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끝】
†그리스도 평화
그간 건강하고 기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영명축일을 축하합니다.
하느님께서 듬뿍 은총 주셔서 거룩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드리고 믿습니다.
엄마 아빠는 늘 부족하지만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는 늘 희망하며 살기에 기쁘고 그 희망을 이루어주시리라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구나. 은날, 은샘이는 잘 지내고 있고 은샘이는 중간고사가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성소 주일에는 신학교 잠깐 갔다 왔다. 그리고 아빠가 6년제 서울대교구 통신교리 신학원을 졸업하였구나. 교리교사 자격증도 받았고 졸업장도 받았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6년의 세월은 빨리 가버렸구나. 재미있게 공부하였던 거 갔구나.
축일 선물을 대신하여 성경 말씀을 보내드립니다.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번 주에 어느 회합에서 본당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마음에 와 닿아서 말씀드립니다." 봄에 피는 꽃은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꽃을 피우지만, 인간의 삶, 신앙의 삶은 꽃처럼 완전한 조건만을 기다려서 피울 수는 없다.
그렇게 완전한 조건이 만들어지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신앙은 부족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부족함을 채워가며 꽃을 피우려고 해야 하며,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야 신앙이 성장 될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저번 평화방송에서 예수님의 광야 유혹 말씀에서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질문 답변이 마음에 와닿아서 소개하마. 세 가지가 모두 합당하면 하느님의 뜻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
첫째로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것인가.
둘째로 그 일을 남 도움 없이 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셋째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고 남을 위한 일(나눔, 도움, 하느님의 일)인지.
고통 속에 사랑이 존재하듯이 그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거라.
■성경 주석 속에 이런 말이 있다.
"그분 안에는 온갖 형태의 사랑이 결집 되어 있으며, 인간 실존의 온갖 형태가 당신의 지체들을 통하여 구현되고 있다"
그래서 아빠는 또 하나 깨달았다.
우선 성경을 볼 때 우선 하느님, 예수님의 시선이 어디로 가 있는가. 그 속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도달되는지를 묵상 해야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여정을 따라 나의 신앙이 성장해 가도록 희망하며 접할 것이다.
사랑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하여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자네 유학 생활 인지도...
다시 한번 영명축일 축하합니다. 건강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유학 생활 지내도록 성모님께 기도하마.
≪성경 말씀 묵상 해 보세요.≫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사람을 말 못 하게 하고 귀먹게 하며, 보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탈출 4, 10-1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 10, 21)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 24-25)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에페 4, 26-27)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에페 4, 29)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만이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 버리면, 귀하게 쓰이는 그릇,
곧 거룩하게 되어 주인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또 온갖 좋은 일에 쓰이도록 갖추어진 그릇이 될 것입니다.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물리치십시오.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잘 가르치며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2 티모 2, 20-25)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루카22,26)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5,22-23)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갈라 5, 25-26)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 코린 12, 4-7)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만 하면,
이 가르침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요한 7.17)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자신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저마다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십시오.
(로마 12, 2-3)
†그리스도 평화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는구나
그간 얼마나 두렵고 고통이 있었는가.
자네 통화를 하고 얼마나 놀랬는지?
지금은 약을 먹고 진정되었다니 다행이구나.
우선 먼저
1.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아라.
협심증인지, 정확히 받으려면 MRI, cT 등 촬영해야 되는데
기회가 된다면 해 보거라. 피검사(콜레스테롤, 고지혈, 간검사, 당료검사 등),, 진단서를 보내거라. (이탈리아어면 해석해서)
2.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여 장기간 먹을 약을 (증상이 오면 먹을 약을 준비하여라)
제조하고 가지고 다녀야 한다.-엄마도 갱년기 약이 아닌 심장이 커져서 원상태의 심장을 만들기 위해 6,400원어치의 약을 1개원 먹었는데 완전 치료가 되었단다.
관상동맥으로 오는 산소의 부족으로 통증이 온다고 하던데 항상 약을 먹으면 예방이 된다고 하더라.
어지럽거나 입이 마르고 그러면 당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나타나지 않더라도 당은 100 이하가 되어야 하고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꼭 당 값을 낮추는 약을 먹어야 된다 하더라.
그래서 아빠도 가장 낮은 용량의 약을 복용하여 140-190 정도 유지하고 있구나. 당료는 잘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더라.
3. 스트레스 예방을 위해 규칙적인 저녁 운동, 충분한 수면, 편한 마음, 하느님께 맡김, 식사 조절, 음주(당분간만이라도) 흡연 금지
엄마도 저녁 걷기 운동하면 수면도 편하고 숨 쉬는 것이 부드럽다고 하던데
무리한 운동 말고 걷기 운동, 명상 시간 갖기, 부드러운 마음 갖기 등을 해서 자네의 삶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무적인 생활을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하고 천천히 실천하는 성격을 가져라. 급하게 공부하지 말고 조바심 나게 실적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자네의 생활 모토를 정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 느긋하게 생활하여라.
4. 현재의 고통의 시간은 미래 나의 재산이 되고 즐겁게 되돌아볼 수 있을 거다. -희망의 삶 자네의 삶이 아니라 공동체, 즉 자네를 보고 있는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사제가 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의 사제는 지금보다도 힘들어진 사목적 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현재 신자들에게 배척당하는 목사가 있듯이 앞으로 사제도 그런 경우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더 하느님을 알게 하는, 더 많은 신자에게 알게 하는 사제가 되기 위함임을 항상 기억하고 간직하거라.
5.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한테 카카오톡으로 컨디션 상태를 보내주거라.
필요한 것 있으면 요청하여라. 공부하고 다 마치면 그런 병도 사라질 것이다. 너무 부담감을 가진 것 같구나. 자네 능력만큼 하여라
그리고 진행된 결과를 전해주거라.
의문 있으면 다시 편지 쓰마.
2013. 3. 2 아빠가
†그리스도평화
(묵상)
그간 많은 마음이 갈라졌을 텐데 고생 많이 하였겠구나.
몸과 마음이 일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하나라도 놓치면 그게 아픔으로 오나 보다.
세상 살다보면, 큰일을 하려고 보면 고난과 고통, 그리고 갈라진 마음이 오거나 영적으로 약해지는 시간이 오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우선
자네가 아픈 것이 진정 원래 있는 병인지(진료 후), 지내오면서 자네가 부담감으로 스트레스, 혹은 마음이 약해서 오는 것인지
또 자네 능력이 부족하여 언어문제 터득 또는 게으름, 또는 다름 어떤 것에 마음을 두고 다른 것을 혹여 생각하는지
그래서 부담감이 생겼는지, 자신이 없는 건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점검, 초심으로 돌아가 보고 초심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둘째
하느님은 반드시 처음 당신을 선택하실 때 뜻을 펼치도록 선택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능력을 떨어뜨리거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을 통해서 힘을 주면 주었지 그 힘을 내려놓게 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아빠는 믿는다.
