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피터 마스터스 {영혼의 의사}’를 읽으며 ‘좌충우돌 자중지란의 논리전개를 하시는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 정신, 혼란스런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 정신’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ㅡ파악하면서도 제 정신까지 혼란스러워짐을 느꼈습니다.ㅡ 물론, 그 하나가 “새 생명 씨앗”이 곧 “새로운 본성”임에도 “수태 시 (새) 생명의 씨앗을 뿌리시고” “출생(출산) 시 새로운 본성을 받게 된다.”는 서술이었습니다.
{영혼의 의사} [제7장 중생은 순간적인가, 연속적인가?] <존 오웬은 연속적 중생관을 가졌다.>, <토마스 굳윈도 연속적 중생관을 가졌다.>, <존 플라벨도 연속적 중생관을 가졌다.>······. 저는 {영혼의 의사}를 읽기 전까지 ‘청교도 신학자들이신 존 오웬, 토마스 굳윈, 존 플라벨 목사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분들 존함조차도 몰랐습니다. ‘존 머레이 목사님 중생론을 두고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이 “변종”, “미혹”, “원조”의 근거(텍스트)로 삼으신 청교도 신학자들 중생론’을 모르는 저로서는 당연히 불신자도 가진 자세로서 ‘정말 그러한가?’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교도 신학자들 중생론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자세(생각)로 동네 도서관을 살펴 ‘노병기 {거룩한 구원}’을 빌린 날이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구원} [제38장 존 오웬의 중생론]을 읽은 뒤 그날 밤 ‘{영혼의 의사}<존 오웬은 연속적 중생관을 가졌다.>’ 전문과 ‘{거룩한 구원} [제38장 존 오웬의 중생론]’ 중요한 부분을 타이핑했습니다. 그리고 카페 {강릉예명}에 ‘피터 마스터스 {영혼의 의사}<존 오웬은 연속적 중생관을 가졌다.>’를 올렸습니다. 그날 밤 아홉시 삼십삼분이었습니다. ‘노병기 {거룩한 구원} [제38장 존 오웬의 중생론]’도 올렸습니다. 그날 밤 아홉시 오십삼분이었습니다. 다음은 {강릉예명} ‘노병기 {거룩한 구원} [제38장 존 오웬의 중생론]’에 그 다음 날 밤에 쓴 제 댓글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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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 11.12.22. 22:54
저는 ‘존 머레이 목사님 구원론은 존 오웬 목사님 구원론의 변주(Variation)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 관점에서 보자면, 존 오웬 목사님 구원론 역시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 관점에서는 “변종”, “미혹”의 구원론이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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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1) 끝에 저는 {강릉예명}에 ‘{영혼의 의사} 비평문 <존 머레이 구원론을 두고 피터 마스터스는 Text 비평에 충실했는가? ①, ②>’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이 비평문 <①>과 <②> 끝 단어는 “다음에”였습니다. “다음에” 첫째의미는 ‘이어서 {영혼의 의사} 비평문 제3, 4편······을 계속 쓰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릉예명}에 이 비평문 <②>를 잇는 비평문을 쓰지 않은 가장 중요한 까닭은 ‘혼란스런 내 정신’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혼란은 ‘{영혼의 의사}에 숨어 있는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 정신의 혼란스러움’에 영향을 받은 혼란이었습니다. ‘뒤죽박죽 논리를 전개하는 {영혼의 의사} 문제는 피터 마스터스 독해력 문제나 논리력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의사}에서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영은 진짜 미혹의 영일지도 모른다. 그 미혹의 영이 지금 내 정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으로 이 비평문 <②>를 잇는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내 정신까지 혼란스럽게 만든 {영혼의 의사}’는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영혼의 의사}는 바른 비평을 낳는 ‘정말 그러한가?’ 자세를 잠재우는 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교도 신학자들 중생론에 대한 2차 자료’인 ‘노병기 {거룩한 구원}’을 끝으로, 이른바 “스토커” 기질이 있는 저에게 ‘청교도 신학자들 중생론을 2차 자료가 아닌 1차 자료를 통해 더욱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마음, 열심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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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여곡절······.
