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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배규택
고향이야기 ⅩⅢ
바람의 말, 흙의 노래 :
풍기 사투리(2)
"아이고, 마카다 무고하시니껴?
날이 억수로 차니더."
지난번 첫 풍기 사투리 이야기 끝에
"부족한게 만코 못한 애기도 있고 해서"
바람의 말 흙의 노래 풍구 사투리
하나 더 썼니더............
소백산 칼바람이 볼테기를
사정없이 때리는 계절이 오면,
뜨끈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나누던 옛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마음결에 피어오릅니다.
오늘은 인삼 향기보다 더 진~하고,
풍기 사과보다 더 상큼~한 우리네
‘이바구’ 보따리를 확 풀어 젖혀
볼라카니더! 배꼽 단디 챙기고,
추억 속으로
살방살방 들어가 보입시다.....
서울 사돈과
'개' 잡고 '소' 잡은 대소동
풍기 말이 타지 사람들 귀에는
얼마나 낯선지, 모릅니다.
서울 사돈이 풍기에
처음 왔을 때 겪은 이 일화는
다시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어느 날, 서울 사돈이 풍기역에
도착하자 마중 나간 서부동 할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요.
"사돈 잘 오션니더.
집이 개잡니더. 선낱만큼만
살방살방 가면 되니더."
여기서 '개잡니더'는
집이 '가깝다'는 뜻인데,
사돈은 대접한다고 '개(Dog)'를
잡는 줄 알고 기겁을 했습니다.
"저는 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며 손사래를 치니, 할매는
"우리는 개 안 미기니더" 라며
의아해하는 사돈을 모시고
집에 도착했지요.
그리고는 미안한 듯
또 한마디 하십니다.
"우리 집은 소잡니더."
집이 '작다는 겸손인데,
사돈은 "개 안 먹는다니
소백산 한우를 잡는구나!" 하고
입맛을 다셨다지 뭡니까.
마음만은 소라도 잡아 대접하고
싶었지만, 살림살이가 매란당이라
정으로 대신했던 우리네
가난한 진심이 그립습니다.
"꼴값" 속에 피어난
알싸한 풍기 사랑
풍기 사람들 모이면 무척 시끄럽습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꼭 싸우는 것 같지요.
서로 내가 최고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억양이 쎄서 남들이 보면
사단이 날 것 같아도,
그 속엔 인삼 향보다 진한
사랑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일터 나가는
남편에게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사리마다 한 개 더 입고 가소.“
"안 춥다!" “
”허참, 꼴값하고 있니더.
주디가 새파란데도 안 추와요?“
”고치 얼어 터져가 뻔데기 되문
우엘라꼬 그래니껴? 내사마
걱정스러워 안 그래니껴?
단디 챙겨 입으소!“
겉으론 툴툴거려도
속으론 남편 몸 상할까
애태우는 게 우리 풍기 아지매들
마음 아닐까요?
풍기 고추는 "작아도 데낄이래요"
가을 햇살 아래 봉당에서
고추를 말리던 아지매들의 대화는
해학 그 자체입니다.
"풍기 고추요? 힘도 끝내주고
맛도 희한해요. 맥지 다른 고추
탐내지 말고 풍기 고추만 잡사요."
마카다 굴근데, 어쩌다 짝은거도 있니더
"작다고 업신여기지 마래요.
쪼매난 고추가 맵다는 말 모리니껴?
풍기 고추는 작든 크든 지 구실 다 해요.
아주 데낄이래요!“
이 말은 비단
고추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작고 소박해도 커서 넉넉해도
제 몫을 다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 고향 사람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장에 나온 멕기실 혼자 사시는
장씨 아재 아랫동네
사는 과수댁을 만나
”아지매요 우금 지안동 친구가
아주 대가리가 굴찍한
송이 몇개를 주니더 왜"
"이거 가지고 오늘 적에는
애호박 쑥쑥 썰어 너코
된장국이나 끼리묵으면서
소백산 막걸리 한사발 해야 될씨더"
"이따가 해 넘어가거든
맴도 싱숭생숭하고 잠도 안오고
배는 출출하거등 건너오소 ”
“사는 야기 하민서
둘이 솔차이 한잔 하시더”
“달도 발고 날도 조코 인생 머인니껴
한잔하민서 그래 사는 거지...”
“꼭 오세이 게이 밍기적 거리지 말고..
불러 줄 때가 조은 거래요”
“늘그면 처다보도 안코
얼씬도 안하니더"
썸타던 맥기실 아재의 희망은
그날 밤 이루어졌을까? 어쨌을까?
칠순 친구들의 막걸리 정담 (情談)
역전 앞 허름한 막걸리집,
삐걱대는 상 위에 둘러앉아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 털어 넣은
칠순 넘은 소꿉친구들.그 입담은
막걸리 거품처럼 부글부글 솟구치며,
추억을 안주 삼아 술술 풀려나가고,
구수하기는 씨레기국보다 더 걸쭉하고,
흥겹기는 장터 풍물놀이 꽹과리
소리보다 더 신명납니다.
