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론 설명 불가 바닷고기 미스터리
경북 울진에 있는 국립 수산과학원 동해특성화연구센터 소속 남명모 연구원은 지난 8월 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평소처럼 동해안 항구 곳곳을 둘러보다 “지난 8월 중순을 전후해 경북 영덕군 대진항 연안에 쳐둔 정치망(定置網ㆍ연안에 고정시킨 그물로 대량어획에 주로 쓰임)에서 ‘별복’이 하루에 50~60마리씩 다량으로 잡힌다”는 보고를 접한 것이다. 연구소로 돌아와 동해안 인근 항구와 선창가 사정을 탐문해 보니 “대진항뿐 아니라 인근 울진항과 강구항에서도 별복이 그물에 걸려 올라온다”는 소식이 계속 들어왔다. 복어목 참복과에 속하는 별복은 그동안 아프리카 남부와 뉴질랜드 인근의 수심 100~400m 깊은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아열대성 어종으로 알려져 왔다. ‘검푸른색 몸통에 흰 반점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빽빽하게 흩어져 밤하늘의 별처럼 보인다’하여 별복으로 불린다.
물고기 연구를 업(業)으로 삼는 남 연구원 역시 별복 가운데 일부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동중국해 인근 해역, 가까이는 부산과 제주 연해에서 간혹 잡힌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해안에서도 별복이 잡힌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더군다나 경북 영덕 앞바다는 북으로부터 한류성 해류가 내려오는 곳으로 여름철에도 해수욕을 하기 힘들 정도로 수온이 낮은 곳이다. 게다가 조사 결과 동해로 올라오는 별복은 길이만 해도 어른 팔뚝만한 40~43㎝에 달하고, 몸통 높이는 13~14㎝에 달하는 ‘대물(大物)’이었다. 남 연구원은 “동해안은 바닷물 표층 온도는 상당히 서늘하지만 수심이 깊어 물속 에너지가 응축되기 때문에 물속 온도는 오히려 수심이 얕은 서해나 남해보다 따듯한 편”이라며 “지구온난화로 종전보다 수온이 상승한 난류를 타고 별복이 동해안까지 북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반도 인근 수온 40년간 0.9~1.1도 상승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지도가 뒤바뀌고 있다. 여름철에도 수온이 낮았던 동해안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별복, 참다랑어, 가다랑어 같은 아열대성 물고기가 속속 그물에 걸리고 있다.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주로 동중국해와 제주도 주변에서 많이 잡힌 갈전갱이를 비롯한 아열대성 어종들도 매년 북상을 거듭해 대한해협 부근까지 치고 올라왔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수온이 따듯한 남해안에 주로 머물던 멸치와 고등어 등 난류성 물고기들도 서해안 인천 앞바다까지 북상을 계속하고 있다. 멸치, 고등어의 북상과 함께 동남아 인근 아열대 해역에 주로 머물며 멸치와 고등어를 먹이로 삼는 백상아리(백상어)도 먹잇감을 따라 인천 앞바다 등지에서 자주 출몰하고 있다. 멸치와 고등어를 잡는 어민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바닷속에서 ‘물질’로 먹고사는 해녀들은 백상아리의 잦은 출몰로 공포에 떨고 있다.
이처럼 바다지도가 바뀌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해양수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후온난화 △바다오염 △인공활동증가 등 여러가지 ‘설(說)’들만 분분하다. 다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바닷물 온도가 변화하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수산과학원을 비롯한 관계 기관에서도 “기후온난화에 따른 표·중층 바닷물의 수온상승으로 매년 난류성 물고기들의 서식해역이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한반도 삼면을 둘러싼 바다 수온을 측정해온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40년 전에 비해 동해는 0.9도, 남해는 1.14도, 서해는 1.09도가량 (표층)수온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비록 1도 내외의 미세한 온도 변화지만 바다에 사는 물고기에 전해지는 스트레스는 수온 변화 전에 비해 5~10배가량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온상승의 영향으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한류성 어종들의 ‘실종’이다. 과거 동해안에서 잡히던 도루묵, 임연수어(林延壽魚)와 같은 한류성 어종들은 요즘 거의 자취를 감췄다. 도루묵과 임연수어는 올해 9월까지 각각 1180t과 156t가량만이 잡혔을 뿐이다. 이는 동해안 전체 어획량(12만3689t)중 각각 1%, 0.1%를 차지하는 미미한 비율이다. <표 참조>
동해수산연구소 현상금 내걸고 명태 찾기
한때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살기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하고/명태, 명태 이 세상에 남아있으리라’라는 가곡의 소재까지 됐던 명태(明太) 역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명태는 예로부터 그 쓰임새가 다양해 △생태(살아있는 명태) △건태(말린 명태) △황태(얼렸다 말린 명태) △코다리(코를 꿰어 반쯤 말린 명태) △노가리(명태 새끼) △게맛살(명태 살) △명란젓(명태 알) △창란젓(명태 창자) △아가미젓(명태 아가미) 등으로 활용된 동해안 대표 어종이다. 수온 10~12도 사이에서 서식하는 명태는 차가운 한류를 타고 동해안 인근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동부해안과 북한 원산 앞바다가 주 서식지로 북방에서 내려오는 생선이라고 해서 ‘북어(北魚)’로 부르기도 한다.
