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담 홍공 묘갈명(西潭 洪公 墓碣銘)
창석 이준(李埈) 찬
불녕(不佞)에게 홍위(洪瑋)란 막역(莫逆)한 친구가 있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친하게 지냈다. 예원(藝苑)에서는 그 문장이 화려하게 뛰어남을 사랑해서 상종(相從)했고, 조정에서는 그 지행(至行)이 방정함을 공경하여 자신을 굽히고 사귀면서 세한(歲寒)의 아름다운 재목이 되어 장차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기를 기약했는데 갑자기 죽게 되었으니, 아! 슬프다.
금년 봄에 군의 아들 홍선경(洪善慶)이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어 묘목(墓木)이 이미 그늘을 이루었는데 무덤에 비석이 없어 감히 비명(碑銘)을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아! 이런 행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은 붕우의 책임인데 어떻게 사양하겠는가?
군(君)의 휘(諱)는 위(瑋)요 자(字)는 위부(偉夫)이다. 홍씨의 선대는 홍은열(洪殷悅)에게서 나왔으니 벼슬은 태사(太師)이다. 사서(史書)에는 당(唐)나라에서 재사(才士) 여덟 사람을 고구려(高句麗)에 보내 가르쳤으니, 홍씨도 그중 하나로 처음에 남양(南陽)에 살아서 본관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 후예로 고려(高麗)에서 현달한 자로 홍언박(洪彦博)은 벼슬이 우정승(右政丞)에 이르고 시호가 문정(文正)이니 공의 8대조가 된다.
그 후 창사공(倉使公) 홍계강(洪季康)이 효령현(孝令縣) 사복 소윤(司僕少尹) 사공민(司空敏)의 딸에게 장가들면서부터 자손이 그대로
살게 되었다.
증조 홍의동(洪議同)은 증 공조 참의(工曹參議)요, 할아버지 홍우식(洪禹軾)은 증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요, 아버지 홍흔(洪訢)은 증 가선 대부(嘉善大夫)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이며, 어머니 증 정부인(貞夫人)은 남양(南陽) 본토(本土) 홍씨(洪氏)로 성균 생원(成均生員) 홍혼(洪渾)의 딸인데 가정(嘉靖) 기미년(己未年, 1559년 명종 14년) 10월 일에 공을 출생하였다.
어려서 독서하면서 하찮은 말이라도 반드시 분명하게 해석한 후에야 그만두었으며, 자라서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에게 배웠으니, 시종(始終) 수립한 바를 상고하면 참으로 근본이 있었던 것이다. 효성심이 돈독하여 부모를 봉양하면서 환심(歡心)을 사기에 힘썼다.
계사년(癸巳年, 1593, 선조 26) 병란(兵亂) 중에 연달아 부모의 상(喪)을 당해 예로써 장사하고 제사를 지내 향리 사람들이 탄복했다. 만력(萬曆) 무자년(戊子年, 1588, 선조 21) 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신축년(辛丑年, 1601, 선조 34) 과거에 급제했다.
정미년(丁未年, 1607, 선조 40)에 병조 좌랑으로 제수되었는데 청렴과 공정으로 봉직하여 사사로운 일에 흔들리지 않았다. 기유년(己酉年, 1609, 광해군 원년)에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제수되었는데 논의가 의연하게 바름을 지키면서 구차하게 중지하거나 망녕되이 따르지 아니하고 그 충을 본받을 만한 것은 반드시 말을 다하고 감추지 않으려 하였다.
얼마 후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옮겼다가 오래지 않아서 죄를 범한 자를 만나 매를 조금 때렸는데 그 사람이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그는 귀화(歸化)한 노종(虜種) 가운데 가장 사나운 자였는데, 그 족당(族黨)의 모함을 받아 정배(定配)되었다가 방환되어 여러 해 동안 집에 있었다.
계해년(癸亥年, 1623, 인조 원년) 봄 금상(今上)이 반정(反正)하여 즉시 병조 정랑에 제수되었다가 곧 성균 사예(成均司藝)로 옮겼다. 인하여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제수되었는데, 은혜와 믿음이 백성들에게 미쳐 사송(詞訟)이 아주 적고 소민(小民)들이 안정되었다. 그때 마침 군(君)과 사이가 좋지 않은 토민(土民)이 비리(非理)로써 당로자(當路者)에게 모함해 화(禍)를 빚어 마침내 체포되었다가 임금이 억울함을 살핀 데 힘입어서 석방되었다.
아! 군은 단정 성실한 자질과 염정(恬靖)한 지조여서 이끌어주지 않아도 담담(澹澹)하게 차례에 따라 진급한 자취와 온축(蘊蓄)한 넉넉함을 미처 베풀어 써보지도 못하고 두 번이나 근거 없는 모함을 당하고 또 질병이 틈을 탔으니, 명도(命道)의 형통 여부가 기수(氣數)와 관계되어 그런 것인가? 갑자년(甲子年, 1624, 인조 2) 8월 23일에 군위(軍威) 본가(本家)에서 졸하여 현(縣)의 서쪽 함동(檻洞) 이향(離向) 자리에 장사지냈다.
공은 선공 감역(繕工監役) 인지신(印之信)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니 통정 대부(通政大夫) 인원보(印元寶)의 후손이다. 부인은 현숙하여 부자(夫子)의 뜻을 어기지 않고 잘 받들었으며 자녀를 법도 있게 가르쳤다. 3남 3녀를 낳았는데 아들 홍종경(洪宗慶)은 진사(進士)로 일찍
죽고, 홍선경(洪善慶)은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요, 홍태경(洪泰慶) 역시 일찍 죽었다.
