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다 부르는 아무개 말고
한기옥
친정어머니가 부르는 동네사람 이름은 별나다
내면서 소 키우다 나온 집
자식 열 모두 시집 장가보낸 집
우물 있던 자리 손녀딸 이쁜 집
아저씨 부지런한 집
감 많이 열리는 집
담 밑에 상추 실한 집
몽골 며느리 본 집
어미 도망간 어린 애 둘 키우는 집
지팡이 없인 시장 못 가는 집
손주 녀석 인사 잘하는 집 ...
어쩌다
원주시 개운동 339의 1번지 최춘자
라고 찍힌
우편물 받는 일이 마뜩잖다
나는 가끔
생이란 게 참 막막하지 싶다가도
세상사람 다 부르는 아무개 말고
혼자 휘파람 불어보듯 고즈넉이 불러보고는
넉넉한 잠에 들 수 있는 이름 두엇쯤 가질 수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생 아닌가 싶기도 해
어머니 별난 친구 이름자들을
차례차례 불러보고는
군불이 도는 아랫목에 언 몸을 녹이듯
따스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꽃이 진다는 말
꽃이 진다고 말한 맨 처음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꽃 잎 비운 자리마다 알알이 들어찬 열매
뜨겁게 안으며
꽃이 이긴다 말하지 않고
꽃이 진다 말 한 사람
지면서 이기는 생
지는 게 이기는 생
어쩐지 눈물겨워
품에 감추고
그 이
문을 열고 들어가
많이 외로웠을
꽃이 진다는 말들에
가만히 얼굴을 대보고 싶은 날들이다
꽃이 진다는 말
참 깊은 말이다
시집 『세상사람 다 부르는 아무개 말고』 시와표현 2019년
한기옥 시인
홍천에서 출생하여 춘천교대와 방통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3년 『문학세계』로 등단해 제12회 원주문학상을, 2009년 첫 시집 『안개 소나타』 로 제7회 강원작가상을 받았다. 2019년에 시집 『세상사람 다 부르는 아무개 말고』 와 『안골』 2024년 『좋아해서 미안해』를 냈다. 현재 강원문인협회와 수향시 표현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