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백신을 상징하는 기관인 '추마코프 (백신) 연구소'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코비박'의 국내 생산을 담당할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백신글로벌산업화기반구축사업단 소속)가 백신 홍보에 적극 나서는 느낌이다.
경북 안동에 있는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의 황호춘 본부장(인터넷 홈페이지 조직도에는 제조관리부 부장으로 나온다)이 지난 23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통해 “백신 생산의 원천기술이 취약한 한국에서 본격적인 '한국형 백신'으로 재탄생하는 '코비힐'은 뛰어난 안전성과 편의성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부스터샷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뒤이어 다른 몇몇 매체들도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측을 인용해 '코비힐'의 잠재력과 사업성을 설파했다.
아시아 경제의 황호춘 본부장 인터뷰/웹페이지 캡처
방한한 추마코프 연구소의 연구진과의 회의 장면/사진출처:PBTG
'코비힐'은 추마코프 연구소로부터 '코비박' 백신 제조 기술을 들여와 위탁생산하는 코로나19 사백신(불활화백신)이다. 국내 생산을 주도하는 한·러 합작기업 파마바이오테크글로벌(PBTG)이 원래 이름인 '코비박'을 '코비힐'로 바꿨다. '한국형' 코로나 백신이라는 이유에서다.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는 지난 5월 PBTG 등과 ‘코로나 백신의 제조 위·수탁을 위한 4자 계약’(일종의 컨소시엄)을 체결하고 러시아 추마코프 연구소의 기술 이전을 받아 한국형 백신 ‘코비힐’의 위탁생산(CMO)을 진행하고 있다. 황호춘 본부장은 인터뷰에서 “지난 11월 입국한 추마코프 기술 이전팀과 한국형 백신 생산을 위한 작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며 “추마코프 연구소가 제공한 베로셀의 배양은 이미 마쳤고, 바이러스 배양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녹십자와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 등에서 40년 가까이 백신 품질 관리와 제조 관리 책임을 맡아온 국내 최고의 백신 생산 전문가다.
'코비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이자·모더나의 mRNA 백신과는 달리 사멸(불활화)시킨 바이러스를 접종해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인플루엔자·소아마비 등 세계에서 생산되는 백신의 90% 이상이 아직은 불활화 백신이다. 특히 불활화 백신은 냉장(2~8℃) 보관이 가능해 냉동 혹은 초저온 보관을 요구하는 mRNA 백신보다 운송및 보관 여건이 열악하고 더운 나라에서도 손쉽게 배포및 접종이 가능하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코비박 백신/사진출처:추마코프 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황 본부장도 “코로나 부스터샷 접종률이 저조한 중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한국에서 생산한 '코비힐'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해당 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델타·오미크론 변이주에 대해 실험한 결과, 중화항체 생성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러시아 기술진으로부터 들었다”며 “신속하게 기술 이전을 완료해 '코비힐' 백신으로 세계인의 보건과 건강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기대처럼 '코비힐'은 사업성이 있을까? 아프리카 등 빈곤 국가로 제공되는 백신은 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손을 거친다. '코비힐'의 오리지널 백신인 '코비박'은 아직 WHO의 승인(접종 권고)을 받지 못했다. 임상 3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WHO를 통해 '코비힐'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는 뜻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추마코프 연구소는 지난해 4월 WHO에 '코비박' 백신에 대한 사전 자격을 위한 검토를 신청했다. '사전 자격'이라는 뜻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연구소가 러시아에서는 유일하게 WHO에 공식 등록된 백신개발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비박' 개발을 WHO에 정식으로 통보하고 사전 등록을 구하는 절차로 보인다.
WHO가 2022년 중반에 코비박 백신을 승인할 것으로 추마코프 연구소가 전망한 지난해 12월 14일자 기사 모음/얀덱스 캡처
이후 아이다르 이슈무하메토프 추마코프 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12월 14일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WHO의 코비박 승인은) 예상하기 어렵지만,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며 "2022년에 들어가서도 반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2022년이 다 가도록 WHO의 승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백신의 WHO 승인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추마코프 연구소도 자체 홈페이지에서 '코비박' 관련 소식을 더 이상 전하지 않고 있다. 대신, '코비박' 자체 사이트(https://covivac.ru)가 백신을 주 1, 2회 소량 공급하고 있으며, 모스크바 등 10여개 지역의 특정 접종소에서만 접종이 가능하다고 알리고 있다. 한때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끈 코비박이 이제는 러시아에서도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개발및 러시아 자체 등록 후 한동안 60세 이상의 노년층까지 '코비박'의 접종이 가능했으나, 지난 2월부터 60세 이상의 접종은 러시아에서도 법적으로 금지됐다. 임상실험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시작된 '코비박'의 임상 3상은 올 연말에 끝나기로 되어 있다. 임상 결과는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코비박'이 델타·오미크론 변이주에 대해 실험한 결과, 중화항체 생성 능력이 뛰어나다는 러시아 기술진의 주장과는 다른 자료도 러시아에서는 올라와 있다. 위키피디아(러시아어판)에 따르면 상트페테르부크르 연구진이 델타·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수백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폐 손상을 예방하는 백신의 효능을 연구한 결과, 코비박은 46%로 스푸트니크V(71%)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변이주 효능에 대한 검증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코비힐'이 공략 대상 지역으로 꼽은 중남미에서도 지난해 12월 7일 니카라과가 추마코프 연구소로부터 '코비박' 위탁 생산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통신은 니카라과 대통령의 대러 경제협력 특사인 라우레아노 오르테가(Laureano Ortega)의 말을 인용, "니카라과는 자국의 메치니코프 생명공학 연구소와 추마코프 센터간의 합의에 의해 러시아 측으로부터 백신 생산을 위한 원자재 공급을 보장받았다"며 "니카라과는 기술이전을 통해 '코비박' 백신의 첫 번째 뱃지(초기 생산 물량)가 2022년 초에 출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카라과의 코비박 위탁 생산을 보도한 리아 노보스티 통신의 지난해 12월 7일자 기사. '니카라과, 2022년 초에 코비박 생산 계획'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웹페이지 캡처
니카라과가 백신 생산을 시작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은 현실적으로 없다. 다만, 위탁생산이 시작됐으면, 러시아 언론에 보도가 될 터인데, 인터넷에서 찾지 못했다.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가 '코비힐' 완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바이러스 배양과 불활화, 다양한 첨가물 추가, 혼합물 배양 등 복잡한 단계별 공정이 남아 있다. 그 과정을 거치고 완제품을 생산할 즈음에, 코비박이 WHO의 승인을 받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나 아프리카와 중남미 시장이 눈앞에 펼쳐질 지도 모른다.
설사,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는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코비힐' 생산은 단순히 코로나 백신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질병에 적용할 수 있는 사백신 생산 플랫폼을 확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황 본부장).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는 러시아의 첫번째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를 위탁생산하는 한국코러스의 국내 컨소시엄에 들어갔다가 탈퇴한 바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 접종용 백신이 아니고, 한국코러스 자체가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비힐' 생산을 주도하는 PBTG는 스푸트니크V의 한국코러스와는 달리, 자체 생산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를 끝까지 붙잡고 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