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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죽을 때의 표상
35.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임종 시에 다음 중 어떤 하나가 업의 힘에 의해 여섯 가지 문 가운데 어떤 하나에 나타난다.
(1) 상황에 따라서 [임종할 자가] 바로 다음 생에서 직면하게 될 재생연결을 생산할 '업(kamma)'이나
(2) 이전에 업을 지을 때에 인식한 형색 등과 그 업을 지을 때에 사용한 기구와 같은 '업의 표상(kamma-nimitta)'이나
(3) 바로 다음 생에서 얻거나 경험하게 될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이 [나타난다.]
...이런 대상은 죽어가는 사람의 죽음의 마음 바로 직전의 자와나(속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죽음의 마음 그 자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생에서의 마지막 마음인 죽음의 마음(cuti-citta)은 그 생을 받을 때 생긴 재생연결식과 그 생의 삶의 과정에서의 존재지속심(바왕가)이 가졌던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났다가 멸한다. 이 죽어가는 사람의 죽음 직전의 자와나 때 생긴 대상은 바로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의 대상이 되고 그것은 새로 받은 생의 바왕가의 대상으로 계속 작용하다가 같은 방법대로 그 생의 죽음의 마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28~529, 초기불전연구원(2021)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순간, 마지막 자와나 과정에서 업의 힘으로 인해 그간 쌓여온 업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마치 지금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주석에서는 이를 "임종의 자리에 누울 때 과거에 자기가 지은 선업/악업이 그때 덮친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육문 중 하나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보이거나 들리거나 맡아지거나 맛봐지거나 감촉이 느껴지거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36. 죽을 때의 마음
36. 곧바로 이와 같이 나타난 그 대상을 대상으로 삼아, 과보를 가져올 업이 청정하거나 혹은 오염되었거나 간에 그것에 걸맞게, 또 태어날 곳에 걸맞게 마음의 흐름은 거의 대부분 그곳으로 기울면서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재생연결을 생산할 바로 그 업이 새것으로 감각의 문에 나타난다.
1. 새것으로(abhinava-karaṇa-vasena): 즉 그때 나타난 업은 이전에 지은 것을 기억하는 영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 찰나에 지은 것처럼 마음의 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29~530, 초기불전연구원(2021)
'기억하는 영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바로 그 찰나에 지은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은 대상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마음 문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과거의 업이지만 마치 지금 생생하게 짓거나 체험되는 것처럼 나타난다. 죽을 때의 표상이 떠오르는 형태는 kamma, kamma-nimitta, gati-nimitta의 3가지가 있다.
3가지 모두 내가 과거에 지은 업에 의해 대상이 결정된다. 선하거나 불선한 무거운 업, 가까운 업, 습관적으로 지은 업들에 의해 내생의 재생처가 결정된다. 재생처가 결정된다는 것은 내생에 '나'라는 존재의 삶의 양태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이므로, 죽을 때의 마음이 어떠한가는 다음 생의 일생 대부분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말리까 왕비의 거짓말은 임종 시의 대상 중 첫 번째, Kamma가 대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주석서 사례다. 말리까는 평생 쌓은 공덕이 산처럼 많았지만 목욕탕에서 개와 부정한 행위를 한 것을 추궁하는 왕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왕에게 누명을 씌웠던 기억이 임종 시에 떠올랐다. 그 후회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죽은 결과 지옥에 떨어져 7일간 고통받았고, 그럼에도 대단한 공덕의 힘으로 다시 도솔천에 재생하였다. 이렇듯 업kamma이 대상이 된다는 건 과거에 내가 일으켰던 의도cetana를 회상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와 반대로 어떤 자는 '내가 그때 참 착한 마음을 먹었지'하는 도덕적 행위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옥에 갔다가 도솔천에 태어난 말리까 왕비
...어느 날 말리까 왕비는 목욕실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씻기 시작했다. 그녀의 애완견이 그녀를 따라 목욕탕에 들어왔다가 허리를 굽히고 있는 그녀의 사타구니를 핥았다. 그녀는 개가 그렇게 하는 것을 은근히 내버려 두었다. 왕은 왕궁의 2층에서 창문을 내다보다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돌아오자 왕의 분노가 폭발했다.
