋난다. 논리에 맞지 않으면 이미 문장이 아니다. 한낱 무문농필(舞文弄筆)에 불과하다. 김규련이「자괴의 독백」이란 글에서 ‘導骨三穿’이라 한 것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수필세계』, 2009, 가을호, 대구:수필세계사, 이하 『수필세계』라 한다) ‘踝骨三穿’이 옳다. 이 말은 정약용(丁若鏞)의 고족제자(高足弟子)인 황상(黃裳)이 스승을 추모하면서 “日事筆硯 踝骨三穿.”(날마다 붓과 벼루를 써서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파였다)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與褱州三老」) 김규련이 난(蘭)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 한 것은 암향은 매화에, 유향(幽香)은 난초에 쓰는 전례(典例)로 미루어 보면 암향이란 말이 거꾸로 인쇄된 글자가 되어 버렸다.(『隨筆公苑』「蘭을 바라보며」, 통권 4호, 서울:태양사, 1983, 이하 『隨筆公苑』이라 한다) 김규련이 「성찰의 계절」이란 글에서 “늘그막에는 하동포구에서 풀꽃을 따며 소꿉질하던 유년의 동심으로 돌아가 하늘의 구름처럼 살고 싶다.”라고 했다.(『수필세계』, 2009, 겨울호, p. 51) 이미 여든 살을 넘은 노인이 ‘늘그막에는’이라니 맞지 않는 말이다. 역시 같은 글에서 “송백과 향나무는 엄습하는 혹한을 이겨내고 청신한 녹색으로 만고심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한 문장은 애매모호하다. 만고심이란 단어 때문이다. 만고심이란 단어가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의 각종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萬古心’이란 말은 한국의 수필문단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사용했거니와,(『계간 수필』「萬古心」, 2008, 겨울호, 서울:수필문우회. 이하 『계간 수필』이라 한다.) 만고심이란 “천만년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한다.(諸橋轍次, 『大漢和辭典』, 東京:大修館書店. 平成 11年) 따라서 조금 전의해서 쓴다 하더라도 ‘만고의 그리움’ ‘만고의 시름’ ‘만고의 한(恨)’ 등과 같은 뜻으로 쓸 수는 있어도 나무가 만고심을 드러낸다고는 할 수 없다. 고인의 글에서 용례를 보기로 한다. 관다산(菅茶山)의 「동야독서시」(冬夜讀書詩)에서는 “閑收亂帙思疑義 一穗靑燈萬古心”이라 했고, 주희(朱熹)의 「무이도가」(武夷棹歌)에서는 “林間有客無人識 欸乃聲中萬古心(茅屋蒼苔魏闕心)”이라 했다. 윤선도는 「어부사시사」에서 주희의 ‘欸乃聲中萬古心’을 그냥 옮겨다 놓았다. 요즘 같으면 표절의 논란이 있겠다. 또 김규련이「말이 없는 친구들」이란 글에서 “이런 나에게 아침마다 살가운 미소로 반겨 주는 너희들이 있어 고졸한 내 생활에 기쁨이 그윽하다.”라고 했다. 자신의 생활을 두고 ‘고졸한’이라 표현한 것은 귀에 거슬린다. ‘고졸하다’는 말은 “(작품이나 분위기가)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멋이 있다.”라는 뜻인데 자기의 생활을 고졸하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한 태도가 못 된다.(『수필세계』, 2010, 봄호, p. 20) 김규련이 「용골(龍骨) 없는 문학」이란 글에서 ‘讀破書萬卷’은 ‘讀書破萬卷’의 오류다.(「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대구문학』, 2010, 통권 85, p. 11) 讀破란 말은 두보의 이 시어에서 유래하거니와, 한시는 글자 한 자 한 자가 놓일 자리에 놓여야 한다. 또 같은 글에서 ‘語不驚人 雖死不休’에서 雖자는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래 이 말은 칠언고시에서 한 말이기 때문이다.(「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이희승이「책을 아끼자」라는 글에서, “책은 적어도 아버지와 같은 정도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한 것은 망언이다.(李熙昇,『벙어리 냉가슴』, 서울:일조각, 1957, p. 198) ‘적어도’라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양주동이「객설이 문학인가」라는 글에서 “…(전략)…注意와 공갈을 섞어 말한 셈이었으나…(후략)…”라고 했다. 여기서 ‘공갈’은 ‘협박’이라 해야 한다. 이 글의 전후를 살펴보면 금품을 뜯어내거나 하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梁柱東,『文酒半生記』, 서울:新太陽社, 1960, p. 153) 그는 다른 글에서 “잃어진 고기가 가장 크게 보인다.”라고 했다. 여기서 ‘잃어진 고기’는 ‘잃어버린 고기’ 또는 ‘놓친 고기’라 해야 옳다.(梁柱東,『无涯詩文選』, 서울:耕文社, 1960, p. 133) 이 말들이 자칭 국보 양주동의 말이라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양주동의 고제(高弟)인 이어령이, “ ‘국화를 따면서 먼 남산을 바라본다.’는 도연명의 유명한「귀거래사」에도 남산이 나오고,…(후략)…”라고 한 말에서「귀거래사」는「잡시」또는「음주」라고 해야 옳고,(李御寧 책임 편찬,『소나무』, 서울:종이나라, 2005, p. 12) 대나무는 뿌리를 깊이 박지 않는 법인데, “동북아시아의 대나무들은 밑뿌리가 땅속으로 꾸불꾸불 깊이 뻗어 있어…(후략)…”라고 한 것은 허풍이 되고 말았다.(李御寧 책임 편찬,『대나무』, 서울:종이나라, 2006, p. 12) 장백일이 “庸言之信 庸行之謹”이란 말을 庸이란 글자가 들어 있다고 해서 그랬는지 『주역』에 있는 말인 줄 모르고 『중용』에 있는 말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추측 운전’이 사고를 낸 것과 같다.(『에세이 문학』「매화가 심어준 가훈」, 2002, 봄호) 정약용이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시인 단체를 만든 것은 유배되기 전의 일이며 ‘죽란’(竹欄)은 대나무를 잘라서 만들었는데, 정목일은, “정약용이 귀양지에서 만든 시 동인회가 ‘죽란시사’다. 집 뜰에 대나무 난간을 둘러 사람들이 다닐 적에 옷에 댓잎이 스친다 하여 죽란이라 불렀다.”라고 했다.(『에세이문학』, 2002, 여름호, p. 197) 정약용이 강진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하였으니 죽란시사도 강진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을 한 거다. 여기서 ‘죽란’(竹欄)을 ‘대나무 난간’이라 한 것은 엉터리다. 난간이란 계단 툇마루 다리 따위의 가장자리에 만드는 것이지 평평한 마당에 만드는 것은 난간이 아니다. 여기의 란(欄)은 ‘울타리’의 뜻이다. 欄에도 울타리(籬)의 뜻이 있다. 따라서 ‘죽란’이란 ‘죽리’(竹籬) 곧 ‘대나무 울타리’다. 그는 또 지식과 지혜를 준별하여 지식은 간접체험에서, 지혜는 직접체험에서 나온다고 단언하면서 수필은 지식과 정보를 걷어내고 지혜에서만 나와야 한다고 했다.(『月刊文學』, 2003, 12월호, 서울: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사, pp. 688〜692. 이하 『月刊文學』이라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지혜와 지식은 인식방법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간과했다. 같은 말도 지혜일 때가 있고 지혜가 아닐 때가 있을 뿐이다. 지식과 지혜를 대상의 문제로 본다 하더라도 그의 주장은 글의 지반을 도외시한 같잖은 도그마에 불과하다. 고저(高低)가 있어 산이 되고 곡직(曲直)이 혼재하여 수풀을 이루고 청탁이 합쳐 바다가 되는 줄 정목일은 진정 모르는가. 그의 주장대로라면, 지혜는 지식과는 전혀 무관한 것인지, 수필이 오로지 지혜만의 소산이라야 하는지, 그런 수필이 있기나 하는 것인지, 수필이 지혜에서 나오기만 하면 ‘죽란시사’를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만들었다고 하고 ‘죽란’을 대나무를 잘라서 만든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대나무 난간이라 하고 ‘울타리’를 ‘난간’이라 해도 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요, 또 사실과 전혀 다르게 지어낸 가짓말을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더욱 모를 일이다. 