그런데 인간인 지라 그것을 의심하고 병약하여 두려움에 쌓여 핑계를 대고 그 길을 회피하려고 하다 보니 걱정이 앞서 마음이 갈라져
몸과 마음의 일치가 깨지게 되고 그것으로 불안증이 오게 되는 것 같다.
- 인정 못 받고 소극적이게 되고 하기 싫어지고 암기가 안 되도 다른 생각이 들어오게 되지 그런데 남은 잘 되는 것 같고 나의 성장은 성장하는데도 정체되는 것 같고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집착하게 되지
자기 비하로 가는 것 아닐까 한다.
(조건)
1. 원래 병이 있어 그런 증상이 있는지를 우선 진료
또 약을 먹으면 치료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병명이 무엇인지를 꼭 알아야 한다.- 몸의 병인지 마음의, 스트레스 병인지를
2. 나의 능력 점검-행복한지. 다른 편한 세상을 생각하고 그려봤는지. 이렇게 고생않해도 신부가 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는지의 여부
언어 기타 신부님,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 여부-확인
그래서 앞으로도 더 나아갈 수 있는지- 자가 능력이 없으면 유학 보내지는 않했을 것 아닌가. 그리고 자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3. 차후 신학교로 재입학이 원상태로 갈 수 있는 것인지, 가면 견딜 수 있는 마음인지 상태를 점검
4. 한결 학사님도 약을 먹어가면서도 지낸다고 하던데 그런 마음도 묵상해보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서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야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시지 않느냐?
어떻게 고통을 보이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하느냐?
그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하느님께 청해야 하지. 오상 비오 신부님의 책을 읽지 안했느냐?
5. 부족함을 부족함으로 보여줘야 한다. 자네가 얼마나 부족한가. 모든 것 중에 아는 것이 얼마나 있느냐. 자네 엄청 부족한 사람이야
오늘 입학식에 나자로 주교님이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고 하더라.
교황님이 내려놓으시는 결단은 우리의 결단과는 비교가 않된다.
교황님은 하느님 백성에게 폐해를 줄까 ,사랑의 차원에서 자기의 죽을 때까지의 직무를 내려놓았지만
자네는 약을 먹으면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다면 무엇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냥 열심히 하는 가운데 (그 속에는 부족함이 있을게고) 그것으로 기쁨을 찾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못 배운 부문을 알아가는 기쁨
이것을 한국에 와서 공부한 만큼 신자들에게 전하는 일꾼으로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한다.
하느님의 뜻은 멀리 높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가까이 작은 곳에, 적은 곳에. 낮은 곳에 자네 삶 속에서 있을 것이다.
찾지 말고, 보이도록,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뻐해야 보이지.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가거라.
6. 하여간 진료 후 의사 선생님께서 약을 먹고 공부하고 지낼 수 있다면 다시 힘을 내어 하고 어떤 극한 상황이라 돌아가야만 된다면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다시 와서 하느님께서 어떤 삶을 살도록 주실지는 돌아와 봐야 알겠지. 그때는 국장 신부님, 다른 신부님, 아빠의 상의를 충분히 하고 결정하여라.
(결론)
아빠는 자네의 깊은 마음 현재의 아픔을 모르고 객관적인 아빠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조언해준 것이다. 참고하고, 아빠는 언제나 자네의 결정에 따른다.
처음 자네 신학교 들어간다고 했을 때도, 유학 간다고 했을 때도 아빠는 하느님께 감사드렸단다. 지금도 자네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단다.
그리고 자네가 유학을 접고 온다고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을 생각하고 결정할 때는 용기를 내어라. 다시 와서 다시 시작해야지.
검사를 잘 받아라. 그냥 넘기면 안 된다. 꼭 약을 먹고 지내야 한다. 즐겁고 기쁘게 하여라.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작은 것에 마음 두지 말고 잃어버려라.
냉정하게 살아라.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계산해보고 희망을 두어라. 진료 후 다시 이야기하자. 메일로 자네의 올바른 마음을 듣고 싶구나. 지금까지 유학 생활에 대해서도, 모든 삶의 관계도 듣고 싶구나. 진지하게 토의해보자. 힘을 내고 자네나 아빠도 위기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리고 희망일 수도 있다. 너의 병을 알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아빠가 아멘. 2013. 3. 4
†그리스도 평화
우리 아들 이야기 잘 들었단다.
우리가 신앙인도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듯이
기존의 공부 방식은 세상이라 생각하고 자네 공부 방식은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는 방식이라 여겼으면 한다. 세상 것부터 시작해서 하느님 나라를 구현 해야 되지 않겠니.
기존의 방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남은 시간으로, 방학 때 피나는 노력을 하면 안되겠는가.
그것도 일치의 삶일 것이다. 그것이 어긋 난다 할지라도. 어긋난 것도 하느님 것 아니겠니
정의롭지 않은 곳에서 정의를 찾는 것도, 옳지 않는 것 속에서도 옳게 사는 것, 이것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네가 그 방법을 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십자가를 하나 더 지고 가는 것이네
남 방법대로 그냥 했으면 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는 답이 보이는 것 같구나. 편지를 읽고 안심이 되는구나.
우선 먼저 기존의 방식대로 해서 투자하고 남는 시간 자네의 방식대로 열심히 조용히 실천해가면 어떠하겠는가?
두배 힘들겠지만. 그것이 네 마음을 갈라놓지 않을 것이네.
자네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에 와서 이탈리아에 관한 일을 시킬 것에 두려움이 있을 거다. 그렇게 두 가지를 하면서 기쁘게 어울리면서 즐겁게 생활하여라.
그리고 자네가 대학원을 가면 시간이 많이 남아서 외국어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조금씩 한 발짝 한 발짝 희망을 두고 실천해가거라. 쉽게 1, 2년 사이에 평생 하여도 못하는 타 나라의 언어를 터득한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부족함으로 이것도, 저것도, 나의 방법도 열심히 꾸준히 항구히 해 나아가거라.
다른 분들도 여태것 기존의 방법으로도 다 마치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했는가?
너무 잘못됐다고 단정해 버리지 말고 같이 하여라. 그리고 자네 방식은 자네만이 실천해 가면 되는 거야.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아무리 설명 해봐도 진정한 사랑을 몰랐듯이 말이다.
유학 마치고 자네가 한국으로 올 때쯤이면 더욱더 성숙해지고 또다시 박사 또는 더 깊은 데에 그물을 칠 수 있지 않겠니. 로마서 8장 24 - 25절 말씀에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서 12장 12절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
1년에 6개월이 방학이지 않니 그동안 자네 방식대로 열심히 공부하여라.
