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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세계 최초의 핵무기가 개발, 사용된 이후 엄청난 양의 핵무기가 제작되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이동수단에 실려 운반되었습니다. 아무리 조이고 닦아도 이런 물건들이 고장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고, 핵을 탑재한 채 발생한 사고는 자칫 대참사를 불러올 수도 있었지요.
미군의 핵무기 관련 사고 분류
누크플래시 (Nucflash) -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고, 또는 우연히 발생한 미국 또는 우방 국가의 핵무기 폭발
브로큰 애로우 (Broken Arrow) -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는 사고, 또는 우연히 발생한 미국 또는 우방 국가의 핵무기 폭발, 또는 폭발 가능성(비핵폭발이나 핵무기 화재, 방사능 오염, 노획, 도난, 분실, 강제투하 등에 의한 것 포함)
엠티 퀴버 (Empty Quiver) - 핵무기의 적에 의한 노획, 도난, 분실 사건
벤트 스피어 (Bent Spear) - 상기 사고들을 제외한 중요한 수준의 사고
덜 소드 (Dull Sword) - 상기 수준보다 덜 중요한 수준의 사고
페이디드 자이언트 (Faded Giant) - 해군 소속 장비에 탑재된 원자로나 기타 원자력 에너지 장치의 사고
핵무기에 탑재된 안전장치 덕분에 아직까지 누크플래시급 사고는 발생한 적이 없고(발생했다면 이미 지구는 멸망했을 테지만)브로큰 애로우급 사고만 몇 번 발생했습니다. 다음에 명시되는 사고는 거의 미국의 핵무기 사고이고, 러시아의 경우 핵무기 사고를 대부분 국가기밀로 취급하여 공개된 경우가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금 나와있습니다. 이외에 핵무기를 운용하는 국가들(영국, 프랑스, 중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은 자국에서 발생한 핵무기 사고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거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1950년 2월 13일 : 알래스카 에일슨 공군기지에서 모의전투임무를 위해 텍사스 카스웰 공군기지로 향한 B-36 피스메이커 폭격기가 엔진 고장을 일으킴. 이 폭격기는 열화우라늄이 장전되었지만 핵분열에 필요한 플루토늄은 제거된 상태였던 Mk.4 원자폭탄을 탑재하고 있었음. 엔진 기화기에 얼음이 얼어붙으면서 총 6개의 엔진 중 3개의 시동이 꺼졌고 나머지 3개의 출력도 저하됨. 기상조건까지 악화되면서 결국 승무원들은 탈출을 결심했고, 활성화되지 않은 Mk.4를 태평양에 투하함. 폭탄은 바다에 떨어지면서 고폭약이 점화되어 폭발함(핵폭발이 아닌 통상폭발). 탈출한 승무원들 중 12명은 구출되었으나 나머지 5명은 실종되었고, 자동조종으로 비행하던 폭격기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북부에 추락, 파괴됨.
Mk.4 원폭
1950년 4월 11일 : 뉴멕시코주 커틀랜드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9 폭격기가 이륙 직후 추락, 승무원 13명 전원이 사망. B-29는 보조기폭장치 4개와 분리된 상태의 코어가 장착된 원폭을 탑재하고 있었음. 추락의 여파로 폭탄의 외피가 파괴되고 고폭탄에 불이 붙어 폭발이 일어났지만 안전을 위해 코어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핵분열은 일어나지 않음. 추후 화재가 진화된 뒤 핵물질은 전부 안전한 상태로 수거됨.
1950년 7월 13일 : 텍사스주 빅스 공군기지에서 훈련비행을 위해 이륙한 B-50 슈퍼포트리스가 오하이오주 레바논 근처에서 하강비행 도중 추락, 승무원 16명 전원 사망. 탑재하고 있던 핵무기의 고폭약이 충격에 의해 폭발했지만 핵물질을 탑재하고 있지는 않았음.
B-50 슈퍼포트리스. 유명한 B-29 슈퍼포트리스의 전후 개량형
1950년 8월 5일 : 캘리포니아주 페어필드-수이선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반응코어를 장착하지 않은 원폭을 탑재한 B-29가 비행 도중 엔진고장을 일으킴. 비상착륙을 시도했으나 화재로 인해 원폭의 고폭탄이 폭발, 승무원 19명 전원 사망. 당시 승무원 중에는 로버트 트래비스 준장이 타고 있었으며, 추후 공군기지의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 개명됨.
