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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대륙을 반도로 착각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고려의 강역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려가 대륙에서 건국했고 또 그곳에서 멸망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북송北宋은 개봉開封(감숙성 영흥현)에 도읍하고 있었고 요는 감숙성 난주시蘭州市, 그리고 감숙성 정서현에 도읍했고, 금金은 감숙성 회령현, 감숙성 천수시, 감숙성 영흥현에 도읍했었다. 또 남송은 사천성 내강시와 광서성 융안현에 도읍했었다. 북송은 고려와 양자강을 통해서 사신을 파견했었다. 고려로 파견되었던 남송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가서 그 체험담을 저술한(고려도경 高麗圖經>을 보면 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서긍이 AD 1123년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으로 가서 그가 보고들은 내용을 AD 1124년에 기록으로 남긴 책이 바로<고려도경>인데 원본은 AD 1126년 금金이 북송의 도읍지인 개봉(감숙성 영흥현)으로 쳐들어 갔을 때 불타 없어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부본 한 권이 남겨져 있어 그 부분으로 중간했다고 하는데 당시 고려의 정황을 그렸던 그림은 없어져 볼 수 없다. 이 책의 경우에도 대륙에 있던 고려를 밝히지 않으려고 변조했지만, 아무리 변조한다 해도 근본적인 개작이 아니므로 원저에 담겨 있던 사실 부분이 상당량 남아 있다.
우선 개경, 즉 송도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강이 북류한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반도 개성에는 성읍을 관통하는 강도 없고 단지 작은 하천만이 남류하고 있을 뿐이다. 또 서긍이 당시 개경에서 근처의 대규모 절을 19곳이나 돌아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한반도 개성에는 이 19곳의 절이 한 곳도 남아 있지 않고 단지 그 터만 남아 있다고 전하는데 19곳의 절 가운데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하다.
우리에게는 고려 때 저술된<고려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고려 때 제작된 고려의 강역도가 전혀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근세조선 때 제작된 고려의 강역지도가 전해지고 있고 근세조선이 편찬한 고려사가 전해지고 있는데 수차례에 걸쳐 다시 쓴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전하는 사서를 살펴 보아도 고려의 역사가 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일반인들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읽어본다면 고려가 대륙에 있던 나라임을 확연히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고려의 지명은 근세조선의 지명과 너무나도 다르다. 또 고려 때의 궁궐과 대규모 사찰이 현재 한반도에는 전혀 흔적이 없다.
고려는 태봉을 이은 나라였는데 태봉은 동주東州(산동성 덕주시)에서 건국했다. 한반도 철원에 가보면 천백년전 태봉의 도읍지였다고 하는 곳에 문화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기록에는 궁예의 사치는 도를 넘어 호화찬란한 궁전을 지었다고 했는데 그 궁궐은 지금 철원의 어디에 있었다는 말인가?
한반도의 강원도는 근세조선 세종 때 인구가 3만명 정도였고, 당시 철원에는 1,000명 정도나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런곳이 어떻게 태봉의 도읍지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태봉의 유적이 휴전선 안에 있다고 잘못 알고 그곳을 발굴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대륙 산동성 더주시가 태봉의 도읍지였던 고려의 동주였다. 이곳에는 대규모 궁궐 건축물울 비롯한 문화 유적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대륙에서 이 유적을 남송의 궁궐 유적이라고 하고 있는 있는데 남송은 산동성의 그 어느 지역도 강역으로 차지했던 사실이 없다.
AD 1010년 요는 섬서성의 위하渭河(대동강)를 건너 고려의 서경(섬서성 서안시)을 거쳐 산동성 임치구에 있던 개경으로 쳐들어 왔다. 고려의 현종은 라주로 피난 가게 된다. 라주는 호남성 장사시이다.
당시의 피난 경로는 고려사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고려의 개경 즉 산동성 임치구에는 고려의 옛 성곽과 궁궐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륙에서는 이 유적도 남송의 황제가 기거하던 궁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지역도 남송이 차지하지 못했던 곳이다.
