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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장천재주차장
운전자에게 장천재를 물으니 자기네 車만 따라오라 한다. 車를 U턴
하여 그車 뒤를 쫄쫄 따라가니 한10여분 후 장천재주차장(관광농원)
이다. 車에서 그분들 일행이 내리는데 모두 산행복장이다. 그리고
보니 제대로 된 임자에게 물어 봤던셈이다. (위 작은 사진이 산행
초입 올라가는 길인데, 단풍도 아름답지만 올라가시는 분들이 방금
우리를 인도한 카니발에서 내린 고마운 산님들이다.) 관광농원
이래서 그런지 엿장수(한명)까지 있어 분위기가 흥이 난다.
주위에는 상인들이 몇몇있었고 "호남제일 지제영산" 이라는 돌기둥
을 지나니 좌측에 "장흥군자원봉사센터" 라는 글이 새겨진 흰 텐트가
있었고 자원봉사 아주머니 세분이 무료로 커피를 따라주고 있다.
아내와 함께 한잔을 나누어 마시며 훈훈한 장흥의 인심을 피부로
느낀다. 아까 우리를 인도한 카니발의 고마운 님들도 목포에서 오신
분들 이었고, 이곳을 지나 팔각정에서 산행코스를 확정짓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데, 내려오시는 등반객 한분이(이곳분 인 모양) 제일
좋은 코스라며 1번 코스를 가라고 친절하게 권해 주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획한 대로 2번3번이 쓰여진 코스에 마음이 쏠린다. (아까
목포에서 오신분들은 이도저도 아닌, 오른쪽 다리가 놓여진 방향으로 가면서
"이 코스가 제일 경치가 좋답니다. 이리로 오시오." 하지만, 그분들의 코스는 정코스가 아닐 것이다. 나는 사전에
공부를 하고 산행에 임했으므로 2,3코스로 가려고 하는 것 이다. 그리고 보니 천관산의 정상을 향하는 코스는
이곳에서만도 네갈래의 길이요, 탑산사, 천관사,천관산 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길까지 합하면 아마도
한 열개는 될성싶다.이분들 바람에 나도 잠시 헷갈렸지만, 곧 3코스로 향한다.)
10:55 장천재
이정표에서 5분거리인 장천교(長川橋)를 지나면 전남문화재 제72호인 '장천재'(長川齋)에 이를 수 있다.
왼쪽에 오래된 노송이 장천재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그 이름이 보호수이다. 수령 600년 높이 20m 둘레2.8m 의
이 노송은 이조 3대 태종때 이 문각 건립당시에 천연수로 자라 현재에 이르고 있으므로 태고송이라 칭하며,
이 노송이 바람에 의해서 우는소리는 기상을 예측 할 수 있다고 하여, 본 지역을 장천재라 칭했다 한다.
장흥 장천재 [長興長川齋]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천관산 중턱 계곡이 있는 사묘재실.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1659년(효종 10)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1705년(숙종 31),1724년(영조 23)
개수를 거쳐 1873년(고종 10)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
평면은 ㄷ자형이며 전면은 양쪽날개 1칸씩을 누각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장대석으로 짜 올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은 원주를 세웠는데 포작이 없는 주두와 창방, 장여를 올려 결구하였다.
지붕은 중앙 용마루 부분이 ㄷ자형 양익부와 높이를 동일하게 하고 전면에서는 팔작지붕의 합각이 보이며
배면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문은 중앙 3칸에만 설치하였는데 3칸 모두 2분합이다.
존재 위백규(魏伯珪:1727∼98)는 어려서 이곳에서 수학하고 후배를 양성하였다. 현판에 적힌 시문으로 보아
유림들이 시문을 교류하였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2000년 현재는 장흥위씨 방촌계파의 제각으로서 이용된다.