1950년 11월 10일 : Mk.4 원폭을 탑재하고 캐나다에서 이륙해 미국으로 순항하던 B-50 슈퍼포트리스가 엔진고장을 일으킴. 근 5톤에 달하는 Mk.4를 매단 채로는 비상착륙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를 한 승무원들은 퀘벡 근처 세인트로렌스 강에 폭탄을 투하했고, 자폭모드로 설정되어 있던 폭탄은 공중에서 폭발함. 반응을 위한 플루토늄 코어는 장착되어 있지 않았으나 폭발로 인해 약 45kg에 달하는 열화우라늄이 살포됨.
1956년 3월 10일 : 해외 기지에 운송하기 위해 핵무기 2개분의 코어를 특수케이스에 탑재하고 플로리다의 맥딜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47 스트라토젯이 실종. 비행 중간 2회의 공중급유가 예정되어 있었고 첫번째는 무사히 완료되었으나 지중해 상공에 대기하고 있던 두번째 공중급유기는 B-47을 발견하지 못함. 집중적인 수색이 이루어졌으나 승무원, 기체, 핵물질 중 어느 것도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지중해 어딘가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됨.
B-47 스트라토젯
1956년 6월 27일 : 영국 레이큰히스에 있는 NATO 공군기지에서 이륙중이던 B-47 폭격기가 미끄러지면서 기지 격납고에 충돌. 격납고에는 반응코어를 떼어낸 Mk.6 원폭 3기가 저장되어 있었으며, B-47에서 유출된 제트유에 불이 붙으면서 원폭이 화염에 휩싸임. 그러나 소방대원들이 제때 불을 끌 수 있었고 폭발은 일어나지 않음.
1957년 5월 27일 : 텍사스에서 뉴멕시코로 원폭을 운송하던 B-36의 순항비행 도중 폭탄의 고정부분이 느슨해지면서 떨어져 폭탄창 문을 부수고 항공기 밖으로 튀어나감. 저공비행 도중이었기 때문에 감속낙하산이 충격을 줄여주지 못해 지면에 착탄한 원폭이 폭발. 반응코어는 따로 운반되고 있었기 때문에 핵분열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고폭탄의 폭발로 크레이터가 생겼고, 외장재에 들어 있던 일부 방사능 물질이 크레이터 내부에 퍼짐.
1957년 7월 28일 : 3개의 원폭과 1개의 반응코어를 분리한 채 탑재한 C-124 글로브매스터 II 수송기가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를 이륙한 직후 엔진 2개가 꺼짐. 현 기체의 중량으로는 비상착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조종사는 원폭 2개를 외부로 투하. 투하된 원폭은 뉴저지주 해안에 가라앉았고 C-124는 애틀랜틱 시 근교에서 비상착륙에 성공함. 투하된 원폭은 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았음.
1957년 10월 11일 : 플로리다주 홈스테드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던 B-47의 후미 부분 타이어가 폭발하면서 지면에 충돌. B-47은 원폭 1기와 분리된 코어를 탑재하고 있었고, 충돌에 의해 화재에 휩싸임. 화재는 4시간 가량 지속되었고 이 동안 원폭의 고폭탄이 폭발하는 것이 2차례 관측됨. 원폭 대부분이 이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핵물질 부품은 손상 없이 발견되었고 방사능 누출도 없었음.
1958년 1월 31일 : 최초의 활성화된 핵무기에 의한 사고. 모로코의 미군 공군기지에 있던 B-47이 이륙 도중 랜딩기어 파손으로 미끄러지면서 지면에 충돌, 연료탱크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화재가 발생. 탑재되어 있던 원폭은 코어가 장착된 완제품 상태의 원폭이었고, 화재는 7시간 동안 지속되었지만 폭탄은 폭발하지 않고 손상된 상태로 남아있었음. 부근에 약간의 방사능 누출이 있었지만 즉시 복구됨.
