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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얀전쟁' 뒷이야기(아는 만큼 느낀다)
... 뒷이야기라서 끊기는 필름처럼 두서 없음이다.
우리 집 베트남 식구 아가씨 이름이 "많이"(梅花)다. '마이' 고향은 사이공 시민의 휴식처 '붕따우' 바다 왼쪽 끝? '긴 높은' 해변이다. 여기에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긴 머리카락' 처녀 귀신이 나온다는 아름다운 '팔레스 호텔'이 있다. 이 '팔레스 호텔' 사장, 즉 관리를 '마이' 아가씨 큰 오빠가 한다. 근처가 평지인데 비해 그곳만이 불끈 솟아올랐는데 그 위에 걸터앉은 호텔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돌하르방' 같아서 -머리쯤에 해당하는 곳에 올라 둘러본 전경은 아주 시원하고 가히 낭만적이다.
끝없이 밀려오는 푸른 파도와 시원한 바닷바람에 춤추는 울창한 야자수 그리고 부채처럼 잎이 넓은 바나나가 눈 가는 곳 마다 대기하고 있고. 뜰에는 해묵은 천리향이 사철 꽃을 피워,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숨쉬기를 중단하기 전에는) 피할 수 없는 진한 향기는 그곳을 찾은 나그네를 이국(異國)여행객이라는 걸 충분히 실감 나도록 떠받들어 주신다. 감성 무디기가 끝 간 곳 모르게 한량없어서, 소죽을 끓이는 검고 큰 가마솥이 걸린 마구간 부지깽이같이 멋대가리 하나 없는 사내 일지라도 천리향 안주 삼아 캔 맥주 하나 들고 난간에 기대면 바로 자신만의 추억의 명화가 만들어진다.
이런 그림 때문인지 '하얀 전쟁' 영화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영화 촬영 가능성을 타진하러 척후병으로 오신 분이 서울 종로구 낙원동 (주)'대일 필름' 김 **실장님이셨다. 영화관계 일을 30년 넘게 하신 베테랑이셨는데, 중후한 모습의 외모가 그분 또래 배우들 누구 못지않으셨다. 아니, 나의 눈에는 -더욱 뛰어나셨다. 또 외모를 앞서는 온화한 인품 때문에 촬영지 제일 높은 인민위원장님을 포함하여 그곳 주민 누구나가 그분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밝은 미소를 보냈다. 영화가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실 때는 당신께서 차리고 나선 모습 외에 옷이며 신발들 소지품들을 그동안 알고 지내던 현지인들에게 모조리 나누어 주시고 '홀가분해서 좋다'고 적당히 나오신 인격을 앞세우시고 정자나무 아래로 마실가시듯 그렇게 휘적휘적 가신 분이다.
옷들이 깨끗하고 영화 일로 잔뼈가 굵으신 실장님 못지않게 세련되었기로 나도 하나 달래서 입었다. 또 영어 통역을 하는 현지인 딸아이를 수양딸 삼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도 하셨는데. 그때 10살쯤 되던 그 아이가 지금은 결혼해 잘사는 30대 여성이 되었다. 그 뒤 내가 공장을 할 때 김 실장님을 베트남에 초청하여 당신께서 이루신 '하얀 전쟁' 영화 촬영지 해변으로 돌아보시게 안내하여 옷 얻어 입은 보답을 조금이나마 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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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원작 '하얀 전쟁' 배경이 베트남이었으므로 현지에서 촬영했으면 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 이었으나.(그래서 오신 것이고) 그 시절은 우리와 베트남이 국교 정상화 전이어서 모든 것이 너무 불편할 때였기에 과연 이런 곳에서 촬영이 가능할 것인지 조사차 나오신 것이다. 김 실장님과 그 일행들이 촬영 장소를 사냥 할 때 나는 이분들을 모시고 '롱하이' 해변 외에 여러 곳을 안내해 드렸는데 근처에 야산이 있고 시원한 바다가 있으며, 옆 붕따우 해변처럼 그렇게 번잡하지 않은 롱하이가 선택 된 것이다. '하얀 전쟁'과 '머나먼 송바강' 헌팅 장소 찾으러 다닐 때부터, 그리고 끝나고 모두 귀국하실 때까지 이런저런 일화 많은데 먼저'하얀 전쟁 사냥장소 찾으러 다닐 때 -하나 소개한다. 우선 한국 고사 하나와 베트남에 있었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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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사……. 바닷가에 사는 처녀와 깊은 산 속 총각이 결혼하여, 산속 사돈이 바닷가 사돈집을 찾았다. 밥상을 받고 보니 기대했던 싱싱한 생선은 별로고 무슨 시들은 산 생김새 나물만 한 상 가득하다. 산채는 바닷가에서 귀한 것이기에 어려운 손님 즉 사돈어른? 밥상에 올린 것이다.