장천팔경이 있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11:10 체육공원
장천재에서 5분정도 올라오면 체육시설이 나오
고 여기서 2번코스(금수굴코스) 와 3번코스
(금강굴코스) 로 나누어진다. 오른쪽으로 3번
코스 산행초입이 우리를 기다린다. 여기서 부터
선인봉까지는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 날씨가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상5도 안팍 인데,
조금 올라가니, 얼굴에서 땀이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산새들의 합창소리와 청송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니, 상쾌하기가 이
루 말할 수 없다.아내도 어제(토요일) 장비점에서
나와함게 겨울 등산외투 하나를 장만 했으므로 올라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흥이난 모습이다. 오늘따라 옷이 날개인지
빠알간 등산외투를 걸친 아내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12:00 선인봉
선인봉 올라오면서 나름대로 전망이 좋아 파노라마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떤다. 고수님들에게
이 비법을 전수 받고난 후, 이제 삼각대 필수, 디카밧데리 2개는 필수가 되었고 점점 사진 찍느라 소비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오늘 산행시각도 사진 찍는데 시간을 많이 소요 했으므로 실제 산행하면 4시간 이면 족할 것
같았으므로 산행시각은 내 일기일 뿐, 다른 사람들은 참고로 할 것이 못된다. 오늘만 파노라마사진을 4개를 찍었는데,
결국 한장만 올렸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했다.(총,128장 사진을 찍었으니,얼마나 사진찍는데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겠는가.)
---이곳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은 곧이어 올라가면 더좋은 전망대가 나오므로,
그곳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에 밀려 자동으로 삭제되었다.
아내에게 말한다."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니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임을 느낀다.
파노라마 사진 작업이 좀 성가신 작업이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일이므로 개의치 않느다. 파노라마사진은 삼각대까지
설치해야하고 움직이지 않도록해야 하니, 신경이 몇배로 쓰인다. 어느후배님의 덧글에서 상세한 나의 산행기에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너무 산행기에 집착하면 본인이 볼것을 제대로 못본다며 좋은 지적을 해주었지만,
산행기를 쓰는 나의 입장에서 볼때는 결코 그렇치만은 않다. 선인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식힌다.
이곳에 오면 천관산의 아름다운 수석전시회가 펼쳐진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롭기 조차하다.
어떤 예술가가 저러한 大作을 만들어 내겠는가..
하지만 이 아름다운 경치도 앞으로 펼쳐질 대서사시에 비하면 서곡에 불과했다.
12:50 금강굴
선인봉을 지나면 다시 확트인 전망대가 나타나고,여기서 또 다시 파노라마 사진 두개를 찍고,
금강굴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금강굴 거의 다온 어느 바위 지점에서 바위를 건너다, "에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오늘따라 도시락에 밥도 많이 넣고 물도 대책없이 (통영말로 메착없이) 많이 가져와 안그래도 요즘 산행기에 빠져
컴앞에만 일주일 내내 있었으므로 배가 나온데다가, 바위도 미끄러웠고 (변명) 좌우간 스타일 다 구겼다.
금강굴은 옹달샘 모양의 작은샘터 였고 식용수로는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이곳을 지나고 나면 밧줄 코스가 기다리고
바로 그위에 종봉이 있다. 잠시후, 노승을 닮은 노승봉과 마주치고, 첫눈에, 왼쪽 바위 생긴 모습을 보니,
아이고 영락없는 늙은 스님의 얼굴일세..허허
노승봉을 지나니 제법 경사가 가파른 곳이 나오고 (로프가 설치되어 있음) 한무리의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데, 우측 천관사로 향하는 등로로 부터 사람들이 올라오고
눈부신 역광속에 나타난 대세봉의 모습이 찬란하다. 햇빛을 등지고 머리에 난 두개의
뿔이 과연 大勢峯 답다. 누가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생명이 없는 돌들에게 이렇게
이름을 주니 돌들이 살아난다. 만약에 이러한 이름이 없고 모두들 無名峯 이면 이처럼
실감이 날까? 이러한 이름을 명명해 주신 선조님들의 풍류와 혜안에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산행에 임한다.
우리가 진행하는 등로의 방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이라, 광선 조율에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이제는 역광에서 찍는 방법도 숙지하였음로 두려울 것이 없다. 천주(天柱)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속으로 꽂아 세운것 같다 하여 당번(幢幡) 천주봉이다.
불가에서는 깃발을 달아놓은 보찰(寶刹) 이라고 한다.산동(山東)사람들은 금관봉(金冠峯) 이라 부른다.