변화하여라. 변해지고 또 변해지거라. 본질은 안 돼겠지만 현상들은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적으로는 내적 변화를 요구하지만 이쯤해서 방법을 바꾸고 자네 방식도 틈틈히 실천해가거라. 아마 교수들도 기존방식을 원해서 답안 못해도 당연하지 라고 인정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못함을 적선하듯이 학점을 주는 것 일 지도 모른다.
인정하고 자네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희망을 향해 인내하고 그 고통을 승화시켜 깊은 데에 그물을 칠 수 있는 더 큰 그릇이 되는 밑바탕이 되어라
다른 어떤 분들도 자네 생각에서 머물다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갔을 것이다.
힘을 내어라. 희망을 두어라.
자네 신학교 축제 때에 포스터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은 희망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1티모6,11)
뚝심을 가져라. 가는 길이 아니면 비켜가기도 하고 다시 회개하여 되돌아가야지만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타협은 아니지 않은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굳은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힘차게 일어 나거라. 이스라엘 민족도 얼마나 많이 멈추어 섰는가?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했는가. 자네의 하느님은 여태 자네에게 베푸신 것을 보면 가만히 있으실 분이 아니다.
힘을 주시리라, 변화를 주시리라. 마음을 다시 먹도록 해주실 것이다. 아빠는 확신한다.- 누구를 통해서 이제 아빠 서울가야한다. 큰고모가 돌아가셨다. 이따 또 보자.
아빠가. 2013.3.5 아멘
†그리스도 평화
사랑하는 아들 생일 축하합니다.
벌써 2년이 지나갔구나. 생각해보면 지루한 것 같은데 그래도 세월은 흘러가는구나.
건강히 잘 지내고 또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해줘서 고맙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구나.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지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이 또 뒤를 돌아다보면 훌쩍 가버렸을 거다.
공부할 것은 많은데 부족하여 못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공부하여라. 졸업할 수 있을 정도만. 잘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자네 힘으로 가 아니라 성령께서 너를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늘 살아가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자네를 도와주시리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힘을 내고 희망을 가지고 인간의 힘 닿는데까지 열심히 노력하면 그것이 준비요, 깨어 있는 것 아닌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은 약자이지만, 부족하지만 하느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갑옷을 벗어버리고 지혜로서 싸움의 법칙을 찾아내어 강자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성경 말씀이 있듯이 이제 앞으로 3, 4년이 중요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다윗과 같은 싸움의 법칙을 자네에게 주시리라 아빠는 확신한다.
요사이는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청하고 있구나. 또한 자네의 부족함을 잘 이용해서 불편함의 열매를 얻어라. 차동엽 신부님은 몸이 건강치 못한 불편함을 돌아다니지 않고 책을 읽어 지금의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유학 시절 언어가 부족한 불편함을 숙제 내용 중에 한 단어의 주제를 공부하여 발표함으로서 불편함의 열매를 얻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삶에서 정직으로 살기가 불편함이지만 언젠가는 이 정직함이 나중엔 불편함의 열매가 되었다고 한다. 그것으로 정직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더라.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로마 4:18 )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아들을 얻었듯이 자네도 ,우리 가족 모두 희망하며 살아보자. 이것이 아름다운 삶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이다.
저항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바람 부는 대로 흔들어주는 순응하는 갈대의 모습도 현명한 삶일 수도 있다. 부러지지 않고 간직하며, 유지하며, 생체시계처럼, 정 반 합 순환 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생일 다시 한번 축하하고 엄마가 챙겨주지 못해 서운한가 보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니 반갑구나. 하루하루 보람 있게 잘 살아라. 아빠도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아주 빨리 가는구나.
즐겁고 기쁘게. 갈라진 마음은 저녁에 기도드리고 한마음으로 일치시키고, 내일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관점을 보아라. 예수님의 시선은 사랑의 관점에서 보셨듯이 그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마느냐 차이가 있다.
갈라진 마음은 관점을 바꾸면, 일치된 마음이 만들어지던구나. 아빠는 ?
좋은 마음을 찾아내라. 그것이 사랑인 것이 많더구나. 아빠는?
아직도 부족하지만 노력하니까 많이 늘어나는구나.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더 가질 것과 더 버릴 것 묵상해 보아라.
아들 사랑한다. 힘내고 건강하여라.
항상 웃고 즐겁게 기쁘게 조바심을 버리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하여라.
2013.4.16 아빠가
†그리스도평화
자네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단다.
우선 이 일로 자네가 조심하고 굳은 마음으로 실천해야할 것들이 있단다.
이것도 하느님께서 자네를 사랑하셔서 그런 갈라진 마음을 주셔서 부족한 부분을 준비하라는 명령이시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이 들어서 추천의 말을 전합니다.
1. 우선 제일 먼저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나의(비오가 체험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습관을 드려라. 하루하루 성숙되는 자네의 모습과, 복음 선포자로 향하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하루의 삶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나의 부족함을 논하고 더욱더 정진하는 힘을 주십사 청하여라. 기도하여라.
이것이 배우는 자네의 사랑이지 아닐까? 사랑 없이는 아무 소용없다. 그 사랑을 배우는 것이 자네 유학의 본질이며 하느님의 뜻이지 않겠는가?
그 배운 사랑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공부하고 기쁨을 누려야 되지 않겠는가? 지식을 배우기 위해 사랑을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랑 속에서 지식을 배워나가야 한국에 와서도 그 가치가 빛나지 않겠는가. 입으로 언어능력만 있으면 무엇 하겠는가. 사랑 실천 속에서 지식을 찾아라.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네. "교회의 일을 하다 보니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라는 어느 목사의 말씀을 들은 적 있네.
유학생활로 사랑을 배우려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되겠는가. 예수님의 시선(사랑)을 주신 것처럼 자네도 사랑의 시선으로 보고 또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보았는가? 라고 마음을 한 번 더 두고 보아라. 내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도 가치가 있고 그 마음으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해 주거라. 그리고 나의 하느님께서 주신 마음을 잘 간직하고 그것이 합당하면 꾸준히 갈고 닦아 복음 선포하는데, 공동선을 위해 쓰도록 준비하여라.
항상 갈라진 마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갈라진 마음을 통해서 사랑으로 보면 자네의 믿음도 많이 성숙되지 않겠는가?
요번에 자네 큰 공부를 하였네. 마음속에 잘 간직하시게.
2. 건강 문제이네
인간은 자연이네. 어느 곳을 다치게 되면 징후가 나타나네. 자연을 잘 관리하게. 기쁨으로 관리하게. 지식으로 관리하지 말고 규칙적으로 관리하게
앞으로 "규칙적"이란 단어로 삶을 살아가야 할 걸세. "규칙적인" 것은 충실함, 성실함과 일맥상통하네. 성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규칙적이어야 하네. 갈라진 마음으로는 규칙적일 수 없네 검사 잘 받고 건강 신경 쓰셔서 관리 잘 하게. 필요한 약 잘 챙겨먹고 조심하는 것 잘 준수하고 한 치도 어김이 없어야 하네.