만약 정목일이 수필을 말하면서 툭하면 지혜를 들먹이는 것이 감히 반야(般若)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과욕이요 부회(附會)다. 반야는 예사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지론대로 글이 지혜에서만 나오려면 문자반야(文字般若)를 이룬다면 모를까. 수필은 불립문자(不立文字)도 아니요, 선사의 게송(偈頌)도 아니다. 문자반야를 이루어야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정목일은 「차 한 잔」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찰나 속에 영원이 담기고 영원은 찰나 속에 숨을 쉰다.”(정종명 외, 『숨은 사랑』, 서울:도서출판 청어, 2010). 이 말을 들으면 『화엄경』(華嚴經)의 정수라고나 할,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華嚴一乘法界圖)에 나오는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이란 말을 연상하는 사람이 퍽 많을 것이다. 정목일이 알고 한 소린지 들은풍월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말은 「법성게」의 ‘무량원겁’을 ‘영원’으로, ‘일념’을 ‘찰나’로 바꾸고, ‘담긴다’ ‘숨을 쉰다’라는 말로 연막을 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이 성형한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추측은 독자를 얕잡아 본 거다. 표절의 논란이 없지 않을 것이다. 만약, “영겁은 일념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영겁과 찰나는 둘이 아니다.”등으로 말한다면 이는 이미 일반화된, 불학의 지식(상식)을 말한 것일 뿐 탈잡을 일이 못되지만, 여기서 정목일의 말을 문제삼는 까닭은 그의 표현 방식이 「법성게」를 번역한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장백일이며 정목일의 경우처럼 추측 운전이 사고를 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계주가 「〈적벽부〉를 통해서 본 인간 소동파」라는 글에서, “소동파인들 자신의 경륜을 마음껏 펼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타고난 자유인으로 평생을 유배생활을 할망정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아우에게 주는 회답시〉에 그는 정처없이 떠도는 자신의 삶을 ‘기러기, 눈밭에 발자국 남기기’라 표현했다.”라는 글이 그렇다.(『에세이문학』, 2009, 여름호) 한계주가 말하는〈아우에게 주는 회답시〉란 「면지에서의 옛일을 생각하며 자유에게 답한다」(和子由澠池懷舊)라는 시를 뜻한다. 우선 〈아우에게 주는 회답시〉에서 낫표 안의 말이 정확하지 않다. 낫표를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낫표를 할 때에는 반드시 「면지에서의 옛일을 생각하며 자유에게 답한다」라는 식으로 가급적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야 한다. 소식(蘇軾)은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 때 봉상부첨판(鳳翔府僉判)으로 부임하기 위해 면지를 거쳐 봉상(鳳翔, 지금의 섬서성 봉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이때 「면지의 일을 생각하며 자첨 형님께 보냅니다」(懷澠池寄子瞻兄)라는 동생 소철(蘇轍)의 시에 대한 화답으로 위의 시를 지었다. 오년 전 동생과 함께 아버지(蘇洵)를 따라 수도 개봉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면서 겪었던 어려운 일을 회상한 시다. 소식이 이 시를 짓던 당시는 막 환로에 나아가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정처없이 떠돈 적이 전혀 없었다. 유락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이 시를 지은 지 십년 후인 서른여섯 살 때부터이다. 한계주의 말은 허풍이 되고 말았다. 맹난자가, ‘原始反終’을 “시작된 근원으로 마침을 돌이킴이니……(후략)”라고 한 것은 한문의 문리에 어긋난다.(『月刊文學』. 2009, 3월호, p. 254) 原始와 反終처럼 대칭 어구인 경우에는 두 어구가 문법적으로 대등하다. 反 자는 동사로 쓰고 原 자는 형용사로 쓰는 법은 없다. 原 자 또한 마땅히 ‘찾다’ ‘근본을 캐다’ ‘추구하다’ 등 동사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原始反終이란 “시작을 캐고 마침을 돌이킨다.”라고 해야 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原始要終이 있다. “시작을 캐고 기다렸다가 마친다.”로 해야지 “시작된 근원으로 마침을 추구한다.”로 해석하면 말이 뜻에서 배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주자의 『易學啓蒙』의 ‘原卦畫’(원괘획)에서의 原 자 또한 ‘찾다’ ‘근본을 캐다’ ‘추구하다’ 등 동사로 해석해야 하는 줄 알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한 번역들뿐이다. 또 맹난자가 “지뢰복(地雷復)괘의 괘사 ‘복(復)에 그 천지의 마음을 본다(復其見天地之心乎)’에서……”라고 했다.(『月刊文學』, 2010, 8월호, p. 320) 괘사(卦辭)는 단전(彖傳) 또는 단사전(彖辭傳)이라 해야 옳다. ‘전(傳)’은 ‘사(辭)’를 풀이한 것이다. 괘사(卦辭)는 단사(彖辭)라고도 하거니와 괘사(단사)와 단전(단사전)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십익」(十翼)을 정확하게 모르는 소치다. 또 ‘其’를 ‘그’로 해석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여기서의 其는 ‘아마(도)’라는 뜻인 줄을 요즘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선유 가운데도 아는 자가 거의 없었다. “其有聖人乎” “作易者其有憂患乎”와 같은 문장에서도 其는 모두 ‘아마(도)’의 뜻이다. 『주역』을 잘못 읽으면 미친다는 말이 있다. 문단에 『주역』을 공부한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지만 거개가 미친 소리만 하고 있다. 다만 김동리(金東里)는 다르다.「天命을 즐긴다」라는 그의 수필이 이를 말해 준다. 하지만 그는 이 글에서 天命이란 말을 구차하게도 「계사전」(繫辭傳)의 “旁行而不流 樂天知命”이라는 문장에서 이끌어 내었을 뿐 天命이란 말은 「계사전」의 이 말에 앞서 천뇌무망괘(天雷无妄卦)의 단전에 “天命不祐行矣哉”라고 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김동리의 주장은 애석하게도 한갓 요동<백>시(遼東<白>豕)가 되었다 할까.(金東里,『생각이 흐르는 강물』, 서울:甲寅出版社, 1985. pp. 171~180) 손광성이, “매화는 일생 추위에 떨어도 그 향기를 팔지 않고, 거문고는 천 년이 지나도 그 소리를 바꾸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신흠(申欽)의 시에서 얻어 온 말이라면 큰 흠이랄 수는 없다할지 모르지만 말의 앞뒤가 바뀌었고, ‘오동’을 ‘거문고’로 표현한 것은 비약이 지나쳤다.(孫光成,『하늘잠자리』, 서울:을유문화사, 2011, p. 229) “한약에서 감초는 빠져도 대추는 빠지는 법이 없다.”는 말은 틀렸다.(孫光成, 前揭書, p. 222) 『동의보감』『경악전서』『방약합편』등등 어떠한 의서를 보아도 대추가 들어가지 않는 한약 처방이 대추가 들어가는 한약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인의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와…(후략)…”에서 ‘여인’은 ‘여자’나 ‘여성’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孫光成, 前揭書, p. 39) 왜냐하면 여인이란 ‘성년이 된 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손광성의 말대로라면 미성년인 여자의 치맛자락은 포함되지 않게 되는데 과연 손광성은 그런 생각이었을까? 