"꺼져라. 더러운 것 같으니라고! 왜 그런 추잡한 짓을 저질렀는가?"
..."사실이 아닙니다. 폐하."
...말리까 왕비는 이렇게 위기를 넘기고 나서 큰 가책을 느꼈다.
'왕이 어리석어서 속여 넘겼지만 난 큰 죄를 저질렀다. 더군다나 그에게 터무니없는 누명까지 씌웠다. 부처님께서 내 죄를 알게 될 것이고 상수제자와 80명의 대장로도 알게 될 것이다. 오, 내가 어쩌자고 이런 큰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말리까는 왕과 함께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경쟁할 수 없는 큰 공양을 올렸었다... 하지만 말리까는 죽는 순간에 이 대단한 공덕을 기억하지 못하고 저지른 죄만을 기억했기 때문에 죽어 지옥에 태어났다... 말리까는 지옥에서 7일간 고통을 겪고 거기서 죽어 뚜시따(도솔천)에 태어났다.
"...부처님이시여, 말리까는 어디에 가거나, 어디에 서 있거나 간에 '내일 부처님께 이걸 올려야겠다. 내일 부처님을 위해 이걸 해야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말리까는 오직 공양 올리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 무념 · 응진 옮김, 『법구경 이야기 1』 pp.444~447, 옛길(2022)
Kamma-nimitta는 임종 시에 업과 연관된 상징물이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살인자에게는 살인의 도구, 신심 깊은 불자에게는 탑과 같은 상징물이 업의 표상으로 떠오를 것이다. 위숫디막가에서는 임종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이 임종하는 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데, 여기서 업의 표상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임종하는 자에게 꽃이나 깃발 등 시각적 대상을 보여준 후 그의 이름으로 공양 올려주고, 청각의 대상으로 법문을 들려주고, 후각이나 미각의 대상인 향이나 꿀을 맛보게 한 후 그의 이름으로 공양 올려주고, 촉각의 대상인 비단을 만지게 한 후 그의 이름으로 공양을 올려준다. 이 모든 행위를 "당신을 위해 이 공양을 올립니다. 이 공덕으로 마음을 청정하게 가지세요."라고 함으로써 임종하는 자의 마음이 맑아지도록cittaṃ pasādehi 돕는 것이다. 이러한 도움으로 임종하는 자는 선한 대상과 표상으로 마음이 향할 수 있다는 원리다.
Kamma-nimitta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은 욕계의 재생연결은 앞서 정리한 3가지 형태의 대상(kamma, kamma-nimitta, gati-nimitta) 중 어떤 것이든 떠오를 수 있지만, 색계/무색계의 고귀한 업의 재생연결은 오직 kamma-nimitta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선정이라는 고귀한 업을 쌓은 사람이 색계/무색계에 재생할 때는 임종 시의 대상으로 kamma나 gati-nimitta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현상의 원리는 무엇일까?
