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무인기의 폭격 (“승리와 비극” 제 1부)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일주일 후인 (1944년 ) 6월 13일부터 나치 독일의 무인유도탄에 의한 대영(對英) 폭격이 시작되었다. 「런던」이 그 주요 목표물이 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보복성이었다.
첫날은 4개가 날아와서 그 중 한 개는 6명의 사망자와 9명의 부상자를 냈으나 나머지 3개는 아무 손해도 주지 않았다. 본격적인 보복작전으로 그 후 5주간에 걸쳐 3천여 개가 날아왔다.
우리가 비행 폭탄이라 부른 것은 「히틀러 가「V1」호라고 명명한 것이다. 「런던」시민들은 이 폭탄을 「두우들버그(doodlebug)」혹은 「 윙윙폭탄(buzz bomb)」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폭탄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그 엔진은 정밀히 설계된 최신식 젯트 엔진이었다. 이 폭탄은 시속이 약 400마일, 고도는 약 3천 야드, 그 속에는 1톤가량의 폭약이 들어있었다. 이 폭탄은 자석나침반으로 조종되고 폭탄이 공중을 비행할 때 선회하는 소형 추진체로서 사거리를 조절하게 되어 있었다. 이 추진기는 발사지에서 '도버해협'을 건너「런던」까지 오는 동안 선회하다가 그 선회를 멈추면 지상으로 수직 낙하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 폭탄은 보통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폭발하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 컸다.
< (*처칠 수상의) 딸 「매리(Marry) 」가 하이드파크 (Hyde Park)의 고사포중대에 복무하고 있었다. (*수상 부인인)아내가 면회를 갔을 때 폭탄이 날아와서 떨어지는 목격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수상집 바로 옆에도 떨어져 숲속에 대피 중이던 고아 22명과 어른 5명이 사망하기까지도 했다고 한다.>
영국 정보기관에서 약 6개월 전에 이런 폭탄이 날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일찍 경계망을 펴둔 덕으로 가까스로 「히틀러」의 야망을 꺾을 수가 있었다. 속도가 빠른 전투기만이 겨우 이 유도탄을 쫒아가서 격추시킬 수 있었다. 일제히 발사되는 유도탄을 공중에서 정찰 대기 중이던 아군 비행기가 지상의 전파탐지기와 관측대의 신호를 받고 그 목표물을 찾아 요격하는 방식으로 격추시켰다. 비행 폭탄은 보통 항공기보다 작기 때문에 이를 찾아내기도 힘들거니와 이에 명중시키기는 더 힘이 들었다. 사거리 3백 야드 밖의 무인기를 격추시키기는 어려웠고 또 만일 2백 야드 이내로 들어가서 이를 사격하면 폭탄이 터져 우리 전투기 자체가 위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중고사포(重高射砲)로 저공비행물 사격이 가능함을 알아내서 무인폭격탄에 대처하였지만 그래도 방어망을 뚫고 내려오는 폭탄이 많았다. 그래서 이놈들을 포착하기 위해 「런던」 시내 남부와 동남부 일대에 기구를 올려 조색(阻塞) 그물망을 펼쳤다. 이 기구조색전술(氣球阻塞戰術)이 효과를 보아 232개의 폭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비행 폭탄의 발사지가 「프랑스」에 도합 96개소 있었는데 우리 폭격기가 1943년12월부터 출동하여 맹폭을 가한 결과 상당한 수의 발사기지가 없어졌으나 적(敵)은 그 후 발사지를 자꾸 신설 이장해놓고 그 공격을 계속해왔다.
나중에는 발사지 폭격보다 더 중요한 사실 즉 비행폭탄의 주요 저장소가 「파리」 교외의 대자연 버섯농장 동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요약해보면: 방어방법으로는1) 해상전투기 방어선 2) 해안포 방어선 3) 내륙전투기 방어선 4) 기구 방어선
5) 해안선에 고사포 배치 방식을 쓰고 있었다. >
신형전파탐지기와 예보기 신형시간포탄을 미국에서 구입사용 결과 8월말에는 「런던」 지역까지 날아 들어간 적 폭탄수는 7개 중에 한 개에 불과, 8월 28일은 최고기록으로 해안선에 접근한 폭탄 91개중 90개를 격추하기까지 했다. 기구가 2개, 전투기가 23개 대공포가 65개를 각각 떨어뜨렸다. 놀란 것은 적 독일 측의 반응이었다. 「런던」 시로 발사한 적 폭탄은 도합 8천 개였는데 그 중 2천4백 개만이 런던 시내에 떨어졌다. 시민 사망자수 6,184명, 중상이 17,984명.
영국은 제2의 위협인 장거리 로켓트탄 「V2호」에 대해 12개월 전부터 이것을 알아내어 만반으로 검토한다.
로겟트탄 한 개 제조비용이 전투기 6대 내지 7대 비용과 시간이 소요 되는 데 반해 그 효용성은 극히 낮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폭탄인 셈이다.
처칠 수상의 하원 연설 : 피해는 폭탄 한 발에 희생자 한 명꼴, (1944년) 7월 6일 아침 6시까지 현재 발사된 폭탄의 총수는 2,754개인데 이로 인한 우리 측 사망자수는 2,752명입니다.
결국 독일의 「V」식 무기는 실패로 끝났으나 이런 새로운 방법의 무기 위력에 큰 감명을 받은 영국은 내각에 대한 보고서에서 유도탄이 장래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을 강조하고 대자원(大資源)을 기울여 그 발전을 도모할 것을 지적하기에 이른다.
1940년대 독일의 「히틀러」가 개발한「V」형 무인 폭격탄은 오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발전하고 그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요격체계의 하나인 '사드(THAAD)' 방식까지 등장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김정은의 무모성에서 과거의 「히틀러」의 망상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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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 연합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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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미사일 요격체계도 : 사드 방식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