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미산 꼬라
◎ 8/9(토) - 여행 14일째 (수미산 꼬라 1일째)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밤의 걱정과 달리 날씨가 맑았습니다. 새벽에 하이디님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 점심때 먹을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8시 50분에 숙소를 떠나 카일라스 순례의 시작점인 강니 쵸르텐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9시 30분 우리는 야크가 싣고 갈 포대자루의 짐만 그곳에 남겨두고 드디어 수미산 꼬라를 시작하였습니다. 시작은 해발 4,800m의 평탄한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양 옆으로 산에서 빙하가 녹아 떨어져 폭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꼬라길에는 많은 티베트 인들이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짐을 지고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었고, 마니차나 염주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외기도 하고 때로는 웃고 이야기하며 걸었습니다. 우리들은 작은 배낭에 스틱까지 짚고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가면서 주변 경치에 정신을 팔며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이 가빠지고 걷기도 힘들어 두 번이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초반의 평탄한 순례길
구름에 쌓인 카일라스 서면
짐 실은 야크
12시 50분쯤에는 천막 휴게소에 도착하였습니다. 휴게소 식당에서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을 사서 준비해간 컵라면과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물을 데워도 아주 뜨겁지 않아서 라면이 잘 익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모두들 간이 침대에 쓰러지고 맙니다. 3시간 정도 걸어 왔는데도 다들 녹초가 되었습니다. 소남이 우리들의 짐을 실은 야크를 데리고 올 때까지 그곳에서 휴식하였습니다.
2시 15분에 휴게소 식당을 출발하였습니다. 조금 걸으니 드디어 카일라스의 서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카일라스는 해발 6,786m의 중간 정도 규모의 산이지만 생김새가 독특하고 장엄하여 성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카일라스, 티베트어로 걍 디세, 걍 린포체, 불교에서는 수미산, 중국에서는 곤륜산이라 불립니다. 불교나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 등에서는 성산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주위 54k의 꼬라길을 한바퀴 돌면 한 생에 지은 죄가 소멸되고 108번 돌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띠해에 꼬라를 돌면 12번 돈 것과 같다고 하여 올해 순례객들이 특히 많은가 봅니다. 우리도 우여곡절 끝에 아웃꼬라만 간신히 허가를 얻었습니다. 아웃꼬라를 13번 행한 사람에게만 돌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인꼬라는 허가를 받지 못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숙소에서 바라본 카일라스 전면
야영준비를 하는 티베트인 부부
카일라스의 장관
4시쯤에 디라북 사원 건너편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고도 5,060m)에 도착하였습니다.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무섭게 불어댑니다. 출발지점부터 약 14km의 거리를 5시간쯤 걸려서 도착한 셈입니다. 꼬라 첫날은 고도가 높아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길이 평탄하고 거리도 짧아 비교적 쉽게 일정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우리는 2층의 5인실 방 두 개에 나누어 들었습니다. 소남도 다른 팀 가이드와 함께 우리 옆 방에 투숙을 하였습니다. 대개 티베트인들은 게스트하우스 1층의 넓은 곳에서 많은 인원이 함께 자거나 아니면 주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였습니다. 5시 30분에 저녁을 먹었습니다. 하이디님이 고등어 통조림으로 묵은지 김치찌개를 하였습니다. 금방 한 따뜻한 흰쌀밥을 김과 함께 고등어 김치찌개를 먹으니, 그 맛에 모두들 감탄을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후 내일 일정을 의논하였습니다. 원래는 내일 10시간~11시간 정도 걸어서 쥬투룩북 사원에 도착하여 하루를 자고, 다음날 약 3시간을 걸어서 다르첸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쥬투룩북 사원의 게스트 하우스는 이곳보다 여건이 더 좋지 않다는 말에 둘째날 이동 거리가 3시간 정도 밖에 안되니, 쥬투룩북 사원에서의 투숙을 생략하고 바로 다르첸까지 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틀에 걸쳐 걸어야 할 길을 하루만에 13~14시간 걸어서 가야만 합니다. 힘이 들겠지만 하루라도 일찍 장무에 도착하면, 산사태로 인한 힘든 여정을 가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설왕설래 끝에 결국 하루 일정을 단축하기로 하였습니다. 6시40분 숙소 위 언덕에 타르쵸가 날리는 곳까지 올라가서 카일라스를 바라보며 삼배를 올리고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카일라스 중간쯤에 관세음보살과 미륵보살을 닮은 듯한 형상이 저녁 햇살을 받고 있었습니다. 8시30분에 숙소로 돌아와 취침하였습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거센 바람소리가 내일의 힘든 여정을 말하는 듯하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 8/10(일) - 여행 15일째 (수미산 꼬라 2일째)
다음날 아침, 날씨가 맑았습니다. 드디어 우리 여행의 최고 절정의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의 전체 여정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13~14시간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정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를,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리고 더 많은 염원을 마음에 새기면서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말씀하신 순례의 의미를 떠올렸습니다.“순례와 여행은 어떤 동기를 가졌느냐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동기와 목적만 바르다면 정신적 성소 주위를 다녀오는 것은 모두 순례가 됩니다. 순례에 나설 때는 깊은 신앙심이나 종교적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신자는 완전한 이해가 없더라도 열심히 참여하면 공덕이 쌓인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통해 내면에 적절한 태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아침햇살을 받고있는 카일라스
