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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기 기자 입력 2023.04.30. 10:41
「포엠포엠」 주간을 맡고 있는 한창옥 시인 네 번째 시집 『해피엔딩』 발간
천진성이 사라진 시대에 맑은 세계를 복원하려는 의지
시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을 운영하며 금년 겨울호로 100호 발행을 앞두고 있는 한창옥 시인이 네 번째 시집 『해피엔딩』을 7년 만에 발간했다.
시집 『해피엔딩』에서 한창옥 시인은 어지러운 시간의 여울 속에서도 마음의 천진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해설을 쓴 이숭원 평론가는 그의 시를 “천진한 마음으로 빚은 신생의 예지”라고 언술했다. 그는 어린이처럼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인간사의 곡절을 구김 없이 담백하게 인지하고 형상화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대표적인 예시 작품으로 「리코딩recording」이 있다. 이 작품은 어릴 때 눈발 속에 놀던 장면을 녹화하듯이 재현한 작품이다. 화자는 ‘하얀 털신은 희고 흰 밤 긴 춤을 추었다’ 라고 말하며 추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시간의 융합 현상에 의해 과거의 삶이 천진한 장면으로 여과되어 나타난 것이다. 과거의 단순한 일도 화자가 갖는 천진한 시선과 만나면 의미있는 모티브로 전환되어 미학적인 날개를 펼치게 된다.
한창옥 시인은 천진성이 사라진 시대에 맑은 세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를 실천한다.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신생의 창조를 할 수 있는 의지를 내면에 새긴 채 타자와 세계를 바라본다. 그래서 창조의 동력과 인식은 폭발적이다. 그 폭발적인 힘으로 생의 아픔과 시련을 만났을 때마다 감내하면서 시만을 향한 외사랑을 펼쳤다.
한편, 시집 발간과 관련된 행사도 준비 중이다. 2023년 5월 27일 오후 5시 잠실롯데타워 31층 ‘오디토리움’에서 『해피엔딩』 출판기념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포엠포엠 신인작품공모 수상자인 배우. 방송인 김보성과 뮤지션.팝아트작가 배드보스 조재윤도 참석한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팝콘
한창옥
아가의 말문이 톡톡 터진다
엄마의 웃음이 팡팡 터진다
꽃이 피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안방에서 마루에서 꽃망울 마구 터진다
가을햇살 품고 오는 바람의 날갯짓에도
팡팡 톡톡 터지는…
함박눈 같은 도리질 같은
- 『해피엔딩』, 포엠포엠, 2023.
풍요와 빈곤
한창옥
폐기된 세상이 500개의 컨테이너에 실린다
고장 난 텔레비전. 오디오 장비들이 산더미처럼
수출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의 반대 나이지리아로 향한다
주파수가 달라서 쓸모없는 것들은
지구 위 중력 없는 물체가 되어
구리를 찾아내기 위해 태워지는 불더미가 된다
생계로 굶주린 라고스의 아이들은
전자제품이 쓰레기 더미에서 독하게 반항하는
수은, 납, 카드뮴의 검은 연기에 파묻혀
시커멓게 끄스른 얼굴에 어린 이빨이 하염없이 희다
장갑 없는 상처투성이의 작은 손은
구리, 알루미늄, 쇠붙이를 골라내는 보물 상자다
세계인들은 편하게 쓰레기를 처리하고
재활용에 빈곤한 우리의 환경 쇼윈도를 본다
수명을 다한 매립지는 쥐들의 왕국이 되어
밤낮 전염병을 되돌려 주는 신나는 놀이터
그렇게 수억 년의 푸른 물을 검게 덮쳐가고 있다
『해피엔딩』, 포엠포엠,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