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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있는 그대로를 언술(言述)하는 일은 때로 불편하다. 57년간 빗장 걸렸던 비무장지대(DMZ) 특집을 보도 중인 특별취재팀 입장에서, 사안에 따라 '사실의 무게'가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기록인가에 대한 회의(懷疑)를 거듭하곤 한다.
DMZ 내 일부 최전방 경계소초(GP) 대원들이 GP 투입 첫날 써서 보관하는 가상 유서는 그 게재 여부를 놓고 '보도의 경계'를 숙고하게 했다. 천안함 폭침(爆沈) 정국으로 군과 안보에 대한 국민 불신·불안이 높아진 상황에서 특히 자식을 군에 둔 부모에게, '유서를 맡겨야 할 정도의 사지(死地)에 복무하는구나' 하는 근심을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서 작성 취지는 나라를 위해 최선봉에 선 이들에게 긴장과 각오를 환기하려는 것이다. 유서 쓰기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삶을 향한 신실한 애착과 책임감·이타심을 북돋운다는 이유로 일반 사회에서도 많은 기관·조직이 권장했던 일이기도 하다. DMZ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기록을 수행한다는 이번 특집의 의의(意義)에 더해 이런 점이 '유서 쓰기'를 보도하기로 결정한 근거가 됐다.
DMZ 일원을 다니며 알리기 거북한 현상을 여럿 만났다. 몇몇 전방부대의 물 부족은 특히 겨울철에 심각해 물탱크 속 얼음을 깨가며 생활할 정도다. 적잖은 현장 장병들은 이런 실정을 능히 감내하면서도 보도 여부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몇몇 GP와 DMZ 밖에 인접한 일반전초(GOP) 부대에선 동절기에 고양이 세수하듯 몸을 씻거나 식사 후 식판을 씻지 못해 물이 나올 때까지 쌓아두곤 한다.
군대 좋아졌다, 세월 좋아졌다고 하지만 전방부대 군 생활은 여전히 힘들다. GP·GOP 병사들은 아파도 참는 것이 만성이 된 듯했다. 남방한계선 급경사로 철책을 따라 규격조차 일정치 않은 수천 계단을 하루 몇 번씩 오르내리며 순찰 경계를 해야 하기에 관절염 치료약을 무릎에 달고 사는 몇몇 20대 GOP 병사 모습이 놀랍지 않다.
어떤 부대 식당엔 천장에 파리끈끈이가 매달려 있고, 거기엔 수십 마리 파리 사체가 붙어 있다. 이런 식당에서 하루 세끼 뚝딱 먹는다.
어떤 GP 연병장은 초등학교 교실을 3개쯤 합친 넓이다. 대원들은 거기서 농구·축구·족구를 한다. 그나마 공이 GP를 호위하는 철조망에 찔려 터지거나 지뢰가 깔린 바깥 수풀로 넘어가면 놀이는 거기서 끝이다. "이 좁은 곳에서 가장 편히 할 수 있는 경기는 편 나눠 이어달리기다. 누군가 여기를 방문할 때 (넉넉하게) 축구공 3개만 사다 주면 좋겠다"는 GP장(長)을 만났다. GP장들은 고시원 독방보다 어둡고 비좁은 쪽방에서 자면서도 "잠만 자는 곳이라 괜찮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지만 전방을 지키는 일은 이렇게 힘들고 열악했다. 내친김에 전방부대 한 중대장의 호소를 소개한다. "후방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연말이 되면 따놓은 예산 쓰느라 멀쩡한 도로·보도를 갈아엎잖아요? 여기 길은 (장병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생명줄인데, 그런 돈 아껴서 보급차량 다닐 길만이라도 닦아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