AD 1232년 고려는 23대 고종 때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임시 천도했는데 고려의 강화는 한반도의 강화도가 아니라 강소송 진강시였다. 강화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고 천도한 곳인데 고려는 이곳에서 39년간을 버틴다.
이 곳은 개경에 버금가는 큰 도읍지로 변모하게 된다. 개경에 있던 궁궐이나 대규모 사찰의 이름을 그대로 이름 지으면서 강화에도 개경에 못지않게 궁궐과 사찰을 건설했던 것이다.
강화로 건너가는 길목에 강도江都를 건설했는데 이 곳에 쌓은 성곽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강소성 양주시에 남아 있다. 이곳은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강화(강소성 진강시)와 마주치고 있는 위치이다.
우리 민족은 옛부터 생할 근거지가 변동될 때에는 옛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주거 환경도 옛 모습을 재현시키려고 노력했다. 대륙에서 반도로 옮겨오면서 대륙의 지명도 같이 옮겨졌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 역사상 획기적인 이동이었다. 근세조선의 집권층은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우리 역사가 마치 반도에서 이루어진 것인양 위장했던 것이다.
강화에는 선원사禪源寺가 있었는데 선원사에서 AD 1236년부터 AD 1251년까지 팔만 대장경판을 만들어 보관했었다고 한다. 이 대장경판은 충주忠州(산동성 래무시)로 옮겼다가 근세조선 태조 때 한반도의 한양에 있던 지천사支天寺(서울 탑골공원)로 옮겨와서 보관하다가 합천 해인사에 장경각을 건축하고 AD 1398년 해인사로 옮겼던 것이다.
고려에는 AD 1010년부터 AD 1083년까지 제작한 초조 대장경이 있었는데 이것은 안휘성 수현에 있던 팔공산 부인사八公山 符仁寺에사 제작되었다. 이 초조 대장경은 AD 1231년 몽골의 침입 때 당시 경주 월성(안휘성 회원현에 있던 황룡사의 9층탑과 함께 불탔다.
당시 불타고 남은 일부(1715판)가 일본의 경도京都에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이것은 고려 말 왜구가 안휘성 지역에서 훔쳐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강화도에는 궁궐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현감이 집무했던 건물이 있고, 또 제도권 사학자들이 선원사 터라고 주장하는 곳이 있는데, 고려사의 기록에 보면 강화에는 경안궁慶安宮,용암궁龍암宮, 려정궁麗正宮, 수창궁壽昌宮, 장봉궁長峯宮, 진암궁辰岩宮이 있었고 선원사禪源寺, 건성사乾聖寺, 용장사龍藏寺, 묘통사妙通寺, 법왕사法王寺, 보제사普濟寺, 봉은사奉恩寺, 복령사福靈寺, 왕륜사王輪寺, 안화사安和寺, 천수사天壽寺, 혈구사穴口寺, 흥국사興國寺, 현성사賢聖寺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사>의 기록으로 보면 고려의 왕들이 39년 체류했던 강화의 궁궐이 근세조선 500년 동안의 한반도 한양의 궁궐보다 더 크고 더 많았다는 것인데 한반도와 강화도에는 그나마 고려의 궁궐터라고 우기는 단 한 곳만이 있고 나머지는 그 터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 그 수많은 거대한 절들은 한반도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강화에 있던 궁궐과 대규모 사찰이 불탔다는 기록은 없다. 불타지 않은 건물들이 왜 없는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현재 한반도 강화에는 AD 1245년에 창건했다는 선원사는 터만 있다고 하면서 AD 372년에 창건했다는 전등사傳登寺, AD 639년에 창건했다는 정수사精水寺, AD 635년에 창건되었다는 보문사普門寺, AD 416년에 창건했다는 적석사積石寺는 남아있는데 선원사는 없는 것이다.
선원사가 지어지기 전에 지었다는 절들은 온전히 남아 있는데 AD 13세기, 그것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고 또 보관했었다는 선원사는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결국 한반도의 강화도는 고려의 강화가 아님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대륙의 강소성 진강시에는 대규모 건축물이 즐비하고 대규모 사찰들도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과연 어디가 고려의 강화였겠는가?