선정의 본질은 변화하는 감각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고정한 단일 대상(개념pannatti 혹은 고귀한 마음mahaggata-citta / concept or mind)에 몰입하는 것이다. 죽는 순간의 마음javana이 선정에 들어있다면 오직 그 명상 주제만을 꽉 붙들고 있으므로 과거의 행위 장면을 회상할 수도(= 업), 내생의 갈 곳의 풍경을 기웃거릴 수도(= 태어날 곳의 표상) 없다. 그 선업은 ‘어떤 행위 장면’으로 재생되는 방식이 될 수 없으므로, 그때 마음이 붙들었던 명상 대상(표상)이 그대로 임종 대상이 된다고 이해하면 가장 직관적이다. 선정 수행자는 오직 자신의 내면적 대상(빛, 개념)에만 머물 뿐이다. 색계 선정에 들어있는 수행자에게 그 업을 짓게 만든 도구/수단은 닮은 표상patibhaga-nimitta이라는 개념이다. 무색계 선정 수행자에게 그 업을 짓게 만든 도구/수단은 관념적 대상(공간·부재) 또는 이전 선정의 마음이라는 고귀한 대상이다. 죽는 순간 선정에 들어있다면, 그 마음의 대상은 당연히 이 수행의 도구들이어야 한다(= 업의 표상). 그러므로 고귀한 업을 닦은 자는 임종 시 오직 '업의 표상(수행의 대상)'만 나타난다. 평소 보던 그 명상의 빛(업의 표상)이나 대상을 그대로 보고 있는 상태에서 죽고, 그것을 계속 보면서 눈을 뜨면 그곳이 바로 범천의 세상(색계/무색계)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위숫디막가에서는 "흙의 명상주제 등의 표상이나, 혹은 고귀한 마음이 마노의 문으로 나타난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전자는 색계 초선~4선과 무색계 공무변처, 무소유처를 말하고, 후자는 무색계 식무변처, 비상비비상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자의 두 선정들은 다른 색계/무색계 선정과 달리 대상이 개념이 아니라 각각 이전 단계(공무변처, 무소유처)의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이기 때문에 '고귀한 마음'이라고 따로 이름 붙여 설명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정을 닦은 자라도 임종 순간 욕계업이 더 강하게 끼어들어 욕계에 재생할 때는 앞서 주로 다룬 3가지 임종 시의 대상 중 하나가 다른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나타난다. 위숫디막가에서 "혹은 눈이나 귀 중에 하나로 선처에 태어날 원인인 수승한 대상이 나타난다..." 라고 말하는 부분은 선정을 닦았더라도, 죽는 순간에 그 선정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선정보다 욕계(인간,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선정에서 나온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다. 이때는 마음이 다시 '욕계의 마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일반인과 똑같이 세 가지 대상(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중 어느 하나가 나타난다. 즉, 선정을 닦았던 사람은 죽을 때 선정이 유지되어 마노의 문에 선정의 대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선정이 깨져서 눈이나 귀에 수승한(좋은) 감각 대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136. 예를 들면, 욕계 선처 가운데서 악업을 지은 자가 임종의 자리에 누울 때 "[과거에 자기가 지은 악업이] 그때 덮친다(M.iii.164)"라고 시작하는 말씀 때문에 그가 쌓았던 그대로 악업 혹은 악업의 표상(nimitta)이 마노의 문을 통하여 나타난다. [악업과 악업의 표상을] 대상으로 속행의 과정이 일어나고 그것은 등록의 마음으로 끝이 난다. 그 속행의 과정의 다음에 잠재의식의 대상을 자기의 대상으로 삼아 죽음의 마음이 일어난다. 죽음의 마음이 그치면 나타난 업이나 업의 표상을 대상으로 악처에 포함된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137. 다른 사람의 경우에 죽을 때에 앞서 설한 업으로 지옥 등의 시뻘건 불길의 형상 등의 악처의 표상이 마노의 문을 통해 나타난다...
138. 다른 사람의 경우에 죽을 때에 오문 가운데 하나로 탐욕 등이 원인이 된 저열한 대상이 나타난다...
140. 선처에서 비난할 바가 없는 업을 쌓은 자가 임종의 자리에 누울 때 "[과거에 자기가 지은 선업이] 그때 덮친다(M.iii.171)"라고 시작하는 말씀 때문에 그가 쌓았던 그대로 비난할 바가 없는 업이나 비난할 바가 없는 업의 표상이 마노의 문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것은 욕계의 비난할 바가 없는 업을 쌓은 사람에게 해당된다. 고귀한 업을 쌓은 사람에게는⁸⁸⁾ 오직 업의 표상만 나타난다...
