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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산악회가 발족하여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월 정기 산행을 한 것이 어언 25년, 인생으로 보면 청년이 되었다.
이제 해외 산행도 한 번 해보자고 계획한 것이 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때마침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창궐, 추진을 가로 막았다.
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 역병이 수그러들자 일본 등 여러나라에서 여행 자유화가 허용되었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산악회 회원들의 뜻을 모아 회장이 곧바로 추진 세부계획을 세웠다.
일본 큐슈올레 트레킹을 3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 4일, 코스결정, 참가자, 세부일정, 여행사, 경비 등이 확정되었다. 코로나 이후 출입국 신고가 과거 신고서 작성에서 모바일 폰에 사전 입력시키는 것으로 바뀌어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검역 절차 사전등록 (코로나 3차 접종 증명서), 입국심사, 세관신고 QR코드, 그리고 탑승권까지 모두 입력했다.
13일 티웨이 항공 10:10 인천공항발 후쿠오카 공항 11:30 도착. 입국수속은 많은 관광객이 몰려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6명 일행이 다 마치고 나오는데, 약 1시간 반이 걸렸다.
대기 전용버스에 올라 도시락 점심을 먹으면서 첫날 올레길 후쿠오카 신구코스 출발점으로 이동, 드디어 탐방이 시작되었다.
굵은 대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한 컴컴한 길을 걸을 때 이국의 정취를 느꼈다. 가는 길 곳곳에 올레길 안내 표시가 있다. 나와 몇 사람이 이 표시 방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부지런히 걷다가 300m 쯤 먼저 갔을 때, 잘못 갔다고 뒤돌아 오라는 회장의 말에 맥없이 올라 왔다.
곳곳에 야생화, 매화가 만발하였고, 벗나무는 양지 바른 곳에 피기 시작하고 있다. 이따금씩 귤이 달린 넓은 귤밭이 보였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은 우리들 밖에 없어 조용하고 한산하다.
한시간쯤 걷다가 다치바나구찌 마을을 지날 때 전형적인 고풍스런 주택들이 보이는데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조용한 곳이다. 신구우마치에 NHK 대하드라마 촬영 장소였다는 작은 현수막이 관광안내소 앞 쉼터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쉬면서 후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합류 후 다시 걷기를 하던 중 예정시간보다 늦었다고 속도를 내라는 회장 말에 선두에 걷던 나와 몇 명이 속보로 내 달렸다. 아뿔사! 회장이 전화로 왜 간식 쉼터 우물을 지났느냐고 뒤돌아 오라고 한다. 족히 1km는 갔는데, 기운이 풀려 천천히 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시간도 30분 허비한 것이다. 탐방 길은 천천히 걸으면서 이것 저것 구경하며 가야하는데 무턱대고 앞만 보고 갔으니 잘못된 거다.
일정 소화에도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그나저나 에너지 충전을 위한 간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우리의 요청에 가이드와 운전 기사가 사케와 싱싱한 회를 사와 일행이 둘러 앉아 마시고 먹으니 그 맛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걷기 중 백미는 쉬면서 먹는 거다. 잘 먹어야 또 걷는다.
시간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아 걷기는 이것으로 끝내고 예약된 무라다카 로얄호텔로 갔다. 외진 아늑한 곳에 있는 상급 호텔이다. 간단한 안내와 방배치를 받아 짐을 풀고 곧바로 유카타 찾아 입고 호텔 내 대중온천탕에 가서 몸을 물에 담그니 일본에 온 기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온천수는 유황 냄새가 없고 밋밋한 알카리수 이다. 야외에도 온천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목욕 후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을 했다. 입에 맞는 다양한 음식이 있는데, 특히 부드러운 스테이크는 일급이다. 좋은 음식의 제 맛을 즐기려면 사케가 곁들여야 한다.
마침 식당에 작은 술병 사케를 팔고 있어 16개를 사겠다고 했더니 병이 8개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병 대신 글라스 잔에 그 양을 담아 달라고 했더니 오케이. 그래서 시작된 것이 호텔 직원이 유리잔 16개를 담은 큰 쟁반을 들고 유인걸 회장이 사케 댓병 (1.8리터)을 들고 내가 여기 두잔, 저기 세잔하며 흩어져 앉아 있는 식탁 안내를 했다. 3인조 술 따르기 진풍경이 연출됐다. 일행 중 연장자인 내가 쏜 술이다. 담소하면서 포식하고 하루 일과를 마쳤다.