”나이드이께네 왜 이리
깜빡깜빡 하는지 몰따
딸래미도 보고싶고 손주, 손녀 한국말
이자뿌리기 전에 한번 볼라꼬
미국 한번 갈라카이
여권을 어다 돈는지 헷갈리 가지고
온 방구석 뒤집어 놓고
빼따지란 빼다지 마카다 열어재키고
온 집안을 난장판 만들어 놓았잖나“
”그레이께네 또 여편네는 정신머리
어다두고 사느냐고 얼매나
구박을 하는 동 지는 뭐 엉가이
대가빠리 잘돌아가는 동
나보곤 어리하다고 막 깔보잔나 ....“
”고마 약코가 죽어 몸은
뻣뻣해지고 맥이 풀리고.........
속이 천불이 나서 씩씩거리다가
대가빠리를 베름빡에 들이받아
얼매나 아픈동 시껍했따."
그래이 우에노
그려러니 하고 살아야제 그래고
저번 장날에 산의실 칭구들 하고
술한잔 하는데 아주 남사시루와 혼났다
"사나가 자딴 시럽게 돈 멧푼 가지고
아지매 하고 생지랄을 뻐드는데......
아지매 하는 말이
울매나 웃게는 동."
"살 거는 안 살고 조디만
살아 가지고 어따 쓸라는지 몰씨더."
하시는데 내가 얼굴이 화끈거리더라
"마자 여자들은
좀 수더부리한게 조은데....
여깨이 가치 홍총망총 나대는거 보면
얼매나 미까시루운지 몰래....
하이튼 성질머리 드러운 아지매 보면
그냥 쓱 피해뿌래 게이 크일나"
"요새 날씨가 응그이 차다....
더군다나 풍구는 소백산 땜에 더 춥잔나?
요런 변덕이 죽끌드시 하는 날씨에
멋 내느라고 호껍대기
치마만 입고 댕기는거 보면
참 용하드라...
그깐여느 치마 입으나 마나지 아휴
고마 내가 다 아랫도리에 소름이 끼쳐
고재이라도 뚜거븐거 입든지 사리마다
서너개 껴입든지 하고 댕기야지
여자는 우에든동
몸을 뜨시게 해야 되는데..
그래야 병이업제....."
"야야 말도 마라
요새 도시가보면
여자들 아래도리가 바지인동
사리마다인동 희얀해
길가마다 다리 자랑 할라꼬
벗고 댕기는 여자들이 쎄발랬어
저래 자꾸 올라가다가
어디까지 올라 갈라든동 엄청스럽다
아이구 남사스럽그러
우에 그런걸 입고 댕기는 동..."
"그카고 운동하로
헬스장 가보면 완전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부터 가지고
울퉁불퉁 튀어 나온거 다 보이고
희얀 얄라꿍해
하기사 그런거라도 보민서
운동하면 힘이 좀날거래 그쟈
그래고 자꾸 가고 싶어지고 ㅋㅋㅋㅋ"
"근데 여자는
우에든동 맴이 고와야 여자지
꼬라지가 이뿌다고 여자아이잔나?
안그러나?"
"하도 세상이 숭악해가지고
베라벨 일이 다 마네"
막걸리집 라디오에선
남진의 ”마음이 고와 여자지“
노래가 흘러 나온다.
술기운 거나해지자
젊은 시절 연애하던 애기로 꽃을 피운다.
술을 여러잔 들이키던 친구가
잔을 내려 놓으며 속 깊은
애기를 털어 놓는다
"야들아 사람이 살민서 우에든동
얌통머리 업다는 소리는 듣지 말고
살아야 된데이"
"지가 필요할때는 알랑방구를 끼고
여시가치 꼬랑지를 살살치고 하디만
쪼매 가꼬 놀다가 헌신짝 맹키로
휙 던저버고 지 욕심만 채우는
야마리 까진 X들이 있어
남 잘되는 꼬라지는 보기 실코
지 주제도 모르고 꼴깝 떠느라
지랄발광 하는데
네사마 기가 맥히드라"
그 친구 푸념뒤에
원망스런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여시가튼X",
"베라처먹을X"
"쎄가만발이빠질X"
”참 철수 니는 옛날에
여자 첨 만났을 때 기분 어떳트노?
우에 남사시룹지는 안트나“
”여자 비누냄새 마트이까네
희얀하제 기분 어떠트노?
나만다리 밑 저짜로 갔띠나?
걷다가 헛발 디디가
돌맹이에 걸린척 연극하고
기습적으로 확 끌어안고
입술 포게보라고 내가
그때 알케 준대로 그래 봤나?“
”아무꺼도 못했나?
내가 시킨거 한개도 모했나?