술도 절제하고 먹는 것 자는 것 공부하는 것, 생각하는 것, 보는 것 , 소유하는 것 등을 합당하게 콘트롤하게. 한 지가 더 늘어났네. 앞으로 나이가 먹게 되면 더욱더 많이 관리 종목이 늘어나네. 몸과 마음 잘 관리하게.
또 여러 가지 일을 벌리지 말고 단순하게 본질적으로 살도록 정리하게. 이번 일을 통해서 한번 변화하게. 한 가지 소유하면 한 가지 일이 생긴다고 하네.
완전하게는 되지 못하겠지만은 줄여보도록 하고, 인체 에너지 사용도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움직이는 자네의 동선을 움직이기 전에 생각하고 행동하면 짧은 시간에 완결할 수 있어 짬 시간이 많이 남게 되지
그것을 이용하여 책도 보고, 여유도 찾고,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이것이 자연을 관리하는 방법이네.
3. 자네는 한국의 도착 하였을때의 조약돌 비오를 생각하여라.
현재 자네의 모습에서 완성된 모습을 찾지 마라.
하느님께서 주신 귀중한 시간, 기간 동안 기쁨으로 지내거라.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만이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 버리면, 귀하게 쓰이는 그릇,
곧 거룩하게 되어 주인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또 온갖 좋은 일에 쓰이도록 갖추어진 그릇이 될 것입니다"(2티모2, 20-21)
주인에게 요긴하게, 온갖 좋은 일에 쓰이려면 갈고 닦고 자신을 깨끗이 씻어 버려야먄 된다. 라고 성경말씀에도 있지 않느냐?
세월 속에, 역사 속에서 함께 긴 시간동안 함께해야 갖추어진 그릇이 될 것이다. 그 그릇이 한국에 도착한 조약돌비오이지 않을까?
힘을 만들어라. 성령의 힘 , 나의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을 생산해 내거라.
힘을 내어라. 규칙적이고, 성실하고, 꾸준히, 보이지 않는 희망을 위해, 그것을 느끼면서, 공동선을 위해 마음을 내어라.
힘을 주거라. 나의 몸 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하느님께도, 가족에게도, 자네를 아는 모든 분들에게도 기쁨을 전하거라.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 런지 감히 자네에게 요청해본다. 아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충실한 아빠가. 2013.3.8
†그리스도 평화
그간 건강하고 기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영명축일을 축하합니다.
하느님께서 듬뿍 은총 주셔서 거룩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드리고 믿습니다.
엄마 아빠는 늘 부족하지만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는 늘 희망하며 살기에 기쁘고 그 희망을 이루어주시리라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구나. 은날, 은샘이는 잘 지내고 있고 은샘이는 중간고사가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성소 주일에는 신학교 잠깐 갔다 왔다. 그리고 아빠가 6년제 서울대교구 통신교리 신학원을 졸업하였구나. 교리교사 자격증도 받았고 졸업장도 받았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6년의 세월은 빨리 가버렸구나. 재미있게 공부하였던 거 갔구나.
축일 선물을 대신하여 성경 말씀을 보내드립니다.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번 주에 어느 회합에서 본당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마음에 와 닿아서 말씀드립니다." 봄에 피는 꽃은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꽃을 피우지만, 인간의 삶, 신앙의 삶은 꽃처럼 완전한 조건만을 기다려서 피울 수는 없다.
그렇게 완전한 조건이 만들어지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신앙은 부족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부족함을 채워가며 꽃을 피우려고 해야 하며,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야 신앙이 성장 될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저번 평화방송에서 예수님의 광야 유혹 말씀에서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질문 답변이 마음에 와닿아서 소개하마. 세 가지가 모두 합당하면 하느님의 뜻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
첫째로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것인가.
둘째로 그 일을 남 도움 없이 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셋째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고 남을 위한 일(나눔, 도움, 하느님의 일)인지.
고통 속에 사랑이 존재하듯이 그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거라.
■성경 주석 속에 이런 말이 있다.
"그분 안에는 온갖 형태의 사랑이 결집 되어 있으며, 인간 실존의 온갖 형태가 당신의 지체들을 통하여 구현되고 있다"
그래서 아빠는 또 하나 깨달았다.
우선 성경을 볼 때 우선 하느님, 예수님의 시선이 어디로 가 있는가. 그 속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도달되는지를 묵상 해야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여정을 따라 나의 신앙이 성장해 가도록 희망하며 접할 것이다.
사랑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하여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자네 유학 생활 인지도...
다시 한번 영명축일 축하합니다. 건강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유학 생활 지내도록 성모님께 기도하마.
≪성경 말씀 묵상 해 보세요.≫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사람을 말 못 하게 하고 귀먹게 하며, 보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탈출 4, 10-1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 10, 21)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 24-25)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에페 4, 26-27)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에페 4, 29)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만이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 버리면, 귀하게 쓰이는 그릇,
곧 거룩하게 되어 주인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또 온갖 좋은 일에 쓰이도록 갖추어진 그릇이 될 것입니다.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물리치십시오.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잘 가르치며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2 티모 2, 20-25)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루카22,26)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5,22-23)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갈라 5, 25-26)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 코린 12, 4-7)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만 하면,
이 가르침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요한 7.17)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자신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저마다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십시오.
(로마 12, 2-3)
†그리스도평화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잘 지내고 있겠지
시험 준비는 잘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은 마티아 할아버지 장례미사하고 왔다.
국장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장례미사에 참여하셨단다.
수녀님 성지순례 때에 수업 때문에 자네는 만나지 못하고 한결 신학생만 만나고 왔다고 하시더라.
아빠 엄마는 잘 지내고 있다. 은샘 은날이는 잘 지내고 있고 은샘이는 감기가 들어서 고생이구나.
아빠도 감기, 허리를 삐끗해서 며칠 고생하였는데 지금은 다 나아서 잘 지내고 있구나.
사랑하는 아들 힘내거라.
■2012년 10월 23일 KBS에서 방영된 (대장경 천년 특집) “다르마”에서
4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프로그램의 멘트이다.
좋은 말인 것 같아 적어 보았다.
1. “다르마”의 뜻은 진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인도의 종교 사상 또는 불교의 중요한 개념으로 불교에서는 “법”으로 한역된다.