둘째 날은 가쓰라 코스이다. 어제보다는 평탄한 길로 가쓰라 반도를 도는 코스다. 8시에 버스 탑승, 후쿠오카시내를 지나는데 둥근 돔이 보였고 하카다 항구 옆으로로도 지났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의 옛이름이다.
후쿠오카 돔은 매년 11월 일본 국기인 오스모가 열리는 곳으로 NHK 생중계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곳이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려 가쓰라 코스 시발점에 이르렀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에다토시이에의 숲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길을 따라 가니 넓은 진영터가 나타났다.
임진왜란 당시 영주 (다이묘) 들이 곳곳에 터를 잡아 전쟁 준비를 한 곳이다. 나고야성을 중심으로 진영터가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요소의 진영터 설명판에 다이묘의 약력과 당시의 풍속문화도 소개되어 있다. 진영터 중심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주하며 진두지휘했다는 나고야성의 성터가 남아 있다. 안내판의 기록문을 소개한다.
나고야성과 분로구·게이초의 에끼(임진정유왜란) 관동을 평정하고 이어 전국 통일을 이룬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은 분록 원년(1592년) 대륙 명나라를 향해 출병하였다. 유적은 임진·정유난의 군사거점으로 구축한 히젠 나고야성과 다이묘들의 진영 거소이다.
성은 당시로서는 오사카서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약17만평방미터)를 자랑하며 천수각을 중심으로 요소를 배치하고 견고히 구축하였다. 다이묘의 진영 수는 120개 이상이다. 이 특별한 역사터 (나고야성과 주변 김영터)는 동아시아 나라들에게는 불행한 흔적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적지 않는 유적이다. 이상이 안내 글이다.
모모야마 시대는 1573년에서 1603년 경이다. 이 30년 기간은 일본 역사상 중요한 시기였으며 이 기간 중에 임진·정유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범했다. 당시 다도가 유행하고 가무가 애호되는 등 문화적 풍토가 높았다. 나고야성 부근에 다실과 무대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니시유키나가(소서행장) 가도기요마사(가등청정),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의 진영터가 안내판에 보인다. 조선침략선봉 소서청장이 제1번대로 병정 1만 8천명에 병선 700척으로 부산에 상륙하였고 제 2번대의 기요마사가 2만2천명의 병력으로 또한 부산에 상륙하였다. 제9번대까지 15만 8천명이 출병하였다. 총 병력은 30만명이었다니 임진왜란 당시 침략자의 규모가 대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픈 역사를 뒤돌아보는 시간이었으나 그들이 전국에서 모여 침략 준비를 한 곳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의미를 지난다. 한국 학생들의 역사 탐방의 자리이기도 하다.
진영터를 지나 부지런히 걸어 시가현 히토마사키소년 자연의 집에 이르렀다. 넓은 공간에 현대식 건물이 있고 앞에는 현해탄의 바다가 보여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주변에 피어 있는 꽃과 양광은 봄 기운을 느끼게 한다. 맑은 공기, 인적이 없는 고요함 속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서, 추억으로 남길 사진도 찍었다.
잔디밭에 둥글게 자리하여 가이드가 조달한 도시락에 오징어·광어회를 펴 놓으니 성찬이다. 건배사 ’화이팅’ 후 먹기 시작하니 맛은 일미이고 남아돌 정도로 푸짐한 회를 먹으며 권커니 마시거니 하니 기분은 업되고 분위기는 정감이 넘침다. 회는 고단백질로 걷기의 피로를 풀어주는 스테미나 식이다.
식사 후 다시 걷는데 해안가에 현무암 육각절리를 볼 수 있었다. 오후 걷기의 목표점은 오늘 코스의 종점에 있는 소라구이 포장마차 집이다. 한참 걷다가 보니 오늘 숙소인 운젠으로 갈 시간에 촉박할 것 같아 버스를 이용 종점 가까운 곳에서 하차하여 얼마간 걸어 소망의 소라구이집에 도착했다.
포장마차집은 한 건물에 주인이 다른 여러 가게가 잇달아 있어 일행이 소그룹으로 자리에 앉아 소라·오징어 구이에 캔 맥주를 곁들여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먹고 다시 산책길에 나서니 이내 히토미시기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제철 아닌 해수욕장은 쓸쓸한 백사장이다. 자매결연 기념으로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보내온 하루방이 서 있어 그 옆에서 한 컷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먼 산길을 거쳐, 숙소인 운젠 유명호텔로 간다. 가는 길이 마치 대관령 고갯길처럼 꾸불꾸불한데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가느라 운전 기사가 고생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 온천욕을 하고 늦은 시간 식당에 가니 일본식 정찬이 테이블에 차려져있다. 정갈하고 맛나 보이는 음식이 한 사람당 하나씩 놓여 있다.