13:25 환희대720m
환희대는 정상과 불과 3m 차이므로 정상이나 진배없다.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정상으로 향하는 억새의 등로가 펼쳐져있으며, 또한 동쪽은 아까 우리가 왔던
관산읍과 장천재가 눈아래에 훤하게 펼쳐지고, 서쪽은 구룡봉이 보인다. 조금 다가가
환희대의 설명이 적힌 팻말을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환희대
책바위가 네모나게 깍아져 서로 겹쳐 있어서 만권의 책이 쌓아진 것 같다는
대장봉(大藏峯)의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石臺)이니,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환희대에서 바로 정상을 향하지 않고 구룡봉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까,우리를 인도했던 목포에서 오신
산님들이 여기에 앉아 식사를 하고 계시는데, 인사치레는 아닌듯 한잔 자시고 가라고 몇번씩 권한다.
가이드 해주시더니 이젠 술까지..전라도 인심이 원래 이렇게 좋습니까?--정말 마음에 듭니다.
내려오는 길이다.
아...
우변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봉우리를 보는 순간,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정녕 여기가 인간세계란 말인가!
아니야, 이곳은 신의 세계야..
이렇게 아름다울 수 가!..
이렇게 훌륭한 조각품은 내 생전에 보지 못했다.
아..아.. 신이 빚은 예술품에 탄복이 아닌 탄식이 절로 나온다.
"신이시여, 당신은 정말로 위대 합니다."
진죽봉鎭竹峯
巨石이 기둥같이 대장봉(大藏峯),중대(中臺)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데 자그마한 조각들로 그 밑을 고인 것이 마치
사람이 만든 것 같다. 하면은 모나게 깍아졌고 길이가 판자 같은데 꼭대기를 뚫고 아래로 드리워져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배돛대에 자리를 걸어 놓는 것 같다. 佛設에 관음보살이 불경을 돌메에 싣고 이곳에 와 쉬면서
그 돛대는 여기에 놓아 둔것 이라한다.
14:00-14:25 구룡봉(점심식사)
구룡봉으로 내려오는 길은 자그마한 나무들로 좌우의 조망이 뛰어나다. 탑산사 쪽에서 올라오시는
등반객 몇 분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같이 3번코스 아니면 1번 코스로 등반 하는것 같았다.
내려가는 길은 평탄하고 이제 구룡봉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려 생각한다.
구정봉 정상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아이 셋하고 남자어른 한명이 있었는데, 곧 떠났으므로
구룡봉엔 아내와 나 단둘이만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가 구룡봉과 어울려
너무도 아름답다.특히 바다에 뜨있는 자그마한 섬들은 오목조목 오순도순 정다워 보인다. 오늘
의 점심메뉴를 보니, 으잉? 저번주 삼신봉에서 먹었던 메뉴와 똑 같다. 맛있다고 칭찬했더니,
허허..특히 오늘아침 도시락 쌀때 도시락에 밥을 담으라는 아내의 말에 내가 밥을 담았는데,
내가 보아도 무식하게 많이 담긴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많은 밥을 다먹었다. 몇알은 새를 위해
남겨두고..( 우리가 식사를 하고 있으니, 참새같이 생긴 새 한마리가 우리의 주변을 맴돈다.
먹을지는 몰라도 녀석을 위해 몇알 바위위에 남기고 왔는데, 만약에 녀석이 안 먹으면
나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흐미..)
九龍峯
돌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깍아지른 낭떠러지의 골짜기를 굽어보면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떨려
아래를 내려다 볼 수 가 없다. 꼭대기 바위위에 아홉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노닐던 형상이 아름답고
크기가 각기 다른 수십개의 발자욱이 남아 있으며, 물이고인 채 마르지 아니하고
아주높은 낭떠러지라,명주실꾸리 몇개를 풀어도 닿지 않는다 한다.
14:40 환희대(Back)
다시 환희대로 되돌아 와 남쪽으로 억새능선이 펼쳐진 정상쪽으로 향한다.