고려가 강화로 피난했을 때 청기와를 만들어 강화에 있던 궁궐과 사찰의 지붕을 덮었다고 하는데 한반도에는 청기와가 한 조각도 없다. 우리는 고려의 청자와 청기와가 녹색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려 사람들이 청靑과 녹錄을 구별하지 못했을까?
고려의 청기와와 청자는 지금도 대만에 보관되어 있다.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갈 때 가져간 것이다. AD 1290년 충렬왕은 합단哈丹의 침입으로 또다시 강소성의 강화로 천도했다가 AD 1291년에 다시 산동성의 개경으로 환도했다.
AD 1354년 공민왕은 섬서성의 서경으로 잠시 이거했다가 AD 1355년 산동성의 개경으로 환도했고 AD 1360년에는 산동성 제남시의 한양으로 천도한다. 다음 해 공민왕은 홍두적의 침입으로 절강성 항주시인 안동으로 피난갔다가 AD 1363년 산동성의 개경으로 환도한다.
AD 1390년 공민왕은 다시 한 번 산동서 제남시 역성구인 한양으로 천도하려다가 실패하고 고려는 결국 AD 1392년 대륙의 개경에서 멸망한다.
AD 1392년 대륙에서 건국한 근세조선은 1394년브터 1405년에 걸쳐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긴다.
대륙의 지명도 한반도로 옮긴다. 고려의 강역을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고려사>를 보면 고려의 행정 구역은 초기에 10도 12주로 편제되었다가 AD 1018년 현종 때 5도호부 75도로 개편되었고, 그 후 4도호부 8주로 바뀌고, 다시 8도 체제로, AD 13세기에는 5도 양계로 바꿨다고 기록되어 있다. 5도 양계 체제는 공민왕 때 12도 개편되었다가 멸망한다.
근세조선의 8도 체제는 고려의 행정구역 편제에서 파생된 것인데 고려와 근세조선의 차이는 고려는 대륙을 관장했던 행정편제였고 근세조선의 8도는 한반도를 관장했던것이다.
대륙과 한반도의 지형이 전혀 다르기 대문에 대륙의 지명을 한반도로 옮기는데 있어 지역 안배의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적절하게 조절하는 지혜가 발휘되었다. 지금 우리가 그 변화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럴듯하게 개편하였던 것이다. 근세조선의 행정 체제가 갖춰진 한반도의 상황은 고려의 5도 양계가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에 고려사의 지리지를 5도 양계 체제를 약간 변형시킴으로써 고려가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위장되었다.
따라서 반도사관에 입각한 오늘날의 한국사에서는 고려의 행정 구역을 논함에 있어 초기의 10도 12주, 5도호부 75도, 4도호부 8주, 8도, 12도 체제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제도권 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고려의 5도 양계의 체제도 변조되었음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고려의 개경은 황제가 살던 황도인데 동경東京이었고, 경주慶州는 남경南京, 평양平壤은 서경西京이었다.