염정임이 「한 장의 사진」에서, “몇 년 사이에 두 선생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원을 향해 떠나셨다.”라고 한 문장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는 적절치 않다.(『月刊文學』, 2009, 10월호, p. 176) ‘앞서거니 뒤서거니’란 말은 이를테면 A와 B 두 사람이 A(앞)B(뒤)가 되기도 하고 B(앞)A(뒤)가 되기도 한다는 뜻인데 저승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갔다니 참 괴이한 소릴 다 듣겠다. 정혜옥이 “짚을 엮어 만든 신은…(중략)…엮은 끈이 떨어지면…(중략)…짚신 같은 걸 엮었을 것이다”에서 ‘엮어’는 ‘결어’로, ‘엮은’은 ‘결은’으로, ‘엮었을’은 ‘결었을’이나 ‘삼았을’로 각각 바꿔야 더 친절하다.(정혜옥, 『강물을 만지다』, 서울:선우미디어, 2008, p. 98) 처음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신불취(終身不娶)였던 임포(林逋)를 두고, “벼슬살이와 처자를 버리고 서호에서 은둔하면…(후략)….”라고 한 조희웅의 말은 사실에 어긋나고,(『매화』, 서울:종이나라, 2005, p. 84) “벼슬 버리고…(후략)…”라고 한 김규련의 말은 애매모호하다.(『계간 수필』, 2007, 가을호, p. 3) 두보(杜甫)의「등고」(登高)에 나오는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구활(具活)이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에서의 ‘長江’을 ‘긴 강’이라고 번역한 것이 옳지 않은 것은 백두산(白頭山)을 ‘흰 머리 산’이라고 번역해서는 아니 되는 것과 같다.(『한국수필가』「赤壁을 노래한 蘇東坡를 그리며」, 2005, 겨울호, 서울:한국문인협회 계간한국수필가, 이하『한국수필가』라 한다) 중국에 적벽(赤壁)이라 일컬어지는 산 이름이 넷이고 강 이름이 하나인데 산 이름 가운데 하나는 호북성(湖北省) 가어현(嘉魚縣) 동북 쪽, 양자강 가에 있는 적벽으로 주유(周瑜)가 조조(曹操)를 격파한 곳이다. 또 하나는 호북성(湖北省) 황강현(黃岡縣) 성(城) 밖에 있는 적벽으로 흔히 적비기(赤鼻磯)라고 부르거니와 소식이 이 적비기에 찾아와서 주유와 조조가 싸웠던 그 적벽인 줄로 잘못 알고 「전후적벽부」(前後赤壁賦)를 지었던 건데, 오늘날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적벽이 여러 곳인 줄을 알지 못하는지 소식이 적벽대전이 벌어졌던 적벽에서 「적벽부」를 지은 걸로 잘못 알고 있으니 우습지 아니한가. “십합혜 짚신은 씨줄 열 개를 나란히 하여 짚으로 촘촘하게 날줄을 넣은 것이어서 단단하고 질겼다. 그러나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에 날줄을 듬성듬성하게 엮은 것으로 보기에도 어설프고 수명 또한 짧았다.”라는 구활의 문장은 진사 열두 번 해도 모를 소리다.(『대구펜문학』「오합혜 짚신과 산꿩」, 통권 제7호, 대구:도서출판 그루, 2007, p. 260. 이하『대구펜문학』이라 한다) 우선 씨줄과 날줄을 혼동했고, 십합혜 오합혜를 정반대로 설명했다. 나이 열 살에 손수 삼은 짚신을 신고 일제의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 같은 사람도 못 알아듣는 이 말을 짚신 삼는 걸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알아들을지 모르겠다. 또 구활이 ‘聞香’을 ‘향기를 듣는다.’라고 한 것과(『수필세계』「연꽃 필 때 들리는 소리」, 2009, 겨울호) 법정 화상이 “꽃향기는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 옛 글에도 문향(聞香)이라 표현했다. 이 얼마나 운치 있는 말인가.”라고 한 것은 적절치 않다.(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 서울:샘터, 2010, p. 26) 이때의 聞자는 ‘들을문 자’가 아니고 ‘맡을문 자’이다. 국어사전에도 문향(聞香)을 “향기를 맡음”이라 했다. 법정 같은 이름 있는 승려가 설마 황벽선사(黃蘗禪師)의 박비향(撲鼻香)을 몰랐을까.(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五燈會元, 龍門遠禪師法嗣, 道場明辯禪師』) 법정이 ‘동족상쟁’이라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 해야 ‘聞香’을 두고 그가 한 말마따나 운치 있는 표현이 된다.(법정, 『버리고 떠나기』, 서울:샘터, 2010, p. 264) 미륵을 두고 석인(石人)이라 한 윤자명의 말을 들으면 무덤 앞에 세운 돌로 만든 사람이 제 이름 빼앗겼다고 입을 비죽할지도 모를 일이다.(윤자명,『도요 속의 꽃』, 부산:도서출판 전망, 2006, p. 194) 김진식의 “봉황은 오동나무의 열매만 먹는다지 않는가.”라는 문장에서 ‘오동나무의 열매’를 ‘죽실(竹實)’로 바꿔야 옳다.(『계간수필』「복伏들이 산간의 하루 그리기」, 2008, 가을호) 수필 평론을 한다는 강돈묵의 “소각시켜야 할 것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양심도 보이고, 제대로 분리하여 내어놓는 깔끔한 성격도 만난다.”라는 글에서 ‘양심’은 ‘비양심’이라 해야 옳다.(『계룡수필』「재를 치우며」, 2008, 제6집) ‘홀아비’란 말은 ‘과부’와 대칭되는 낱말로 아내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아내가 있는 사람이 아내와 떨어져 지낸다 해서 “홀아비답게 간소한 아침 식사가 끝났다.”라고 한 김태길의 말은 적절치 않다.(金泰吉,『窓門』, 서울:汎友社, 1976, p. 66) 아내가 있는 사람은 ‘홀아비답게’가 아니라 ‘홀아비처럼’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교사는 생도한테는 몰라도 세상에 대고는 자칭 선생님 소릴 안 한다. 신부나 목사는 신도한테는 몰라도 세상에 대고는 자신을 일러 신부님이니 목사님이니 하지 않는다. 중은 신도도 아닌 생판 얼굴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한테 대고 자신을 일러 스님이라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으나 나는 불학에 무식하여 잘 모르겠다. 법정 스님은 열권이 넘는 그의 저서에서 한 번도 자신을 스님이라 하지 않은 걸 보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 같으나 잘 모르겠다. 임산부(姙産婦)라 함은 아이를 밴 여자 곧 임<신>부(妊<娠>婦 / 姙<娠>婦)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곧 출산부(出産婦)를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임신부나 출산부를 가리켜 임산부라 하는 사람이 문인 행세를 한다. 참으로 개탄할 현상이다. 전교(全校)라 함은 예컨대 고등학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를 뜻하는 말인데 3학년 전체에서 1등을 한 학생을 전교 1등이라 하는가 하면, 날다람쥐의 털을 청설모라 하는데 날다람쥐를 청설모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은 말세다, 전교와 학년도 분간 못하는 사람이 누구 말마따나 ‘교사의 꽃’이라는 장학사를 했는가 하면 털모자(毛)도 모르는 사람을 수필의 우상으로 떠받든다. 박용수는, “면도하는 일이란 수려한 얼굴을 보는 일이었고,……”라고 하여 자신의 얼굴을 수려한 얼굴이라고 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수려한’이라고 말할 계제(階梯)가 아닌 것 같다.(『수필세계』, 2013 여름호, p. 148) 유혜자는, “사람의 운명이 주어진 시간의 그물망 속에서 엮어지듯이 시력도 망막에 의해 빛이나 태양의 빛을 흡수하는 감광(感光) 현상이 일어나야 가능한 것임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라고 했다.(전게서, p. 21) “사람의 운명이 주어진 시간의 그물망 속에서 엮어지듯이”라는 말은 운명을 해설한 꼴이 되겠는데 운명이란 말을 그렇게 쉬이 해설할 수가 있을까? 방만한 표현이 종잡을 수 없이 모호하다. 망막의 작용을 말하기 위해 시간의 그물망을 먼저 말한 것은 억지다. 운명과 시력을 비유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일체 끊고’라고 한다든가,(安大會,『선비답게 산다는 것』, 서울:푸른역사, 2007. p. 18) ‘일절 갖추고’라고 한다든가, 딱한 경우를 들기로 한다면 한이 없다.
