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모습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기에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탈출24,17)
제1장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2083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이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22,37).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아,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6,4)라는 장엄한 부르심에 울려 나오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셨다.십계명은 먼저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을
언급한다.이어서 계명들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사랑의 응답을 제시한다.
제1절 첫째 계명
나는 너를 이집트 땅,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 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된다.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탈출20,
2-5).2)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마태4,10).
Ⅰ.“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섬겨라”
2084하느님께서는 “나는 너를 이집트 땅,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었다.”(신명
5,6)고 말씀하시는 그 백성의 역사 안에서,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해방시켜 주시는 당신의 행업을 상기시킴으로써 당신을 알리신다.첫째 말씀에는 율법의 첫째 계명이 담겨 있다.“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된다”(신명6,13-14).하느님의 첫째 요청과 정당한 요구는 인간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흠숭하라는 것이다.
2086“첫째 계명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포함하다.‘하느님’이라고 하면,한결같고 변
함이 없으며 항상 동일하신 분,성실하고 악이 전혀 없는 온전히 의로우신 분을 말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그분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해야 한다.그 누가 전능하고 인자하며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께 희망을 걸지 않
을 수 있겠는가?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무한한 호의와 애정을 생각하면,누가 그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러기에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계명의 시작과 끝에 ”나는 주님이다“라고 반복하신다.”
믿음
2087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계시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안에 우리 윤리 생활
의 원천이 있다.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순종’을 첫째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그는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모든 도덕적 탈선의 시작이고 이유라고 설명한다.하느님
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그분을 믿고 그분을 증언하는 것이다.
2088첫째 계명은 현명하고 조심스럽게 우리의 믿음을 기르고 지키며,믿음과 대립
되는 모든 것을 물리칠 것을 요구한다.믿음을 거슬러 짓는 죄에는 여러 가지 양상
이 있다.
믿음에 대한 고의적 의심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교회가 믿으라고 제시하는 것
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소홀히 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본의 아니게 의심하는
것은 믿기를 망설이거나,신앙에 대한 반론이나 신앙의 어두움으로 생겨나는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의심을 고의적으로 키우면 정신적으로 소경이 된다.
2089불신은 계시 진리를 무시하거나 그것에 동의하기를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것
이다.“이단 異端이란 세례 받은 후 거룩한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어떤 진
리를 완강히 부정하거나 완고히 의심하는 것이고, 배교 背敎란 그리스도교 신앙
을 전부 포기하는 것이며,이교 離敎란 교황에게 순종하거나 그에게 속하는 교회
구성원들과 친교 맺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희망
2090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시고 인간을 부르실 때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할 수 없다.인간은 그 사랑에 응답하여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는 능력과,사랑의 계명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주시
기를 바라야 한다.희망은 하느님의 복과 지복 직관을 확신에 넘쳐 기다리는 것이
다.희망은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벌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2091첫째 계명은 희망을 거스르는 죄, 곧 절망이나 자만과도 관련된다.
절망으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시거
나 죄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버린다.절망은 하느님의 선함과 의로움과
(하느님은 당신 약속에 성실하시다.)그리고 그분의 자비로움을 거스르는 것이다.
2092자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하늘의 도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
각하여)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는 형태도 있고,(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용
서를 얻고 공로 없이도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하느님의 전능과 자비
를 과신하는 형태도 있다.
2094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여러 가지로 죄를 지을 수 있다.무관심은 하
느님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며,하느님께서 먼저 사랑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그 사랑의 힘을 부인하는 것이다.배은은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하지도 않고,사랑으로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냉담은 하느님
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주저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며, 그 역동적 사랑에 자
신을 내맡기기를 거부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영적 게으름acedia은 하느님
에게서 오는 기쁨을 거부하고,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혐오하기까지 하
는 것이다.하느님에 대한 증오는 교만에서 비롯된다.이는 하느님의 사랑과 대
립하는 것으로서,하느님의 선하심을 부인하고,하느님을 죄로 엄단하고 벌을 주
시는 분으로 여겨 저주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 오는 날 만나자/정호승)
“최근 들어 기혼여성의 취업률 증가와 이혼율 상승으로 한부모가족이
증가하면서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조부모-손자녀관계는 조부모의 노년기에 새롭게 형성되는 가족관계로,
한세대를 건너뛰고 이루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에 돌봄을 둘러싼 의무보
다는 문화와 전통을 전달하는 관계의 성격이 큼.
1.조부모는 손자녀를 돌보면서 젊어지는 느낌을 받고 생의 영속감을 느끼며,자녀를 기를 때 잘하지 못했던 점을 수정하여 손자녀를 돌보면서 기쁨과 만족감을 얻음.
2.경제적인 원조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생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조부모의 만족감
증진에 기여한다고 보고됨.
3.손자녀 양육자라는 역할을 통해 조부모는 생의 의미를 찾고 성취감과 생에 대한
만족을 얻음.”(노인복지론/성미애 著)
“무보수 돌봄노동”
행복한 주말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