1958년 2월 5일 : 플로리다주 홈스테드 공군기지에서 모의전투임무를 위해 이륙한 B-47이 조지아주 사바나 근처 상공에서 F-86 세이버 전투기와 충돌. 당시 B-47은 반응코어가 제거된 Mk.15 수소폭탄을 탑재하고 있었음. B-47 헌터 공군기지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3회 실패하고, 더 무리를 할 경우 탑재된 수폭의 고폭탄이 폭발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폭탄을 사바나 강에 투하. 이후 9주에 걸쳐 잠수부와 소나를 이용한 집중적인 수색이 있었지만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고, 2001년 다시 한번 수색을 재개했으나 또다시 실패함. 2004년 투하지점 부근에서 방사능이 감지되어 폭탄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자연방사선으로 판명되어 역시 수폭의 행방은 미궁에 빠짐.
당시 B-47의 승무원들. 왼쪽부터 조종사 하워드 리처드슨 대령, 부조종사 하워드 라거스트롬 중위, 항법사 리랜드 울라드
Mk.15 수폭. 중량 3,450kg, 위력 1.7~3.8mt
1958년 3월 11일 : 정기훈련비행을 위해 코어가 장착되지 않은 원폭을 탑재한 B-47E이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이륙.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플로렌스 상공을 비행하던 도중 폭탄의 고정장치가 풀려 폭탄이 투하되었고, 인근 시외의 가정집을 덮침. 폭탄의 고폭탄이 착탄충격에 의해 폭발했고, 수 명의 부상자가 발생함.
1958년 11월 4일 : 텍사스주 디에스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던 B-47 폭격기에서 화재가 발생. 승무원 3명은 탈출하고 1명은 사망. 탑재되어 있던 원폭의 고폭탄이 폭발해 크레이터를 남겼으나 핵물질들은 모두 수거됨.
1958년 11월 26일 : 루이지애나주 셰놀트 공군기지에 주기되어 있던 B-47에서 화재가 발생. 화재로 인해 탑재되어 있던 원폭이 파손되면서 방사능 물질이 일부 누출.
1959년 1월 18일 : 태평양 모 공군기지의 F-100 슈퍼세이버 전투기가 지상에서 외장 연료탱크 3개와 코어가 없는 원폭 하나를 달고 모의 비상훈련을 하던 도중 조종사의 실수로 연료탱크 분리버튼이 작동함. 떨어진 연료탱크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해 원폭이 화염에 휩싸였으나 핵물질이 누출되기 전 진화에 성공함.
1959년 7월 6일 : 원폭 1기를 탑재하고 루이지애나 박스데일 공군기지를 이륙하던 C-124가 추락. 화재로 폭탄은 파괴되었으나 안전장치 때문에 원폭의 고폭탄은 폭발하지 않음.
1959년 9월 25일 : 워싱턴주 휘드비 섬 근처에서 초계비행을 하던 해군의 P-5M 초계기가 근처 퓨젯 사운드 만에 추락. 여기에는 반응코어가 없는 핵폭뢰 1기가 탑재되어 있었으며, 수색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음.
1959년 10월 12일 : 켄터키주 하딘즈버그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던 B-52 스트라토포트리스와 KC-135 스트라토탱커가 충돌. 추락으로 인해 폭격기 승무원 9명 중 5명과 급유기 승무원 4명이 사망. B-52에는 2기의 비활성 원폭이 탑재되어 있었으며, 추락현장에서 회수됨.
B-52 스트라토포트리스
1960년 6월 7일 : 뉴저지주 맥과이어 공군기지의 IM-99A 보마크 핵탑재 지대공미사일 사일로에서 고압 헬륨탱크가 폭발하면서 건물이 붕괴. 폭발로 인해 미사일의 연료탱크가 파괴되면서 연료가 누출되어 미사일에 화재가 발생. 탄두는 파괴되었지만 고폭탄이 폭발하지는 않아 방사능 오염은 일부에 그침.