3. 사전을 보지 않는 사람들 / 사전이 틀린 줄을 모르는 사람들
‘전호기’를 ‘신호기’로 고친다.(『수필문학』「간이역에서」, 1995, 11월호, 서울: 수필문학사) 이럴 때는 웃고 만다. ‘傳號旗’라는 한자를 쓰지 않은 건 내 불찰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백년(百年)의 직장”에서의 ‘백년’(百年)을 ‘100년’으로, ‘백일’(百一)이란 백 마디 말 가운데 참말은 한 마디가 될 둥 말 둥한 가짓말쟁이를 일컫는 말인데 ‘백일’을 ‘101’로, ‘구천’(九泉)을 ‘9천’으로, “가슴을 허빈다.”를 “가슴을 후빈다.”로, “인물도 좋것다, 학벌도 좋것다.”에서 ‘것다’를 ‘겄다’로, “이제 곧 이별이렷다.”에서 ‘렷다’를 ‘렸다’로, “유리창을 깬 것이 분명 너는 아니엇다.”에서 ‘엇다’를 ‘었다’로, ‘어리비치는’을 ‘얼비치는’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씌기라도 해야 한다.”에서의 ‘씌기라도’를 ‘씌우기라도’로, ‘터앝’을 ‘텃밭’으로, ‘에부수수한’이나 ‘메부수수한’을 ‘매우 수수한’으로, ‘짬짜미’를 ‘짬짬이’로, ‘짬짬이’를 ‘짬짜미’로, ‘꾀죄한’을 ‘꾀죄죄한’으로, ‘외돌토리’를 굳이 ‘외톨’로, ‘설을 쇠다’를 ‘설을 쉬다’로, ‘고 계집애’를 ‘그 계집애’로, ‘그득한’을 ‘가득한’으로, ‘가짓말’을 ‘거짓말’로,(『대구문학』「맞선꼴」, 2007, 봄호) ‘2n-1’을 ‘2n-1’로,(『대구문학』「맞선꼴」, 2007, 봄호) ‘길래’를 ‘길게’로,(『에세이문학』, 2007. 겨울호, p. 344 ) ‘제물에 무너져 내린다’를 ‘제풀에 무너져 내린다’로,(『에세이문학』, 2007. 겨울호, p. 347) ‘하늘땅’을 ‘하늘∨땅’으로,(『에세이문학』, 2007. 겨울호, pp. 345∼346) ‘탄핵소추한 것이’를 ‘탄핵소추∨한 것이’로,(『에세이문학』, 2010, 겨울호, p. 225) ‘이아침’을 ‘이∨아침’으로 고쳐 놓기가 예상사다. 이렇게 고치면 그 글은 급전직하 죽지 부러진 새로 전락해 버리는 줄을 그들이 알 턱이 없다. 반점을 아무데나 수없이 찍어서 문맥을 난도질해 버리기도 하고, 문단을 무수히 나누어서 시의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어중이떠중이 문예지는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한 종합문예지도 다르지 않다.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계곡을 뻐개고 흐르는 물줄기”를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로, “나는 참 나쁜 사람이다.”를 “나는 참 나쁜 사람이 아닌가.”로 고치기도 한다. 오리의 다리를 늘이려 하고 학의 다리를 자르려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필 글의 추뉴(樞紐)만을 골라서 먹칠을 해 놓기가 예사다. 이런 짓들은 옛날의 재래식 공동변소의 낙서와 무엇이 다른가. 어느 대학 선생이 국어사전의 틀린 곳을 지적한 적이 있지만 그분이 지적한 것 밖에도 틀린 것은 더러 있다. 이를테면, ‘삼성(三省)’을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반성함.”이라고 되어 있는 국어사전은 틀렸다. ‘세 번’이 아니라 ‘세 가지’다.(曾子曰吾日三省吾身爲人謀而不忠乎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論語』「學而第一章」) 석과불식(碩果不食)을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자손에게 복을 끼쳐 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 국어사전의 해석도 사이비 해석이다. “[큰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궁상반하(窮上反下)의 씨앗이 되는 이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는 정도로 설명하는 것이 핍진하다. 『주역』(周易) 박괘(剝卦)의 상구(上九) 는 장차 복괘(復卦)의 초구(初九)로 반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碩果不食에서 不食을 정자(程子)는 不見食으로, 주자(朱子)는 不及食으로, 정약용은 不爲所食으로 해석하는 등 선철의 주석은 모두 국어사전과는 달리 “먹히지 않는다.”라고 피동으로 해석한 것이다. 邪(사/야) 자와 耶(야/사) 자가 통용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간장막야(干將莫邪)에서의 邪를 耶로 표기한 국어사전은 틀렸다. 莫邪는 본디 사람 이름이기 때문이다. 『순자』(荀子)의「성악편」(性惡篇)이나『오월춘추』(吳越春秋)의「합려내전편」(闔閭內傳篇)을 보면 모두 莫邪로 되어 있다. 欸乃聲을 애내성이라고 한 국어사전는 틀렸다. 애애성이 옳다. 乃자가 뱃노래를 뜻할 때는 ‘애’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4. 천리마는 천리마다
비평은 어떠한가. 이원성은「졸렬한 문장의 수필들」에서, “나무‧풀‧새‧벌레‧야생 동물을 모두 ‘미물’이라 했는데, 미물의 뜻은 ①변변하지 못하고 작은 물건, ②썩 자질구레한 벌레란 뜻인데, 나무‧풀‧야생 동물들을 미물이라 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이는 스스로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라고 했다.(『한국수필가』, 2005, 여름호) 풀이나 나무를 미물이랄 수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으나, ‘①변변하지 못하고 작은 물건’을 미물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몽당연필이나 닳은 지우개 이 빠진 그릇 같은 것도 미물이란 말인가? ‘②썩 자질구레한 벌레’를 미물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새나 짐승은 미물이 아니란 말인가? ①과 ②가 모두 틀렸다. 미물은 반드시 ‘생명 있는 동물’이라야 한다. ‘생명 있는 동물’이라면 짐승이나 날짐승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사람도 미물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면서 가마가 솥더러 검정아 했다. 가소롭게도 이런 비평을 치켜세우는 것이 현재의 우리 수필문단의 한 수준이기도 하다. 한상렬은「고뇌하는 존재의 상상력」에서, “혹시 옛 사람의 말을 좇아 담장(淡粧)한 미녀에 비기지 말게나. 세속 밖의 가인(世外佳人)이라던데 분을 칠한다고 되겠나?”라는 문장은 ‘세외가인’을 회피하지 않았는데 도리어, “화자는 흔히 말하는 ‘세외가인’이라는 상투적인 찬사를 굳이 피하고 있다.”라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다.(『한국수필가』, 2005, 겨울호) “…(전략)…그 옛날, 솔개에 채여 가던 가여운 우리 집 병아리들을 나는 여태껏 잊을 수가 없다. 병아리를 품고 한사코 솔개에 항거하다가 눈알이 뽑힌 어미닭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솔개도 닭도 우리는 다 겪어 봐서 안다. 청학 백학이 구고(九臯)에서 울고 떼를 지어 훨훨 창공을 날았으면 좋겠다. 창공 드높이, 청학 백학이 가끔 무리지어 싸운다면 그것 또한 장관일 게다.”라고 한 문장을 두고 평자 이병용이 「수필의 맛과 멋」이란 글에서 이르길, “ ‘박수병의 청학 백학은……’는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이 ‘상생의 정치’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경계하면서, ‘병아리를 품고 한사코 솔개에 항거하다가 눈알이 뽑힌 어미닭’의 역할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라고 한 걸 보고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月刊文學』, 2004, 9월호) 한상렬의 데면데면함이나, ‘朴籌丙’을 ‘박수병’으로 두 번씩이나 잘못 쓰고,(‘籌’를 틀리게 쓰는 까닭은 ‘壽’를 바르게 못 쓰기 때문이다. 