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컴퓨터들 연결해 수퍼컴처럼 사용
조디 포스터 주연의 공상과학(SF)영화 ‘콘택트(Contact)’에는 인터넷에 연결된 수백만대의 PC와 전파 망원경을 하나로 묶어 외계 생명체를 찾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가 등장한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지구상의 수많은 ‘놀고 있는’ 컴퓨터들을 활용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 여기에 기초가 된 개념이 현재의 월드와이드웹(WWW)을 대체할 ‘차세대 인터넷’으로 기대를 모으는 ‘그리드(Grid)’다.
‘그리드’란 고성능 컴퓨터,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각종 정보통신 첨단장비 등을 네트워크로 연동해 상호 공유하는 핵심기술과 운용체계를 말한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를 위해 전세계 컴퓨터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마치 하나의 수퍼컴퓨터처럼 쓰자는 개념이다.
그리드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기존 컴퓨터 기술로는 어려웠던 고속연산과 대량 데이터 처리가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생명공학·환경공학·가상현실(VR) 등 첨단 연구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98년부터 인간게놈 지도 작성, 항공기 통합 설계, 지진 예측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그리드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암연구재단에서는 백혈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 그리드를 도입했다. 유럽은 99년부터 연구기관간의 네트워크 ‘TEN’ 기반의 ‘유로 그리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작년부터 물리학 연구를 위해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을 중심으로 그리드 구축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정보통신부가 최근 차세대 인터넷 기반구축을 위한 국가 그리드 기본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기로 했다. 향후 5년간 435억원을 들여, 그리드 운영센터를 구축하고 핵심 기술인 그리드용 미들웨어 연구개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통부는 이 분야의 전문인력 모임인 ‘그리드포럼 코리아’를 결성하는 등 사업을 총괄하고,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그리드 관련 응용 프로젝트를 적극 발굴해 추진하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드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형 고부가가치 연구성과 창출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리드 이론의 창시자인 미국 시카고대의 이안 포스터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그리드에 대해 “새로운 정보통신(IT)의 사회간접자본(SOC)”이라고 평가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월터 훌랜드 교수는 “웹이 IT의 맛을 보여줬다면 그리드는 비전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황철증 인터넷정책과장은 “그리드는 단순한 자원 공유 이상의 개념”이라며 “기초과학 기술의 해법을 제시해 줄 뿐 아니라,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또 한차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