이곳에서도 음식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사케를 반주로 했다. 아마도 그 날 준비한 호텔 술을 다 마신 게 아닌가 싶다.
배불리 먹고 방에 가서 쉬는데 전화 연락이 왔다. 입가심 한잔 나누자는 회장에 초청에 그 쪽 방에 가서 양주를 마시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셋째 날은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다. 첫째 둘째 날은 바쁜 일정으로 시간에 쫒기며 보냈으나 오늘은 시마바라 반도 구찌노쓰항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반도를 가로질러 남쪽 해안을 따라 걸어 다시 구찌노쓰에 이르는 회기 코스로 비교적 가볍고 여유로운 코스다.
8시에 출발 버스로 40분 이동해 출발점에 도착하여 코스 탐방에 나섰다. 농촌밭, 주택가, 용나무군락지를 지났고 현무암 해안 길은 파도가 철석이는 돌길인데 뚜렸한 길이 아니니 조심해 걸었다. 멀찌감치에 바다 낚시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갯바위 낚시 경험이 많은 나는 무슨 고가기 잡히는 지 궁금하였다. 모두들 바다를 배경으로 폼을 잡고 셔터를 누르곤 했다.
도중에 난만대교를 지나 놀이터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연3일째 도시락 식사이나 언제나 소풍 온 듯 한잔의 술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이다. 식사 후 버스로 운젠 유메이 호텔로 돌아왔다.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 산책에 나섰다.
운젠은 화산 지대로 활화산인 운젠다케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7차에 걸쳐 폭발하여 41명의 희생자가 났다. 호텔이 운젠 온천지역내에 위치하여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옥천지옥 등을 산책로를 까라 30분간 돌아보았다.
첫번째 만난 곳이 이도지옥이고 인근 대규환지옥도 보았다. 이도지옥 왼편 가까운 곳에 그리스도교 순교비도 있다. 일대를 돌아보고 넓은 광장에 오니 자연 온천수에 발을 담궈 피로를 풀어주는 휴식처가 있다.
운젠지옥은 시마바라 반도 중앙에 우뚝 솟은 운젠다케의 호흡을 관찬할 수 있는 장소이다. 운젠다케의 마그마 공간에서 마그마가 상승하여 화구를 통해 분출되었지만 평소는 화산 가스만 분출하다가 지하수나 빗물과 섞이면 온천이 된다. 오바마온천, 운젠온천, 시마바라 온천은 동일한 마그마 공간에서 유래하지만 마그마 공간과의 거리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각각 수질과 색상에 차이가 있다. 이 지역 온천지옥은 가스가 하얀 진흙속 분기공에서 분출하고 있다.
온천지옥은 황화수소가 지표의 암석을 녹여 하얀 진흙을 만들고 하얀 분기와 함께 일대를 뒤덮은 모습이 생명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철쭉류 같은 황화수소에 비교적 강한 식물이 특별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도지옥(오이토지고구)이름의 유래를 보니 그 옛날 시마바라 섬 아래에서 유복하게 살다가 밀통을 한 남편을 죽이고만 오이도라는 여인이 있었다. 오이도가 처형될 무렵이 이 지옥이 분출되었기 때문에 가정을 어지럽히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훈계를 담아 이름이 붙여졌다.
대규환지옥(다이교우칸지고구) 이름은 분기공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지옥에서 외치는 소리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에서 유래한다. 이 소리는 화산가스가 분기공을 힘차게 통과할 때 발생한다. 다이교우칸 지옥은 운젠지역에 있는 30개 지옥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분기를 뿜어 낸다.
순례길 옆에 있는 천주교 순교비는 시마바라 난 이후 그리스도 탄압 정책 때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당시 천주교인들을 이 곳에 끌고와 처형했다고 한다. 희생된 자들의 순교비이다.
시마바라의 난을 찾아보니 이러하다. 1637년 다이묘의 폭정에 그리스도 교도, 농민, 낭인 (히데요시를 추종했던 떠돌이 부시)약 4만명이 반란을 일으켜 13만명의 막부대군이 4개월 간 전투 끝에 진압, 이후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탄압하고 1638년 부터 쇄국 정책으로 고립국의 길을 갔다.
