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책을 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글을 써온 이력으로 보면 마음도 그렇고 마땅히 수필작품의 전범(典範)이 될 것을 선보이고 싶지만 그렇지를 못하다. 마음이 그러할 뿐, 살아온 삶이 장삼이사(張三李四)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내공마저 부실한 탓이다.
살면서 역량 있는 사람들을 보면 느긋한 데가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초조한 기색을 나타낸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볼 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지금 내가 보여주는 행동이 말해 준다.
수필집을 묶어 내는데 80을 넘기면 어떻고 안 넘기고 어떨까마는 ‘80을 넘기기 전에’라는 조급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간 써온 작품을 간추려보고 있는데 거의 태작어서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런데도 책을 묶어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물리적으로 80이라는 나이의 압박도 있지만, 가정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아픈 몸이나마 곁을 지키고 있던 아내가 스물 두해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졸지에 혼자 남아 독거노인이 되었다.
마음이 허전하여 바로 동사무소를 찾았다. ‘고독사는 면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였다.
. 수년 전에 지역에서 함께 글을 쓰는 분이 홀연히 세상을 떠난 적이 있다. 혼자 살다가 고독사를 한 것이었다. 그 일이 생각나서 문의했다.
“혹시 생활 보호 대상자입니까?”
해서 아니라고 하니,
“일단 접수는 해놓겠습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신고 덕분에 외로움을 면하고 산다. 사회복지사가 전화로 “잘 계시느냐,” “아픈 곳은 없으시냐”고 안부를 묻고 찾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든든하게 생활한다.
이번에 펴낸 책은 먹은 나이가 있는 만큼 아무래도 무게감이 좀 있고, 살아온 내 모습이 그대로 담긴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의 취미생활, 가족관계, 내가 추구한 가치관, 스스로 돌아보아 잊지 못하는 일들이 담기지 않았는가 한다. 그렇지만 부족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따라서 아쉬운 대로 8이 이전의 삶을 정리한다는 데 뜻을 두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책을 내놓는다.
2024. 11.
여수 우거에서
임병식
첫댓글 '나이가 있는 만큼 아무래도 무게 감이 좀 있고 살아온 내 모습이 그대로 담긴 것, 취미 생활, 가족 관계, 추구한 가치관, 스스로를 돌아보아 잊지 못하는 일들이 담기지 않았는가! 80 이전의 삶을 정리한다' 는 글의 서문이 아주 겸손하고 손색 없는 명문입니다.
하실 말씀은 다 하시고 나이 든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많이 찾게 되겠습니다.
인간이란 나이 들 수록, 많이 안다고 생각할 수록 겸손하면 저절로 호감이 가고 친밀감이 드는 것입니다.
천하의 명문 서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초에는 서둘러 책을 낼 생각은 않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80이 되기전에 일단 마무리를 짓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편 가까이 간추려보기는 했는데 미흡한 생각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습니다.
최근작을 한데 모은 것이라 나의 마지막을 향한 생각이 그런데로 담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좋게 봐주시고 분에 넘친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문학 장르에서 수필은 특별히 작가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력서 또는 전기와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35년 수필의 길에서 만나 빚어진 1300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그야말로 간택된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에 기대감이 상승합니다 50여 편의 작품이라면 한두 작품이 선생님의 작품활동 연륜에서 1년을 대표하는 셈이군요
출간을 축하드리며 성수에 접어들어서도 더욱 완숙한 작품과 함께 왕성한 창작활동이 계속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당초에는 54편을 골랐는데 소액 출판을 하다보니 40편만 간추리기로 했습니다.
골라놓고 보아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요.
80이전에 작품을 일단 갈무리해단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