/ 이번엔 반대로 바닷가 사돈이 산속 사돈집을 찾으니. 산속 사돈이 한물간 짜디짠 절인 생선을 밥상에 올렸더란다. 이것도 산속에서는 아주 구하기 어려울 반찬은 맞는데…….사람들은 자신이 맛있고 귀하다고 생각하면 남들도 그러려니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식전에 조금 먹어두는 스프정도로 생각하시라.)
이곳 사람들에게 사이공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남국의 풍광을 찍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을 소개하라고 했더니 '제이 퐁 필름'('하얀 전쟁' 영화 현지 합작회사)직원이 나서더니 그런 곳을 자기가 잘 알고 있기에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2시간쯤 거리에 아주 기가 막히는 그림이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자신 있게 소리쳤다. 김 실장님을 비록 하여 영화 관계자분들 모두가 흡족해했다.
이제 일 좀 되나 보다 하고. 누군가는, "역시 사이공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 제작회사 직원답다"고 이른 칭찬도 했다. 덩달아 우리 콧대도 올라갔다. 능력 있는 파트너 선택한 것이 우리다. 이제 차는 출발하고 '제이 퐁 필름' 직원을 따라 모두가 집단으로 '기(氣)가 막히러 나섰다.' 지금 운전사 옆자리에 앉아서 운전사와 신 나게 떠드는 저 친구 말대로라면, 돌아올 때는 우리가 모두 집단으로 기가 막혀 올 뗀대도 별걱정들이 없다. 아니! 모두 기(耳)가 막혀 청각장애인이 되어 돌아올 각오들까지 하셨는지 가는 동안 그렇게도 차가 들썩이도록 말들을 많이 하셨다. 돌아올 때 하실 말씀들까지 하신 것이다.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차는 부평초가 떠다니는 누런 사이공 강 다리 위를 건너 하노이로 가는 1번 국도를 따른다. 1시간쯤 가더니 로터리에서 우로 꺾어 또 1시간쯤 더 달려 우리를 데려다 놓은 곳은 우리네 집 앞동산만 한 작은 야산이다. 어디에 좋은 촬영지가 있다는 것인지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보고 안내하던 영화사 직원이 입에 침을 튀기면서 장황한 설명을 한다. 고국에 '뱀'장수처럼. "자! 보세여! 사이공에서 두 시간 안에 어디에 이런 산이 있습니까? 이 산이 사이공에서 젤로 가까운 산이기에 사이공 사람들은 모두가 좋아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산밖에 없는데?) 그리고 정상에 우뚝 솟은 저 바위를 보세요? 얼마나 우람합니까. 멋있지요?" (시골 우리 밭둑에 있는 바위는 저것보다 더 큰데.)
순간 이 녀석을 바위투성이인 내 고향 월출산에 데려다 놓으면 어떻게 반응하려는지 심히 궁금해진다. 아마도 오줌 싸고 까무러쳐 동서남북 분간이 어려울 것이구먼. 그건 그렇고, 이거야 원 어이가 없다. "허" 소리는 김 실장님 둥그런 배에서 김빠지는 소리다. 에어컨도 션찮은 차에 타고 그림이 아주 좋은 '기가 막히는' 촬영장소 찾아서 2시간을 왔는데, 집 앞동산 같은 베트남 야산 앞에서 누구 하나 말없이 담배만 피우는 우리를 보고, 인적 생각에는 자기가 안내한 멋진 그림에 우리가 모두 집단으로 감동을 하여 기가 막혀서 완전히, 간 줄 알았는지 이제는 사뭇 작두에 오른 무당처럼 신이 났다. 자기를 만난 것이 당신들에게는 크나큰 행운으로 알라는 식으로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재는 저 녀석, 좀 있으면 손 벌리겠다. 점심값 달라고……. '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라는 데. 인석은 절에 가서도 그 흔한 누룽지 하나 못 얻어먹을 놈이다.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제, 그래도 머 하나 쯤은 쓸 만하게 만들어 내 보낸다는데, 이 녀석은? 쓸 만한 구석이 어디 있는지 앞뒤로 한참을 찾다가 결국에는 이렇게 귀결됐다 '중은 중이로되 절 모르는 중이다.' 이 녀석이 사이공에서 젤로 잘 나간다는, 영화를 만든다는 회사 '제이 퐁 필름'에서 일하는 것 맞나?