운젠 산책로를 따라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호텔로 왔다. 호텔 온천욕을 하고 준비된 석식 자리로 갔다. 오늘은 큐슈여행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다. 각 개인 앞에 차려진 정갈한 음식을 사케 한 잔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무사히 3일 간 둘레길 탐방을 마친 안도감과 여유로움에 화기가 넘친다. 그러나 대망의 특별 만찬은 없었다. 그래도 강계중님 팔순 축하 잔을 부딪쳤다.
내일을 위해 방으로 가서 쉬는데 문 노크 소리, 선배님 저희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가서 5명이 가는 밤이 아쉬워 담소하면서 잔을 비우고, 채우고 일본 여행 마지막 밤을 흥겹게 보냈다.
여행 4일째 마지막 날은 관광하는 날이다. 아침식사 후 구마모토행 버스에 탑승, 30분간 이동하며 시마바라 항구에 도착, 카페리 대형 여객선 출발 시간 대기하였다가 버스에 탄 채로 승선하였다. 배에 오른 다믐 모두 하차하여 선실이나 난간에서 항해를 즐겼다.
객실에서 여행 짐을 정리하는 일본 할머니와 애기를 나눴다. 그는 혼자서 대만 여행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16명이 함께 큐슈 관광 여행 중이라 했더니 반색을 하면서 짐속에서 과자를 찾아 한 움큼 준다.
객실 맨 앞에 앉아 바다를 내다보니 앞이 확 트여 눈이 시원하다. 40분쯤 지난 후 선상의 버스에 탑승, 관광지를 찾아 갔다. 첫번째 간 곳이 구마모토 성이다.
구마모토 성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공 선두에 나섰던 무장 카토기요마사(가등청정) 1601년 부터 7년간에 걸쳐 쌓은 일본의 3대 명성 중 하나이다. 규모 80 헥타에 성곽 둘레는 5.3 킬로미터 이다. 구마모토 성의 우수성은 1877년 서남전쟁(반군 사이고 다카모리 군과 정부군과의 전쟁) 당시 반란군이 성을 공격 했지만 무원고립의 수비군은 50여일 동안 완강히 버텨냈다. 이때 천수각 등 많은 목조시설이 불에 타 1960년 재건하였다.
2016년 4월 16일 구마모토 대지진 때 성 전체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었다. 돌담을 복구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으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진 7년이 지난 지금 전국의 직인 (석공 등)이 모여 일을 하는데 하루에 3개의 돌담만을 쌓는 난공사라 한다.
오늘 관광지 구마모토 성과 다자이후덴만구는 2010년 큐슈 여행시 이미 다 돌아보았던 곳이라 흥미는 없으나 재습하는 마음으로 따라 다녔다.
일행과 같이 천수각에 올라갔다. 천수각 내부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 가토기요마사가 썼던 투구도 전시되어 있고 서남전쟁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맨 위 전망대는 적의 동태를 미리 알아보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구마모토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관람 후 점심은 현지식으로, 야끼니꾸 (고기구이) 전문집에서 했다. 각자의 생고기 한 쟁반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담아져 있다. 직화로 구워 먹는 맛은 최고이고 참이슬과 일본 맥주를 함께 마셨다. 원기가 살아나는 듯 하다. 걷고 보고 먹고 마시는 게 여행의 일과이고 마음을 풍요롭게 힐링하는 거다.
다자이후 덴만구로 옮겨 오후 관광을 했다. 1300년 전 큐슈의 수도 덴만구는 교토의 기다노덴만구와 함께 전국 덴만구의 총본사이다.
학문의 신 스가와라마치자네를 신으로 모신다. 그는 헤이안 시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다. 903년 그가 생을 마감했을 때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가던 중 소가 엎드려 움직이지 않게 되자 그 자리에 유해를 매장하였다. 그는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매년 전국에서 700만 정도의 참배자가 방문하고 있다. 본전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내부 수리 중으로 관람할 수 없었다. 합격, 취직, 승진 등 성취를 기원하며 또 새해의 운을 점치고 복을 빌기도 하고 소원하는 바를 종이에 적어 매달아 두기도 한다.
참배길에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작은 다리가 있고 도리이가 서 있고 입구 부근에 소가 누워 있는 동상이 있는데 소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한다. 참배자 가운데 제일 많은 사람은 학생이다.
