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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플루타르코스와 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시대 A.D. 46년 전후에 출생하여
A.D. 120년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중부 그리스 지역에서 태어났고,
가족들은 대대로 교양과 학문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변론술, 수학, 자연학, 플라톤 철학 등을 공부했다.
그리스 본토 뿐만 아니라 아시아지역까지 여행한 그는
로마에도 오래 머물러 오람의 지식들과 교류를 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그리스의 대관, 델포이 신관으로 일했다.
그는 철학, 종교, 윤리, 수사학,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문학, 전기에 이르는
풍부한 저작을 남겼는데,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고,
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많이 언급되어
나에게는 많이 익숙한 작품이다.
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애라스무스, 몽테뮤, 셰익스피어, 루소, 나폴레옹, 프랭클린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제 나에게 영향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그리스어로 <비오이 파랄렐로이(Bioi Paralleloi)>라고 하고
그 뜻은 '서로 비교해서 쓴 전기'라고 하고 하여 <대비열전>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우리나라에서 붙인 제목으로
플루타르크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어식 표기라고 한다.
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비슷한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고,
그들을 비교한 글을 싣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비교한 영웅들이 총 22조 46명이고,
비교없이 단독전기가 4명, 플루타르코스의 비교한 글을 싣지 않은
영웅의 짝이 4조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데,
내가 읽으려고 마음 먹은 것은 총 8권으로 출간된 범우사 판이다.
이 책이 어떤가 하고,
1권만 사서 읽었는데, 연속으로 8권까지 읽은 생각은 아니고,
가끔씩 읽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
1권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책에 나온 영웅들보다,
이 글을 쓴 플루타르코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책에 나오는 영웅들보다 플루타르코스의 필체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 같다.
1. 테세우스와 로물루스
로물루스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접해 이름은 알고 있었고,
그의 이름에서 '로마'가 유래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면 테세우스는?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재건한 사람이라고 한다.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아이게우스왕이었고,
어머니와 할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테네로 길을 떠난다.
그는 편안한 해로가 아닌 도적들이 많은 육로를 선택하는데,
이는 헤라클라스의 영향으로 가는 길에 나쁜 도적들을 해치우게 된다.
너무 오래 전 사람이라고 플루타르코스도
이 사람에 대해 적을 때 떠도는 많은 전설들을 모두 실었다.
그 중에 나에게도 익숙한 전설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렇다.
당시 아테네는 소년, 소녀들을 크레타에 공물로 바쳤는데,
테세우스는 자진하여 크레타에 갔고,
용감한 테세우스에 반한 크레타의 아리아드네가 지질을 발휘하여
실타래를 가지고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노스를 죽였다는 전설이다.
이 일 이후 크레타왕은 그의 용기가 가상하여 다시 아테네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가 고국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죽고 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테네가 왕국으로 모습을 갖추는데 일조하게 된다.
어느정도 도시의 모습을 갖춘 후
그는 다시 원정을 떠나게 되고,
그 원정길에서 페리토오스를 만나 우정을 쌓게 된다.
그러나 그의 원정길이 칭찬받은 일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헬레네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들을 납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원정 중 페리토오스가 죽고 나서, 테세우스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반대파들이었다.
그는 반대파와 싸움에서 지고, 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땅이 있는 스키로스에 갔다.
하지만, 스키로스 왕 리코메데스는 테세우스를 죽였다는 설이 있다.
테세우스가 죽은 이후 그는 신으로 받들어져 그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사실 로마의 어원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유력하고 신빙성있는 것이 로물루스라고 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알바 왕가의 아아네아스 후손으로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형제가 이썼다.
아물리우스가 누미토르 왕국을 강제로 빼앗고,
누미토로의 후손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누미토르 딸을 살제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누미토르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이에 아물리우스는 그 쌍둥이를 버리라고 하였는데,
그 심부름을 행한 신하는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암튼 그 쌍둥이 형제는 무럭무럭 자라면서 많은 선행을 베풀고,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로물루스, 레무스라고 불렀다.
그들의 소식은 아물리우스와 누미토리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고,
로물루스, 레무스도 그들의 출생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폭군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누미토리에게 왕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은 길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나섰으니, 그곳이 로마 근방이었다.
레무스가 어찌저찌하여 죽게 되고, 로물루스 혼자가 나라를 창건하였으니 이곳이 곳 로마이다.
