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에 가듯 윔블던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만난 한인들
7월 14일, 알카라즈와 조코비치가 결승하던 날, 13번 게이트에서 들어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서 있었다. 결승을 관전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고급 파티에 가는 사람들처럼 화려하고 멋진 복장을 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윔블던은 화이트 칼라로 선수들의 복장 규제가 있는 만큼 심판부터 라인즈맨, 안내요원, 경찰등등 모두가 정복 차림 및 일관성 있는 칼라의 티셔츠로 의상만 보아도 무슨 일을 담당하고 있는지 알 정도로 차별을 해 놓았다.
온통 초록과 보라로 치창을 한 올잉글랜드테니스클럽은 곳곳에 장식해 놓은 꽃도 윔블던 숍에서 파는 의상이나 모자, 우산 등등도 보라와 그린이 주를 이룬다. 하물며 쓰레기통도 같은 색상으로 통일된 멋이 있다. 결승을 관전하러 온 케이트 왕세자빈 조차도 보라색의 원피스를 입었으니 색상이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알카라스와 조코비치 결승 경기가 시작되자 몇 만 명이 몰려 있는 힐에 올라가 보았다.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윔블던 기간 내내 봉사했던 모든 보안 요원들이 입구부터 언덕 끝까지 지키며 행여나 만약의 일어날 돌발 사태에 대비하듯 정렬을 하고 있었다.
45만원 하는 결승 티켓을 최대 2500만원의 웃돈을 주고서라도 볼 만 하다는 윔블던 결승을 언더그라운드 티켓(20파운드-36000원)사서 야외 대형 스크린 으로 관전하는 사람들이 대단했다. 또한 테니스를 향한 관심과 열정은 메가톤급이었다. 상황과 현실에 맞게 그들의 방식으로 윔블던을 맛보며 인생을 즐기는 수 만명의 사람들은 기적 같은 샷이 나올때마다 박자에 맞춰 협연하듯 개성 있는 제스처와 박수로 갈채를 보냈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14일간 열린 윔블던 본선에 12일 동안 올 잉글랜드 클럽에 머물렀다. 하루는 손주들 운동회 참관하느라 빠지고 하루는 주니어 선수들이 모두 탈락한 그 다음 날 내셔널갤러리에 가서 잠시 문화 탐방하느라 결석했다. 한국주니어 대표선수의 엄마가 말하기를 ‘승패와 관계없이 윔블던의 잔디에서 라켓을 들고 뛴다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 한 그 뜻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9년 전, 호주오픈도 예선부터 결승까지 사이드 취재했지만 윔블던은 돈이 있어도 웬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면 올 수 없는 곳이다. 기자 주변의 동호인들은 윔블던만큼은 직관하는 것이 버킷리스트라고 하는 분도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품격있고 전통 있는 이 대회는 사실 런던에 와도 올잉글랜드클럽 안으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아서 이기도하다. 10~7시간 줄서서 표를 사거나 5년짜리 채권을 1년 전에 8천만원 정도에 사야 티켓을 구 할 수있기 때문이다.
윔블던에 취재를 간다하니 지인들은 십시일반 온라인 혹은 봉투를 건넸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여러 사정 때문에 대신 좋은 경기 많이 보고 한국 선수들 많이 챙기고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 오라는 뜻으로 준다며 왕복 비행기값 훨씬 넘치도록 많은 후원을 해 주었다. 참으로 눈물 나는 찐~정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한국 선수들의 경기는 반드시 챙겨 보았다. 날마다 센터코트에 가서 유명 선수의 경기를 보며 즐기기 보기보다 우선 순위로 한국의 어린 선수들이 뛰는 현장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끼리 같은 시간대에 열린 한 선수의 경기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다 지켜보았는데 애가 타고 콧등이 시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무토막 같은 발음에 짧은 영어 실력인 기자는 한인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 한국 선수들을 응원할 때는 똑같은 심정이 되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언젠가는 센터코트에서 뛰는 선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보며 기어코 윔블던 성전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한인들을 소개 해 본다.