1961년 1월 24일 : 20mt급 Mk.39 수폭 2기를 탑재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3,050m 상공에서 공중비상대기에 들어가 있던 B-52의 우측 주익에서 연료가 누출, 폭발함. 파괴된 B-52는 인근 골즈버러시 근처로 추락해 승무원 8명 중 3명이 사망. 탑재되어 있던 수폭 2기는 항공기가 파괴되면서 자유낙하됨. 1기는 감속낙하산이 작동하면서 큰 파손 없이 지면에 안착했지만, 다른 1기는 그대로 지면에 착탄해 대파됨. 나중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폭탄에 장착되어 있던 안전장치 6개 중 5개가 파괴되었고, 핵폭발이 일어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스위치 한 개가 남아 있어서 작동을 막았다고 함. 공군이 대량의 수색팀을 보내 일대를 샅샅이 수사했고, 기폭용 플루토늄은 찾았지만 고농축 우라늄 등의 수폭 핵물질은 발견되지 않았음. 추후 혹시라도 발견되는 상황에 대비해 정부에서는 그 땅을 사들여 통제구역으로 지정하고 정기적으로 방사능을 점검하는 중.
이 사고를 계기로 미군은 좀 더 신뢰성있는 안전장치의 개발에 몰두하게 되고, 소련에도 그럴 것을 촉구함.
Mk.39 수소폭탄. 중량 3,015kg, 위력 3~4mt
1961년 3월 14일 : 캘리포니아주 유바 근처를 비행하던 B-52의 여압장치가 고장나고 연료가 부족해져 승무원들이 비상탈출함. 지면에 추락하면서 기체에 탑재되어 있던 원폭 2기가 분리되어 튕겨나갔지만 안전장치가 작동해 아무 이상 없이 수거됨.
1961년 7월 4일 : 그린란드 남부 해상에서 훈련중이던 소련의 호텔급 전략원잠 K-19의 원자로 냉각시스템에서 누출사고가 발생. 보조냉각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온도는 통제불능일 정도로 상승했고, 이 때문에 있을 방사능 누출이나 폭발사고가 소련과 미국 간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불씨가 되리라 우려한 함장 자테예프 대령은 긴급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함. 7명의 기술장교와 승무원이 화학방호복(방사능 방호능력 없음)을 입고 고도의 방사능 오염구역에 뛰어들어 환기파이프에 물 공급관을 용접해 넣어 임시 냉각장치를 만듬. 이로 인해 방사능이 함내 전체에 퍼졌지만 냉각시스템에 물이 유입되면서 원자로 온도가 안정을 되찾음.
이후 K-19는 선수를 돌려 디젤잠수함 S-270과 조우해 승무원을 퇴함시켰고, S-270에 의해 예인되어 모항에 귀환함. 당시 근처에 있던 미 해군 함정이 이례적으로 도움을 제의했지만 기밀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자테예프가 거부함. 냉각시스템 설치에 참여했던 7명은 고도의 방사능 때문에 사고 1주일 내에 전원 사망했고, 이후 수 년 동안 20명이 추가로 사망함. 사고 당시 잠수함에는 3기의 SS-N-4 SLBM이 탑재되어 있었음. K-19는 원자로를 교체하고 다시 일선에 투입되었다가 다시 여러 차례의 사고를 겪었으며, 결국 1991년 퇴역함. 이 이야기는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함.
K-19, 1972년 화재사고 당시 촬영된 사진
K-19에서의 사고를 그린 영화 K-19 위도우메이커. 영화에서는 히로시마란 별명 대신 위도우메이커라는 이름을 붙임
1962년 6월 4일 : 미국 최초의 초고공 핵폭발 실험을 위해 토르 로켓(미국 최초의 ICBM)에 핵탄두를 탑재, 발사함. 태평양 존스턴 환초에서 발사된 로켓은 비행 도중 고장나 통제센터에서 자폭시킴. 탑재된 핵탄두는 바다로 추락했고 다시는 발견되지 않음.
1962년 6월 20일 : 2회째의 초고공 핵폭발 실험. 역시 이전처럼 같은 장소에서 발사된 토르 로켓이 다시 고장을 일으켰고 자폭된 로켓의 핵탄두는 바다로 추락해 발견되지 않음. 이 2회의 실험은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음.