아직도 설레발이 치는 녀석 너머로 손가락 엄지와 검지를 가재처럼 펴서 두 손가락을 반대로 걸쳐 가로가 긴 사각을 만든 후, 눈으로 가져가 사방을 돌아다보아도 야자수 하나 없고 그 흔한 넓은 바나나 잎 하나도 손가락 안에 걸리지 않은 야트막한 야산뿐이다. 이런 걸. 찍으려면 말이다, 버스 토큰 두 개 가지고 시내버스 타고 '수락산’ 입구 어디 아무 곳에다 카메라 들이대도 되겠다. 이걸 보려고 홍콩, 방콕 돌고 또 차 빌려서 2시간이나 온 것인감? 정말 기(氣)가 막힌 것은 맞다. 그런데 반대로…….
‘오메! 왜 이리 덥다냐. '어휴! 이렇게 해서 또 하루가 넘어가는구먼. 이러려고 '안기부' 소양 교육받고 외무부 '특정국가 여행허가서' 받고 홍콩, 방콕 들러서 비자 받느라고 2~3일 잡아먹고 온 건가?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는 어렵게 받은 외무부에서 발급하는 특정국가 여행허가서 또 갱신하러 고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경비만 나고, 오뉴월 땡볕에 牛 부랄 늘어지듯 축 처진 가랑이 사이에 쌍방울 소리만 요란하지 영화는 언제 찍는다니?
이렇게 어렵게 또 어렵게 선택한 전망 좋은 곳을 찾아서 촬영에 들어갔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팔레스 호텔'에 숙식하던. "H 씨가 밤이면 출연하는 '공가이' 귀신 때문에(그때 일행들이 주고받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약간 맛이 가버린 적이 있었다. 배우들을 포함해서 모든 영화 관계자들은 한 방에 두 명씩 배정 되었는데(안성기&독고영재) 'H의 룸메이트는 H와 도저히 함께 못 자겠다고 바꿔 달라고 투덜거릴 정도다. 이렇게 헛소리하는 H씨를 '저라'(미친놈 와는 전혀 관계없음)라는 외국인 전용병원에 입원시키고. 고국에서 가져온 '묵주'를 건네주면서, 이것은 한국 신부님께서 축성한 묵주이므로 몸에 지니고 있으면 귀신이 안 붙을 거다" 안심시킨 적이 있다.
인석이 대답은 부잣집 막내인데 "네 고맙습니다." 해 놓고는 고국에 어머님께 꼭 전화 한 통만 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이국땅 병원에 입원한 아직 상투도 안 튼 녀석이 오죽이나 엄마가 고플까 해서. 간호사 구워삶아 (권투를 하셨나? 콧대가 퍽 주저앉은 간호사를 미스 베트남'으로 만들어 주고 ) 어렵게 고국으로 전화를 연결해주면 자기 엄마 목소리 듣는 순간부터 '헐크'로 변해서 소리 소리를 지른다. (호텔에서도 한국으로 전화가 엄청나게 어려울 때다. 하물며 병원에서야…….)
"엄마! 삼촌한테 얘기해서 여기 정 감독부터 모조리 혼내 줘야 해. 절대로 가만두면 안 돼" 그때는 국교 정상화 전이라서 베트남을 오가려면 '안기부에서 실시하는 '소양교육 '받고 외무부에서 발급하는 '특정국가 여행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그러고도 베트남 비자를 받으려고 방콕이나 홍콩서 하루나 이틀 체류해야 했었는데. 이렇게 힘든 절차 무시하고 좀 편리하게 허락 없이 오고 갈 때, 제일 문제가 김포공항 '이미 그 레이션' 통과하다 붙잡혀서 곤욕을 치른다. 의심암기(疑心暗鬼)라 했다. 난지도에 버린 냉장고, 에어컨, 자전거, 이런 쓰레기들을 손봐서 그걸 팔아 외화를 벌어오는 멀쩡한 사업가를 까닥하면 거의 공산주의 신봉자로 만들어 버린다.
