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8 29 대통령실 국민의힘 민원제출
공공 파크골프장의 봉이 김선달들
전국 곳곳서 공공시설 사유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의 A 파크골프장에서 이용객들이 파크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 파크 골프는 공원처럼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즐기는 일종의 미니 골프다. 이날 A 파크골프장은 평일임에도 예약이 마감되어 있었다.
도심에서 일종의 ‘미니 골프’를 즐기는 시설인 파크골프장이 인기를 끌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 파크골프장은 광역·기초 단체가 만든 공공시설이지만, 특정 동호회나 협회가 이를 사유화하는 일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동호회·협회 소속이 아니면 골프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로 인해 이용객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자 파크골프장을 무료로 개방한 여러 지자체는 유료화 전환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말 용산 대통령실 정문 앞에서는 서울의 A 파크골프장 동호인 자치회 소속 40여 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10여 년 동안 파크골프장을 사실상 운영해 왔다며, 시가 운영 중인 A 파크골프장의 운영권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통령실뿐 아니라 서울시청 앞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동호인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는 올해부터 서울시가 A 파크골프장에 관리 직원 3명을 파견해 골프장 직접 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파크골프장인 이곳은 그동안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곳의 ‘파크동호인 자치회’가 자신들이 골프장 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이용객들에게 골프장 사용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골프 장비를 팔거나 돈을 받고 골프 레슨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서울시는 올해부터 관리 직원을 파견해 ‘직접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자치회 측은 서울시의 파크골프장 직접 관리를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9년 동안 우리가 파크골프장을 관리해 왔다”며 자신들의 소유권을 일정 부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시설물을 사실상 사유화해 온 것”이라며 “자치회 측에서 현장 관리 직원들에게 폭언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파크골프장을 둘러싼 갈등이 커진 건 최근 파크 골프 인구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2017년 1만7000명 수준이었던 파크골프협회 회원은 2022년 10만6000명으로 6배 이상으로 늘었다.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을 고려하면 파크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기준 전국 파크골프장은 361곳이고, 서울은 11곳이었다. 대부분 하천 변에 만들어졌다. 특정 단체가 파크골프장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오랜 기간 독점해 갈등이 시작된 경우가 많다. 파크골프장은 ‘하천 정비’ 등을 할 때만 지자체가 정비해 왔기 때문에 지역 동호회·자치회 등이 세부 관리를 자청해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사실상 골프장을 자신들의 소유처럼 취급하게 됐다고 한다.
경기 광주시의 B 파크골프장은 특정 협회 회원이 아니면 이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회비를 낸 뒤 명찰을 받아야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시민 김모(62)씨는 “명찰을 달지 않은 비회원은 이용을 못 하게 하고 있다”며 “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임에도 특정 단체가 회비를 강요하고 시설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광주시는 “하천 변에 있는 파크골프장의 수해가 우려돼 골프장을 정비해야 한다”며 시민들에게 운영 중단을 예고했는데, 협회 측은 이와 같은 방침에도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 회원들은 “공사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우리는 어디로 가서 골프를 쳐야 한다는 것이냐”며 “광주시를 상대로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전북 전주의 C 파크골프장에서도 이용객 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전주 시민 박모(63)씨는 “한 동호회가 연회비 12만원을 강요하고 있으며 가입하지 않은 시민들을 골프장 이용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했다. 전주시는 “전주시설관리공단에 위탁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가 계속되자 기존 무료 운영 방침을 철회하고 파크골프장을 유료화한 지자체들도 나왔다. 대구 달성군은 무료로 운영해 온 관내 파크골프장을 유료화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달성군의회 측은 “파크골프장 연회비, 등록비 등을 둘러싼 불화를 없애자는 취지”라며 “일부 단체가 파크골프장에 시설물을 무단 설치·증축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근의 고령군과 밀양시 등도 비슷한 문제로 최근 파크골프장 유료화를 추진한 바 있다”고 했다.
