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아방강역고
1. 어려운 책읽기
간혹 어려운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읽기 전부터 어려운 책인 줄 알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을 읽는 경우 대부분이 그렇다.
이 책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또한 읽기 전부터 어려울거라 예상하고 집어들었다.
이 책은 얼마 전 읽은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보다가
책 날개에 적혀 있는 범우고전선 목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도서출판 범우사에서 고전을 모아 출간한 범우고전선에 있던 책 중에 하나이다.
정약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당기는 책이었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읽을까?
링컨처럼 소리 내어 읽는 방법도 그 중 하나이다.
확실히 눈으로 읽는 것보다는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가끔 집에서 읽을 때는 소리 내어 읽는 경우가 있다.
읽는 속도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는 늦지만,
책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간혹 소리 내어 읽는다.
특히 어려운 책들은 더욱 그렇다.
나는 어려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도 바로 적으면서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키워드라 생각되는 단어들, 문장들을 적으면서 읽는 것이다.
정체로 또박또박 쓰는 것은 아니고, 흩날리면서 적는 것이다.
그렇게 적은 것을 잘 접어서 책 속지에 꽂아 둔다.
나중에 독후감 쓸 때도 도움이 되고,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메모를 해도 쉽게 와 닿지 않는다.
....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역사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지리서이다.
우리 민족이 살던 고대의 나라서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강역에 대해 적은 글이다.
많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뒤져내어 고증한 지리서이다.
대부분 지명이 북한에 있고, 지금의 중국의 지명도 나온다.
지도 한장 없어, 그 지명들이 정확하게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더욱 답답했다.
인터넷에서 이 아방강역고에 대해 살펴보니, 논란이 있다고도 한다.
2. 아방강역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역시 정약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적은 책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가 살던 시절 존재했던 모든 학문에 손을 대었던 것 같다.
유학, 역사, 수학, 그리고 탄압받던 천주학에도 그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학문이라고 하면, 그는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긴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그를 버린 국가를 버리지 않았다.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등을 통해 국가 제도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중세 시대 개혁의 선구자로써 살다간 천재이다.
그런 그가 우리 민족이 살았던 영역을 살펴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약용이 살던 그 시절에도
우리나라 고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간혹 학자들이 지리서를 써내기도 하지만,
그 의견들이 분분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붓을 든 것이다.
잘못된 역사서 및 지리서를 실증적 사료를 통해서
비판하고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 책을 만들어냈다.
서울대 현 규장각사이트에 있는 아방강역고 해제는 다음과 같다.
...
"정약용이 편찬한 우리나라 강역에 관한 역사지리서이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1811년 (순조 11)에 강진에서 저술을 했으나 이후 증보작업을 계속하여 1833년에 北路沿革(續), 西北路沿革(續)을 증보하였고, 1830년대를 전후하여 渤海續考를 증보하였다. 원래 원고본으로 10권이 전해 오다가 1903년(광무 7)에 張志淵이 증보하여 ≪大韓疆域考≫로 책명을 바꾸어 皇城新聞社에서 활자본 9권으로 간행하였다.
본서는 10권의 원고본 가운데 {권 4} 弁辰別考·沃沮考, {권 5} 濊貊考·濊貊別考·靺鞨考, {권 6} 渤海考를 묶어 1책으로 만든 零本이다. 표지명이 ≪我邦疆域考 中≫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3책으로 되어 있었으리라 추측되며 版心에는 '自然經室藏'이 기록되어 있다. 그뒤 1936년에 新朝鮮社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한 ≪與猶堂全書≫에 [아방강역고]를 포함시켰는데 이 때 원래의 10권을 4권으로 만들었다.
≪여유당전서≫에 수록된 <아방강역고>의 내용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 朝鮮考·四郡總考·樂浪考·玄 考·臨屯考·眞番考·樂浪別考·帶方考·三韓總考·馬韓考·辰韓考·弁辰考,
{권2} 弁辰別考·沃沮考·濊貊考·濊貊別考·靺鞨考·渤海考,
{권3} 卒本考·國內考·丸都考·慰禮考·漢城考·八道沿革總敍上·八道沿革總敍下·浿水辯·白山譜,
{권4} 渤海續考·北路沿革續·西北路沿革續.