유지한다, 지지한다의 뜻을 가진 동사의 어원에서 파생된 지키는 것, 지지하는 것 의 뜻의 명사
2. 화두:
-(불교) 선종에서 스승이 제자를 인도하기 위해 제시하는 과제를 말로 표현해 주는 것을 이르는 말
-마음에 중요하게 여겨 생각할 거리가 되는 말
3. 멘트
(승려) 키우고 자라나게 하는 것이 수행이다. 착한 마음, 바른 행위를 계속해서 키워가야 한다.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가는 것이 수행이다. 경전은 가이드 북이다. 그대로 복음 해야 효엄을 보게 된다.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자)-어떤 구호 활동을 하는 봉사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든 사람이 신입니다.” 순간 저 여자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느님을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 베네딕토는 “수도자라면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는 자들이어야 한다.
”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보다 잘 더욱더 깊이 알고자 했습니다.
(수도회) 오늘 미사는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활절 전 성목요일의 성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찬식 잔에 담긴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이며, 이렇게 다시 우리 곁에 오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무척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어쩌면 작은 밀알로 계실지 모르지만 나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분은 제 안에 계시고 우주 안에도 계십니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과 사람들 속에서 느낄 수 있고 어디에서나 계십니다. 모든 곳에 계십니다.
한편으로는 저 멀리서 다른 한편에서는 제 마음속에 계십니다.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귀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삶 속에서 하느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시는지를 함께 귀 기울입니다.
(수도회)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간 수도자들은 전도하기보다 스스로 진리에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생각을 하느님 곁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저 몰입하고자 합니다.
나 자신과 내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성령이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승려) 망상을 부셔 버리는 것 - 화두를 준다.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태어나기 전의 나의 본래의 모습은 무엇인가? 만 가지 법은 하나로 들어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의심이 꽉 차면 다른 것이 들어 올 수 없다. 화두가 중심에 차면 망상이나 졸음이 제자리에 돌아온다.
(수도회) 명상할 때 성경 구절을 골라 여러 번 읽습니다. 읽는 순간 말씀이 마음에 다가오도록 합니다.
사막의 수도자들은 이를 두고 말씀을 먹는 것이라 했습니다.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식사 시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 우리는 그것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도 기도의 하나입니다. 기도는 장소나 시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나의 내면을 밖으로 되돌려 주고 밖으로부터 영감을 얻습니다.
(승려) 참선이 생활 선이다. 오나가나 화두를 두어야 한다. 불교를 마음의 불교, 행의 가르침이다.
“마음을 본다. ”라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입을 통해서 말로, 몸이 행동으로, 얼굴에서 표정으로 나타난다.
결국 마음이 행위이다. 부처 행위를 하는 사람이 부처다.
(수도회) 세상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살아있는 암시가 되고자 합니다. 베네딕도 수도회는 중점을 두는 것은 신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설교하고자 합니다.
(승려) 수행 방법-화두를 끌고 들어가야 한다. 마음이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간절해야 한다.
목숨을 다하고 아기가 엄마에게 젖을 기다림과 같이 공부해야한다.
그런데 몸둥이에 대한 애착, 나에 대한 분별심, 자기중심으로부터 오는 생각, 이런 번뇌, 분별 망상으로부터 벗어 나야한다.
정신을 일정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때 화두를 들고 들어가야 한다.
(수도회) 가능한 한 저녁기도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저 스스로에게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살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살다 보면 그러지 못합니다.
얻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려놓는 것입니다. 붙들고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남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새 삶을 얻기 위해 삶을 잃는 것입니다. 붙들고 있지 않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아무것도 붙잡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은 소유욕과 내려놓지 못함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자유와 진리는 분명히 하나입니다.
즉 내가 믿는 것만이 진리이고 그 외의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진리는 그 보다 훨씬 크고 경계가 없으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뜻합니다.
(수도회) 잠은 짧은 죽음이다. 잠들기 전에 이곳에서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를 당신 곁에 지키소서.
당신의 평화 속에 우리는 쉴 수 있나이다.
우리의 지친 몸이 쉬는 동안 우리의 가슴은 당신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는 밤의 죽음으로부터 품에 안으시어
영광의 빛으로 인도하소서. 아멘.
(승려) 부처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죽여라. 한 가지라도 고정 관렴이나 선입견이 있으면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
자기중심에서 던져 버려라. 승가에서 마음을 잡고 늘어지는 것은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보는 것은 좋은 생각, 좋은 마음이 자리를 채워가는 것이다. 마음공부라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다.
열면 안밖이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에 간다. 살펴보고 여러라. 행복해진다.
(수도회) 나를 느끼고 흙, 빛, 바람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좇는 사람이 되는 것, 호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무거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신이 형상은 선량한 의지로 나타납니다.
나와 너, 인간 공동체 그리고 하느님은 성령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만드신 우주도 포함됩니다.
(승려) 참선을 하다 보면(용맹정진:1주일 동안 세끼 식사를 빼놓고 나머지 것을 내려놓고 정진) 몸둥이가 안 느껴진다.
이때 나를 내려놓게 된다. 한 생각만 10일이든 100일이든 지순하게 할 수 있으면 끝점에 가서는 새로운 것이 열릴 것이다.
나와 남의 경계가 없어지고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구나, 부처구나 하고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수도회) 하느님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계시지만 우리의 마음이 저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마음조차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하느님 없이 스스로는 찾을 수 없는 깊이의 자기 자신도 찾게 됩니다.
(나레이션)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를 아는 것이고
나를 아는 것은 나를 잊는 것이다.
나를 잊는 것은 만물에 의해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교황님의 첫 미사 때 말씀하신 내용이 평화방송 특집에서 방영되었는데 좋은 말씀이라 적어 본다.
"돌보고 보호하는 데에는 선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부드러움이 요구됩니다.
이는 약자의 덕이 아니라 강한 영의 표징이며 관심, 연민, 타인에 대한 참다운 개방, 사랑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선함, 부드러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빠는 여태것 선은 부드러움이라 생각했는데 강한 영의 표징이라 하셨다. 강한 영이란 사랑의 능력이다.
"다르마"에서 이야기했듯이 "진리의 사랑 이란 경계가 없다 " 라는 것은 선, 악에도 항상 사랑이 존재하고 그래서 진리란 훨씬 크고 강한 영만이 가질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다."라고 묵상했는데
그래서 진리 안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이해를 이제야 한 것 같구나.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은 강한 영의 표징이므로 강한 영을 갖고 살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 같구나.
그 영의 한계도 하느님께서 주시겠지만...
인간이 노력할 수 있는 만큼 항구히 노력하며 살아갈 때 선함, 부드러움, 비움, 개방, 연민, 사랑에 두려움이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강한 영을 길러라
우선은 학문으로
일도 기도라고 한다.
공부도 기도일 것이다.
비움으로써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얻음을......아멘
2013.5.28.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충실한 아빠가.
†그리스도평화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나이다.
그간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겠구나. 몸 건강히 건강 해치지 않고 공부하여라.
준비 운동 잘하고 발뒤꿈치는 괜찮은 건가. 기회 닿으면 의사진단 받거라.