딸은 밀성(密城) 박침(朴琛), 옥산(玉山) 장정오(張正吾), 진성(眞城) 이시장(李時章)에게 각각 출가했다. 홍종경은 사인(士人) 박몽담(朴夢聃)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홍소(洪昭)요 하나는 어리며, 장녀는 전상해(全尙垓)에게, 다음은 전응정(田應井)에게 각각 출가했다.
홍선경은 진사 이영남(李榮男)의 딸에게 장가들어 6남 2녀를 낳았는데 홍창(洪昶)ㆍ홍승(洪昇)ㆍ홍유(洪曘)이며 나머지는 어리다. 홍태경은 의금부 도사 이종가(李宗可)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1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다. 다음과 같이 명(銘)을 쓴다.
남양 홍씨는 당(唐)나라에서 왔는데 문정공(文正公)에 이르러 더욱 창대(昌大)해졌네.
공은 그 후손으로 재주가 있고 어질었네.
사문(師門)의 가르침 받고 훌륭한 세덕(世德) 이어받았네.
단번에 청운(靑雲)의 길에 올라 여러 벼슬 두루 역임하고,
여러 차례 청포문(靑蒲門, 임금의 내정(內庭)을 뜻함)에 재직해 문호(門戶)가 빛이 났네.
만년에 고을을 다스려 치화(治化)가 한참 이루어지려는데,
근거 없는 모함은 어찌하여 받았으며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았던가?
재차 넘어져 힘쓰지 않았으니 신리(神理)가 아득하기만 했네.
몸가짐 삼가하고 행실이 방정했네.
선(善)을 쌓은 집에 여경(餘慶)이 다함이 없네.
함동(檻洞) 양지쪽 저 높은 무덤 몇 년 세월 흘렀던가?
저 푸른 송백(松柏) 우거진 곳에 선한 분 묻혔으니,
나무꾼들아 손상시키지 말지어다. <끝>
--------------------------------------------------------------------------------------------------------------------------------------------------------
[原文]
洪瑋 墓碣銘[李埈]
不佞有莫逆交, 曰洪偉夫, 相與隨肩。 藝苑則愛其詞華逸發接武, 朝行則敬其志行剛方, 折節與交, 期以歲寒美才, 將究其施, 而德人遽至無祿, 嗚呼慟矣! 今年春, 君之子善慶來謁余曰: “先君之歿, 墓木已成蔭矣, 而阡表無顯刻, 敢以銘請。” 嗚呼! 敍此行蹟, 諗諸方來, 朋友責也, 奚以辭?
君諱瑋, 偉夫, 其字也。 姓洪氏, 其先出於殷悅, 官至太師。 史云: “唐遣才士八人來敎高句麗, 洪其一也。” 始居南陽, 遂以爲貫。 其後裔之顯於高麗者曰彦博, 官至右政丞, 諡文正, 是於公八代祖也。 其後有倉使公諱季康, 娶孝令縣司僕少尹司空敏之女, 自是子孫仍居焉。 曾祖諱義仝, 贈工曹參議: 祖諱禹軾, 贈掌隷院判決事。 考諱訢, 贈嘉善大夫、漢城府右尹。 妣贈貞夫人, 南陽本土洪氏, 成均生員渾之女。 嘉靖己未十月日, 公以生。
少而讀書, 講求徽言, 必曉析乃已。 旣長, 從西厓先生學焉, 考終始之所植立, 誠有所本矣。 孝誠篤至, 陔養盡其懽。 癸巳, 兵亂之中, 連喪怙恃, 葬祭以禮, 爲鄕人所歎服。 萬曆戊子春, 中司馬。 辛丑歲, 登第。 丁未, 除兵曹佐郞, 奉職廉公, 不可撓以私。 己酉, 除司諫院正言。 凡有所論, 毅然守正, 不苟止而忘隨, 苟可以效其忠者, 必欲盡言不諱。 俄遷司憲府持平, 未久而遇有罪犯者, 略加箠楚, 其人因病而遽斃。 此是虜種之投化而最悍者也, 爲族黨所誣, 坐此被配, 放還家居累稔。 癸亥春, 今上更化, 卽除兵曹正郞, 尋遷成均司藝。 因授醴泉郡守, 爲郡務以恩信及民, 而詞訟絶少, 民甚安之。 適有土民之不得於君者, 誣以非理媒孼於當路, 遂被逮, 賴上察其冤而釋之。 噫! 君以端愨之資、恬靖之操, 不由援引, 而循循乎平進之軌, 所蓄之裕, 未及施用, 而再遭無妄, 疾病又乘之, 將命道亨舛之關於氣數而然耶? 以甲子八月二十三日, 終於軍威之本業, 葬縣西檻洞離向之原。
公聘繕工監役印之信之女, 通政元寶之後。 夫人賢, 承夫子無違, 訓子女有法度。 凡生三男三女: 男曰宗慶, 進士, 早歿; 曰善慶, 義禁府都事: 曰重慶, 亦早歿。 女適密城朴琛, 玉山張正吾, 眞城李時章。 宗慶娶士人朴夢聃女, 生二男二女: 曰昭, 一幼。 女長全尙垓, 次田應井。 善慶娶進士李榮男女, 生六男二女: 曰昶, 曰昇, 曰曘, 餘幼。 重慶娶義禁府都事李宗可女, 生二男一女, 皆幼。 銘曰:
南陽之洪, 其來自唐。 至于文正, 益大而昌。 公其裔孫, 有才而良。 師門受訓, 世德襲芳。 一擧雲路, 平步周行。 屢伏靑蒲, 門戶有光。
晩畀郡節, 治化方張。 禍何無妄, 壽何不長? 再跲不奮, 神理渺茫。 持身之謹, 制行之方。 積善之家, 餘慶未央。 有丘崇崇, 檻洞之陽。
歲月幾何? 松柏蒼蒼。 善人所藏, 樵斧勿傷!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