파크골프장 뜨자… 시·군 너도나도 “짓자”
전국서 4년새 60% 늘어… 난개발·환경파괴 논란도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지난달 15일 부산 북구와 사상구, 강서구, 해운대구 4곳에 설치된 파크골프장을 철거하라고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다. 2012~2019년 낙동강변에 잇따라 파크골프장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강변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경청은 또 최근 경남 등 지역의 74곳을 점검한 결과 34곳에서 미허가 등 불법 소지를 발견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지역의 파크골프협회 등은 “지나친 규제”라고 서명운동을 하는 등 반발하고 있지만, 환경청은 “전국 곳곳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서는 상황에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파크골프는 이른바 ‘미니 골프’로 불리는데 일반 골프보다 작은 공간에서 경기를 하는 데다 보통 3000~1만원 수준의 요금만 내면 1~2시간 동안 9홀 또는 18홀 경기를 할 수 있다. 거기다 잔디를 밟으면서 야외에서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최근 수년간 장·노년층 사이에 크게 인기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2019년 전국 226곳이었던 파크골프장이 작년 361곳까지 4년간 약 60% 증가했다. 2022년에만 53곳이 문을 열었다. 9홀 기준 골프장 1곳당 면적이 보통 1만5000㎡ 안팎인데, 이 기준으로 축구장 111개 크기의 파크골프장이 생겨난 셈이다. 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파크골프장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갈등도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는 파크골프장을 여럿 만들겠다는 의지가 크다. 주민 중 장년층 비중이 높아지는 데다 “파크골프장을 더 지어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민심 잡기에 좋다는 것이다. 작년 말 기준 전국 파크골프장 361곳 중 대구 29곳 등 경남·경북에만 44%인 160곳이 몰려 있다. 전라남·북도에도 62곳의 파크골프장이 있다. 서울·경기·인천(58곳)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도 있다. 지난 13일 찾은 강원 화천군의 한 파크골프장 주차장엔 평일인데도 손님들이 한 번에 타고 온 대형 관광버스 2대와 승용차 80여 대가 서 있었다. 화천군 읍내에서 5년째 민박집과 추어탕집을 운영 중인 김모(67)씨는 “평일에도 하루 80명씩 음식점 손님이 밀려 들어 정말 반갑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도 잇따라 대형 파크골프장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구가 2만3000여 명의 경북 군위군의 경우, 내년까지 25만㎡ 땅에 180홀 규모 골프장을 짓겠다며 예산 150억원을 편성했다. 경남 남해군도 작년 11월 2026년까지 200억원 안팎을 투입해 파크골프장과 숙박시설 등을 짓겠다고 했다. 은퇴자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골프장이 급격히 늘면서 문제도 잇따른다. 현재 상당수는 경사가 완만한 하천변에 들어서 있다. 고령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 하천변은 국유지라 토지 매입비가 적게 든다는 점, 풍광이 좋다는 점 등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환경청이 정해둔 절차를 어기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하천 주변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주민들 불만도 크다. 창원시의 경우 작년 5월 광려천 인근에 1만8000㎡로 규모의 파크골프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주민 갈등이 생겨 보류됐다. 일부가 “모두가 이용했던 공원이 골프 치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반발해서다.
잔디 관리 과정에서 농약 등으로 하천이 오염될 수 있고, 철새 등의 서식지가 상하는 등 환경 파괴 우려도 나온다. 대구의 경우 지난 1월 금호강 줄기 약 20㎞를 따라 하천변에 파크골프장 6곳을 더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시민단체가 “금호강은 천연기념물 수달의 서식지”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파크골프장 유행이 사그라들거나 특정 지역에 공급 과잉이 생길 경우, 파크골프장이 예산만 먹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는 “지자체가 파크골프장을 운영하면 일시적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공급 과잉일 경우 장기적으로 지역주민의 부담이 될 수 있어 면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