고려의 5도호부는 <지도 24 참조 <-- 책 뒷 편에 참조!!>
24.고려, 요(遼), 송(宋), 동여진(東女眞
대륙지도 한(韓)민족의 고대국가가 대륙에 있던 것을 [桓國의 歷史]에 나오는 포스트를 읽으면서 자주 인용되는 대륙의 성(省)지명을 기억할 수 있게 지도를 올립니다
가. 고려 황도(皇都) (1)산동성 임치구(山東省 臨淄區)
송악(松嶽) (2)산동성 치박시(山東省 淄博市)
경주(慶州) (4)안휘성 봉양현(安徽省 鳳陽縣)
충주(忠州) (5)산동성 래무시(山東省 萊蕪市)
청주(淸州) (6)산동성 료성시(山東省 聊城市)
원주(原州) (14)하남성 신향시(河南省 新鄕市)
강릉(江陵) (15)하남성 삼문협시(河南省 三門峽市)
남원(南原) (21)호북성 죽산현(湖北省 竹山縣)
전주(全州) (22)호북성 의성시(湖北省 宜城市)
익산(益山) (23)하남성 광산현(河南省 光山縣)
여수(麗水) (24)호북성 의창시(湖北省 宜昌市)
한산(漢山) (25)산동성 태안시(山東省 泰安市)
공주(公州) (26) 산동성 곡부시(山東省 曲阜市)
양산(梁山) (29)안휘성 화현(安徽省 和縣)
김해(金海) (31)안휘성 귀지시(安徽省 貴池市)
진해(鎭海) (32)절강성 진해구(浙江省 鎭海市)
안동(安東) (34)절강성 항주시(浙江省 抗州市)
고성(固城) (36)절강성 온주시(浙江省 溫州市)
진주(晋州) (40)강서성 남창시(江西省 南昌市)
청도(淸道) (41)호북성 마성시(湖北省 麻城市)
영광(靈光) (43)호남성 회화시(湖南省 懷化市)
창녕(昌寧) (46)강서성 의춘시(江西省 宜春市)
라주(羅州) (47)호남성 장사시(湖南省 長沙市)
탐라(耽羅) (49)호남성 형양시(湖南省 衡陽市)
함안(咸安) (50)강서성 길안시(江西省 吉安市)
대마(對馬)(53)중화민국 대북시(中華民國 臺北市)
나. 요
상경임황부(上京臨黃府) (58)감숙성 란주시(甘肅省 蘭州市)
중경대정부(中京大定府) (60)감숙성 정서현(甘肅省 定西縣)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 (77)섬서성 미현(陝西省 眉縣)
서경대동부(西京大同府) (59)청해성 서녕시(靑海省 西寧市)
남경기진부(南京祈津府) (67)감숙성 천수시(甘肅省 天水市)
해주(海州) (79)섬서성 부풍현(陝西省 扶風縣)
다. 송
개봉부(開封府) (거)감숙성 영흥현(甘肅省 永興縣)
하남부(河南府) (너)섬서성 남정현(陝西省 南鄭縣)
응천부(應天府) (더)사천성 성도시(四川省 成都市)
제남부(濟南府) (러)사천성 남부현(四川省 南部縣)
강릉부(江陵府) (사)사천성 노현(四川省 노縣)
광주(廣州) (타)광동성 광주시(廣東省 廣州市)
라.동여진
영고탑(寧古塔) (54)북경시 동성구(北京市 東城區)
평양(平壤) (55) 하북성 승덕시(河北省 承德市)
흥주(興州)(56)요녕성 안산시(遼寧省 鞍山市)
대륙의 성(省)지명도
블로그 > 자료로 정리해본 한국고대사
1)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 초기에는 상주尙州(절강성 구주시), 후기에는 안동安東(절강성 항주시)
2) 안서도호부安西都護附 : 초기에는 감숙성 장가천현, 후기에는 하남성 정주시
3)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 초기에는 영암靈岩(호남성 소산시),후기에는 부평富平(광동성 낙창시)
4)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 : 영주寧州(하북성 석장시)
5)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 산서성 원성시였다.
4도호부는 5도호부에서 안변도호부가 제외된다. 5도 양계는 다음과 같다.