이 책은 기자조선에서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강역의 역사를 중국및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직접 기록을 뽑아 고증하고, 저자의 의견을 '按說'로 첨부하여 그 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술목적은 우리 疆土(한반도)의 역사를 살피는 것으로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고조선에서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고대 국가의 강역과 그 역사를 고증하였고,
둘째, (漢)四郡에 총론과 각론을 차례로 서술하여 四郡의 위치와 그 역사를 고증하였고,
셋째, 三韓을 총론과 각론으로 구별하여 馬韓·辰韓·弁韓의 위치를 다루고 이어 沃沮· 貊·靺鞨·渤海의 순으로 북방 여러 나라의 위치와 역사를 검토하였다.
또한 지리고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고조선 이래의 역대의 강역과 首都·河川 등의 위치를 새롭게 밝혀 잘못 기록된 地理書에 수정을 가했다. 이를 통해 정약용은 한국고대사를 한강을 경계로 북쪽에는 箕子朝鮮이, 남쪽에는 韓國이 거의 병렬적으로 형성되었고, 朝鮮은 四郡→高句麗→渤海로, 韓國은 馬韓→百濟, 辰韓→新羅로 연결되는 독자적 역사를 가졌다고 이해하였다. (정재훈)"
3. 아방강역고에 대한 논란
그런데, 현재 전해져서 우리가 읽고 있는 아방강역고에 대한 논란이 있다.
왜냐면 현재 전해지고 있는 아방강역고는 정약용이 쓴 원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아방강역고는 1936년 간행된 여유당전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정약용의 원본이 아니라 1903년 장지연이 아방강역고에 내용을 덧붙힌 증보판이다.
을사조약 이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울분을 토했던 우국지사로 알려진 장지연.
그도 말년에는 친일을 했다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1903년이면 장지연이 친일로 돌아서기 전이라고 하지만,
당시 이 책의 서문을 쓴 사람이 왜 을사오적의 한명인 권중현인지....
자꾸 눈에 밟힌다.
그리고 이 책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앞서 이야기했듯이 1936년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1936년이면 모든 간행물이 일제에 의해 검열을 받던 시기이기 때문에
정약용 선생의 아방강역고도 식민지 사관에 이용하고자 왜곡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왜...
자꾸 이런 아방강역고에 대한 왜곡 문제가 제기되느냐 하면
이 책의 내용이 약간은 반도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고,
그 진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재야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이덕일 같은 일부 제도권 사학자들까지도 고대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반도가 아닌, 저 많은 만주대륙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여러 역사서를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고대국가들의 주 영역이 한반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살펴본 여러 역사서들이 대부분 중국의 역사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역사서도 사대를 하는 역사가의 역사서이기 때문에
이미 왜곡된 역사서를 보고 추론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민족 사학자들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를
그의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약용 답지 않은 글이라는 소리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욱 1936년 간행된 아방강역고가 왜곡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럼, 나는
그럼, 이 책을 어렵게 읽어낸 나는....
나도 우리 고대사에 대한 논란에서 어느 것이 진실이다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몇몇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처럼 그런 역사를 가졌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물론 그런 고대사가 진실이라고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그런 역사가 공인될 수 있는 방법도 크게 없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의 역사(이 말이 참 역설적이긴 하지만...)는 계속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어떤 역사사관을 뒷받침하는데 이용되기보다
정약용의 정신을 본받았으면 한다.
모든 것에 비판할 수 있는 오롯한 그의 정신.
유배를 가 있지만, 현실에 불만을 갖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는 그의 여유로움.
이런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 아닌가싶다.
비록 이 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의 존재와 이 책에 대한 논란에 대해 알게 된 점.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것으로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첫댓글 엊그제는 시험 끝나고 선생님들과 대흥사 케이블카를 타고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겼답니다. 만산 홍엽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 앞으로 강진 주작산이 우뚝 서있었는데 그곳은 정약용 선생이 많은 책을 썼던 다산초당이 있는 곳이고 또 그 옆으로는 월출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었답니다.
아방강역고가 그런책이구나 알고 갑니다. 애쓰셨어요. 잘 계시지요. 지금 우리반 문집 편찬을 위해 컴실에 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