토르 로켓
1963년 4월 10일 : 메사추세츠주 코드곶 동쪽 355km 지점에서 스레셔급 공격원잠 1호함인 USS 스레셔(SSN-593)가 최대잠항심도 시험 도중 고장을 일으켜 침몰. 높은 수압에 의해 엔진실의 파이프가 파열되어 침수가 일어났고, 원자로가 꺼진 것으로 추정. 동력을 상실한 스레셔는 한계심도 밑으로 침강해 선체가 파열, 파괴되어 탑승해 있던 129명 전원 사망. 침몰 당시 핵무기는 탑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침몰 당시 선체에서 원자로가 노출됨.
이 사건 이후 미 해군은 원잠에 대한 강도높은 안전시험인 SUBSAFE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됨.
1963년 11월 13일 : 텍사스주 메디나에 위치한 미 원자력위원회 핵무기 해체 시설의 격납고에서 저장되어 있던 고폭약 55,800kg이 폭발함. 직원 3명이 경상을 입었고 다른 건물에 보관되어 있던 핵물질이 약간 누출된 것이 탐지됨.
1964년 1월 13일 : 메사추세츠주에서 이륙해 조지아주로 향하던 B-52D 폭격기가 돌풍에 휘말리면서 기체가 파손되어 메릴랜드주 컴벌랜드 근교에 추락, 승무원 5인 중 2인이 사망. 순항용 기본무장인 원폭 2기는 경미한 손상만 입은 채 회수됨.
1964년 4월 21일 : 미국 최초의 항법추적용 위성시스템 트랜싯의 5BN-3 원자력 위성이 발사 도중 궤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도양으로 추락. 대기권 재돌입시 탑재된 원자로에 들어 있던 플루토늄 일부가 성층권에 살포되었고, 나머지는 바다로 추락.
1964년 12월 5일 : 사우스다코타주에 위치한 미니트맨 I 탄도미사일 사일로에서 미사일 정기점검 중 미사일의 대기권재돌입체 밑에 붙어 있던 역추진로켓이 점화되어 재돌입체가 20m 밑의 사일로 바닥으로 추락. 재돌입체에 탑재되어 있던 탄두는 안전장치가 작동해 폭발하지는 않음. 탄두는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방사능 누출은 감지되지 않았음.
미니트맨의 정비 광경
1964년 12월 8일 : 인디애나주 그리섬 공군기지에서 이륙을 위해 지상에서 이동하던 B-58 허슬러 폭격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면서 화재가 발생. 3명의 승무원은 탈출했으나 그 중 한명은 탈출캡슐이 튀어나가는 충격에 사망. 사고 당시 폭격기에는 5기의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었으며 이 중 몇 개가 화재로 심하게 손상됨. 사고 이후 방사능이 누출되었으나 인근 지역으로 제한됨.
1965년 10월 11일 : 오하이오주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서 재급유를 받던 C-124 수송기에 화재가 발생. 당시 수송기에는 핵무기 부품이 실려 있었으며 화재로 인해 방사능이 누출되었으나 통상적인 세척처리로 제거됨.
1965년 12월 5일 : 베트남에 배치되어 있다가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로 귀환하던 미해군 소속 항모 USS 타이콘데로가에서 사고 발생. 류큐 제도 110km 거리에서 순항하던 중 탑재되어 있던 A-4E 스카이호크 공격기가 승무원을 태운 채 갑판 밑으로 굴러떨어짐. 사고 당시 기체에는 B-43 수소폭탄이 탑재되어 있었으며, 기체와 함께 4,800m 심해로 빠져 다시는 회수되지 않음. 일부는 수압에 의해 수폭이 내폭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으나 그런 징후는 발견되지 않음.
B-43 수폭. 중량 960kg, 위력 70kt~1mt
1966년 1월 17일 : 핵무기 사고 사상 가장 당황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4기의 B-28 수소폭탄을 탑재하고 비행하던 B-52가 공중급유 도중 KC-135와 충돌한 사건. B-52는 공중비상대기 태세였고, 노스캐롤라이나의 시모어 존슨 공군기지로 돌아가기 전에 공중급유를 받는 중이었음. 3차 공중급유를 위해 스페인의 팔로메어 마을 상공에서 KC-135와 조우, 공중급유에 들어갔으나 급유절차를 밟는 중 급유기의 급유관 노즐이 B-52를 강타함. 충격으로 인해 B-52는 완파, 추락했고 이때 KC-135의 급유탱크 안에 들어 있던 제트유에도 불이 붙으면서 급유기는 공중에서 폭발. KC-135의 승무원은 4명 전원이 사망하고, B-52의 승무원은 7명 중 3명이 사망.