1) 왕경개경부王京開京府 : 개경부開京府, 산동성 임치구
2) 양광도楊廣道 : 양주楊州, 산동성 제남구 장구시
3)경상도慶尙道 : 경주慶州, 안휘성 봉양현
4) 전라도全羅道 : 전주全州, 호북성 의성시
5)서해도西海道 : 해주海州, 하남성 정주시
6)교주도交州道 : 교주交州, 하북성 형수시
7)북계北界 (영주寧州, 하북성 석가장시河)
8)서계西界(평양平壤, 섬서성 서안시)
대륙 고려의 지명이 한반도로 옮겨옴에 따라 대륙의 서계가 반도에서는 동계와 북계로 나뉘고, 또 대륙의 북계는 반도에서는 서계가 된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양계가 동계와 북계로 되어 있는데 이는 조작된 것이다. 즉 한반도에 지명을 옮겨 놓은 상황을 기초로 재편성해서 기록했던 것이다. <고려사>의 동계에 속한 것으로 되어있는 동주, 영흥진, 함주, 길주등은 평양과 함께 서계에 속해 있었고 북계에 속해 있는 평양, 녕주, 연주중 평양은 서계에 속해 있었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만주와 한반도는 우리의 강역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기록으로 전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는 <고려사>와 <환단고기>에 따르면 BC 719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가 환국시대인데 천제인 환인께서 통치하던 시기로 12개의 부족 국가로 구성 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환국은 7대代 3301년 계속되었는데 대륙 청해성 황중현에 도읍했다. 이때의 환 12개국은 대륙의 감숙성, 신강유오이자치구, 영하자치구, 청해성, 섬서성에 걸쳐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환국은 BC 3898년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지는데 환웅천왕桓雄天王이 통치하던 시대였다. 이때를 신시개천神市開天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단기를 년호로 쓰다가 지금은 쓰지 않고 있는데 신시 개천을 환산하면 서기 2002년은 신시개천 5900년이다.
하한족들이 그들의 국가 기원으로 잡고 있는 헌원軒轅의 중토웅국中土雄國의 개국은 BC 2679년으로 그들의 기원은 4681년이다. 신시개천은 5900년으로 하한족들보다 1219년이 앞선다. 하한족들은 명 이후 자신들의 역사가 배달신시의 역사보다 뒤늦게 시작된 사실을 밝히지 못하도록 하는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단군의 신시神市 개설과 환웅의 신시 개천을 혼동, 서기 2002년을 개천 4335년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서기 2002년은 신시개천 5900년이고 단기 4335년인 것이다.
환웅천왕께서는 BC 3898년 감숙성 평량시에 신시를 개설했는데 이때의 배달국은 감숙성, 영하자치구, 섬서성, 사천성, 호북성을 중심으로 13대 1192년을 지속하다가 BC 2707년 자오지천왕慈烏支天王 때 남쪽으로 옮겨 사천성 광원시에서 청구국靑丘國을 건국한다.
청구국은 5대 374년 지속되었고, BC 2333년 임검단군壬儉檀君께서 감숙성 통위현에서 단국檀國을 건국한다. 이때 하한족의 조상인 요는 감숙성 주천시에서 당을 건국하고 단국에 대항한다. 단국은 구봉후국九封候國으로 구성되었다. 이 아홉 나라들은 사천성, 감숙성, 섬서성, 하남성, 호북성이 걸쳐 있었다.
단국 이후 부여조선, 부여조선 이후 대부여, 대부여 이후 북부여와 삼한, 고구려, 백제, 가락, 가야, 신라를 거쳐 고려에 이르기까지 단국 이래의 대륙의 강역은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대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륙에서 건국한 근세조선은 대륙의 땅을 명에게 내주고 한반도로 이전해 왔다.
한반도는 대체로 부여조선시대부터 마한과 막조선의 영향권에 있었고 AD 5세기까지는 고구려의 강역이었다. 6세기에 이르러 한반도는 백제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고, 7세기 말엽에는 신라의 강역이었으며, 그 이후에는 신라를 이은 고려의 영토였다.
한반도는 고구려의 강역으로 편입될 때부터 근세조선이 한반도로 이전할 때까지도 탁라로 불렀다.
만주는 청으로 이어졌는데 명에 흡수되기 전에는 만주국滿珠國이었다. 만주국은 명대에 건국되었고 고려와 인접해 있을 때는 동여진의 강역이었다. 동여진은 한때 요의 영향 하에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요, 금, 원의 세려권 밖이었다. 발해와 고구려의 강역이었고 진조선과 진한의 강역이었다. 만주, 즉 동여진은 발해의 멸망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강역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다만 신라 왕족의 후예들이 이곳으로 진출 동여진, 만주국, 그리고 청을 건국, 대륙 전체를 장악했던 것이다.