⁸⁸⁾ 색계와 무색계의 선을 닦은 자에겐 업은 나타나지 않고 오직 업의 표상만 나타난다.
141. 다른 사람의 경우에 죽을 때에 욕계의 비난할 바가 없는 업으로 인간세상에서 모태의 형상이라 불리거나 천상에서 정원, 극락, 행운의 나무 등이라 불리는 선처의 표상이 마노의 문으로 나타난다...
142. 다른 사람의 경우에 죽을 때에 친척들이 오문에 대상을 가져온다. '존경하는 분이시여, 당신을 위하여 부처님께 공양 올립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가지세요.' 라고 말하면서 화환과 깃발 등으로 형상이나 색깔을 가진 대상을, 혹은 법을 들려주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소리의 대상을, 혹은 향과 향수 등의 냄새로 냄새의 대상을, 혹은 '존경하는 분이시여, 이것 맛 좀 보세요. 이것은 당신을 위하여 공양 올릴 물건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꿀과 당밀 등으로 맛의 대상을, 혹은 '이것 좀 만져보세요. 이것은 당신을 위하여 공양 올릴 물건입니다.'라고 말하고서 중국 비단, 소마라 비단 등으로 감촉의 대상을 가져온다...
143. 다른 사람은 선처에서 흙의 명상주제를 가진 선 등을 통해서 고귀한 마음을 얻는다. 그가 죽을 때에 욕계의 유익한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가운데 하나나, 혹은 흙의 명상주제 등의 표상이나, 혹은 고귀한 마음이 마노의 문으로 나타난다. 혹은 눈이나 귀 중에 하나로 선처에 태어날 원인인 수승한 대상이 나타난다...
-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3권 pp.93~97, 초기불전연구원(2019)
쭌다와 담미까의 사례는 gati-nimitta가 죽을 때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주석서의 사례다. 태어날 곳의 표상은 자신의 내생의 행선지가 보이는 것이다. 다음 생에 갈 곳의 풍경이나, 자기를 데리러 온 존재가 보인다. 가장 시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경우다.
45년 동안 돼지를 도살해 먹거나 생계를 유지해 온 백정 쭌다Cunda는 죽기 전 7일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그는 죽을병에 걸리자 자신에게 닥쳐오는 지옥불의 열기를 느끼고, 그 공포와 고통 때문에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돼지 멱따는 소리, 꿀꿀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주석서에는 평소 그가 돼지를 도살했던 끔찍한 과정이 낱낱이 서술되어 있는데, 쭌다가 죽을 병에 걸리고 지옥의 불길이 그의 눈앞에 치솟아 올라 아직 살아있음에도 이 생에서 아비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되자 그의 행동은 과거에 행한 악행의 대상을 닮아갔다. 아비지옥의 불길이 그를 태우기 때문에 7일 밤낮을 돼지처럼 비명을 질러대며 집안을 헤집고 기어 다녔고, 그러다 죽어 아비지옥에 태어났다. 쭌다는 부처님께서 근처 사원에 머무셨음에도 작은 것 하나 보시하지 않았고, 단 한 번의 공덕도 짓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금생에서도 고통을 겪고, 죽어서도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났다. 이렇듯 부주의하게 살아가는 이는 재가자거나 출가자거나 양쪽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다.
담미까Dhammika 거사의 천상 마차 사례는 이와는 대비되는 경우이다. 평생 독실하게 수행하고 보시를 많이 했던 담미까 거사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자, 여섯 욕계 천상에서 신들이 황금 마차를 타고 내려와 서로 자기 천상으로 데려가려고 경쟁하였다. 그는 결국 도솔천의 마차를 선택하며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담미까 거사와 아내,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아들딸들은 16가지 종류의 승가 공양을 빠뜨리지 않고 부지런히 해오며 공덕행을 지었다. 임종 자리에서는 스님들에게 부탁하여 마하사띠빳타나 숫따를 독송해달라고 청하였고, 도솔천으로 재생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아들딸들에게 자신처럼 천상에 태어나길 원한다면 열심히 공덕을 쌓고 법에 의지해서 살기를 당부하며 편안하고 또렷한 마음으로 죽었다. 부주의하지 않고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산 결과 그는 이 생에서도 즐겁게 지내고 죽어서도 즐거운 곳에 태어났다.