로물루스는 주변 부족들과 전쟁을 하였고,
부족한 여자들을 납치를 하여 충당하였는데,
이것으로 인해 사비니 부족들과 큰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한창 전쟁중일 때, 납치되었던 여인들의 설득과 만류로 전쟁이 종료되고,
로마의 왕 로물루스와 사비니 부족의 왕 타티우스가 공동으로 왕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타티우스가 죽고 로물루스가 혼자 다스리게 되었다.
로물루스의 최후는 아무도 모르는데,
그 이유는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도 죽은 후에 신격화가 되었다.
2.리쿠르고스와 누마 폼릴리우스
리쿠르고스의 업적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스파르타 법령 제정'이다.
오늘날까지 유명한 스파르카의 명성은
바로 리쿠르쿠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왕가에서 태어났다.
형 플리데크데스가 왕에 오르지만, 일찍 죽어 그가 왕위에 오르지만,
형수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왕을 하겠다고 한다.
형수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리쿠르고스한테 왕을 하라고 하였다.
이는 리쿠르고스를 몰아내고, 자신의 집안이 왕을 차지하려는 계략이었으나
리쿠르고스는 영리하게 대처하여 자신의 조카는 안전하게 태어났고,
그는 킬레라우스란 이름을 지어주고, 왕 자리를 내어주었다.
킬레라우스가 어느정도 자랄 때까지 그가 섭정하려 하였으나,
왕비와 그녀의 가족들이 위협하게 되자 그는 스파르타를 떠났다.
후헤 그를 원하는 스파르타의 소식을 알게 되 그는 귀환하여 개혁을 단행한다.
왕의 전제정치와 시민의 민주주의를 절충한 원로제롤 만들고,
3대 개혁을 실시하였다.
첫째, 땅을 균등히 나누어 시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둘째, 금화, 은화를 없애고 무거운 철로 동전을 만들어 사치생활을 금지시켰다.
세째, 집에서의 식사를 금지하고 공동식사를 하게 하였는데,
이 세번째 것이 부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리쿠르고스에게 테러를 감행하여 그는 한쪽 눈을 못쓰게 되었다.
그런 공격에도 그는 의연한 자세를 보이자, 백성들의 지지도는 더욱 올라갔다.
리쿠르고스는 튼튼한 모체에서 튼튼한 아이가 나온다는 생각에
스파르타 여연들에게도 남자들처러
씨름, 달리기 등 훈련을 시켰고, 여인들도 이를 불만삼지 않고 자부심으로 여겼다.
스파르타는 더욱 엄격한 법률과 강력한 체력을 가진 백성들의 국가로 부상하였다.
그들은 음악도 사랑하였는데,
이로써 스파르타인들은 전쟁과 음악을 좋아하는 국가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리쿠르고스는 죽음과 환상적이었다.
그는 그가 만든 완전한 제도로 국가가 완성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명예로운 삶이라고 생각했고, 죽음은 곧 그에게 있어 행복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리쿠르고스의 법은 그가 죽은 후 500년이나 이어지다가
아기스왕에 이르러 금과 은이 유입되어 사치와 탐욕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
한편 로마에서는....
로물루스가 행방불명이 된 후, 왕 자리를 놓고,
사비니와 로마가 갈등을 이루다고
그들은 로마인이 뽑은 사비니인을 왕으로 모시기로 하였는데,
그렇게 뽑인 사람이 바로 누마 폼필리우스이다.
누마는 타티우스의 사위이기도 하다.
누마는 피타고라스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종교에 헌신하고, 달력을 개혁하고,
평화정책에 정점을 두었다.
이에 부족간 대립을 없애고, 직업별로 조직을 만들어 운영케 하였다.
원래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하지 않는가.
그가 집권하고 있던 내내 전쟁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아 그리 기록할 만한 사항이 없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마자 불안한 정치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
지은이 플루타르코스는 이 두사람.
리쿠르고스와 누마를 비슷한 것 다르다면서 다음처럼 정리하였다.
그들은 모두 신앙심이 깊고, 정치와 교화에 있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누마는 왕에 오름으로써 영광을 얻었지만,
리쿠르고스는 왕에서 물러남으로써 영광을 얻었다.
리쿠르고스는 긴장이 풀린 스파르타를 굳게 결속시켰고,
누마는 호전적인 로마를 적절하게 풀어주었다.
그들은 죽은 이후에도 그 차이점이 현저한데,
리쿠르고스의 법은 500년이나 이어졌지만,
누마의 법은 죽은 후 곧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듯 두 사람의 차이는 백성의 기질과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라고는 것이 플루타르코스의 생각이자.