아침 일찍 하이디님과 슈크레님은 점심 때 먹을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아침 식사후 포대자루에 짐 다시 정리하여 묶어서 야크에 싣고, 8시 10분에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처음에 함께 가는 티베트인들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봅니다. 그러나 얼마를 못가서 뒤처지고 말았습니다. 숨을 고르며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조금 가다가 짐을 싣고 가는 야크의 걸음에 속도를 맞춰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못가서 걸음을 늦추고 맙니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묵묵히 걷습니다. 말을 타고 코라를 도는 인도인들이 눈에 띄입니다. 어제 숙소 주위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런던에 산다는 육중한 몸의 인도인도 말을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숙소를 출발하고서 세번 째의 높은 고개를 넘었습니다. 천장대와 업경대를 지나니 군데군데 옷들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강한 햇살을 받으며 5,500m 정도의 높은 고개를 넘으려니 숨이 가빠 힘이 듭니다. 고개를 오르니 슈크레님이 먼저 도착하여 올라오는 일행들마다 미숫가루 한잔을 타서 권하고 있었습니다. 미숫가루 한잔에 힘이 불끈 납니다. 멀리 바라보니 높고 긴 고개를 오르고 있는 순례객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장 높은 뒬마고개(5,668m)입니다. 자신이 죽었음을 스스로 깨닫는다는 고개입니다. 그냥 묵묵히 손에 염주를 쥐고 계속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면서 걸었습니다. 고개 중간 돌탑 아래에 미리 잘라서 준비해온 머리카락과 손톱을 묻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업장을 소멸하고 새로운 영혼을 가진 자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염원을 적은 룽따를 돌탑 높은 곳에 걸었습니다. 12시쯤 되자 고개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힘들게 오르니, 오체투지로 고개를 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은 이마에는 굳은살이 박혔고 얼굴은 흙이 하얗게 묻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자 덮어쓴 천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눈인사를 합니다.
끝없는 순례의 길
뒬마 고개를 내려오자마자 비취빛의 자비의 호수가 보입니다. 굽이굽이 내리막 길을 따라 하산합니다. 1시간 가량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평지 노천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콜라를 사서 주먹밥에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천이라 바람이 심하게 불고, 너무 힘들었는지 밥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먹자마자 맞바람을 맞으며 계속 평지길을 걸었습니다. 강한 햇살을 받으며 오랜 시간을 걸으니 점점 몸이 지쳐갔습니다. 더욱이 한산자님은 아침에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감기 기운으로 매우 힘들어 하였습니다. 중간에 강물에 발 담그고 앉아 한참을 쉬었습니다. 4시 30분에 쥬투룩북 사원 근처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여기까지가 하루 일정인 셈입니다.10~11시간 걸려서 올 거리를 8시간 반 만에 왔습니다. 엄청 빠르게 걸었던 것입니다. 오대장은 우리가 가야할 곳이 저기라면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갈려면 3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한 시간 가량은 옆으로 깊은 계곡이 내려다 보여서 경치가 좋았습니다.
비취빛의 자비의 호수
끝없이 이어지는 길
순례길의 티베트 여인들
드디어 6시 40분 꼬라가 끝나는 지점인 종두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침 8시10분에 출발하여 6시40분에 도착했으니 10시간 30분 걸렸습니다. 예상보다 2시간반~3시간을 앞당겨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체 54km의 아웃꼬라이지만 우리는 처음과 마지막 약 9km가량을 차를 타고 갔으니, 결국 우리가 걸었던 아웃꼬라는 45km정도였습니다. 아무튼 목적지인 종두에 도착하니 정작 우리가 타야할 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제 이곳까지 오던 차에 말이 놀라서 사람을 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가 종두까지 오지 못하게 마을 입구에서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마을입구까지는 1시간을 더 걸어야 합니다. 야크 주인은 여기까지만 짐을 운반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미 몸이 지쳤고, 또 여정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대장이 계속 핸드폰으로 어딘가 연락을 하였습니다. 도담선생님께서 길을 가던 중국여인과 뭔가 한참 이야기를 합니다. 여인은 우리의 사정을 듣고서 군인들에게 이야기 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러는 동안 식당근처에서 1시간 반 가량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오대장님이 관광청에 어렵게 연락하여, 8시 10분쯤에 봉고차가 와서 우리를 태워주었습니다. 다르첸 마을의 다인실 숙소에 도착하니 8시 반이 되었습니다. 결국 3일로 예정했던 수미산 꼬라를 이틀만에 끝냈고 일정을 하루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쓰신 글이 너무 상세하여 한달 넘은 수미산꼬라가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김치찌개가 생각나요...ㅎㅎ
말띠해에 코라를 다녀와서 너무 영광이구요 순례를 통해 많은 공덕이 쌓였을거라 믿습니다. ^^
경험해보지 못했던 코라길!! 걱정, 긴장, 설레임, 기대의 마음!! 의미있는 시간들이었어요 ㅎ ㅎ
언제나 가볼수 있으려나요... 염원하고 상상할수록 더 고독해지는건 ...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길이 넘 좋았습니다~~~
누가 먼저갈길도 아니고 그저 천천히 조용히 겉던 그길을 다시 겉고싶어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