에이구 등신!!“
"그래가 장가 가기전에
총각딱지도 못뗀거나
이 놈아야 가시나들은
은근히 바래는거여
그래고 순진한척 하느라고 처음엔
마카다 야지랑을 떨어 "
"아이고 왜 이래니껴 이래지 말에요"
"이래지만 속 마음은 응그이 바래
말만 여시 같이 순진한척 하는거여
어이구 멘자구가튼 놈!"
”니는 요새 마눌하고 방 같이 쓰나?“
마카나 대답은 안하고
눈망 멀뚱거리고 씩 웃는다
침묵을 께고 한 친구가 ”아이래
나는혼자 자는게 편해
서로 코고는 거도 안듣고
우에든동 그냥
따로따로 자는게 편하드라“
"그래 마쟈 나도 그래 카면서
이 친구 저 친구 거든다."
부부가 방을 따로 쓰는 것은
상황에 따라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단다.
수면의 질과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정서적 친밀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니 다들 알아서 해라
"우에든동 나는 혼자 자는게 편하다."
오랜만에 나온 친구가
여태 침묵하다 갑자기 입을 연다.
"요새 나는 무신 병에 걸린동 무다이
서럽고 불따구가 나고 만사가 기찬다...
우울증인지, 소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상을 흉내내는 건지.....
오늘 너들이 자꾸 나오라 하이
구체업시 나왔는데 ...
하이고 사는게 먼동
왜이리 인생이 고달픈지 몰따 ...."
"오늘 너들 하고 한잔 하면서
빼다지애기 문찌방애기, 연애애기
마눌애기 등등 들으께네
옛날 생각도 나고
웃고 떠드이께네 스트레스 다 풀린다"
"하이튼 우리 자주 만나자"
새로운 세상이 성큼 다가온다
"야들아, 그거 알제?
아트피셜 인텔리젼스,
줄여서 AI라 카는데"
"요게 바람 분 지가 한 3년은
족히 된 거 같더라. 니들도 써봤나?
해보면 희얀하다 못해 얄라궁하다!
세상이 죄다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온 기라."
"근데 있잖아, 조금만 더 지나면
세상 모든 사람들 머리
다 합친 것보다 더 똑똑한,
AGI라는 놈이 나타난다 카더라."
"그때 되면 인삼, 사과 농사도
로봇이 지어 올리고, 인견 베틀도
로봇이 덜컥덜컥 움직일 기라.
자동차 공장에선 차 조립하고,
병원에선 아픈 사람 수술하고,
집에서는 노인 돌봄에다 청소,
심부름까지 다 해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줄줄이 찍혀 나온다 카이."
"참말로 기막힌 세상이
코앞에 와 있다 아이가.
하늘에는 기지국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에너지는 우주에서 뽑아 쓰고,
공중에는 차가 둥둥 떠다니고…
우리 어릴 적 공상만화에나
나오던 꿈 같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것도 우리 살아생전에!"
그러니 말이다, “AI 조금씩 배워둬라.
치매도 예방하고,
똑똑한 노인으로 살아야지.”
"그리고 손자 손녀가 뭐든 물으면
척척 대답해주는 신세대
할매, 할배가 되야지 안켄나!"
어느덧 소백산 중턱에
노을이 뉘었뉘었 물들어 가고,
태양은 친구들 정겨운 이바구에
홀딱 반해 넘어갈 줄 모르고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있는 듯하다.
그래, 이 사람아—뭐 그리 급한가.
우리랑 같이 놀다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나.
붉게 번지는 하늘빛은
술잔 위에 출렁이고,
바람은 옛 추억을 실어 나르며
살랑살랑 춤을 춘다.
세월이야 가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노을빛에 물든 웃음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주디에서 나오는 그대로"
살 수만 있다면
사는 게 팍팍하고 '매란당' 같아도,
마음만은 '우예든동 빼시시 웃고'
살다 보면 볕 들 날 오겠지요.
서울 가서 수돗물 좀 먹었다고 억지로
끝말 올려가며 서울말 흉내 내는 것보다,
고향 오면 맘 푹 놓고
'주디에서 나오는 그대로'
사투리를 지껄이는게 정겹지 안니껴'?
날씨가 "변덕이 죽 끌듯" 하니더.
속 꼬재이 단디 챙겨 입고,
빙판길에 "자빠져서" 고생하지 마소.
그카고 정지에 바쁘제 덮어놓은
맛난 배추적에 곤짠지, 속쎄잔찌 곁들여
든든히 챙겨 드시고,
꿈속에서 소백산 정기 듬뿍 받으소.
내일 아침 눈 뜨면,
햇살이 이불 끝자락에 살포시 내려앉아
“오늘도 행복하자꾸나”
속삭여 보면서. 세상 팍팍해도,
웃음 한 숟갈에 정 한 그릇이면
그게 바로 우리네 보약 아니갠니껴?.
그으께네, 날씨 변덕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만은 늘 따뜻하게, 정겹게
살아 가시더.
2026.1.27.
배규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