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양제(隋煬帝)와 대운하
수양제는 고대 중국 수나라를 건국한 수 문제와 문헌황후의 둘째 왕자(양광)로 태어났다. 어머니 독고황후의 영향으로 방종과 사치를 일삼는 형 양용을 제치고 자신이 태자가 되었다. 태자가 된 양광은 독고황후가 죽자 금욕과 청렴한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이 평소 사모한 부황의 후궁 선화부인 진 씨에게 정욕을 품고 대신들과 시종무관과 장군들을 거느리고 궁궐로 쳐들어가 아버지 문제와 다른 형제들을 죽이고 604년~617년 중국수나라의 제2대 황제가 되었다.
(토목공사)
1, 수양제는 아버지 문제를 죽이고 후궁 선화부인 진 씨를 강간한 逆成(역성)과 悖倫(패륜)을 덮기 위 해북방족 침입을 내세워 만리장성을 새로 쌓고 부황 문제가 중단한 운하공사를 시작했 다.
2, 대운하는 북경 장강에서 황주의 황하를 연결하는 1.794km의 대운하사업에 1억 5천만 명을 강제동원 하였다.

북경에 황주를 잇는 대운하
3, 대운하에 수심이 얕을 곳을 발견하고 그 공사에 참여한 인부 5만 명을 극악무도하게 강 가에 생매장하였으며 40여개의 행궁을 만들었다.
4, 양제는 길이 200 자(78m) 높이 4층 규모의 배를 만들고 이어서 황후와 후궁 신하, 승 려, 도사 등이 탈 수 있는 크고 작은 화려한 배를 만들어 파티를 즐겼는데 그 길이가 무려 200리(약50km)에 달하였으며 모두 백성을 동원하여 견인하였다고 한다.
5, 파티에 사용되는 음식과 술은 운하의 주변 500리 안에 사는 백성들이 부담했다고 한다. 양제는 파티가 끝나면 남은 음식을 모두 구덩이를 파고 묻어 백성들의 원망을 받고 백 성을 도탄과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6, 양제는 도성을 낙양으로 옮기고 낙양의 서쪽에 서원이라는 큰 절을 짓고 도성을 쌓고 주위에 대대적인 정원을 만들고 호수바다와 바다에 3개의 인공섬을 만드는데 매월 200 만 명의 백성을 강제 동원하였다.
7, 인공 섬에 크고 화려한 정자와 누각을 짓고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는 수로를 만들고 그 수로 주변에 16개의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에 각종 희귀한 동물을 모아 사육하며 밤마 다 미녀들을 선발하여 음주가무 속에 환락과 쾌락을 즐기는 호화파티를 열었다.
8, 북방으로 유람을 떠나기 위해 백성 100만 명을 강제 동원하여 태형산에 터널을 뚫고 대로를 건설하고 성을 쌓았으며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는 이동식 궁궐을 만들었다.
(북방 및 고구려 정벌)
1차고구려 공경.
수양제는 이상의 토목공사를 하면서 북방족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고구려에 사신 을 보내 조공을 요구하였다. 고구려 영양왕은 수양제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수양제는 612년 1월에 113만38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출정 40여일 만에 요하에 도착하여 도하선을 건조하였으나 길이가 짧아 실패하고 다시 도하선을 만들어 요하를 건넜으나 요동성에서 대패했다.
2차고구려공격
수양제는 613년 3월에 35만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다시 공격하였으나 수양제 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양현감이 10만 병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고 곡사정이 고구 려에 투항한 바람에 실패하였다.
3차 고구려공격
수양제는 614년 3월에 다시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1차 2차 패배로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이 탈영하거나 백성들의 내란 속에 고구려 역시 전쟁에 지쳐 항복의사를 보이자 수양제는 철수하였다.
지금부터 약 1400년 전 수나라 백성들은 수양제의 무리한 토목공사와 고구려에 대한 무리한 정벌에 동원되어 고생하며 죽느니 불구가 되어 강제노역이나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팔이나 다리를 잘라서 복수복족(福手福足)이란 말이 생겨났다. 617년 폭정에 항거한 백성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수해와 기근이 겹쳐 반란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수양제는 폭정에 저항해오는 민심을 외면하고 자신이 만든 대운하에서 호화파티를 열고 주색에 빠져 환락을 즐기다 618년3월11일 자신의 호위장군에게 피살되어 나라를 잃고 중국역대 3대 폭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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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중에 청계천공사로 인기를 얻고 그 인기로 대통령후보가 되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계획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환경오염과 예산낭비라는 반대로 여론이 악화되고 인기가 떨어지자 공약을 공식석상에서 취소했다. 그리고 17대대통령에 당선되어 2009년 돌연 대운하 대신 4대강 정비사업계획을 발표했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를 무시하고 군인까지 동원하여 사업을 강행하였다. 정책적으로 취임 초부터 대북강경책을 써서 북한을 길들이겠다고 하면서 그 동안 이어온 남북교섭과 거래를 중단하면서 친미정책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은 핵폭탄을 실험하고 전쟁용 위성을 발사하며 천암함을 폭파하고 연평도를 포격하였다. 자신은 물론 친인척 부정과 비리와 대북관계와 외교정책실패로 인기를 잃고 임기를 마친 이명박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