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모가 날개를 달았다.
18일 광화문 박사모의 ‘9·18 국보법 폐지반대, 과거사 제대로 밝히기 장외집회’에 시민이 대거 몰려들었다. 집회가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박사모를 중심으로 미니홈피의 토종지킴이, 근혜사랑, 사랑혜 등 '근혜 가족' 7백명 가량에다 여기에 일반 시민이 갑절로 가세하는 바람에, 노변 광장을 길게 2백미터 이상 메워 줄잡아 최소한 2천명을 충분히 헤아리는 인파가 오후 3시부터 밤9시까지 국보법 폐지 반대를 위한 '대한민국 박사모 문화행사'에 열광했다.
당초, 언론과 경찰은 집회 예상 인원을 5백명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을 훨씬 초과하는 대규모 인파에 무엇보다 박사모 자신이 놀랐다.
한 박사모 진행요원은
"이거 박사모 집회 맞아?"
하고 자문하면서, 일반시민의 호응에 압도당한 듯,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행사는 젊은이들의 음악과 율동에 간간이 정광용 박사모 회장 등 운영진과 활빈단 대표(홍정식님) 등 초청 인사의 연설을 지루하지 않게 곁들이고, “국가보안법 폐지 결사반대” "친북 좌경 세력 몰아내자"라는 구호와 박사모의 각지부를 표시한 피켓과 현수막, 깃발, 그리고 태극기와 풍선 막대가 물결치는 가운데 너나없이 질서정연하게 보도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시종 흥겹고 풍성한 길거리 잔치 한판을 벌였다.
창립 수개월에 집회다운 집회 경험이 없는 새내기 박사모의 불끈불끈한 맥박이 느껴지는 최초의 대규모 장외집회였다.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방학중학교 2학년 임종환군은 엄마와 함께 나왔다고 했다. 엄마의 친구 되는 아주머니가 박사모라는 것. 임군 옆에는 남녀 친구 4명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박사모 주부 한명이 여섯명을 데리고나온 셈.
임종환군에게 물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도둑이 앞에 있는데 밤에 문 열어놓고 자면 안되잖아요?"
되묻는 말이 당당했다.
10대들이 학원에서 귀가하는 길에 엄마의 핸드폰 부름을 받았는지 가방을 멘 차림으로 집회에 합류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큰 비닐 봉지를 옆에 끼고 있는 정덕수님(55세)은 옆사람과 김밥, 튀김을 먹으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한손에 촛불을 치켜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나가다……."
"무슨 집회인지 아시죠?"(어리석은 질문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더니, 직업을 묻는 말에
"노숙인이오"
라고 대답했다.
그들끼리는 노숙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가 보다. 노숙인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서 탁 얹혔다.
노숙인. 사람 인(人)자!
"나도 사람이오!"
라고 항변하는 듯한, 그 점잖은 목소리가(그는 정말 신사처럼 조용했다) 비수처럼 허공을 날아가 무수히 내리꽂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무런 까닭도 없어 보이는 20대 후반의 남녀 한쌍이 지나가다가 스스럼없이 끼어든다. 무대 쪽을 보면서 뭐라고 뭐라고 다정한 말을 속삭이면서……박사모가 들고 다니는 후원금함은 외면하더니 '박사모표 무료 김밥'을 보자 덥석 두 줄을 집어든다.
박사모 틈에 끼어 있던, 운동모에 검은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은 신문광고를 보고 나왔다고 했다. 이름과 신분은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그는
"박근혜에게 포커스 맞춘 행사인 줄 알고 있다. 저것들이 박근혜 끌어내리려 혈안이 되어 있지 않느냐. 여자 하나 못잡아먹어서 발광하는 놈들, 에이! 우리는 보안법 따위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그것 없애자는 놈들 정체는 뻔하지, 안그래?"
라고 분개했다.
또, 서너살바기 따님을 데리고나온 젊은 엄마 등등…….
세종문화회관 계단과 입구를 채우고, 길가 쪽을 메운 것은 온통 시민들. 일제히 무대를 바라보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만큼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는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은 폭발적이었고, 박사모는 그것을 이 땅 서민들의 갈망과 울분, 애국충정이 어우러진 감동의 문화행사로 승화시킨 것.
비가 올 듯, 검은 구름이 상공 저만치에서 굼실거리다가 물러가고는 북악산 내리바람이 온몸을 시원하게 감싸돌면서 어둠이 덮이고, 무대와 노변 광장에 조명이 춤추기 시작. 쾌적한 초가을 밤 페스티벌을 축하해 주기 위함인 듯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 대한민국> <서울의 찬가> <손에 손잡고> <서울>이 울려퍼지고,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율동 자랑을 했다.
