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18,21-28; 마태 5,20ㄴ-26
+ 찬미 예수님
에제키엘서 18장은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선언을 담고 있는데요, 하나는 ‘하느님께서 조상들의 죄과를 자손들에게 묻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말하지 않을 것”(에제 18,2-3)이라 말씀하시며 “죄지은 자만 죽는다.”(에제 18,4)고 말씀하십니다.
한때 ‘가계 치유’라는 것이 등장하였는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것이 신앙 교리에 위배 된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가계 치유’란,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미사를 봉헌하거나 특별한 기도를 바쳐서 이를 끊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는 원죄 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 위에서 구약의 몇몇 구절과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잘못된 이론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 이유가 조상의 잘못 때문이라면 얼마나 그 법이 잘못된 법일까요? 사람의 법도 그러한데 하느님의 법이 그러하다면, 하느님의 의로우심이 인간의 정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서 18장에서,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다’는, 당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에서 제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고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제키엘서 18장은 이처럼, 첫째, ‘하느님께서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에게 묻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한데 이어서, 둘째, 개인에 대해서도 ‘과거에 한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늘 그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 책임을 물으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오늘 제1독서의 말씀입니다.
에제키엘서가 이러한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날 우리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순전히 조상들의 탓이다’라고 조상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가 하면, ‘나는 과거에 한 일에 따라 판단 받고 있을 뿐,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숙명론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조상 탓이다’, ‘모든 것은 과거 탓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내가 회개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오늘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보’라고 번역한 ‘라카’라는 단어는 ‘머리가 빈 사람’이라는 뜻이고, ‘멍청이’로 번역한 ‘모레’는 ‘하느님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다른 욕들은 해도 괜찮지만, 이 욕들은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형제를 비하하는 말을 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오늘 복음 말씀과 제1독서 말씀의 연결점은 이 말씀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래, 과거에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즉시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회개하고, 화해를 미루지 말고 지금 즉시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카이사리우스 교부는 “회개는 선물이며,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과 다툼과 갈등의 때를 겪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혹은 ‘저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니까’ 그 사람이 먼저 나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청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더 잘못한 사람이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화해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보다 잘못이 크셔서 우리에게 먼저 화해를 청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 잘못도 없으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먼저 우리에게 화해를 청하시는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