- ▲ 동해수산연구소에서 제작한 ‘명태 수배’포스터.
하지만 명태는 지난 2000년 이후 연간 1000t 미만으로 잡히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대 초반 연간 16만t가량 잡히던 것에 비하면 160분의 1로 어획량이 급전직하한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심지어 지난 2008년에는 단 1t의 어획도 올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국산 명태 어획량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지난 11월 22일에는 사라진 명태의 창자 대신 민물생선인 중국산 메기 내장으로 창란젓을 만들어 팔던 업자들이 관세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수협 관계자는 “명태는 러시아 등지에서 우리 어선이 입어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서 잡아오는 물량이나 수입 물량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겨울철 동해안 황태덕장에 걸려있는 명태는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속초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 러시아산(産)”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 기관의 ‘명태 살리기 작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에서는 ‘동해안 살아있는 명태를 찾습니다’란 포스터를 제작해 아예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동해수산연구소의 관계자는 “명태 산란철인 겨울철에 치어를 포획해서 활어로 제공하는 어민들에게 시가의 최대 10배에 달하는 포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라며 “일정기간 성장시킨 명태의 치어는 명태 주산지인 강원도 고성해역에 방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름가자미·청어·대구 등 한류어종은 되레 더 남하
하지만 이러한 어족의 변화를 바닷물 수온상승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전반적인 바닷물 수온상승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류성 어종이 남하를 거듭하면서 동해와 남해의 어자원이 뒤죽박죽 섞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도 “지난 2004년 이후 우리나라 배타적경제수역(EEZ) 해구별 트롤어획조사를 통해 어종별 출현 양상과 해양환경자료를 분석한 결과 동해 저층 냉수어종은 남해로, 동중국해 아열대 어종은 동해로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남하하는 대표적 한류어종으로는 동해 중부와 남부 해역에 이르는 수심 50~700m의 차가운 냉수대에 살던 ‘기름가자미’가 꼽힌다. 기름가자미는 지난 2004년에는 울산 울기곶 근방까지 내려왔으나 최근에는 부산을 돌아 남해 중부 해상까지 그 서식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자취를 감추었던 대구(大口) 역시 최근 어획량이 크게 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물고기 어(魚)’자와 ‘눈 설(雪)’자를 결합한 ‘설’로 표현되는 대구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이다. 하지만 수온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1000t 미만에 불과하던 대구 어획량은 지난 2007년 7000t까지 7배나 급증했다. 수협 등 관계 기관에서는 올해도 대구 어획량이 5000t가량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협의 한 관계자는 “과거 수십 년 전부터 거제를 비롯해 마산, 진해, 의창 수협 등에서 대구 인공수정란을 대량으로 연근해에 살포해왔다”며 “그때 태어나고 자란 대구들이 용케 고향을 알고 다시 찾아오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 ▲ 겨울철 동해안 황태덕장에서 명태를 말리고 있다. 이들 명태 대부분은 러시아산이다. / photo 조선일보 DB
한류성 어종인 청어(靑魚)의 어획량 역시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무려 4만5000t이 넘는 어획고를 올린 데 이어 올해의 경우 지난 9월까지 동해안에서만 1만9439t가량의 청어가 잡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수산물 가운데 오징어와 붉은대게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어획량이다. 값이 싸고 맛있어 ‘선비들의 살을 찌우는 생선’이란 의미에서 ‘비유어(肥儒魚)’로 불리기도 한 청어는 동해안 북부와 쿠릴열도 등에 서식하는데 수온 2~10도 사이의 저층 냉수대에 산다. 청어는 바닷물 온도가 급속히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동해안 포항 앞바다까지 내려와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
지난 몇 년 새 청어의 어획량 급증은 분명 이례적이다. 지난 1960년대 이후 어획량이 급속히 줄면서 한동안 청어 생산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청어의 ‘눈을 꿰어(貫目)’ 겨울철 차가운 바닷바람에 반쯤 자연건조시킨 ‘과메기(‘관목’에서 비롯된 말)’도 난류성 어종인 꽁치를 말린 ‘짝퉁 과메기’로 거의 100% 대체된 상태였다. 이런 청어가 다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포항 구룡포 등지의 일부 미식가들이 “조만간 꽁치가 아닌 청어를 말린 ‘전통 과메기’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 정도로 청어의 재출현은 반가운 소식이다. 발빠른 일부 업체들은 이미 홈쇼핑과 전화판매 등을 통해 ‘청어 과메기’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포항지역에서는 연간 6000t의 과메기를 생산해 6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시장 풍경 급변, 난류성 어종이 70% 육박