파괴된 두 항공기의 파편은 약 26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범위에 흩어졌으며, 탑재된 4기의 수폭 중 1기는 경미한 손상만을 입은 채 발견되었고, 2기의 폭탄은 착탄충격에 고폭탄이 폭발하여 인근 지역에 저준위 방사능을 대량으로 살포함. 사건 수습을 위해 미국은 오염지역의 토양과 식물 약 1,300톤을 퍼서 미국의 폐기물 저장소까지 엄청난 돈을 들여 실어나름.
(지금까지도 그 지역에서 잔류방사능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와 미국을 당혹케 함)
마지막 1기의 수폭은 지중해에 빠진 것으로 추정되었고, 80일간에 걸쳐 미 해군 병력 3천명과 33척의 함선이 수색작업에 투입됨. 결국 80일만인 3월 17일 유명한 심해잠수정 앨빈 호가 4번째 폭탄을 발견했고, 잠수구난함 USS 페트렐(ASR-14)이 수폭을 인양함. 이 과정에서 해군 잠수부 칼 브레이셔가 폭탄에 깔려 다리가 부러졌으며, 그의 이야기가 나중에 영화 '맨 오브 아너'로 만들어지기도 함.
미국 최초의 흑인 잠수부 칼 브레이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맨 오브 아너
1968년 1월 21일 : 공중비상대기를 위해 뉴욕의 플래츠버그 공군기지를 이륙한 B-52가 북극권 순항비행을 하던 도중 항법사 좌석에서 화재가 발생. 비상착륙을 위해 그린란드의 튤 공군기지에 접근하던 B-52는 활주로 남서쪽 11km 지점에 추락. 충격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때문에 탑재하고 있던 4기의 원폭 중 1기의 고폭탄에 불이 붙어 폭발이 일어남. 폭발은 플루토늄을 반경 300m 가량의 넓이에 흩뿌렸으며, 화재와 폭발로 인한 열로 바닥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4기 중 2기의 원폭이 바다 밑으로 침강. 이중 1기는 1979년에야 회수되었으며 다른 1기는 아직도 해저에 남아 있음.
1968년 3월 8일 : 소련의 골프급 전략디젤잠수함 K-129가 알 수 없는 이유(배터리의 수소 누출 폭발로 추정)로 한계심도를 넘어 잠항하면서 선체가 파열, 하와이 북서쪽 4,900m 해저에 침몰. 승무원 98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침몰 당시 잠수함에는 3기의 핵 탄도탄과 2기의 핵어뢰가 탑재되어 있었음. 소련은 다수의 해상전력 및 공중전력을 투입해 잠수함의 수색에 나섰으나 별 결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포기함.
소련의 이상한 움직임을 탐지한 미국은 곧 수중에 부설된 대소련잠수함 방어용 음파탐지망인 SOSUS의 기록을 샅샅이 뒤졌고, 이중 추정되는 위치에 수색함을 투입해 오랜 기간에 걸쳐 조사함으로써 K-129의 위치를 파악함. CIA는 K-129와 탑재된 핵무기의 회수를 위해 '제니퍼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수립하고 대형 인양함인 글로마 익스플로러를 건조(물론 소련 잠수함과 핵무기를 건져낸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수중채굴함으로 홍보). 글로마 익스플로러는 인양작업을 펼쳐 K-129의 일부와 핵어뢰 2발, 6명의 시신을 인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까지 이 인양작업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기밀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 상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음.
글로마 익스플로러. 현재는 개수되어 수중채굴용(명분이 실제가 됨)으로 사용중
1968년 5월 21일 : 스킵잭급 공격원잠 USS 스콜피온(SSN-589)이 3개월의 대소련 감시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환하던 도중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군도 남서쪽에서 침몰. 정확한 침몰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탑재되어 있던 Mk.37 어뢰의 오작동(자폭 또는 전지 과열로 인한 폭발)으로 추정됨. 스콜피온은 두 동강이 난 채 승무원 99명과 함께 심도 3,000m에 침몰했고, 여기에는 원자로 1기와 핵어뢰 2발이 실려 있었음. 잔해는 현재까지도 대서양 바닥에 가라앉아 있으며, 미 해군은 혹시라도 있을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현재까지도 계속 감시중. 사건의 자세한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논란이 남아있음.