문인이 ‘목숨 수’ 자도 못 쓴대서야!) ‘병아리를 품고 한사코 솔개에 항거하다가 눈알이 뽑힌 어미닭’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고 함으로써 학을 닭이라고 말한 이병용의 무례와 생트집은 내가 세상에 문명을 들날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문단에 어떤 세력도 부식(扶植)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강돈묵은, “지나치게 옛 문헌에 의존한 나머지 자신의 말이 빈약하다. 많은 자료를 담아 놓아 보기에는 풍성한데,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다.…(중략)… 작가의 것에 조미료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현들의 생각에 내 생각과 해석이 조미료가 된다면 지혜로운 수필쓰기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月刊文學』「수필의 글감 사냥과 요리」, 2008, 1월호) 강돈묵의 위의 말들은 한마디로 덮으면 바보 돌 깨는 소리다. 강돈묵이 쓴 위의 비평문에서 문제가 된 수필 「漢江風雲」은 길이가 200자 원고지 21.9 매인데 작가의 말이 18.0 매이고 이른바 선현의 말은 네 사람을 합쳐서 3.9 매에 지나지 않는다. 18.0 매가 3.9 매의 조미료라고 했다. 18.0 매나 되는 작가의 도광(韜光)의 언어들을 빈약하다고 하고 3.9 매에 불과한 절제된 인용을 지나치게 옛 문헌에 의존했다 했다. 자신의 말이 빈약하다고 하는 그 말이야말로 강돈묵 자신의 지적 빈약을 드러낸 말인 줄 그는 모른다. 모르는 것이 뭔 자랑인가?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으면 평을 하지 말든지 알 수 있도록 공부를 더 한 뒤에 평을 하든지 그랬어야 옳았다. “문인상경 자고이연”(文人相輕 自古而然⎯ 魏, 文帝)이라지만, 작가를 무시하고 모독하고 독자를 우롱하는 이 따위 논평을 대하면 수필 문단에도 비평이 있느냐고 자문하게 된다. 만사 만물이 그러하듯 글 또한 유변소적(唯變所適)이랄까, 오직 변화하는 곳으로 좇는다. 글에서 변화하는 곳이란 어딘가? 과거와 미래에 이어져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듯이 의고(擬古)와 창신(創新) 곧 전통의 계승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곳일 거다. 도사득금(淘砂得金), 모래를 일어서 금을 얻을 일이요, 점철성금(點鐵成金), 쇠를 다루어서 황금을 이룰 일이다. 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야 한다. 여기서 ‘溫’(온)이라 함은 식은 밥을 버리지 않고 먹긴 먹되 데워서 먹는다는 뜻인 줄 아는 사람이 드물다. 「漢江風雲」이라는 이 글은 온고이지신이고자 한 글이다. 아름다움을 안으로 머금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含章’(함장)이고자 한 글이다. 단순히 선현의 언어를 소개하고 설명한 것이 아니라 한 귀퉁이를 들어서 세 귀퉁이가 반응하도록 했다.”(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論語』「述而」) 절제된 언어로 응축된 철학, 그 행간을 강돈묵은 읽지 못했다. 줄 바깥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가 어찌 거문고를 안다 하랴! 유마(維摩)의 일묵(一黙)이 만뢰(萬籟)와도 같다는 말 들어 보지도 못했나? 수필의 비평은 공평하지 못하다. 무문곡필(舞文曲筆)이다. 문단에 힘깨나 쓰는 사람의 글에 대해선 굽실굽실하다가도 한사의 천의무봉(天衣無縫)에는 먹칠을 한다. 평자의 안목이 없다. 해(亥) 자와 시(豕) 자도 분별할 줄 모르는 자가 자건(子建)의 솜씨를 나무란다. 말을 잘 아는 사람이 천리마를 보고 천리마라 해도 천리마는 천리마이고, 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 천리마를 보고 천리마가 아니라고 해도 천리마는 천리마다. 비속한 대중들 틈에서 인기를 얻는 사람, 이른바 향원(鄕原〈愿〉)은 덕의 도둑이라 했다.(鄕原德之賊也, 『論語』「陽貨」) 대중이 미워하는 것도 반드시 살펴볼 것이며 대중이 좋아하는 것도 반드시 살펴볼 것이라고도 했다.(衆惡之必察焉衆好之必察焉) 향원의 죄를 묻는 논객이 문단에 있는가? 수필문단에 형안독수(炯眼毒手)의 정론(正論)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5. 사이비 철학
비평이 철학 타령일 때도 있다. 철학 용어만을 쓴다고 해서 글이 철학성을 띠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남의 글에 철학 타령하길 좋아하는 사람 치고 철학 용어를 남발하지 않는 자는 드물다. 자신의 같은 글에서 아카데메이아[Akadēmeia, Academy(Plato′s)]의 학인이 되기도 하고 리케이온[Lykeion, Lyceum(of Aristotle)]의 학도가 되기도 한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철학을 전공한 사람보다 철학 용어를 더 자주 쓰는 것 같다.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는 실존(existence/ Existenz)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본질(essence/ Wesen)이라고 해야 할 경우에 실존이란 말을 쓰기도 하고, 실존이라고 해야 할 경우에 본질이라고 하는 걸 보면 실존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고사하고 본질과 실존은 서로 반대가 되는 말이란 것조차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철학이야 소가 다 웃겠다. 철학 용어나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사유의 깊이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어떤 철학자는 ‘생각함으로써 나는 존재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모과나무와 비둘기와 꿩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무존재가 되는 것일까?”라고 한 김시헌의 말이 그렇다.(『계간 隨筆』「無知」, 창간호, 서울:수필문우회, 1995)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양언(揚言)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인식을 말하는 것이지, “모든 사유하는 자는 존재한다.”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삼단논법이 아니다. 우리들은 일체의 것을 의심할 수 있으나 우리들이 의심한다는 사실, 우리들이 사유하면서 존재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사유하는 존재의 확실성을 두고 그렇게 멋스럽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이 말은, 이를테면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무존재가 된다는 뜻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의 말이다. 사람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모과나무와 비둘기와 꿩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무존재가 되는 거냐고 한 김시헌의 주장은 누구보다도 수필에 철학을 강조하는 사람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물론 글에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말에서 철학이란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의 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일컫는 말이란 걸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래도 그렇지, 굳이 철학자의 철학에 대해 말을 하려거든 뭘 좀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툭하면 철학을 입에 담는 사람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겠나? 