매화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매년 2~3월에 약 6천 그루의 매화가 만발해 경내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참배하러 가는 길 양편은 상점들이 즐비해 있는데, 대부분이 모찌떡, 과자점이고 기념품 가게들이다. 특히 우메가모찌 (매화가지 떡)을 파는 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이 찹쌀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다자이후 덴만구를 구경하고 나와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일본 전통 라면을 먹기로 하고 인근 라면집을 찾아 갔다. 좌석이 16개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식당이나 손님이 많아 긴 줄을 서서 대기 하다가 좌석이 나는 수 만큼 들여 보내다. 특이한 것은 기다리는 동안에 내가 먹을 국물 맛을 어떻게 해 달라는 요청서를 미리 작성해야 했다. 예컨데 국물을 진하게, 엷게 양념은 어떤 것 등 10가지가 넘는 선택사항 질문서에 일일이 빠짐 없이 체크해야 한다. 10분 이상 기다리다 먹은 라면 맛은 별로 이다. 값은 만원이니 가성비가 낮다.
식사 후 공항으로 이동, 모바일 수속을 마치고 긴 시간 대기하다가 20시 20분 티웨이 항공 편으로 귀국했다. 늦은 시간 도착으로 다음 날인 17일 0시 지나 귀가했다.
해외여행에는 세가지 즐거움이 있다. 첫째 준비, 둘째 여행중 구경하고 먹는 것, 셋째 여행 후 추억거리 정리 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경우를 반추해 보았다.
준비 과정에서 나는 여행 전 한달 간 메일 만 4천보, 7~8 km 걷기를 했다. 트레킹 코스가 10~12km 이고 연 3일 계속되기 때문에 체력단련을 한 것이다. 코로나 이후 바뀐 모바일 출입국 신고 익히기, 여행지 관련 역사 찾아보기 등에 시간을 보냈다.
여행 중 산우들과 함께 걷고, 보고 먹으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음식은 입에 맞고 야외에서 사케와 먹은 싱싱하고 쫄깃한 회 맛은 환상적이었다.
각자가 찍은 많은 사진을 정리 편집해 카페나 단톡방에 올려 여러명이 공유하게 해 주었고, 개인별로 사진 첩도 만들어 주었다. 곽용완 총무의 수고 덕분이다. 추억거리로 남고, 여행 중 구한 안내도, 소책자는 두고 보고 될것이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 상품이 아닌 우리가 단독으로 기획하고 실행 한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큐슈 21개 코스 가운데 3곳을 탐방했다. 코스는 제주도의 연속된 일주 코스와 달리 모두 단속적인 독립된 코스이다.
여행을 주관하고 성공적으로 마칠 때까지 수고하신 회장, 총무께 먼저 감사드리고 멀리 호주에서 오셔 동참한 여행가 김계춘 님, 어깨 회전근 수술 후 요양 중에도 동행한 테니스 마니아 고귀종 님, 거금을 찬조하신 강계중 님 그리고 함께한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여행 중 전용 버스를 운전한 야마시다(58세) 기사에게도 감사한다. 그는 우리가 버스에 오르내릴 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했고 "저렇게 매일 술을 마셔도 괜찮으냐"고 걱정해준 말은 잔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리 여행지가 자기 고향 후쿠오카라고 기뻐하며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현의 지도(명승지 표시한 관광 안내도)를 일본에서 직접 구해다 주고, 응원해 준 나의 20년 지기 하다마 데츠코 선생에게도 감사의 말을 남긴다. 그도 다자의후덴만구에 초중고대 학창시절 또 그 후에도 다녔다고 한다. 선생은 일본에 관한 나의 멘토이다.
여행 며칠 후 해단식 때는 강계중 씨 팔순잔치도 겸했고 권용랑 광우회 회장도 함께한 나주곰탕집 회식은 특식곰탕과 막걸리로 무탈여행을 자축하고 감사로 마무리 하였다. 이 자리에서 내년에 또 외국 산행을 하자는 제의가 나왔다. 이제 첫 길이 열렸으니 계속 가게 될 것을 기대하며 이번 여행 막을 내렸다.
첫댓글 또다른 관점에서 보고 느끼신 소감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주셨습니다. 이번 여행의 의미를, 그리고 추억의 잔상을 다시 떠올리며 여행 후기를 읽을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여행 경험이 많으시고 일본에 능통하신 왕회장님을 모시고 함께한 이번 트레킹은 우리 광우산악회의 새로운 milestone과 새로운 vision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세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