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임기 안 끝낼 수 없던 과거권력이 현재권력에 불쑥 넘긴 숙제였다. 미래권력은 선거 표심과 맞물리다 보니 사생결단으로 막으려한다. 우리나라 계획도시 효시는 한양이다. 조선 태조가 개경에서 고려 정권을 넘겨받았다만 그 당시 남경이었던 한양으로 천도했다. 조선은 정조 때 한 차례 신도시를 건설했다. 지극했던 효심이 만들었던 수원성이다.
우리나라 현대사 계획도시로는 창원이 꼽힌다. 단순히 부산이나 마산에 있던 행정관청만 이전하고자했던 것이 아니었다. 산업의 쌀이라는 기계공업단지를 건설했던 지도자의 탁월한 안목이 새삼 놀랍다. 이후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안에 크고 작은 신도시가 곳곳에 건설되었다. 여태 건설된 신도시 가운데 자족기능을 갖추고 명품도시로 우뚝하기로는 내가 사는 창원만한 도시는 없다.
평범한 소시민이 지나지 않은 나는 도시행정에 대해 아는 바 없다. 다만 내가 사는 동네 이웃과 풍광에는 관심이 있다. 창원의 가로수는 대개 수령 삼십년이 넘어가는 장년기를 맞고 있다. 봄이면 진해 못지않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여름에는 무성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가을엔 샛노란 은행잎이 거리에 수북하다. 그럼 겨울은 삭막하기만한가? 그렇지 않다. 메타스퀘어가 있다.
메타스퀘어는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나무다. 남이섬 메타스퀘어는 한류스타 드라마 촬영지로 동남 아시아인에게까지 알려졌다. 전라도 담양에서 순창에 이르는 24번 국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내가 언젠가 그 길을 지니면서 현지 운전기사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담양 메타스퀘어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눈이 온 뒤란다. 가지마다 눈꽃이 피어난단다.
반림동과 용호동 일대 가로는 메타스퀘어가 줄지어 섰다. 창원 계획도시가 건설되면서 심겨졌기에 나무 나이가 서른이 지나지 싶다. 메타스퀘어가 속성수여서인지, 심겨진 땅이 기름져서인지 밑둥치를 팔로 안으면 닿지 않는다. 창원의 메타스퀘어는 남이섬이나 담양과는 다르다. 한류스타 체취를 맡으려는 일본 중년여성도 오지 않고, 설경을 렌즈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도 찾지 않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메타스퀘어 가로수 근처다. 그러다보니 메타스퀘어 사계를 훤히 알고 있다. 담양 국도처럼 겨울 설경은 볼 수 없지만 운치 있는 가로수다. 다른 나무보다 잎이 좀 늦게 피는 메타스퀘어다. 사월이면 신록이 싱그럽다만 메타스퀘어는 오월 연두색 잎이 함초롬하다. 그때는 벚꽃이 진지 오래고 아카시향도 끝날 즈음이다. 황사라도 재우는 비가 그친 뒤면 더 황홀하다.
여름 메타스퀘어는 암녹색이라 주변의 녹음에 가려버린다. 메타스퀘어는 샛노란 은행잎으로 가을에도 시선을 별로 끌지 못한다. 비늘잎이 무뎌선지 찬 서리를 맞고서야 갈색 옷을 입는 메타스퀘어다. 메타스퀘어 잎은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은 계절이면 메타스퀘어는 한겨울까지 잎을 달고 있다. 늦가을 갈색으로 물들었던 메타스퀘어 잎은 시나브로 떨어졌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올겨울 들머리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적 있었다. 아마 그때 바닷가는 풍랑이 세찼을 것이다. 동네 메타스퀘어 갈색 잎은 한꺼번에 다 떨어져 내렸다. 바람이 드세어 나뭇가지까지 꺾이기도 했다. 갈색 잎이 하룻밤 새 떨어지니 아쉬우면서 시원하기도 했다. 시나브로 떨어졌던 한 잎 두 잎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환경미화원은 낙엽을 화끈하게 치울 수 있어 좋았다.
대한이 소한 집에 와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은 경험법칙에서 나온 민간 이야기다. 새해 들어 보름께 엄동설한 소한이 지날 무렵이었다. 영하로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가 영상으로 잠시 풀린 오후였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겨울풍경이 궁금했다. 예전 도지사공관이었던 경남도민의 집 근처를 거닐었다. 앙상한 가지는 이등변삼각형으로 줄지어 서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1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