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뒤쪽이 진실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동성애자들은 멋진 인조유방을 만들어 붙일 수 있지만
견갑골은 그들이 남자임을 숨기지 못한다.
인간의 뒷모습이 보여주는 이 웅변적 표현에 마음이 쏠린 화가가 한둘이 아니다.
오노레 도미에는 등뼈의 조형성에서 매혹적인 힘의 미학을 표현하는 수단을 발견했다.
미끄러운 밧줄을 타고 오르는 사람을 그린 그의 작품은
건장한 몸의 역동성을 표현한 걸작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 분의 삼 정도 고개를 돌린 얼굴을 잘 그렸다.
순수한 프로필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아주 돌려 정지한 것이 아니라
저 깊은 무한을 향해 목에서 코끝으로 뻗은 힘의 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뒤쪽이 진실이다!
이 작은 책은 바로 쉰석 장의 영상들을 통하여
그 등 뒤의 진실을 답사하고자 한다.
또한 이 영상들은 에두아르 부바의 작품들이기에
거기에 담겨 있는 해학,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오는
그 감칠맛 나는 즐거움을 음미할 자리까지 마련해준다.
# 2
저 남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틀림없다!
부자들이라면 아예 수영을 한다.
수영하는 데 필요한 팬티도 수영복도 다 갖춰놓았다.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물론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치마를 약간 걷어올리고.
그러나 이 즐거움과 정다움이 이 한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놓는다.
# 3 - 잊혀진 천사
어른들은 대체 무얼 보고 있기에 저리도 심각한 것일까?
그 무슨 세속적인 구경거리에 그토록 절박하게 붙잡혀 있기에
그들은 오직 하나뿐인 중요한 것을,
잊혀지고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저 어린 천사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뒤에서 기다리는 천사에게 등을 돌린 채 우리는 몇 번이나
어리석은 즐거움을 찾아 무작정 달려가기만 했던가?
# 4
말해봐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젊은 날을 줍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말해봐요, 할머니.
할머니는 지팡이가 세 개인가요, 다리가 세 개인가요?
말해봐요, 할머니.
그 어느 시신에 성수를 뿌려주려고
회양목 가지를 옆구리에 끼고 가나요?
# 5 - 바닷가의 두 여자
해 저물녘에 찾아와 미래의 행복을 꿈꾸는ㅡ혹은 외로이 마음속의 슬픔을 털어놓는ㅡ
사랑에 빠진 처녀와
원통 모자를 쓰고 자갈밭에 앉아 있어도
그 완강한 안락함이 든든한 중년 여인.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그저 삼십 년의 나이 차이?
어쩌면 삼십 년 후에는 처녀도
지금은 모자란 자신감과 안정감을 갖추어
자갈밭과 부서지는 썰물과 눈부신 석양을 제압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한갓 정신의 관점.
그러나 한낱 추측만이 아닌 것이 있다면 그건 풍경.
그 무슨 조화의 기적이 있어
중년 부인의 발 아래에는
고즈넉하고 빛나는 공허뿐인데
처녀의 주위에는 바위 많은 내포(內浦), 굴곡이 심한 암초, 폐허와
소나무를 머리에 인 가파른 벼랑이던가?
두 가지 마음 자리와 두 가지 풍경
# 6 - 행복한 등
노동자나 늙은이의, 신의 존엄 앞에 기도하며 엎드린 인간의 ,
굽은 등에 대하여 말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여기 보이는 여름날의 영상들은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는 행복하고 태평스럽고 이기적인 등도 있다는 것을.
이 등을 돌린 몸짓 속에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의 긍정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분수가 신명나게 뿜어 나오는 연못 둘레의 돌 위를 달려가는 어린아이에게,
빛살 자욱한 가지들을 정답고 찬란하게 펼치고 있는 마로니에 아래 한마음이 된 연인들에게.
정말이지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들을 바라보기를 거부함으로써
우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순간 그들이 느끼는 기쁨이 그렇게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행복 속에는 너무나도 큰 광휘가 스며있어
그 광휘가 그들도 모르게,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