그리고 전에 협심증 증세는 없어졌는가. 건강할 때 요번 방학 때 검진을 받을 수 있으면 받아보아라.
6월 2일 자네도 알겠지만 신 신부님께서 선종 하셨단다. 2일간 연도하고 오늘 10시에 주교좌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었단다. 오늘 장례미사를 하면서 묵상하였단다.
1.동창 신부라서 이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삶의 여정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얼마나 보람 있게 하느님 뜻에 맞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분이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 기간 동안 얼마나 하느님 뜻에 맞게 사제로서 살았는가를 더 보아야 한다.
그래서 보니 하느님의 사랑 실천을 많이 하신 신부님일수록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시기 위해 –세상 속에서는 필요 할지는 몰라도- 하느님을 빨리 뵐 수 있게 해주시나 보다.
(예수님의 33년의 삶, 김대건 신부님의 1년의 사제 생할, 최양업 신부님의 14년간의 사목 생활 등) 왜 열심히 사시고 공동체에 필요한 사제를 먼저 불러 가시는가? -이태석 신부님
그 생활 속에는 반드시 친밀하고 깊숙한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기에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고통을 주시고 일찍 불러 가셨을 거라고 나는 묵상해 본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그분의 영광을 우리가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2. “어떤 사람이든지 잘 대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모든 분이 이렇게 할 걸, 그때 그렇게 해주었을 걸 하고 후회하는 말씀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싫든 좋든 후회 없이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보내드리려면 말이다.
넓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랑으로 살아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고 나의 삶을 반성하고 그렇게 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였단다.
3. 장례미사 전례에서 참여하는 사제에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집전하는 사제와 형식적인 전례에 참여하는 사제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드려야 되겠다고 하고 다짐해 보았다. 아빠는 모르는데 엄마가 자네 첫영성체 해주신 신부님이라고 하던데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사창동 보좌로 계실 때 사창초등학교 다닐 때인 것 같구나. 건강관리 잘하거라. 규칙적인 운동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운동하면 혈관을 확장시켜 준다더라. 몸 또는 몸컨디션에 맞게 적당하게 하여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기쁘게 하도록 노력하여라. 남 생각하지 말고 자네 자신에 맞게, 자네 능력에 맞게만 하여라.
꼭 부탁한다. 담배 피면 안 된다. 술도 절제하고 혹시 오해받지 않도록 여자 대인관계도 잘 현명하게 대처하고 항상 준비하고 깨어 지내거라.
열 받거나 욕정에 매달릴 때는 아빠는 우리 성당 고상을 마음 안에 가져와서 1분쯤 담고 있으면 사라지더라. 차분해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고 반복하면 좋을 것이다.
작은 것에 마음 두지 말고 큰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빠는 요사이 좋은 것과 좋은 생각, 장점, 그리고 행위보다 마음을 보게 되더라. 가끔은 벗어나지만 그래도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요사이는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또 묵상을 해본다.
어떤 때는 후회도 해보고 마음 아파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음을 돌려보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 라고.
희망 때문에 아픔도 있지만, 그것으로 즐겁고 기쁘고 자신감이 생긴다.
다시 한번 희망을 생각해본다. 자꾸 생각해보려고 한다.
기쁜 마음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묵상하고
희망을 노래 삼아
노랫소리가 희망의 소리가 되도록.
주님, 제 기도가 주님 앞까지 다다르게 하소서!
아멘
2013. 6. 4.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충실한 아빠가.
†그리스도평화
하느님 감사합니다.
늘 함께하여 주시고 또 향하는 마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시험 끝나고 전화를 하려고 하였으나 불안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하였더니
그렇게 어려운 마음 가지고 생활 하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비로서 함께하지 못함을 원망하였단다.
처음 대건고에서 눈비가 오는 날에 승용차를 몰고 자네에게 한 말이 생각나는 구나
이번 결정을 하면 바꾸지 않는다고 약속하여라. 약속하면 신학교 가는 것을 아비는 허락하마.
열심히 하여라. 그리고 네가 성소를 깨지는 말아야 한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신앙이 부족한 아빠지만 기뻤단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항상 하느님께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정리해주시는 것을 보고
자네는 이 길이 합당하구나 하고 항상 감사기도 드렸고, 기쁘게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있단다.
아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택이란 한 번에 족하다.
그 택함을 받아 열심히 부족하지만, 그 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가야 하지 않는가.
모르겠다. 아빠도 지쳐서 어떻게 너에게 이야기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길은 기쁘고 네가 선택하려고 하는 그림의 길 보다도 아주 높은 하느님만이 주시는 길인데
그 길을 마다하려고 하니 신앙이 깊지 못한 나도 아는데 자네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길래 유혹에 빠지려는가.
또 그만두어서 그림의 길을 간다 하여도 이제는 아빠 힘이 없어 도와주지도 못하고 자네를 키울 수 있는 힘이 없다네.
결혼해서부터 자네를 낳아 길러 은날, 은샘 키우느라, 엄마 병수발 하느라
이제는 당신의 현재의 고통과 맞먹는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언제 자네에게 한마디 이야기했는가 .
자네 덕분에 10여 년간 하느님을 만나 희망을 주셔서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앞으로 자네도 걱정이지만 나도 큰 걱정이구나.
한번 메일로 자네의 고통을 조목조목 적어 보자 구나. 아빠하고 견주어서 생각해보자.
오늘 복음에서 자네를 생각하면서 묵상해보았다.
(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자네가 견디지 못하는 것 적어 보자 구나. 그렇게 어려운 건가. 하느님을 믿는 또 믿게 하려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되는 사람이 어찌 허약한가.
그런 마음으로 혼자 그림을 공부할 수 있겠는가. 아빠는 불 가능할 것 같구나.
엄마 아빠 이제는 지쳐버려서 힘도 없다. 세상 속에 것은 더욱더 힘이 들어
자네 신부 되면 이제는 손을 놓고 조용히 공소 있는 곳에 가서 엄마랑 조용히 살려고 마음먹고 있단다. 세상에서의 자네 삶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기력이 쇠진하였단다.
아빠가 부탁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고 부탁하마.
앞으로 3년이면 공부 마치고 부제 받고 돌아와서 사제 받으면 4년 이면 되는데
그만두고 오면 다시 시작하면 그 많은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둘다 놓치는 꼴이 되어서 자네는 할 것이 없게 된다.
더군다나 거룩한 공동체에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그 어려운 세상 속에서 견디어 낼 것 같은가. “술 먹고 어울리면 된다.”라고 스트레스 풀면 되겠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 가까운 이모도 돈 좀 있다고 엄마 무시하고 쓰다 남은 것 주고 그것도 황송해야 된다고 하는 이 세상이다. 그러면 그런 것을 정의롭게 성질대로 해야 하는가. 다 감수 하고 그 환경에 맞게 처신하면서 지혜롭게 지내야 사는 것이다.