돼지 백정 쭌다의 죽음
쭌다는 45년 동안 돼지를 도살해 먹거나 혹은 팔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기근이 들면 그는 수레에 쌀을 잔뜩 싣고 시골로 가서 벼 한두 됫박으로 수레 가득 돼지 새끼를 사 와 집 뒤 빈터에 울타리를 치고 풀어놓았다. 돼지들은 잡풀과 대변을 먹으며 자랐다.
그가 돼지를 도살할 때 언제나 돼지를 나무기둥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고 모난 곤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살을 연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살아있는 돼지의 턱을 억지로 열어 쐐기를 박고 목구멍으로 펄펄 끓는 물을 부었다. 뜨거운 물이 뱃속으로 들어가 똥과 함께 항문으로 흘러나왔다. 돼지 창자에 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더럽고 탁한 물이 나왔고, 창자가 완전히 청소되면 맑고 깨끗한 물이 나왔다.
창자가 완전히 씻기면 이번에는 돼지의 등에 뜨거운 물을 부어 껍질을 벗기고, 남은 털은 횃불로 그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칼로 돼지의 목을 딴 후 콸콸 쏟아지는 피를 접시에 받아서 고기를 구울 때 그 피를 발랐다. 그렇게 만든 돼지고기 요리를 가족들과 함께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남은 고기는 내다 팔았다. 그렇게 그는 45년을 살았다. 부처님께서 이웃 사원에 머물고 계셨지만, 쭌다는 단 한 번도 꽃 한 송이 밥 한 숟갈 보시하지 않았고 단 한 번의 공덕도 지은 적이 없었다.
그런 쭌다에게 어느 날 병마가 찾아왔다. 아직 살아있는데도 아비지옥의 불길이 그의 눈앞에 치솟아 올랐다.
아비지옥의 불은 100요자나 정도 아주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조차 태워버릴 정도로 뜨겁다... 그러나 과보의 힘으로 지옥에 태어난 중생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지내는 중생처럼 타지 않고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아비지옥의 고통이 돼지 백정 쭌다에게 들이닥치자 그의 행동은 과거에 행한 악행을 닮아갔다. 돼지처럼 꿀꿀거리고 손과 무릎으로 온 집안을 헤집고 기어 다녔다. 가족들이 억지로 붙잡아서 입에 재갈을 물리는 등 별짓을 다해 보았지만, 그의 이상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과거의 악행으로 일어난 과보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그로 인해 주변 일곱 가구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가족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에 떠는 쭌다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에 빗장을 걸어 안에다 가둬놓고 온종일 밖에서 지켰다. 쭌다는 일주일 동안 지옥의 고통 속에 비명을 질러대며 돼지처럼 집안을 기어 다니다가 7일째 되던 날 죽어 아비지옥에 태어났다...
"...부처님이시여, 그는 얼마나 많은 돼지를 죽였을까요? 그는 단 한 번도 자비스러운 마음을 내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는 일주일 동안 돼지를 도살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지은 악행과 같은 과보를 받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지옥의 불길이 그에게 닥쳐왔다. 아비지옥의 불길이 그를 태우기 때문에 7일 밤낮을 돼지처럼 비명을 질러대며 집안을 헤집고 기어 다녔다. 그러다 오늘 죽어 아비지옥에 태어났다."
"부처님이시여, 그는 금생에서도 이렇게 고통을 겪고 죽어서도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러하다. 부주의하게 살아가는 이는 재가자거나 출가자거나 양쪽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악행을 저지른 자는
금생에서 슬퍼하고
내생에서 슬퍼하고
두 생에서 슬퍼한다.