고려는 AD 1368년 건국한 명에게 섬서성의 영토를 빼앗기고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절강성 등의 강역을 점차로 잠식당하면서 왕조를 마감했다.
명과 일전을 겨루려했던 전쟁에서 이성계 장군의 반란으로 고려는 멸망하고 근세조선이 건국되는데 근세조선이 건국할 당시의 강역은 산동성을 중심으로 하남성, 하북성, 안휘성, 강소성을 확보하는 정도였다. 근세조선으로서는 새로운 모색이 불가피함으로써 한반도로의 천도를 단행했다. 결국 대륙의 영토를 포기하게 되었고 만주국과 남북으로 대치하게 된다 <지도 30 참조 <-- 책 뒷 편에 있음 참조>
근세조선이 만주와 대치하게 될 시기의 만주의 추장이 이만주李滿住였다. 이만주의 만주국이 차지하고 있던 강역이 오늘날의 만주이다. 이 지역은 북위44도, 즉 길림성의 장춘시를 지나는 선을 경계로 남북만주로 구분한다. 하한족의 왕조가 내몽고자치구, 영하자치구, 섬서성, 하남성, 산서성, 하북성, 호북성, 호남성, 절강성, 강서성, 안휘성, 강소성, 산동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영토로 장악한것은 명이 최초였다.
26, 고려, 금, 송, 동여진
-AD 12세기의 대륙
27, 고려, 원, 동여진
-AD 14세기의 대륙
29, 조선 건국시의 대륙
가. 조선 개경(開京) (1)산동성 임치구(山東省 臨淄區)
한양(漢陽),1 (5)산동성 제남시(山東省 濟南市)
한양(漢陽),2 (6)서울.종로구(서울.鍾路區)
강화(江華)(11)강소성 진강시(江蘇省 鎭江市)
경주(慶州)(12)안휘성 봉양현(安徽省 鳳陽縣)
라주(羅州)(13)호남성 장사시(湖南省 長沙市)
탐라(耽羅)(14)호남성 형양시(湖南省 衡陽市)
나. 명
남경(南京)(나)사천성 성도시(四川省 成都市)
북경(北京)(다)감숙성 천수시(甘肅省 天水市)
심양(瀋陽)(아)감숙성 장가천현(甘肅省 長家川縣)
다.만주
평양(平陽)6 하북성 승덕시(河北省 承德市)
30,근세조선, 명, 만주
-15세기 초의 대륙
가.근세조선
개경(開京) (가)산동성 임치구(山東省 臨淄區)
개성(開城)(타) 경기도 개성시(景機道 開城市)
한양(漢陽),1 (나)산동성 제남시(山東省 濟南市)
한양(漢陽),2 (사)서울.종로구(서울.鍾路區) 광주(廣州)(다)산서성 태안시(山西省 泰安市)
충주(忠州)(라)산동성 래무시(山東省 萊蕪市)
평양(平壤)(아)평안남도 평양시
경주(慶州)(자)경상북도 경주시
전주(全州)(차)전라북도 전주시
라주(羅州)(카)전라남도 나주시
함흥(咸興)(파)함경남도 함흥시
나. 명
중도(中都)(1)호북성 십언시(湖北省 十堰市)
남경(南京).1 (2)사천성 성도시(四川省 成都市)
남경(南京).2 (25)강소성 남경시(江蘇省 南京市)
북경(北京).1 (3)감숙성 천수시(甘肅省 天水市)
북경(北京).2 (22)북경시 동성구(北京市 東城區)
심양(瀋陽)(15)감숙성 장가천현(甘肅省 長家川縣)
경주(慶州)(23)안휘성 봉양현(安徽省 鳳陽縣)
라주(羅州)(29)호남성 장사시(湖南省 長沙市)
탐라(耽羅)(30)호남성 형양시(湖南省 衡陽市)
광주(廣州)(33)광동성 광주시(廣東省 廣州市)
다. 만주
호륜(扈倫) 1 길림성 장춘시(吉林省 長春市)