세상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나 자네가 사는 세상은 그래도 미약하지 않은가.
여태것 아빠는 걱정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걱정 때문에 살지 못한 것은 없다.
자네들 다 키우고 아픈 몸을 이끌고 자네를 다 키운 엄마를 보아라.
요번 서울대병원에서 심장병으로 여태것 50살 넘게 살은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하더라. 국보급이라 하더라.
그런 고통을 참아가며 자네들을 키워낸 엄마도 있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는 자네가 그런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것도 나중에 충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거기에 종사할 수 있는데도 당장 코앞에 놓여진 고통을 못 참아 피해 가려고 하는 한심한 나를 봐야되지 않겠냐. 하느님께 죄송하지 않느냐?.
자네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이런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대중의 고통을 그림에 담아내겠느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동네 그림 장사나 되지 않겠는가.
하느님에 관련된 그림을 기쁘게 그릴 수 있는데도 그 시기 그 시련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자네가 한심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은 항구히 하느님을 향해 나아 가야된다고 배웠다. 하느님의 일꾼인 사제가 되려는 사람이 10년도 못 참고 그것도 다른 것을 한다고 감히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금방 그림 그려서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 길도 10년, 20년이 지나야 중견작가로 거듭나서 행세를 할 것 아닌가.
오늘 하루는 1년 지내는 것 같구나. 오늘 미사 드리면서 자네에게 용기 주십사 수십 번 마음속 깊이 드렸단다. 자네도 아빠, 엄마를 위해 수십 번 기도드린 적이 있는가.
아빠도 답이 없어 이렇게 넋두리하고 있단다. 답답해서 이렇게라도 마음을 달래보려고 한다. 오늘 성무일도 하면서 더 큰 소리내어 하였단다.
하느님께 내 마음을 알려드리려고 말야. 저번 교황님과 함께 성체조배 시간에 1시간 동안 모든 죄, 모든 것을 차근차근 말씀드렸더니 금방 한 시간이 가더라.
개운하고 후련하더라.
이제 하느님께 맡겨야 할 시간이다.
천천히 결정하거라. 여태것 살아 온 것이 아깝지도 않느냐? 변화되는 마음을 찾아보아라. 그리고 반드시 자네의 마음을 정리해줄 그 어떤 것을 보내주실 것이다. 기다려라. 아빠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맡기기로 했다.
하느님께도 시간을 드려라. 자네도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생각이 좁아질 수 있고 닫혀있을 수 있다.
(그대는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 (2 티모 2, 15)
아멘 2013. 6. 19 아빠가
†그리스도 평화
오랜만에 펜을 드네
그간 잘 지내고 있다니 하느님께 감사드렸단다.
학년 마무리 잘하고, 대학원 준비 철저히 하시게.
올 한해도 풍성한 은총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목자에게 자신이 키우는 양의 냄새가 배어 있듯이”
교우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라고 당부했다.
또한 성직자들에게 타인을 위한 존재가 되기를 요구하며
“우리가 제의를 수수하게 입을 때 교우와
성인, 순교자들의 얼굴을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어깨 위로 그들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씀을 읽고
올 한 해 가지고 실천하고 묵상할 화두를 정했단다.
옛날에 학교에 교생이 오면 생선을 비닐에 싸서 냄새를 맡아보면 비린내가 나야 하는데 그러면 선생님을 비닐에 싸면 무슨 냄새가 나냐 하는가에 대해 숙제를 내준 기억이 나는구나. 여럿 중 한 교생만이 내 생각과 같은 답은 이야기 한적이 있다. 답은 학생 냄새가 나야 한다고. 교황님께서도 목자는 양의 냄새가 배어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자네는 무슨 냄새가 나야 하는가?
아빠는 무슨 냄새가 나야 하는가? 하고 화두로서 1년간 살아가야 하지 않은가?
아빠는 사랑의 냄새가 나도록 1년간 살아보련다.
- 화내지 않는 것, 겸손, 자신을 낮추기, 기쁘게 사는 것, 미리 결정짓지 않는 것, 좋은 점을 보는 것,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등을
실천해볼까 한다.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가난한 사람의 부유함은 사랑이라 했다.
성경에도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방송에서 어떤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교회를 위해 사목활동을 하다 보니 예수님을 잃어 버렸다." 라고
100마리 양 중 99마리를 위해 열심히 하다 보니
한 마리의 양을 돌보지 못한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목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지. "진리의 사랑이란 선과 악의 경계가 없이 사랑하는 것이라 알고 있다. 잣대가 없는 것이지. 자네도 한번 정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항상 건강 챙기고, 담배 피우지 말고, 술은 3잔만 마시고, 버릇이란 무서운 것이야.
항상 선한 곳간을 만들어 가라.
또한 작은 일을 소홀해서는 안 되지만 또한 작은 일에 너무 집착하면 더 큰 일에 지장을 받는다.
항상 성령께 청하고 기도 열심히 규칙적으로 하여라. 기쁘게
모든 일이 기쁘지 아니하면 신앙을 되돌아봐서 변화해야 한단다.
그냥 지내지 말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자주 마음을 점검하여라.
마음의 곤경을 잘 풀어라.-기도하며- 아멘
2014. 2. 1 아빠가
+ 예수, 마리아
사랑하는 아버지께.
오랜만에 답장을 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앞서네요. 건강히 잘 계시기를 언제나 바라고, 또 늘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삶도 이제 3년이 다 되어 가네요. 시작을 생각하면 마치 책장을 편 것과 동시에 책을 빠르게 훑어보고 책장을 덮는 것처럼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 버린 것 같네요..