* 2011년 12월 13일 ⇨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양무리 마을}에서 탈퇴하심.
* 2011년 12월 어느 날 ⇨ 홀리조이 목사님께서는 탈퇴하신 강릉예명 목사님을 두고 “미혹의 영”이라는 말을 쓰시면서 {양무리 마을}에서 강릉예명 목사님 인격을 확인사살하는 ‘희롱의 말 잔치’를 벌이심. {양무리 마을} 회원 몇 분은 이에 호응하심. 나는 댓글란에서 나는 “저에게는 상대방 희롱의 말들을 업그레이드해 되돌려주는 재능이 있습니다.”는 댓글을 쓰며 손성은 목사님과 설전을 벌임. 그리고 결국 손성은 목사님께서 게시글을 삭제하심.
* 12월 26일 월요일 아침 ⇨ {강릉예명}에 강릉예명 목사님께서 <연속적 중생관 논의에 대한 정리된 입장> 올리심. ≪일종의 치킨게임처럼 이 소중한 교리가 논단되는 것에 불편을 느낍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살펴보고 이 문제를 그만 논의하고자 합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예장 고신과 예장 합신 조직신학 교수님들께 연중론에 대한 문의 요청을 했다.’는 몸통 글과 ≪아무쪼록 공교회 질서 가운데서 교리사적 원만한 이해를 통해 이 문제가 균형 있게 정리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으로 마치는 글이었음.
* 12월 26일 밤 ⇨ {영혼의 의사}를 읽으며 ‘{영혼의 의사} 뒤죽박죽 논리전개, 논리오류’를 파악해 둔 나는 퇴근 뒤 <연속적 중생관 논의에 대한 정리된 입장>을 읽고, 아쉬운 마음과 함께 해방감을 느낌. 그리고 댓글을 두 개 씀. 둘째댓글은 ≪‘정말 그러한가?’ 하는 자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저는 {양무리 마을}에서 ‘희롱의 말’들이 넘치는 것을 보며 불편한 마음과 함께 안타까웠습니다. 그렇더라도 {양무리 마을}에서 ‘저주의 말’들이 넘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양무리 마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희롱의 말들은 ‘원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말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사랑은 요한일서에 적힌 ‘중생의 증거(발현)’로서 “형제에 대한 사랑”은 아닙니다. 다만 ‘중생의 증거(발현)’로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원수에 대한 사랑”일 뿐입니다. 이만 줄입니다.≫이었음.
* 12월 26일 밤 ⇨ {양무리 마을}에서 ‘강릉예명 <연속적 중생관 논의에 대한 정리된 입장>’ 내용을 ‘{양무리 마을}에 전하신 정야베스 님’ 과 홀리조이 목사님께서 ‘회롱의 말 잔치’를 벌이신 것을 발견함.
* 12월 27일 화요일 새벽 ⇨ {강릉예명} ‘<연속적 중생관 논의에 대한 정리된 입장>’에 ≪강릉예명 목사님 뜻을 따르려고 했습니다만, 이번 논의에 깊이 참여한 저 역시 이 논의를 마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제 견해를 위 댓글보다 자세하게 적고 싶습니다.≫는 댓글을 씀.
* 12월 29일 목요일 아침 ⇨ ‘{영혼의 의사} 뒤죽박죽 논리전개’ 때문에 ‘혼란스럽게 된 정신’을 느끼며 ‘{영혼의 의사} 비평문’을 타이핑하기 시작함. 논리전개가 엉키면 ‘성신님의 조명’을 바라며 애써 정신을 가다듬어 ‘비평문에 논리오류가 없나?’를 살피고 살펴, 고치고 고침.
* 12월 29일 낮 두시 이십분 ⇨ {강릉예명}에 <존 머레이 구원론을 두고 피터 마스터스는 ‘Text 비평’에 충실했는가? ①> 올림.
* 12월 29일 밤 일곱시 십구분 ⇨ {강릉예명}에 <존 머레이 구원론을 두고 피터 마스터스는 ‘Text 비평’에 충실했는가? ②>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