사진에 보시듯이 많은 사람들로 좌우에 교차하는데, 왼편은 우리가 거쳐온 온갖 봉들이,
오른편은 탑산사쪽의 바다풍경이 펼쳐지는데, 마치 섬의 정상능선(사량도 지리산 마냥) 을 걷는 것
처럼, 전 후 좌우 의 풍광이 펼쳐진다. 누구인들, 이곳을 무릉도원이라 하지 않으리오..
아내와 이런 절경을 걸으며 일주일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니 너무도 상쾌하다.
15:00 연대봉(정상 723m)
천관산 정상(723m)에 있는 연대봉은 석축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다.
그 앞 표석에는 고려 의종시대인 800년에 설대(設臺)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단기 4319(丙寅)년에 장흥군수와 '관산읍 번영회' 주관으로 복원한 것이다. 이 곳에 올라서면
다도해(완도, 진도,고금도,금당도,거금도,생일도,등등)가 다 보인다. 또한 산아랫쪽에는
관산읍내와 여러 마을들이 보인다.
매년 10월 가을마다 이 곳에선 '억새제'가 열린다. 이 행사는 '전국 최고 억새 능선과 기암괴석'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전국 산악회의 산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관산 억새 아가씨'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해마다 다채로운 지방문화행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다.
정상에서 뜻밖에도 우리통영의 미백(미륵산에서 백두산까지의 준말)산악회 회원님들을 만난다.
아는분들은 아니고 등뒤에 통영미백산악회 라는 패찰을 착용했음으로 아내가 물으니, 통영사람들이다.
남자 세명과 여자한명만 보였는데, 아마도 일행이 더 있을듯 하다. 자가운전으로 이 먼곳까지 온 우리를 보자
여자분은 대단한듯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나의 생각
15:20 정원암
15:25 양근암
정원암은 마치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든 조각품 같다. 자세히 살펴보니 신이 빚은 작품이다.
양근암은 높이 15척 정도의 깍아세운듯 남성을
닮은 돌이며 오른쪽 건너편 금수굴과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고한다. 그리고 보니 월출산의
양근석과 베틀굴의 관계와 흡사하다. 단지, 이
양근암의 사이즈가 월출산의 웅장한 양근암에
못미쳐 좀 아쉽지만..아내와 여기서 농담한번
하는데, 갑자기 아내가 뒤로 살짝 미끄러진다.
"이사람이 흥분했나?" 허허..(왼쪽 사진의 네
사람은 통영 미백산악회 회원님들)
15:50 이정표
이제 장천재 1.2K 전이다. 몸이 불편한 늙은 아내를 부축하여 내려오시는 노부부 등반객을 보니 부축해 주면서
아내와 함께 내려오는 노능반객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 나도 만약, 아내가 저렇게 다리가 불편해
한발자욱을 저렇게 힘들게 내려와도 아내를 데리고 등산을 할까 마음속으로 되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
대답을 할순 없지만 나의 마음은 언제나 아내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분들을 추월하니, 또다른 이정표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장안사 0.4K 직진은 장천재 0.2K 이다.
오른쪽으로 내려온다. 갑자기 길이 급경사로 변하며 산죽이 이어진 등로를 내려오는데, 길이 무척 미끄럽다.
잠시 후..
결국 두번째 넘어졌다. 미끄렁~~
넘어져 가면서까지 내려온 길인데, 잠시후 도로가 나오고 아래로 내려가니, 어렵쇼,
장안사는 안나오고 아까 아침에 왔었던 팔각정 옆이다. 난전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장안사가 있긴 있나본데, 지나친 모양이다. 아마 장안사도 정식사찰이 아닌 암자일 확률이 클 것이다.
다시 올라가자니, 누가 우리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다고 해서 장천재주차장을 향하여 내려온다.
개인적인 용무로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이라 여기에 밝히진 못하고
한 30여분을 장천재 주차장에서 기다리니 그분들이 오신다. 그분들 덕택에 귀가하는 길이
한결 수월하다.---하지만, (순천입구는 항상 정체구간이라 거북이 운행--순천 에서 석식)
오늘의 산행은 전혀 힘들지 않았고, 이곳 저곳에 만들어 놓은 신의 작품을 감상하느라,
바빴던 하루였고 연대봉에 올라 바라보는 남해의 아름다운 섬들은 내 머리속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진정, 한국의 산하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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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3 장흥 천관산에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