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
(성철 스님)
제5편 영원한 자유인
12. 왕가(王嘉)
왕가는 후진(後秦) 때 숨어사는 사람으로 유명한 도안(道安)스님과 친하였다.
도안스님이 돌아가실 때가 되어 왕가가 찾아가니 도안스님이 말씀하셨다.
"나와 같이 가지 않으려는가?" 왕가가 대답하였다.
"나는 아직 빚이 좀 있어서 빚을 갚고 가겠습니다."
그 뒤에 요장(姚萇)이 장안(長安)을 빼앗을 때 왕가는 일부러 성 안에 있었는데, 요장이 물었다.
"내가 곧 천하를 얻겠는가?"
"조금 얻겠다[略得]."
요장이 그 말을 듣고 왕가를 죽여 버렸으니 왕가가 말한 빚이란 바로 이를 말한 것이었다.
그 뒤에 요장의 아들 요흥(姚興)이 천하를 얻었는데 요흥의 자가 자략(子略)이었다.
그러니 '조금 얻겠다.[略得]'란 말은 자략이가 요장을 죽이고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왕가가 죽던 날, 어떤 사람이 농상(壟上)에서 왕가를 만나니,
왕가가 자기를 죽인 요장에게 편지를 보내자 요장은 그 편지를 받아보고 크게 놀래며 탄복하였다고 한다.
13. 동빈 거사(洞賓 居士)
동빈 거사 여 순양(呂純陽)은 당나라의 현종(玄宗) 천보(天寶 742-755) 때 하양(河陽)에서 났다.
그 무렵 신선도(神仙道)를 닦아 크게 유명해진 종리권(鐘離權)이 동빈(洞賓)을 보고
"세상의 영화(榮華)는 잠깐 동안이니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신선도를 배우라"고 권하였다.
동빈(洞賓)은 그 말을 좇아 종리(鐘離)를 따라 공부 길을 떠났다.
한 곳을 지나다가 종리는 큰 금덩어리를 하나 주어 가지고 대단히 기뻐하며 말하였다.
"자네가 도를 닦으러 가니 하늘이 그것을 알고 도(道) 닦는 밑천을 하라고 주는 것이니
이것을 팔아서 보든 비용에 쓰자."
그러면서 동빈(洞賓)에게 금덩어리를 주자,
동빈(洞賓)은 크게 성내며 그 금덩어리를 집어던지며 말하였다.
"내 들으니 도(道)하는 사람은 욕심이 없어야 한다던데
금덩어리 하나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 놈이 무슨 도 닦는 놈이냐?
너는 도인이 아니라 분명코 도적놈이니 너 같은 놈은 따라갈 수 없다,"
그러고는 뿌리치고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자 종리는 크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금덩어리를 자세히 보라."
동빈(洞賓)이 자세히 보니 그것은 금이 아니라 썩은 돌이었다.
그제 서야 종리가 자기를 시험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깊은 산골에 가서 움막을 짓고 공부를 하는데,
하루는 종리가 어디 갔다 온다 하며 더 깊은 골짜기에 가서 무슨 약초를 캐어오라 하므로,
동빈(洞賓)은 지시한 곳에 가서 보니 아주 잘 지은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이런 깊은 산골에 어찌 이런 집이 있는가?' 하는 의아심이 나서 그 집 마당에 가서 보니,
방안에서 세상에 보기 드문 예쁜 여자가 반기며 나오더니,
"우리 남편이 먼 길을 떠난 지 오래 되어서 대단히 적적하더니 마침 잘 오셨습니다." 하며
동빈(洞賓)의 손을 잡아당기려 하는 것이었다.
이에 동빈(洞賓)이 번개같이 발로 차며 꾸짖기를,
"이 요망한 년 이것이 무슨 짓이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갑자기 집과 그 여자는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자기 스승인 종리가 허허 하고 손뼉 치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동빈(洞賓)은 또다시 시험당한 줄 알았다.
종리가 하는 말이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것이 제물과 여자인데 네가 그만큼 뜻이 굳으니
이제는 너의 집에 가서 부모를 아주 하직하고 참으로 공부 길을 떠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종리와 같이 자기 고향에 가서 집으로 갔는데
대문이 잠겨있고 아무리 소리쳐도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담을 넘어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자기의 부모, 형제, 처자가 누군가에게 맞아 죽어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온 마당에 가득 널려 있었다.
종리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벌벌 떨며 동빈(洞賓)더러 '그 시체를 전부 주워 모으라' 하였다.
동빈(洞賓)은 처음부터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시체를 주워 모으면서 얼굴을 조금도 찌푸리지 않고 마치 나무 막대를 주워 모으듯 아주 태연하였다.
종리가 그것을 보고 또 한 번 크게 웃으니
모든 시체는 간 곳 없고 집안에서 자기 가족들이 반기며 쫓아 나왔다.
그때야 비로소 종리에게 시험당한 줄 알고 동빈(洞賓)은 크게 탄복하며 수없이 절하였다.
그 뒤로 동빈(洞賓)은 신선도를 닦아 세상에 으뜸가는 신선이 되어,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을 비롯하여 기묘한 재주를 많이 가졌다.
그리하여 천하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황룡산에서 회기 선사의 도력(道力)에 항복하고 그 밑에서 크게 깨쳐 불법(佛法)으로 돌아왔다.
그 후 천여 년 동안 그 몸 그대로 돌아다니며
많은 불사(佛事)를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너무나 유명한 사실들이다.
일례를 들면, 송나라의 휘종(徽宗) 선화(宣化) 원년(元年 1119)에
휘종 황제가 임영소(林靈素)라는 사람에게 속아서 그와 모든 것을 의논하는데,
문득 동빈(洞賓)이 그 자리에 나타나서는
임가를 꾸짖고 황제에게 속지 말라고 타이른 것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