비록 누마의 법이 그가 죽은 이후 사라졌지만,
로마는 그가 반대했던 전쟁으로 번성하였으니 아이러니하다.
즉 로마는 누마의 정책을 버림으로써 부강하였고,
스파르타는 500년 이후 리쿠르고스의 정책을 버림으로 몰락하였으니...
이 또한 그들의 오묘한 차이점이 되겠다.
3. 솔론과 포를리콜라
아테네는 살라미스섬을 두고 메가다와 전쟁을 하고 있었다.
솔론은 메가다인들을 속여서 살라미스 섬을 차지하게 되었다.
살라미스 섬이 아테네 땅임을 입증하고, 델포이 신탁을 옹호하는 연설로
명성과 권위를 얻게 된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 상황은 킬론파와 메가클레스의 싸움으로 국내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었던 시절이다.
그런 혼란을 틈나 메가다인들이 공격하여 살마시스 섬을 빼앗겼다.
아테네는 크레타의 에피케니데스에게 부탁하여 킬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파벌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심하게 대립하였는데,
솔론이 유일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솔론에게 분쟁 종결을 의뢰하였고,
그는 집정관이 되어 법을 통해 그 분쟁을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어느 편도 만족시키지 못하여 불만들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의 정책은 인정을 받게 되고,
그에게 공화국의 모든 법을 맡기게 되었다.
그는 살인죄를 제외한 나머지 형법 폐지, 행정업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배심원 제도를 실시하는 등 사회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법을 제정하게 된다.
플루타르코스 왈, 그의 법이 모두 합당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법이 아테네의 안정을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법을 완성한 솔론은 아테네를 떠나 이집트와 아시아 등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 중에 많은 왕들에게 지식을 주기도 하였는데,
솔론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솔론이 다시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다시 혼란의 시기였는데,
그가 아테네를 다시 재건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
포플리콜라는 '백성을 사랑하는 이'란 뜻이다.
그는 평생 자신의 권력과 욕심을 탐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하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플루타르코스의 다음 평으로 다신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려고 들지도 모르겠다.
즉, 솔론은 잃어버렸던 땅 살라미스를 탈환하여 아테네인들에게 돌려준 반면,
포플리콜라는 로마 인들이 정복하고 있었던 땅마저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때의 사정을 참작해 보아야만 한다.
현명한 정치가는 모든 일에 있어서 현상태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취한다.
그래서 종종 한 부분을 버림으로써 전체를 구해내고 작은 일에 양보함으로써
더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이니, 그때에 포플리콜라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점령지에서 철수함으로써 자기 나라를 보전하고,
로마 시만 지켜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안겨주었다.
상대편으로 하여금 논의의 결론을 내리도록 양보해줌으로써
결국 승리를 얻었을 뿐 만이라 또 하나 얻은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승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포르센나는 전쟁이 끝난 후
자기 진영의 군용물품들을 남겨둔 채 철수해 갔는데
이는 로마 집정관의 고결한 성품에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4. 테미스토클레스
위의 다른 사람들은 읽으면서 짧게 메모를 하였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밤샘 출장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읽어서 메모를 하지 못하였다.
그에 대한 생각들이 어렴풋이 나는데, 정확하지 못하여 적지는 못하겠다.
나중에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테미스토클레스와 짝을 이루는 카밀루스는 <플루타르크 영웅전> 2권에 있으니
나중에 2권 읽을 때 다시한번 살펴봐야겠다.
테미스토클레스를 평가한 그의 동료장군의 말을 통해 그의 단면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잔치 다음날이 잔칫날을 헐뜯으며 이렇게 말했다오.
'잔치날에는 모든 사람이 준비하느라 바쁘고 고단하지만,
내가 나타나면 누가나 다 한가로이 모여앉아 이미 차려놓은 음식을 먹을 수 있소.'
그러자 잔칫날은 대답하기를,
'과연 옳은 말일세. 그렇지만 내가 없었다면 당신도 있을 수 없소'
라고 하였다오.
그와 마찬가지로 테미스토클레스가 없었더라면 당신이 있기나 하였겠소?"
책제목 : 플루타르크 영웅전 1
지은이 : 플루타르코스
펴낸곳 : 범우사
펴낸날 : 1994 년 3 월 30 일
정가 : 10,000 원
독서기간: 2007.10.16 - 2007.10.18
페이지: 349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