지난해 가족 여행을 왔다가 올잉글랜드클럽에 하루밖에 오지 못해 1년 전에 미리 비행기표까지 예약해서 온 과천의 박경이 부부를 만났다. 새벽 다섯 시부터 줄을 여섯 시간 이상 서서 대기했다가 센터코트 표를 구한 이 부부는 첫 게임부터 마지막 게임까지 관전하더니 그 이튿날 또 줄을 서서 입장했다.
박경이 부부는 “사실 이번 영국 방문은 오로지 5박 6일을 윔블던 보기 위해서 왔다”며 “10여 년간 골프에 심취했는데 지인의 권유로 테니스 라켓을 잡으면서 여직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이번 윔블던에 와서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직관하게 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를 이룬 것이다”며 “QUEUE라는 기다림의 힘듬 속에서도 오랜 전통으로 닦아 온 윔블던을 느끼고 멋진 선수들의 열정적인 경기를 통해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무작정 혼자서 라켓 메고 혼자 온 동호인을 만났다. 용감한 이 동호인은 평창동에서 테니스하는 5년차 최승희다. 일찍 센터코트에 들어가기 위해 전날 밤 아무 준비 없이 텐트에서 잠을 잤다. 꽁똥 언 손으로 받아 든 윔블던 입장권이 천국행 티켓 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졌단다. 최승희는 “그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는데 테니스를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로 윔블던에 오게 되었다”며 “이제 꿈을 이루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욱더 일상에 집중하고 테니스 실력도 더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최승희는 권순우 경기와 센터코트에서 열리는 경기를 직관했다.
호주오픈 예선부터 결승까지 관전했던 유길초는 “9년 전에 유럽여행 할 때에는 윔블던 센터코트 잔디 위에 노는 비둘기밖에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6시간 이상 줄을 서서 어렵게 들어와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니 더욱 특별하게 와 닿았다”며 “윔블던 가 보는 것을 왜 모든 동호인들이 그렇게 열망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고 했다. 또 “온통 꽃으로 장식이 된 올 잉글랜드 클럽의 분위기는 승패를 가리는 현장이라기보다는 우아한 정원에 피크닉 온 기분이 든다”고 했다.
호주 브리스번에서 온 한인들을 만났다. 루카스 한이 Boy's 14 & Under Singles에 호주 대표로 윔블던에 출전하면서 아버지 한석희씨와 평소 삼촌으로 불리던 김병관 스프링우드타워호텔 사장님이 동행하여 김동재를 응원하는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한석희 루카스 한의 아버지는 “루카스 한이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을 잘 해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호주 대표팀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촉매 역할을 해 왔다”며 “특별히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고 테니스를 한다기보다는 공부와 병행하며 스스로 자신이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인지 다양한 체험을 해 보는 것이다”고 했다.
엘리는 3년 전에 푸켓에 정착했고 2년 전부터 라켓을 들어 최근 테니스에 푹 빠져 산다고 한다. 푸켓에서 레슨을 하고 있는 영국인 코치와 함께 윔블던에 온 엘리는 “윔블던 현장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니 너무나 반갑고 끝까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응원을 했다.
엄마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팀을 만났다. 평소 테니스를 좋아해 온 가족이 즐긴다는 영국 거주민 도건이네 가족은 매 해 윔블던 대회 때마다 한국인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다고 했다. 홍예리의 첫 게임부터 예선 마지막까지 항상 곁에서 응원한 모녀의 한인 사랑은 남달랐다.
올잉글랜드클럽 근처에 사는 준우네 가족은 주재원으로 영국에 3년 머무는 동안 매 해 윔블던을 방문했다고 한다. 아들 둘이 윔블던 티셔츠에 모자까지 쓰고 김동재 선수를 응원하며 사인을 받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한인들을 만났다.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 혹은 유학생, 그리고 주재원들은 매일 만났다. 몸은 영국에 있으나 한국을 사랑하고 여전히 잘 아는 한국 선수가 뛰는 그 현장에서 애타게 응원하는 것이 제대로 윔블던을 즐기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윔블던 관전은 아무리 어려워도 한 번은 꼭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글 사진 런던 윔블던 올잉글랜드테니스클럽 송선순 2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