김시헌의 이 글이 실린 그 잡지는 철학하는 김태길 박사가 발행인이었으니 그가 김시헌의 이 글을 읽고 그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교 용어를 떠들어 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앞서 말한, 하나의 미진(微塵)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법성게」처럼 호호탕탕한 것이 불교란 걸 그들이 알고나 그러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미진을 그냥 ‘작은 티끌’인 줄로만 아는 주제에 온갖 불교의 문자에 얽매여 거기에서 깨달음을 이루려 한다면 사문(沙門)이든 아니든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는 할 수 없다. 불학의 표현을 빌린다면 한낱 ‘송장을 짊어지고 돌아다니는’(祇管傍家負死屍行)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염라대왕한테 치러야 할 짚신 값(草鞋錢)이 꽤나 많을 것이다. 미진이란 불교 용어로서 외색진(外色塵)이라고도 하거니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전자, 핵자,(核子: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는 ‘양자와 중성자’의 통칭.) 원자 같은 것을 일컫는 것이니 “하나의 미진 속에 시방세계가 함유되어 있다.”라는 「법성게」의 말은 과학이 입증한 셈이다. 하지만 얼른 들으면 불교는 이처럼 호호막막하기 그지없어 보여서 빗나가는 소리를 조금 지껄여도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일 뿐이다. 알아볼 사람이 많지 않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법률 용어를 쓰면 당장 밑천이 드러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별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전문적이 아닌 불교 용어 몇 마디만 섞어 놓으면 꽤 유식해 보인다. 이것이 수필 쓰는 사람들 가운데 불자 또는 불교 철학자가 많아 보이는 주된 원인인 것 같다. 철학 타령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염불 같은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신이 어지럽다. 물(物)과 아(我), 영원과 수유, 유위와 무위, 그림과 여백,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어투다. 많이 들어 본 알쏭달쏭한 소리가 원효(元曉)의 화쟁(和諍) 논리까지 터득한 사람으로 보인다. 생하는 일도 멸하는 일도 없고, 끊어지는 일도 영속하는 일도 없고,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고, 오는 일도 가는 일도 없는,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경지라고나 할, 소위 공(空)을 깨친 사람들인 듯도 싶다. 해공(解空)의 선사들. 공도 또한 공하다고 하는 필경불가득공(畢竟不可得空)까지도 효득했으렷다. 이 세상에 나온 것도 떠나는 것도 다 업보연기(業報緣起)일 뿐이니 즐거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이 때를 따라 편안하다고 떠벌린다. 반은 부처가 된 사람 같다. 이러한 경지를 해탈이라 해야 할지, 도통이라 해야 할지, 칠원리(漆園吏)의 이른바 현해(縣〈懸〉解)라고 해야 할지, 차라리 프리드리히 니체가 타기해 마지않았던 ‘천박한 박식’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낱 딜레탕트의 흰소리라고나 해야 할지…. 허무를 떠벌리든 적멸을 들먹이든 무슨 소릴 하든 할말만 하고 얼른 물러나면 누가 뭐랄까? 현란한 문체로 글치레를 하거나 비 맞은 중이 담 모퉁이를 돌아가며 주절대듯 하니 짜증이 난다.
6. 나는 돌아앉아 거문고 줄이나 고르리
짜증이 나긴 해도 혼자 주절댈 때에는 그런대로 멀쩡하던 것이 조직화가 되면 어떠한 사상도 나빠지게 되는 모양이다. 문단의 사이비 또한 거의가 ‘패거리주의’에서 나왔다. 패거리를 지으니 타락하는가, 타락하기 위해 패거리를 짓는가. 수필 문단의 교초(翹楚) 행세를 하려는 것이 그들의 내심이다. 종사병(宗師病)에 걸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인추천’을 남발하여 패거리의 두목이 되고, 필문(蓽門)이 주문(朱門)이 되고, 모장(毛嬙)과 여희(麗姬)를 좌우에 두고, 별의별 요사스러운 짓거리를 한다. 이런 모리배의 독미(黷尾)에 들꾀는 발밭은 무리들의 교언(巧言)과 영색(令色)과 주공(足恭)을 보게나. 알랑방귀를 잘 뀌거나 분 냄새를 살살 풍기거나 하리놀거나 해서 문학상을 타기도 한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운 땅이 같지 않음이네.”(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라는 이 시는 정약용이 일곱 살 때 지었다고 한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게 하여 상을 탄 사람이나 그런 상을 준 사람의 책은 손에 닿자마자 거열에 처한다. 그럴 때면 흡사 바퀴벌레를 손으로 때려잡은 기분이 들어서 정말이지 그때마다 나는 비누로 손을 씻고는 한다. 수필계는 지금 춘추전국시대다. 제 소리 들어 보라고 야단법석을 떤다. 수필의 시대가 온다고 우 몰려 돌아다닌다. 독자가 시와 소설보다 수필을 선호하는 시대를 수필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런 시대가 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음(翰音)을 보았겠지. 날갯짓 소리 하늘에 오르나 몸은 따르지 못하는 닭의 허장성세(虛張聲勢), 외화내빈(外華內貧)을 보았겠지. 성문과정(聲聞過情)이로다. 시와 소설을 압도하는 수필이 나오지 않는다면 수필의 시대는 한낱 닭일 뿐이다. 닭이 한 만 마리쯤 모인다면 그 소리 크기는 천둥소리만 할지는 모르지만 천둥소리는 아니다. 팔공산 꼭대기에 초라니패, 각설이패들이 들꾀어 고삿소리며 장타령을 한다 해도 베토벤의「합창(교향곡 9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거문고 소리 맑으면 학이 저절로 춤추고, 꽃이 웃으면 새가 응당 노래한다.”(琴淸鶴自舞 花笑鳥當歌) 누구의 말인지 나는 모르지만 나는 돌아앉아 거문고 줄이나 고르리. 수필계는 지금 백가쟁명이다. 방귀깨나 뀌는 사람이라면 수필 이론서 하나쯤은 내놓았다. “천하는 같은 곳으로 돌아가면서 길만 다르고 하나로 합치면서 백 가지로 생각하니 천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걱정하는가.”(天下同歸而殊塗一致而百慮天下何思何慮)라는 공자님 말씀을, 수필을 두고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의 수필이 대체로, 그 품격은 고아(古雅)하지 못하고 그 정취는 창윤(蒼潤)하지 못하고 그 기상은 청고(淸高)하지 못하고 그 문장은 문채가 나지 않고 그 하는 말은 굽은 듯 적중하게 할 줄 모르고 그 주제는 벌인 듯 은미(隱微)하게 할 줄 모르는 까닭은, 수필 이론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필 밖의 공부가 깊지 않기 때문이다. 비는 늘 비 아닌 데서 오는 법이다. 수필을 잘 쓰려면 이론서 같은 것을 쓸 생각은 하지 말 일이다. 수필 이론서를 쓰고 나더니 남의 흉만 잘 보고 정작 글은 이전보다 못 쓰게 되는 사람이 널려 있다. 젠체하는 교만이 글이 나올 구멍을 막아 버린 거다.