나도 한번 걸려서 3시간에 걸쳐서 서식도 없는 백지에 조서 식 경위서 쓰고 나왔다. '이미 그 레이션 '높은 의자에 앉아 계시던 분이 나의 여권에 찍힌 타국 비자와 입, 출국 증명 스탬프를 보시더니 '캄보디아' 다녀온 것 보고 경기하는 아이처럼 이렇게 호들갑을 떤 결과다.
"어허! 캄보디아까지 가셨구랴? 이거 큰일 났군 이 양반은 가지 말라는 곳은 허락도 없이 다 가셨네. 그랴"나에게 요렇게 근엄하게 엄포를 놓더니 이것도 양이 안 찼는지, 아니면 애국은 혼자서 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서 해야 한다는 거룩한 정신 때문인지.
결과는? 내가 사는 지역 담당 경찰서에까지 통보하셨구나. 관 활 경찰서 외사과에서 집으로 등기우편으로 출두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온 걸 보니. (그럼 허가를 받고 다니시지 왜? 하이고! 큰 회사 아니면 절대로 허가를 안 해 주시니 그렇지요.)
지금이사 '특정국가'라면 머저리 밥통 같은 북한 빼고 없을 걸, 또 그렇게 다니기 어렵던 베트남도 이제 15일 NO 비자 국가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병원에 입원시킨 인석이 어렵게 연결된 전화로 하도 삼촌을 들먹이기에 인적 삼촌이 김포 공항 '이미 그 레이션' 관련 업무 정도 보는 안기부 직원인가 보다 하고, 혹여 득 될 것이 없을까 슬며시 귀를 열었더니 무어라 무슨 스포츠신문 '뻥' 기자 그늘막이고 어허! 이거야말로 두부 먹다 이 빠지는 소리더라. 달래 과부 것이냐 남편이 없으니 과부지. '저라'병원 정신과에 입원한 놈 말을, 입원시킨 놈이 혹하다니, 나도 인적 옆에 누워야 하려나 보다.
(어느 정신병원에 자기가 쥐라는, 환자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은 뒤 이제는 자기는 쥐가 아니고 사람이라고 해서 의사가 퇴원하라고 했는데 병원 문을 열고 나가려던 환자가 그냥 서 있더란다. 왜 그러냐고 그 환자 눈길을 따라가 보니 건너편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의사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닌 걸 알잖아요? 환자, 그렇지요. 알지요. 그런데 저 고양이가 이제는 내가 쥐가 아니란 걸 아느냐 이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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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탄 형사가 돈을 안 내고 내리면서 안내양에게 나 '사'야했다. 뒤에서 내리던 검사도 나도 '사'라니까? 하며 그냥 내렸다.
또 그 다음 사내도 나도 '사' 이러고 내리려 했다. "모조리 '사'라고 버스요금 안 내고 내리는데 당신은 무슨 '士'고 사증 좀 보자?'고 붙잡으니 마지막 사가 '나아? 나는 이발 '사'야" 했다더니. 스포츠 신문기자 삼촌에게 정 감독 까라 영화 관련자 모두를 혼내 주라고 주문하는 인석이 한국에서 촬영차 넘어온 70명가량의 일행 중 이발사'사'인 샘이다. 허긴, 멀지 않은 북한에서는 남쪽의 선망 받는 사(士)자 직업인 의사, 검사, 변호사가 아니라. 이발사와 운전사 그리고 요리사가 인기가 좋다 하더라 마는, 그나저나 인석 인물이 아깝다.
그때 안내양이 얼마나 열 받았을 꺼나?
아마도, "死眞 直志馬 始發" 라고 열 받은
'완장' 이라는 놈처럼 '發光'하는 年이 되었겠지.
내사 책을 만들더라도 始發세 이하는 구매 불가 판정을 받겠다.
자라는 아이들 때문에 우회(漢字)좀 했다. (아래는 '완장 & 발광女)
{"死眞 直志馬 始發 直志馬 性質而 癩鼠 正末 直志馬 始發"}
[士者 事用馬 始發 事用馬 性質而 癩鼠 正末 事用馬 始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