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원이 뭐니?
학기말고사가 끝나고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들과 교실에서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으면서 말이다.
나는 아까운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생각하고 있었던 마무리 행사를 준비했다.
속칭 롤링페이퍼라고 하는 ‘애정통신’을 전체 학급 아이들에게 돌리며 쓰도록 하였고, 담임 선생님께도 감사의 표현을 하도록 했다. 이 시간 만큼은 아이들은 자는 아이가 없다. 물론 남학생들 같은 경우 짓궂은 표현을 해서 친구들의 분노를 살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수업 진도만 나가지 않고 다른 것을 하면 아이들은 기뻐한다.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각각 편지를 썼다. 한 학급당 40명 가량 아이들에게 짤막하지만, 격려를 담은 글을 써서 건네주면 아이들은 무척이나 기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였다. 그래서 매번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일이 아이들에게 글을 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또 팔도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 법이니 만큼, 그 결과 또한 기대한 이상으로 넘칠 때가 많다.
사인회 하자
금년에 아이들을 위한 편지를 쓰던 중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급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소원을 그 자리에서 써주면 어떨까?’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붓펜과, 자체 제작한 자필 엽서를 준비해서 학급에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아이들의 외침, 또는 소리.
“선생님, 오늘 뭐해요?”
나는 미소를 띠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 오늘은 팬 사인회를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사인과 축복의 글을 받고 싶은 사람은 나오세요.”
나는 농담반 진담 반인 것처럼 분위기를 띄워가며 말을 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간절함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 가운데 어떤 아이들은 좋은 것을 주어도 아예 받아 먹지 못할 때가 있다. 무관심,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이 거기에 해당된다. 그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내 부름에 반응하기를 바랐다. 축복이,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만 받는 특혜가 아니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 사인회를 통한 축복의 엽서 쓰기도 그러한 맥락이다. 모두가 원하면 받을 수 있는 기쁨과 행복, 그것을 나는 전해주고 아이들은 누렸으면 했다.
줄 서는 아이들
2학년 학급이었다.
사인회 하자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책상 사이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얘들아, 자유롭게 책 볼 사람 보고, 사인 받을 사람은 나와서 자기 소원 한 가지씩만 말하렴.”
나는 의자에 앉아, 펜을 들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어 가며 엽서에 글을 써주었다.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직접 자기들 눈앞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며 글을 써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이들 눈에는 매우 생경하고 놀라운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엽서를 받아 든 아이들은 “우와, 우와.” 소리를 연발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무척이나 감사하다. 글을 지을 수 있는 달란트를 나에게 허락하시고, 글을 예쁘게 쓸 수 있는 소질도 주셔서 말이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실 때,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 이 땅에서 사명자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로 아이들을 격려하게 하시니 감사하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애인하고 잘 지내게 해주세요
미영이가 내 앞에 섰다.
“아, 미영아. 미영이는 어떤 소원이 있니?”
잠깐 동안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미영이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제 애인하고 잘 지내게 해주세요.”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응? 뭐라고? 미영아.”
미영이가 다시 입을 옴짝였다.
“제 애인하고요~, 잘 지내게 해주세요.”
“아하~. 그렇구나.”
나는 엽서에 미영이의 소원대로 “하나님, 미영이가 애인하고 잘 지내게 축복해주세요.”라는 말을 포함해서 축복의 글을 썼다. 그리고 웃으며 미영이에게 그 엽서를 건네주었다. 미영이는 홍조빛 볼을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잠시 미영이의 소원 고백에 놀랐던 것은 이제 “남친(남자친구)” 개념이 아니라, 애인이라는 표현을 청소년들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다. 무척 빠르게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 하지만, 어른들이 흉내내지 못할 순수함이, 솔직함이 우리 아이들에게 있다는 것이 청소년들의 향기라는 생각도 든다.
인증샷 그리고 카드 연하장
계속해서 엽서를 쓰던 중, 서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희랑 인증샷 남겨요.”
좋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써주고 아이들은 바로 그 엽서를 들고, 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훈훈한 학급,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을 앞둔 미아동에 있는 영훈고등학교 2학년 한 학급의 풍경이었다.
겨울방학식 날, 교무실 내 책상 위에는 한 통의 카드 연하장이 놓여져 있었다.
“최관하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 2학년 2학기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2학년 11반 한예진입니다. 선생님을 복도에서 뵌 적은 있지만, 선생님께서 국어 선생님이셨다는 것을 처음 수업에 들어오셨을 때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성함으로 정갈하게 써진 시는 학교 축제 때마다 보게 되었는데, 그분이 제가 뵌 분일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선생님과 수업을 하면서 고전문학에 대해 흥미도 생기고, 항상 수업 전에 들려주시던 이야기도 어느 순간부터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맑고 순수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문구를 보고 마음이 울렸어요. 많이 부족한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좋을 말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3학년 때에도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요.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선생님의 사랑이 교실을 따듯하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귀한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