자기가 지은 악행을 떠올리며
그는 슬퍼하고 괴로워한다.(15)
- 무념 · 응진 옮김, 『법구경 이야기 1』 pp.274~276, 옛길(2022)
천상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재가신도
...사왓티에 500명의 법다운 삶을 사는 남자 신도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회장 격인 담미까에게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이 있었다. 아들딸들은 탁발 나온 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지정된 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반달에 올리는 음식, 하현달에 올리는 음식, 공양청을 해서 올리는 음식, 우뽀사타 재일에 올리는 음식, 객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안거철에 올리는 음식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올렸다. 담미까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공덕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와 열네 명의 자식들과 함께 열여섯 종류의 공양¹⁷⁸⁾ 올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¹⁷⁸⁾ 16종류의 공양: 대중공양, 탁발 공양, 죽 공양, 지정된 비구에게 주는 음식, 공양청을 해서 올리는 음식, 제비뽑기를 해서 올리는 음식, 반달마다 올리는 음식, 우뽀사타 재일마다 올리는 음식, 하현달에 올리는 음식, 초승달에 올리는 음식, 객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떠나는 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병든 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간병 스님에게 올리는 음식, 안거철에 올리는 음식, 차례대로 올리는 음식.
..."스님들이시여, 제가 병이 나서 스님들을 보지 못합니다. 경을 암송해 주십시오."
"어떤 경을 듣고 싶습니까? 재가 형제여."
"모든 부처님께서 공통으로 설하셨던 대념처경¹⁷⁹⁾을 듣고 싶습니다."
¹⁷⁹⁾ 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22):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알아차림이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고, 수행의 기준이 되는 경전이다. 남방에서는 이 경을 단지 외우는 것만으로도 재난을 예방하고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불자들은 임종할 때 이 경을 암송하거나 아니면 독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는다...
비구들은 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욕계 여섯 천상에서 천신들이 화려하게 장식한 황금마차를 타고 내려왔다. 천신들은 서로 자기 마차에 타기를 재촉했다.
"우리 천상 세계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
"마치 낡은 진흙 접시를 부숴버리고 황금 접시를 사용하듯이 낡은 인간의 몸을 버리고 천상에 태어나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십시오."
담미까는 독송 듣는 것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외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러나 스님들은 담미까가 자기들에게 말하는 줄 알고 독경을 멈추었다.
'아직 아버지께서는 법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독경을 듣고 싶어 스님을 초청했지만 멈추게 했다. 세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구나.'
아들딸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천상 세계가 가장 즐거운가?"
"부처님의 어머니가 머무는 곳, 미래에 부처님이 되실 보살께서 머무시는 곳, 바로 뚜시따 천(도솔천)이 가장 즐거운 곳입니다."...
"그 꽃다발이 뚜시따 천에서 내려온 마차에 걸려있단다. 난 뚜시따 천으로 가련다. 나를 어지럽게 하지 마라. 너희들도 나와 함께 살고 싶다면 나처럼 열심히 공덕을 쌓고 법에 의지해서 살아라."
담미까는 곧바로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옷을 입고 키 큰 천신으로 태어났다. 천 명의 천녀가 시중을 들었고 거대한 황금 궁전에서 살았다...
"부처님이시여, 그는 살아서도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고 죽어서도 즐거운 곳에 태어났습니다."
"비구들이여, 정말 그렇다. 재가자거나 출가자거나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양쪽 세상에서 즐거워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선행을 하는 이는
금생에서 즐거워하고
내생에서 즐거워하고
두 생에서 즐거워한다.
그는 자기가 지은 선행을 떠올리며
참으로 즐거워한다. (16)
- 무념 · 응진 옮김, 『법구경 이야기 1』 pp.277~281, 옛길(2022)
죽을 때의 표상을 공부하는 불자들이 얻을 수 있는 삶의 교훈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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