바다지도가 바뀌면서 전국 각지의 수산물 시장에 깔리는 어종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7월 국립수산과학원은 부산의 대표적 어시장인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어획물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제주도 남방해역에서 포획된 귀상어, 깃털제비활치, 민전갱이, 보라문어 등 아열대성 물고기들 상당량이 어시장에 출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조사 대상인 아열대성 물고기들은 연근해산 물고기와 비교해 덩치도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열대해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깃털제비활치는 어른 팔뚝만한 40㎝였고, 새치류(다랑어와 비슷한 물고기의 일종)의 경우 길이가 성인 남성 평균 신장보다 큰 2.5m에 달했다. 이들 두 종의 물고기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등에 널리 분포하는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 ▲ 제주시 앞바다에서 집어등을 밝히고 조업 중인 오징어잡이 배들. / photo 조선일보 DB
특히 제주도 남방 바닷가에서 잡힌 귀상어는 몸 길이가 성인 남성 키의 2배 가까이 되는 3m에 달했다. 머리(대가리) 앞에 불도저와 같은 넓적한 큰 귀가 달린 귀상어는 성격이 상당히 포악해 종종 해안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징어 등 크고작은 어류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데 덩치 큰 놈은 길이 5m,무게만 4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귀상어의 지느러미 역시 일반 상어와 마찬가지로 식재료로 쓰인다. 이러한 수산물 시장의 어종 변화에 대해 수산과학원의 강수경 연구사는 “지난 1970년대만 해도 고등어, 꽁치, 멸치, 농어 등 난류성 어종의 어획량은 전체의 40%에 머물렀으나 지난 1990년 중반 60%를 돌파한 이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며 “현재는 대략 70%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열대성 어종 출현 울산 앞바다가 황금어장으로
한반도 주변 바다지도가 바뀌는 현상은 서민들의 ‘밥상’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서부 태평양과 인도양 등에서 잡아 횟감과 통조림으로 주로 먹는 참치(참다랑어, 가다랑어 등)의 경우 이제 연근해에서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어종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수산과학원은 “지난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울산 앞바다 동해 가스전 주변 해역에서 다랑어의 회유를 조사한 결과 가스전 주변에서 다랑어류(참다랑어 및 가다랑어) 어군이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며 “열대성 어종인 가다랑어가 동해안에 대량으로 모여 산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수산과학원의 강수경 연구사도 “지난 2003년 연근해에서 연간 84t 정도 잡히던 아열대성 어종인 참다랑어도 어획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지난 2008년에는 1536t이나 잡혀 어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횟감으로 쓰이는 참다랑어의 어획량이 5년 새 무려 20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특히 가스전이 있는 울산 앞바다 주변 해역은 고급 어종이 새로 출현하면서 황금 어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해역에서는 참다랑어와 가다랑어 외에도 수심 40m 지점에는 담치, 해조류 같은 부착생물과 방어, 돌돔, 능성어와 같은 고급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또 아열대성 어종인 강담돔, 파랑돔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금년에 어획된 아열대성 어종 개체수가 평년에 비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그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며 “지구온난화 현상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와 아열대성 어종의 빈번한 출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자원관리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협의 한 관계자는 “한동안 전혀 올라오지 않던 물고기가 어느날 갑자기 많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며 “자연의 섭리가 오묘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수산업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