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명가 초계정씨[박사공파 정온[鄭蘊]저택대지1500평70칸건물
소재:경남거창버스터미널에서15분정도가면 강동마을나타나면 마을중앙에 桐溪고택이있다
※정온 저택은 한국의 명가중 손꼽을 수 있는 명가중하나인 선조.광해. 인조 세왕대에걸쳐
활동한 동계 鄭蘊[1569-1641]집이다
이고택은 초계정씨의 일찍부터 과거급제한 기록이있다 고려시대 과거합격자 101명에 명단이 실려있는 정사방목[丁巳榜目]이 고택에서발견된 것이다 고려말 우왕3년에 치른 국자감시에서 장원급제한 정전[鄭悛]에게수여한 이원본은 합격생101명의이름을수록한국보급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동계 정온에 대해알아보면 동계가46세되던해 광해군이 영창대군죽이고 부왕인 선조계비이며 영창대군 생모인 인목대비마져 페출하려하자 동계는 상소문에서 임금이지금페륜행위를 저지르고있다고 직언하자 광해군은 동계[鄭蘊]을제주도 대정현에 10년동안귀양가서 위리안치형을받았다 기록에의하면전국의 유생들이며 부녀자들까지 동계의상소문을 잃지않은사람이없다하였다함 동계를 옹호하는 전국선비들 때문에 죽지 않고 재주도에유배되었다
동계가충절의 선비로존경받은또하나의사실은 병자호란때[남한산성에서오랑케한테무릎꿇은임금의취욕행위]였다 1636년 동계는 남한산성에서 오랑케와 화의를 적극반대했으나 결국화의가성립되자 동계는칼로 배를긋고 자살를 기도하였다주욕신사[主辱臣死:임금이욕보면신하는죽어야한다]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몸숨이 마음대로 끊어지지않자 덕유산 모리[某里]라는곳에 기거하면서 죽을때까지 미나리와 고사리를 먹고살았다 고사리를 먹고 살았다하여 은거지를 고사리 미[薇]자를 넣어서 채미헌[埰薇軒]이라는이름으로전해진다 요즘 후손들은 재사지낼때 반드시 미나리와 고사리를 제사상에올린다 초계정씨는 고사리와 미나리는 채소가아니라 의리와 절개의 상징이라한다
종가의 저택은1500평대지와70칸의 건물로 관리하기무척힘들다한다 수많은관광객과 봉제사.접빈객등으로 한달평균1000만원에 경비가든다고한다
이집 宗婦인 崔熙[1926년9월11일생]씨가유명하다 요리솜씨가유명하여 요리잡지. 여성잡지에서 할머니에 요리솜씨에 대하여 자주취재해간다 이분은 한국최고부자집이자12대만석꾼을 자랑하는 경주최부자집 딸이다 현재경주최씨종손인 최염씨누나이다 또한 사랑채에가면 모의라는 편액이있다
1909년 의친왕 이강[1877-1962]공이 이사랑채에서40일동안 머문적이있다 이강공은 구한말 승지를지낸 이집종손 정태균과 아주친한사이로 이집에와서 머물러다 그때남긴 친필이모와[某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