32. 명의 지명이동
이동전 위치(현지명) 이동후 위치(현지명)
1.감숙성 천수시(甘肅省 天水市) (1)북경시 동성구(北京市 東城區)
대흥(大興),대도(大都)북경 연경 북경(北京), 연경(燕京)
2.사천성 성도시(四川省 成都市)응천(應天) (2)강소성 남경시(江蘇省 南京市)
3.사천성 영산현(四川省 營山縣)임치(臨淄) (3)산동성 임치구(山東省 臨淄區)
4.사천성 남통시(四川省 南統市)익도(益都) (4)산동성 청주시(山東省 靑州市)
5.감숙성 위원현(甘肅省 渭源縣)평양(平陽) (5)산서성 임분시(山西省 臨汾市)
6.감숙성 란주시(甘肅省 蘭州市)서안(西安) (6)섬서성 서안시(陝西省 西安市)
7.감숙성 임하현(甘肅省 臨夏縣)장안(長安) (7)섬서성 장안현(陝西省 長安縣)
8.섬서성 미현(陝西省 眉縣)요양(遼陽) (8)요녕성 요양시(遼寧省 遼陽市)
9.감숙성 장가천현(甘肅省 長家川縣)심양(瀋陽) (9)요녕성 심양시(遼寧省 瀋陽市)
10.감숙성 회령현(甘肅省 會寧顯)개원(開元) (10)요녕성 개원시(遼寧省 開原市)
11.감숙성 영흥현(甘肅省 永興縣)개봉(開封) (11)하남성 개봉시(河南省 開封市)
12.섬서성 남정현(陝西省 南鄭縣)낙양(洛陽) (12)하남성 낙양시(河南省 洛陽市)
13.사천성 충현(四川省 忠縣)항주(抗州) (13)절강성 항주시(浙江省 抗州市)
14.광서성 융안현(광서省 融安縣)임안(臨安) (14)절강성 임안현(浙江省 臨安縣)
15.귀주성 귀양시(貴州省 貴陽市)남창(南昌) (15)강서성 남창시(江西省 南昌市)
16.사천성 봉절현(四川省 奉節縣)온주(溫州) (16)절강성 온주시(浙江省 溫州市)
17.사천성 만현시(四天省 萬縣市)고우(高郵) (17)강소성 고우시(江蘇省 高郵市)
18.사천성 달천시(四川省 達川市)수(壽) (18)안휘성 수현(安徽省 壽縣)
19.사천성 양중시(四天省 양中市)곡부(曲阜) (19)산동성 곡부시(山東省 曲阜市)
20.귀주성 습수현(貴州省 습水縣)장사(長沙) (20)호남성 장사시(湖南省 長沙市)
21.섬서성 서향현(陝西省 西鄕縣)서화(西華) (21)하남성 서화현(河南省 西華縣)
22.사천성 회원현(四川省 懷遠縣)회원(懷遠) (22)안휘성 회원현(安徽省 懷遠縣)
23.감숙성 무산현(甘肅省 武山縣) (23)하북성 탁주시(河北省 탁州市)
24.감숙성 예현(甘肅省 禮縣) (24)산서성 려성현(山西省 黎城縣)
25.청해성 민화현(靑海省 民和縣)태원(太原) (25)산서성 태원시(山西省 太原市)
26.사천성 의빈시(四川省 宜濱市)무창(武昌) (26)호북성 무한시(湖北省 武漢市)
27.사천성 합천시(四川省 合川市)양주(揚州) (27)강소성 양주시(江蘇省 揚州市)
28.사천성 준의시(四天省 遵義市)형양(衡陽) (28)호남성 형양시(湖南省 衡陽市)
29.감숙성 조양현(甘肅省 조陽縣)상(商) (29)섬서성 상주시(陝西省 商州市)
30.사천성 자중현(四川省 資中縣)진강(鎭江) (30)강소성 진강시(江蘇省 鎭江市)
31.청해성 평안현(靑海省 平安縣0 (31)감숙성 천수시(甘肅省 天水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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