침몰해 있는 USS 스콜피온의 선수 부분
1970년 4월 12일 : 전쟁시 미 해군의 6함대에 사용할 어뢰식 핵기뢰를 부설하기 위해 1970년 1월 나폴리 만으로 파견된 소련의 노벰버급 공격원잠 K-8에서 화재가 발생해 스페인의 비스케이만 북서쪽 480km에 침몰. 52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으며 원자로 2기가 같이 침몰함. K-8은 기뢰용으로 24발의 핵어뢰를 탑재하고 있었으나 잔해에서는 이중 4기만 발견됨. 나머지 어뢰가 현재도 이탈리아 근처에 부설되어 있는지, 아니면 소련에 의해 회수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불명.
1977년 9월 8일 : 태평양 캄차카 반도 근처를 항해하고 있던 소련의 델타 I급 전략원잠 K-171에 탑재되어 있던 SS-N-8 SLBM의 발사튜브 중 하나가 열리면서 수압으로 미사일이 방출됨. 해저에 침몰한 미사일의 탄두는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추후 회수됨.
1980년 9월 19일 : 아칸소주에 위치한 타이탄 II 대륙간 탄도탄의 정기수리 도중 수리공 한 명이 가압상태의 연료탱크 위에 무거운 렌치를 떨어뜨려 탱크에 구멍이 남. 뿜어져 나온 연료에 불이 붙으면서 1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당함. 폭발로 인해 미사일의 재돌입체가 튀어나와 사일로 바깥으로 떨어졌으나 방사능 누출 없이 수거됨.
1983년 6월 24일 : 소련의 찰리급 순항미사일원잠 K-429가 베링 해 사반나야 만에 침몰해 승무원 120명 중 16명이 사망. 정비 중이던 K-429는 수중 어뢰발사 테스트를 시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채 정비가 끝나기 전에 해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환기장치와 밸러스트 탱크 밸브가 제대로 조절되어 있지 않았음. 얕은 바다에서 시험잠항에 들어가자 열려 있던 환기구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함장은 긴급부상을 명령했으나 밸러스트 밸브가 작동하지 않아 약 40m 심도의 바닥에 침몰함. 2명의 승무원이 자원하여 베링 해의 얼음물을 뚫고 수면까지 올라갔고, 해안가까지 수영을 해 도달함. 이 둘은 신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곧 체포되었으나 해군에 잠수함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었고, 구난함이 잠수함 위에 도달하자 남아 있던 승무원들이 탈출캡슐을 통해 탈출에 성공함.
8월 남아 있던 잠수함의 선체와 원자로, 탑재되어 있던 핵무기 전체가 인양되었고, K-429는 수리를 거쳐 다시 취역했으나 1985년 9월 또 사고가 일어나 인명피해가 난 뒤 퇴역함.
1986년 10월 6일 : 10월 3일 소련의 양키 I급 전략원잠 K-219에서 미국 대서양 연안을 따라 초계항해를 실시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 SLBM 발사관들 중 하나의 커버가 새면서 물이 유입되었고, 들어 있던 SS-N-6 SLBM의 액체연료와 반응하면서 유독가스가 만들어져 폭발과 화재가 발생. 진화에 나섰던 승무원 4명이 사망했고, 유독가스가 계속 함내에 차올랐기 때문에 나머지 승무원은 퇴함하게 됨. 소련 화물선이 케이블을 걸어 모항까지 견인에 나섰으나 10월 6일 버뮤다 북동쪽 1,100km 부근에 돌연 침몰(함장의 자침으로 추정). 침몰 당시 원자로 2기와 핵탄두 34기(SS-N-6이 1기에 2개씩, 핵어뢰 2발)가 탑재되어 있었음.