7. 현학적이란 말은
비평을 한답시고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거나 표현이나 내용이 어려우면 ‘현학적’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이것은 비평이 아니라 위장된 야유요, 오활한 둔사(遁辭)다. 그 야유와 둔사는 선의가 아니다. 검정빛이다. 솥뚜껑으로 자라 잡기 식이다. ‘현학적’이라는 말은 표현이나 내용이 난해하다는 뜻이 아니라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어려운 글을 현학적이라고 하려면 어려운 글이 동시에 뽐내려 한 글이라야 하는데 그런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모두가 그럴까? 또 어렵다는 것은 상대적이어서 초등학교 생도의 눈에는 거의가 현학적인 글로 보일 거다. 현학적이라는 말로 남의 글을 탈잡는 사람 치고 현학적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자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떤 말이 ‘현학적인 말’인가는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을 해도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것으로 보이면 현학적인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현학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두고 표현이든 내용이든 난해하다고는 해도 현학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같은 말을 해도 문단에 힘깨나 쓰는 문학 정치쟁이나 대학 선생이 하면 철학이 되고, 문단에 세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교사, 시간강사 같은 사람이 하면 현학이 되기도 한다.
8. 수필이 쉬워야 한다는 말은
시나 소설은 난해해도 좋고 수필은 난해하면 아니 되는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황송문의「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수필 독자들은 시나 소설처럼 어떤 심오한 철리(哲理)라든지, 가스똥 바슐라가 말한 바 있는 ‘순간의 형이상학’ 같은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길 가는 나그네가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 가는 기분으로 그렇게 읽는 것이 수필이다.”라는 주장이 그렇다.(黃松文,『수필창작법』, 서울:국학자료원, 1999) 이 주장은 결국, 독자가 원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인데 독자의 취향이란 것이 천차만별임을 알고나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수필이 시나 소설처럼 심오한 철리를 수용하면 왜 아니 되는가? 수필이 문학이기 위해선 철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연장은 필연적으로 형이상학에 닿는다. 피천득이 그의「수필」이란 글에서, “수필은…(중략)…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중략)…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라고 했다.(皮千得,『수필』, 서울:汎友社, 1976) 이 말은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글은 수필이 아니며 수필가는 지성이 심오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글은 수필이 아니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다. 대저 수필의 평이성을 표현에서 모색할 때 지양해야 할 것은 획일주의요, 내용에서 강구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비하다. 수필이 평이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표현이 쉬워야 한다는 소리지 사상까지 쉬워야 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현이 쉬워야 한다는 말은 이를테면 바로 말해도 될 걸 멋을 부리겠다고 말을 뱅뱅 돌려서 얼른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든가, 유식하게 보이려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존재론’ ‘형이상학’ 같은 철학 용어를 겁 없이 쓴다든가, 글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고 미사여구를 늘어놓아 문맥을 어지럽힌다든가 하는 따위를 의미하는 말이지, 이를테면 절류(折柳), 청분(淸芬), 역린(逆鱗), 시참(詩讖), 상우(尙友), 우물(尤物), 무술[玄酒], 구실아치, 이아침, 길래, 굴타리먹다, 족자리, 귀때와 같은 말은 어렵거나 잘 쓰는 말이 아니니 수필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원로 가운데도 의외로 많다. 수필이 쉬워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수필에 쓰는 어투가 따로 정해져 있는 양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불구하고’ ‘그러므로’ 같은 말은 수필에 써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글을 사십 년 이상이나 썼다는 사람이 이 지경이다. 논리는 글의 골격이란 걸 안다면 이런 말을 못할 거다.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글이란 평이한 것이 아니라 무가치하다. 남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듯이 남의 글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9. 음식 타령
신문 잡지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매스컴에서 만사를 음식에 빗대어 떠드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필의 맛과 멋」이라는 이병용의 글에서처럼, “「수필의 글감 사냥과 요리」”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다.” “작가의 글에 조미료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중략)… 내 생각과 해석이 조미료가 된다면…(하략)….”이라고 한 강돈묵의 비평문에서처럼 글에서도 툭하면 음식 타령이다. 설마 아귀(餓鬼)가 들린 건 아닐 텐데 천박하게도 수필을 가지고도 음식의 맛에 빗대어 떠드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났다. 누군가 한 번, 수필의 맛이니 멋이니 하고 나니 너도나도 덩달아 야단이다. 하기야 먹자 타령이 예로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체(政體)가 뭐냐고 물으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먹자주의(뇌물)’라고 답해야 옳다는 풍자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자유당 정권 때부터 학생들 사이에까지도 연애 소문처럼 번졌다.
10. 학력 콤플렉스
정봉구는 「박연구(朴演求)의 인간과 문학」이란 글에서 박연구를 치켜세우길, “그는 책 한 권의 저작을 위해서 읽은 책들의 분량을 가지고 대학 졸업 몇 개 폭의 박학과 문학 지식을 과시한 바 있다. 과연이다.”라고 치켜세웠다.(『隨筆公苑』, 1987, 봄호) 나는 박연구의 이런 글이 있는 줄도 모르지만, 박연구의 이 말은 학력 콤플렉스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고 한편으로는 대학 문전에 어정거렸을 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대학 졸업 몇 개 폭의 박학과 지식을 작가 자신이 과시하지 않더라도 감자를 캐 보면 감자를 알 수 있고 고구마를 캐 보면 고구마를 알 수 있듯이 작가의 글을 읽어 보면 누구나 금방 알게 된다.
11. 인격자의 꾸지람
“교사는 넘쳐나고 있지만 스승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가 부족합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거친 사람을 만나보아도 그렇습니다. 눈이 맑지 못하고, 교만하고, 덕을 느낄 수 없고, 겸손하지 못하고, 인격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목일의 말이다.(『月刊文學』, 2009, 4월호, pp. 289〜290) 이 말을 듣고 나는 돌팔매를 맞은 것 같았다. 나 또한 행정고시(보통고시) 출신이요, 내 딸은 교사이며, 아들은 사법시험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눈이 맑고 겸손하고 후덕하고 인격을 갖춘 스승이며 판사 검사 변호사가 내 주위에 매우 많기 때문이다. 정목일의 이 말은 얼른 들으면 매우 불쾌하고 새겨들으면 무슨 콤플렉스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의 벼르고 하는 소리 같이 느껴져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인생 경지가 좋아야 수필 경지도 좋은 법이다.…(중략)…물질만능 시대인 현대엔 인격과 마음의 연마를 통한 인생 경지를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수필에서 향기가 나는 법이다.” 이 또한 정목일의 말이다.(『月刊文學』, 2009, 7월호, p. 324)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질러대는 소리로 들린다. 귀가 따갑다. 속이 메스껍다. 정목일은 왜 이리 부르대는가?