이날 박사모는 애송이답지 않은 대단한 무대연출을 보여 주었다. 고전과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소리잔치뿐 아니라, 옷 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펼치는 '깜짝 태극기춤'에다, 고깔 쓴 여인의 승무(僧舞)가 불교음악과 함께 펼쳐져 탄성을 자아내는 등, 이날 박사모는 숨겨두었던 다양한 공연 콘텐츠를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마지막 순서는 <사랑으로> 합창. 모두 일어나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6시간에 걸친 아쉬운 집회를 마감했다.
한편, 이에 앞서 2시부터는 반핵반김국민행동본부의 ‘보안법 사수(死守) 국민행동대회’가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을 비롯,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이진우 전 국회의원, 김상철 전 서울시장, 독일인 북한인권운동가 폴러첸, 민병돈 전 육사교장 등 중량급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열렸고,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각,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국보법폐지 국민연대'의 집회가 있었다. 참가 인원은 국민행동본부 2천명, 국보법폐지 국민연대 7백명 규모.
이와 관련, 각 언론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반대와 찬성 "맞불 집회가 열렸다"는 타이틀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현장에 나와보지도 않고 책상에서 쓴 "박사모 집회 인원 5백명" 운운하는 연합뉴스 제공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서 실망을 주었다.
오히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상세한 보도를 해서 대조를 이루었다.
인터넷 한겨레는 "대통령은 무슨… 막가는 보수세력 집회" 타이틀 기사를 톱으로 올리고 연설 인사들의 발언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대통령을 노무현씨, 노무현으로 불렀다"고 새삼스럽지 않게 꼬집어, 보안법 폐지에 대한 궁색한 논리를 드러냈다. 그러나 박사모 집회에 관해서는 "참석자는 동화면세점 앞의 집회에 두배 가까운 2천여명이었다. 노인들이 주축이던 직전 집회와 달리, 40대와 주부들도 많았다. 3~4명 중 1명은 노인이 아니었다. 장소만큼 참석자들의 구성도 달랐다"고 정확성을 기해, 보수 언론의 무성의한 보도 태도와 비교가 되었다.
오마이뉴스도 '막말'에 초점을 맞추어 " 아무리 '표현의 자유'라지만, 이래서야 되겠는가"하면서 "벗으라면 벗겠어요, 장군님이 원한다면" 등의 피켓 문구와 "이부영, 이재오, 김문수, 고진화 등은 간첩이다"라는 연설 인사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저질스런 비난이 잇따르고 확인되지 않은 근거없는 주장이 넘쳐흘렀다. 대통령의 공식 호칭도 사라지기 일쑤다" "취재진은 시종일간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표현의 자유'가 정말 통곡한 일이다"라고 보도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막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따지자면 '막말의 원조'가 어느 쪽인지를 망각했거나 '떼쓰기의 달인(達人)'다운 후안무치의 전형적 사고(思考)라는 한계, 그리고 '대한민국 박사모 문화행사'라는 타이틀 아래 치러진 모범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 향연을 외면한 채, 집회 참석자들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연설 내용 몇마디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것이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의 자세를 따지기에 앞서 아무런 대응 논리도 없는 옹색한 시각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19일 새벽 2시까지 노사모와 서프라이즈에는 이와 관련한 게시물이 단 한건 올라왔을 뿐이다.
"국보법 찬반집회가 이렇다니..!!"
작성자 해질녁 작성일 2004-09-19 오전 1:24:05
내용을 보자.
"아무래도 우리 개혁 세력의 의지가 약해지는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쪽수에서는 언제나 우리가 10배이상은 앞서갔는데..!! 씁쓸해요!!"
이것뿐, 친노 세력의 입방정이 일제히 침묵으로 돌아선 것도 희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8일은 보안법 폐지 주장이 완패를 기록한 날이었다.
한마디로 박사모 승리의 날이었다.
보수단체 국민행동본부에 비해 이제 겨우 걸음마에 불과한 박사모가 이렇게 '성숙함'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던 일. 집회 규모와 수준, 무엇을 비교해도 단연 우위였다. 다만 아쉬움은 중량급 인사가 없었다는 것뿐이나, 그것은 오히려 새내기 박사모의 새로운 면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족(蛇足) 하나.
쓸쓸한 노빠들 사이트에 "노짱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작성자 아라치 작성일 2004-09-19 오전 12:01:13
내용을 보자.
"(생일 축하글을 올리기 위해 자정을 기다렸습니다) 1946년 8월 6일(음력) 生.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님의 58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9월19일이 노무현의 생일이라는 것!
오늘 러시아에 가는 날 아니던가?
생일을 돌보지 않음인지, 생일 기념인지 내 알 바 아니지만 아무튼 시베리아에 그가 간다고 한다. 시베리아에!
같은 하늘 아래, 손바닥만한 땅에 살붙여 살면서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저마다 희한한 존재들이다, 인간들이란!
첫댓글 동아닷컴 자유토론방 가셔서 김인만님 추천해 주세요 추천수에 따라서 오늘의 논객 선정 되거드너요 선정되면 조회수도 엄청 올라갑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도 선전되지요 아주 자연스럽게~!! 김인만님이 누구신지는 다들아시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