긴급부상해 있는 K-219. 세일 뒷부분에 파손된 SLBM 발사관이 보임
1989년 4월 7일 : 소련의 마이크급 공격원잠 K-278 콤소몰레츠가 기지로 귀환하기 위해 잠항하던 도중 고물 쪽 구획에서 화재가 발생. 화재로 인해 합선이 일어나 원자로가 꺼졌고, 격벽을 폐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압축공기시스템 때문에 배선통로를 통해 번져나감. 진화가 불가능해지자 강제부상 후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대부분의 승무원이 빠져나왔으나 부력을 잃고 다시 침몰함. 함장과 4명이 잠수함에 갇혀 있다가 탈출캡슐을 사출했으나 캡슐 내에 유독가스가 차 있었고, 5명 중 1명만 생존. 밖으로 탈출했던 승무원들도 북해의 혹독한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구조선이 오기 전에 대부분 동사하였고, 총 승무원 69명중 25명만 생존. 침몰 당시 원자로와 2기의 핵어뢰가 탑재되어 있었으며, 침몰 위치가 어획량이 많은 어장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1996년 대량의 예산을 들여 젤리형 물질로 K-278을 밀봉, 봉인함. 현재까지 미미한 양의 방사능 누출만이 감지됨.
2000년 8월 12일 : 러시아의 오스카 II급 순항미사일원잠 K-141 쿠르스크가 러시아 북부 바렌츠해에서 훈련에 참가하던 도중 대규모 폭발을 일으킴. 선체가 파열되면서 쿠르스크는 105m 심도의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침몰 당시 승무원 118명중 23명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구출을 위해 잠수부가 잠수함에 도달한 뒤에는 이미 산소부족으로 전원이 사망한 뒤였음. 사고원인은 USS 스콜피온에서 있었던 것과 비슷한 어뢰에 의한 폭발로 추정되며, 핵무기는 탑재되어 있지 않았고 잠수함의 원자로는 2001년 잔해가 인양되면서 같이 회수됨.
인양된 쿠르스크 호의 잔해
2003년 8월 30일 : 1989년 퇴역한 러시아의 노벰버급 공격원잠 K-159가 침몰함. K-159는 1965년 당시 방사능 누출사고를 일으킨 잠수함으로 퇴역 이후 아무런 수리도 받지 못한 채 1940년대 만들어진 부양탱크에 매달려 14년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세계 각국이 돈을 모아 추진한 16척의 러시아 구형 원잠 폐기 계획에 참가하고자 폴리아르니의 10호 조선소로 이동하던 도중 폭풍을 만나 240m 깊이의 바닥으로 침몰함. 예인을 위해 탑승해 있던 승무원 10명 중 9명이 사망하고 2기의 원자로와 800kg 가량의 사용된 핵연료가 남아있음. 현재 영국 국방성이 예인계획을 추진중.
침몰 전 예인되고 있던 K-159
이외에도 여러 차례의 핵무기 관련 사고들이 있었으며, 50개 이상의 핵탄두들과 26기의 원자로가 아직도 바다 속에 잠들어 있습
니다. 혹 기회가 되신다면 여가선용 삼아서 하나쯤 찾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출처 : http://cafe.naver.com/nuke92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81877
첫댓글 ㄷㄷ..그 위험한 핵들이 이렇게 곳곳에..
그런데 미쿡이 저정도라면 소련(=러시아)는 전 세계에 핵탄두를 뿌리고다녔을듯한...
그리고 북한이 하나 주워서 미국을 협박하는..(?)
헐...엄청무섭군요
거기에 기밀 문서까지 파해치면.......쩝 할말 다한거죠. 거기에 러시아는 특별히 발표된 사고가 몇개 없다보니 ㅁㄴㅇㄹ
참 신기하군요. 핵 탑재된 비행기만 유독 고장이 많았던 것인가? 왠지 모르게 미군에 잠입한 러시아 스파이가 사보타지로 비행기 고장내놓고 핵폭탄 자유낙하 시키면 군이 오기전에 먼저 빼돌린게 아닐까 싶기도 ㅋㅋㅋ (응?)
007 썬더볼 이라든지 007 네버세이네버어게인이 그런스토리죠.
인간들이 신을 만들었고 또한 세상의 한부분을 날려버릴 파괴도 만들었다.
.................- _- 그런데 어째 전부다 본거같아[영화가]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