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의 신통력
용(龍)은 동아시아의 신화 및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서 일찍이 중국에서는 영수(靈獸)라고 신성한 동물로 매우 귀하게 여겼는데 그 모습이 9종류의 동물의 모습을 합성한 모습으로 하고 있어 더욱 신성한 동물로 여겨 왔던 것이다. 얼굴은 낙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몸통은 뱀, 머리털은 사자, 비늘은 물고기, 발은 매, 귀는 소와 닮았고, 입가에는 긴 수염이 나 있고 동판을 두들기는 듯한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였다. 머리 한가운데에는 척수가 있는데, 이것을 가진 용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날씨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고 마음대로 먹구름을 동반한 번개와 천둥, 폭풍우를 일으키고 물을 파도치게 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인간들에게 가뭄을 내려 고통을 안겨 준다고 한다. 또한 물고기나 뱀 등 비늘을 가진 360종류의 동물들의 조상으로, 물 속을 통치하는 왕으로 여겨졌다.
용은 입에서 기를 내뱉어 불꽃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고 신통력을 써서 하늘 꼭대기나 지하 깊은 곳까지 순식간에 도달하거나, 몸의 크기와 형태를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도 있다. 이러한 용의 능력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여의주를 통해 발휘한다고 여겨졌다.
2. 중국 황제의 전설
중국의 역대 왕들은 용의 신통력 때문에 천계를 통치하는 옥황상제의 사자로 받들어져 용의 위엄을 자신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전설을 만들어 내어 황제를 용에 비유하여 황제의 얼굴을 ‘용안(龍顔),’ 황제의 옷을 ‘용포(龍袍),’ 황제의 보좌를 ‘용좌(龍座),’ 황제의 눈물을 ‘용루(龍淚),’ 황제의 덕을 ‘용덕(龍德),’ 황제가 타는 수레를 ‘용거(龍車)’라고 부르게 했으며, 조선의 역대 군주들을 칭송한 서사시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란 제목을 붙인 이유도 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3. 조선의 정궐 근정전의 황룡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정궐로써 중국 고대의 양식을 그대로 답습했으나 정문(광화문)이 중국의 5문식이 아닌 3문식으로 되어 있어 황제궁이 아닌 번왕의 궁궐수준으로 지어졌는데 임진왜란(1592년)중 노비의 환란으로 불타 없어지고 270년후인 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다가 일제시대 대대적인 파괴로 인해 원래 규모의 10분1, 건물의 80%가 사라진 것을 최근에 복원을 하고 있다.
근정전은 왕이 신하의 조하를 받거나 국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공식적인 행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근정전이란 명칭은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부지런한 가운데 맑은 정치를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중앙간 천장 중심부에 감입천장을 따로 만들고, 거기에는 채운간에서 여의주를 다루는 두 마리의 황룡을 장식하였다. 황룡은 비늘까지도 그대로 세각하였다. 이는 인간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신과의 어떤 소통을 위한 대화로 보인다. 황룡은 청룡보다 급수가 높은 까닭은 황룡은 천자이지만 청룡을 외호신이다. 그래서 청룡은 근정전 바깥 월대에 위치하면서 황룡을 지켜주고 있다. 반룡이라고도 하는 이 황룡은 헝원경이라는 거울을 갖고 있는데, 이는 왕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4. 근정전의 칠조룡
용의 발톱이 5개인 오조룡은 황제를, 발톱이 4개인 사조룡은 황태자 및 제후를 상징하였다. 조선 역시 왕은 오조룡복을, 왕세자는 사조룡복을, 왕세손은 삼조룡복을 입었으나, 말엽에는 모두 오조룡복으로 통일하였다. 다만 경복궁 근정전의 왕좌의 천장에는 예외적으로 발톱이 7개인 칠조룡이 세각되어 있다. 이는 칠조룡, 발톱이 일곱 개인 황조룡을 취한 것은 존엄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데, 예로부터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은 천자(중궁의 왕)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제후국이나 속국은 네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나 봉황을 사용했는데, 조선왕조는 제후국을 자처했으므로 당연히 왕의 상징으로 봉황을 그렸다. 1863년 흥선대원군은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아들 고종을 보위에 오르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년 뒤인 1865년 궁핍한 나라살림에도 불구하고 척신의 발호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경복궁 중건에 박차를 가하였다. 청일전쟁후 중국(청)의 국력이 약해지고 고종임금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대한제국의 존엄성과 더 이상 속국이 아니라는 것을 표방하기 위해서 근정전에 왕의 상징인 봉항을 황제의 상징인 칠조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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