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빛의 자녀라!
엡5:8-1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바울은 3번의 선교여행을 통해 여러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또다른 선교와 교회를 위하여, 교회를 떠난 후에도 편지를 통해 목회를 했었습니다. 이것을 바울 서신이라고 하며,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이 있습니다.
바울 서신들을 보면 바울이 크게 두 가지에 집중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과 구원입니다. 복음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까지 바울이 얼마나 치열했겠습니까? 요즘 태신자라고 하는데, 생전 처음 교회를 나온 분의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사랑과 가르침이 필요하겠습니까?
두번째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를 믿게 하는 사역도 치열했겠지만, 믿는 자로서의 삶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시골 목회 때에 연세가 지극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성찬식 때에 포도주를 드시면, 꼭 컵의 입구를 닦으셨습니다. 평생 약주를 드실 때에 하시던 행동이 나왔던 것입니다. 각자의 민족과 종교, 전통 속에서 살면서 몸에 배인 행동과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이와같은 바울의 고민과 생각이 본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영적 변화와 더불어 삶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깨닫고자 합니다.
첫째, 과거를 진단하자!
지난 주일, 감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고, 지난 수요일에 감사에 대한 히브리어 어원의 의미를 보내드렸습니다.
감사의 히브리어는 야다(הדו)로 야다에는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고백하다, 둘째, 감사하다, 셋째, 찬양하다입니다. 여기서 고백하다의 의미에는 “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진정한 감사란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알때에 진정한 감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이전의 인간을 어두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청년들과 수련회 중에 설악산 소청봉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경험이 없어서 정말 죽는 줄 알았던 일이 있습니다. 내려오는 중에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해가 지는데, 금방 산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어두움 속에 갇히자,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기다시피해서 어렵게 내려온 일이 있습니다.
어두움이란 허물과 죄 때문에 우리의 영이 죽은 상태입니다. 곧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소외된 비참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예수 믿고 난 후에 사람이 죽을을 맞이하는 자리, 즉 임종의 자리에 여러번 가셨습니다. 그리고 내리신 결론을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영접하고 임종하시는 분들은 마지막이 너무나도 평안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마지막은 고통스러워 보였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롬 8:13)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는 죽을 존재였던 것입니다.
둘째, 현재의 모습
이제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빛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빛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빛이라’(요일1:5)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제 어려움의 공포에서 자유한 존재가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처음으로 세례를 준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와의 첫만남이 참 인상적입니다. 제가 교회 학생부와 초등학교 운동장에 축구를 하러 갔는데 처음 보는 여자 아이가 갑자기 저에게 욕을 해대는 것입니다. 당시 중학교 정도의 나이 여자 아이가 갑자기 욕을 하니 제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교회 아이들이 이상한 아이니 상대하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첫만남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초등학교 선생님 부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고, 아이의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바쁜 농사철에 일꾼을 고용했는데, 그 일꾼을 중학생 정도였던 딸아이방에서 자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초등학교의 여자 선생님이 아시게 되었고, 사람들 몰래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불쌍한 아이예요.”라는 말이 귀에 남았습니다. 그후에 제가 그 아이를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천덕꾸러기였던 아이가 교회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예배 때에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며, 노인들의 성경을 찾아줬고, 새벽예배도 나왔습니다. 영월의 강추위 속에서, 제가 새벽기도회 픽업과 라이드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부활절에 첫세례를 줄 때에, 당시 큰아이가 6개월인데, 제 아이와 그 아이의 세례를 놓고 기도하다가 결국은 저의 아이보다 그 아이를 제 인생 첫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주는 날 아이의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저도 여러번 세례를 행했지만 이 아이처럼 울면서 세례를 받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천덕꾸러기 인생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니,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가 사랑이 감격했던 아이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인 것입니다.
여러분! 빛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빛의 자녀로서의 책임이 요구되고 있는데 바로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뭐뭐답게 살아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직분자는 직분자답게 한국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답게” 살지 못하면, 욕먹습니다. 제가 벤츄라교회의 담임목사 답지 못하면, 하나님께도 욕이요, 여러분도 욕먹게 하는 것입니다. 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첫째, 빛의 자녀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9절)
성도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착함’은 일종의 관대한 정신을 뜻합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맡겨진 본분을 공정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다하는 것이 의로움입니다. 그리고 ‘진실함’은 지적인 것 이상의 도덕적 진실을 말합니다. 아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진실을 행하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다보면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언젠가 한 사업가들과 인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두 사람이 각자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명함에는 뒷면에 성경 구절이 기록되어 있어서 기독교인임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는데, 한 사람의 명함에는 공적인 직함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성경구절이 기록된 명함을 보면서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기도 처음에 명함을 만들 때에 성경구절을 넣을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넣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이익을 다투는 사업에서는 손해라는 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라고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곳에 있던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같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생명의 문제를 해결받고, 영적인 문제를 논하는 성도들이라면, 믿는 자의 책임인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라는 명령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빛의 자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새벽에 나누었던 말씀 중에 축복이 크면 죄의 유혹도 크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도의 삶은 생각보다 늘 죄와 유혹이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다는 것은, 죄와 유혹의 삶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이 사는 삶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열매를 맺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삶과 예배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히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셋째,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14절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합니다. 잠자는 영을 깨워야 합니다. 잠자는 양심도 깨워야 합니다. 대각성이 필요합니다
주중에 교회청소를 하다가 교회 문과 주변 창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조금씩 쌓이니, 익숙해져서 그런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동안 수도없이 오고가면서도 안보였던 것입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안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송했고, 성도님들께도 죄송했습니다.
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조금씩 죄와 유혹에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야 합니다. 삶의 예배가 되고, 구원받은 은혜가 표현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