12. 볼기에 살이 없으면
버릴까 말까 망설여지는 책이 있다. 이럴 때는 책을 힘껏 공중으로 집어던진다. 자빠지면 버린다. 엎어진 것은 부끄러운 줄이나 아는 것 같아서 잠시 그냥 두는 것이다. 자빠지는 책이듯 척하는 글이 있다. “낙목한천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의 묘경(妙境)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달 수가 없다.” 이것은 조지훈의 말이다.(趙芝薰,『東問西答』「돌의 美學」, 서울:범우사, 1978) “이러한 순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동양의 진수를 안다고 할 수 없으리라.” “여기서 발길을 돌려 그냥 되돌아간다면 그는 무궁한 산정(山情)의 애무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리라.” 이것들은 김규련의 말이다.(앞의 말―金奎鍊,『강마을』「개구리 소리」, 서울:범우사, 1982 /金奎鍊,『귀로의 사색』「개구리 소리」, 대구: 도서출판 그루, 2003 /金奎鍊,『즐 거운 소음』「개구리 소리」, 서울: 좋은수필사, 2007 // 뒤의 말―金奎鍊,『귀로의 사색』「거룩한 본능」, 대구: 도서출판 그루, 2003 /金奎鍊,『즐거운 소음』「거룩한 본능」, 서울:좋은수필사, 2007) 위에서 김규련의 어투는 조지훈의 어투를 빼 닮아서 만약 구양수(歐陽修)의 눈으로 본다면 “어디서 얻어 왔느냐?”(何處得來)라고 물을 만하다 할 수 있겠다. 조지훈의 글은 오만해도 밉질 않고 탄력이 있지만 김규련의 글은 척하는 티가 눈에 거슬리고 탄력이 없다. 전자는 생화요, 후자는 가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대저 척하는 것이 근본이 없어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의 글은 맹자의 말마따나 오뉴월 소낙비와 같다. 크고 작은 도랑들이 다 차지만 그 물이 말라 버리는 것은 서서 기다릴 수가 있다. 이런 걸 두고 유협은 “볼기에 살이 없으면 그 걸음걸이가 머뭇거린다.”(臀无膚其行次且:『周易』夬卦)라는 말로 통쾌하게 비꼬았다.(劉勰,『文心雕龍』「附會」) “어디서 얻어 왔느냐?”고 물을 만한 경우는 옛 사람의 시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도연명의「음주」(飮酒, 일명 雜詩)라는 시에서 “此間有眞意 欲辯已忘言”(이 사이에 참된 뜻이 있지만 말하려 하니 이미 말을 잊었다.”)이라는 결구가 얼른 보면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이 글귀는,『남화경』의 “得意而忘言”을 시격(詩格)에 맞게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같으면 표절의 논란마저 있을 수 있겠지만 옛날에는 이런 것이 용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연명이 살았던 그 시대는 현학(玄學)이 시대의 풍조였음을 상기할 일이다.
13. 말을 주름잡으면
글은 마땅히 주름잡을 일이다. 글을 주름잡는다는 말은 이를테면 두 줄에 담을 내용을 한 줄에 담는다는 뜻이다. 아니다. 두 줄의 내용을 한 줄이 되게 덜어내는 것이다. 내용을 사진처럼 줄일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덜 그려야 한다. 주름잡는 것은 생략이 아니다. 생략은 생략한 부분이 빈 채로 있지만 주름잡은 글은 치마 주름처럼 주름잡은 걸 펴면 오롯하다. 말을 주름잡으면 문장은 템포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함축이다. 함축은 여향(餘香)의 어머니. 여향이 꽃의 품격을 말한다면 에밀레종이 에밀레종인 것은 여운(餘韻) 때문이다. 한갓 꽃이며 쇠북 같은 것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글이며 하물며 인간이겠는가. 교육자나 종교인 특히 승려들의 글이 거의가 여향(여운)이 없는 것은 함축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법정 화상의 글이다. 명작으로 꼽히는 「무소유」를 비롯해서 십여 권이 넘는 그의 글은 거의가 높은 데서 내려다보고 하는 설교일 뿐이다. 잘 풀어 쓴 경전이라고나 할까. 문학이 아니다. 문학은 설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명이 아니란 말은 주제를 말하지 말라는 뜻이지 내용을 설명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과일은 보이나 양분은 보이지 않는다. 문장은 보이나 주제 곧 중심 사상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양분이 과일 속에 숨어 있듯 사상은 문장 속에 감춰야 한다. 함축이 없는 것은 말을 주름잡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주름잡기는커녕 더 부연하고 누굴 가르치려 드는 것은 그들의 직업적 습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들의 글이 흔히 요설이 되고 템포가 느리고 주제넘거나 교만한 것은 이 습성 때문이다. 강의나 잔소리나 설법은 말을 주름잡지 말아야 효과가 더 좋을는지 모르지만 수필의 독자는 수강생도 아니요, 신도도 아니다. 요설과 강의는 독자를 지루하게 하거나 메스껍게 만든다. 요설과 강의는, 고도로 압축된 선사의 게송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의상대사의「법성게」에서 “하나의 미진 속에 시방세계가 함유되어 있고 일체의 티끌 속이 또한 이와 같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고 한 말에서 ‘일체의 티끌 속이 또한 이와 같다.’라는 말은 있으나 마나한 말이다. 췌사다. 하나의 미진의 속성은 당연히 일체 미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말을 주름잡은 수필에는 시정이 감돈다. 작가의 언어를 벼리로 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물을 엮게 하라.
14. 따라오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논어』「태백」(泰伯)의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를 이항녕(李恒寧) 박사는 그의 『法哲學槪論』에서, “백성은 따라오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라는 취지로 읽었다. “배성은 따라오게 할 것이요, 알게 할 것이 아니다.”라는 종전의 sollen에서 sein으로 전도시킨 거다. 탁견이다. 백성뿐인가, 친구도 사랑도 그렇다. 친구도 사랑도 좋아서 하는 거지 다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글 또한 따라오게 할 수는 있어도 다 알게 할 수는 없다. “文可使由之 不可使知之”라고나 할까.
15. 무언처(無言處)
글로써 말을 다하는 글이 없고 말로써 뜻을 다하는 말이 없다. 뜻이란 작가의 사상 곧 철학이다. 뜻은 형상의 앞에 있다. 특정한 꽃이 피기 전에 아름다움이라는 뜻이 먼저 있다. 꽃만 말하고 아름다움은 말하지 말라. 꽃이 피면 아름다움은 저절로 부쳐진다. 나무를 심기 전에 새가 먼저 있다. 나무만 말하고 새는 들먹이지 말라. 나무를 심어 놓으면 새는 저절로 찾아든다. 그런 뜻에서 글의 진경(眞境)은 말 없는 곳 즉 ‘무언처’(無言處)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언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무언처가 하는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과는 더불어 글을 논하지 말라. (원제: 「말을 닦아서 참을 세우다」「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