탈도 많고 아픔도 많았던 이곳에서의 시간 속에서 어쩌면 하느님께서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시고, 제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끔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어제 수업시간에 한 교수 신부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삶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란 매우 일상적인 것입니다. 어떤 신비롭고 대단하고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마치 발에 생긴 티눈이나 굳은살이 어딘가에 닿아 소스라치게 아! 하고 놀라는 것처럼, 그것은 매우 일상적인 것입니다." 라구요. 그 때 저는 이 교수님의 말이 제 삶 안에서의 하느님의 목소리처럼 다가 왔던 것 같아요.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하나의 계시들로 채워져 있다면, 또한 그것은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는 하나의 표징(symbol) 이 아닐까요? 삶은 이런 표징들로 채워져 있기에, 그러한 계시를 듣는 귀 또한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를 살아가며, 그런 소스러치게 놀라듯, 뭔가 내려치듯이, 갑자기 숨겨왔던 고개를 들듯이,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이 나에게 확 다가 왔을 때, 그 일을 읽는 "눈" 과 그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귀" 가 필요함을요. 놀랍게도 그것들은 서로가 연결이 되어있고, 제 삶의 어려움과 마음 깊은 곳에 울려펴지는 하느님의 가르침의 주제와 늘 맞물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덧붙여, 누군가는 그 계시를 "받아들이고" , 누군가는 그 계시를 "거절한다." 고 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은 삶의 모든일을 하느님의 목소리로 알아듣는 마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삶은 참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즈음 저를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속으로 부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시험 기간중에, 위에서 언급한 교수님인 Gargano 신부님의 책 중 "마리아 와 말씀 (Maria e la parola) 라는 책을 읽던 중,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말씀이 나에게 말씀을 하시도록 나를 그 안에 "내버려두는 것" 이 필요하다. 는 말이 특별히 와 닿았습니다. 이성적인 노력으로 무언가를 알아들으려고, 무언가 렉시오디비나의 열매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 가득한 안정된 마음과 정신과 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저에게 말씀을 하시도록 저를 열어두고 개방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말때문에, 은연중에 갖고 있던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고,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그 신비에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마음을 하느님께 내려놓고 시작한 렉시오 디비나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1) 마태오 5장 13절-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으며, 등불을 침대 밑에 둔다면 누가 그 빛을 볼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앞에 말씀은 내 지나온 삶을 아프게 하셨습니다. 것이 아니라, 마치 바람이 불어와 확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처럼, 내 삶은 얼마나 발에 짓밟힌 소금같았는가! 내 삶은 얼마나 침대 밑에 넣어둔 등불 같았는가! 하고 말씀은 내 삶은 쓰디쓴 회개속에 아름답게 머물게 하셨습니다. 참된 회개속엔 자책이 아니라 마음의 아름다움이 있고, 주님을 향한 겸손속에 그 쓰디쓴 회개 안에 머물러 주님께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저의 시선은 옮겨져 참되게 하셨던 그분의 삶을 향합니다. 그분이야 말로 참된 빛이시고, 그분의 삶이야 말로 참된 소금이시다. 주님 제가 빛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제가 소금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고 읊조립니다.
(2) 마르코 7장 24절-30절 "시로 페니키아 여인의 간청"
열왕기 1 권 11장 4절-13절 독서를 읽으며, 솔로몬의 잘못으로 다윗 왕국이 여럿으로 분열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분열속의 결과, 왕국이 분단이 되고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법을 배신한 다른 이방인들을 괄시하게 됩니다. 바로 그 역사의 원인이 독서 안의 내용을 이루고 있고, 그 역사의 결과가 복음인 마르코 7장 24절에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시로 페니키아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악령이 들린 딸을 낫게 해달라고 청원합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은 자녀들에게 주어야 될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인은 " 식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녀들의 빵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나누어졌던 것들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 안에 하나로 모이는 순간입니다. 나누어졌던 슬픔의 역사가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요한복음 안에서 예수님은 오랜 길을 걸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러 가시고, 지치신 몸으로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참된 예배" 안으로 이끄십니다. 참된 예배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목마름을 채울 음료가 되시고, 여인은 예수님께 참된 양식이요, 음료가 됩니다. 그 아주 내밀하면서도 가까운 일치. 구원은 장소적인 개념 안에서 유다인으로부터 오지만, 참된 예배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아름다운 제물로 드리는 내면적인 봉헌, 헌신, 모두 다 내어 드림 속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내밀한 일치 속에 있음을, 그런 영혼의 거룩한 불타오름임을 알려주십니다. 여인이 마을에 간 사이에, 곧이어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가와 음식을 좀 잡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라고 하시면서 곡식이 익을 때가 다 되었는데 일꾼이 부족하다고 하시면서 그 "수확" 에 대한 당신과 아버지의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같이 사는 남자가 있었지만, 남편이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괄시를 받고 살던 그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걸어오신 것은 그분의 목마름 때문이고, 그분의 배고픔 때문이며 그분의 거룩하신 사랑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을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서, 영원히 샘솟는 물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 이었고, 그 여인은 마침내 아! 라는 여인 삶 속의 계시 속에 구세주를 알아봅니다. 참된 예배에 대한 기쁨! 그분의 참된 사랑에 대한 기쁨! 자신이 모두 받아들여진 그 기쁨!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나를 찾아오시기 위해서도 걸어오십니다. 왜냐하면 제가 참된 예배 안에 당신과 하나가 될 때에, 그것은 당신 삶의 가장 궁극적인 기쁨이고 당신의 영광이며, 당신이 사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으로 내 죄로 인해서 내 삶이 다윗의 왕국처럼 조각조각 부서지고 찢겨 졌더라도, 그분에게 내 모든 삶을 맡기면 주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 조각들을 모아 당신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드십니다. 이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진실입니다.
(3) 마르코 7장 31절-37절 "에파타"
복음은 예수님의 치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이의 귀에 당신의 손을 넣으시고, 혀에 당신의 침을 바르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신 다음 "에파타(열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새로운 창조에 대한 언명처럼 들리는 이 "에파타" 를 들으며, 아주 가까운 주님의 손과 침의 접촉을 생각합니다. 당신 그 자체가 생명이시고, 우리를 치유하시는 의사이신 그분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육체적인 치유의 차원이 아니라, 복음은 늘 영적인 차원의 진실을 실제적인 사건의 옷을 입혀 전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의 영혼은 말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자 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sordomuto 소르도 무또" 라고 하는 것은 제 영혼이 가진 영적인 진실이자, 아픔이요, 장애 이기도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창문을 닫고 홀로 쉬는 사람. 관계의 창문을 닫아야 그제야 편히 쉴 수 있는 사람. 온갖 갈등과 아픔과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속에서 괴로워하며 홀로있는 것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욱더 행복하고 즐거운 그런 사람.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을 때에만이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고, 그 마음의 평화를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그런 사람.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영혼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은 이런 내 영적 진실을 빛으로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한편의 진실 또한 비추어 줍니다.
(4) 마르코 8장 1절-10절 "빵의 기적"
아무것도 먹을 게 없는 가난한 인간 영혼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제사 속에서 일어난 영적이고 실제적인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위에서 예수께서 죽으셨는데,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 영적인 진실은 실제적인 이 기적의 사화와 깊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가난함을 보시며 느끼시는 그 연민의 크기와 3일 동안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굶주렸던 그들을 보시며 당신 수난과 부활의 신비 속에 주어질 양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곳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본당에서 첫 영성체교리를 할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 성체가 정말 예수님의 몸이라면, 사람의 살을 먹는 것은 식인종 아닌가요?" 저는 그때 참으로 어린이들의 생각에 답을 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신학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제가 그 때 답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우리 안에 받아 모신다는 의미에서 생각해야 된다."였습니다. "mistero" 미스테로 라는 당신의 "신비" 는 인간의 말로도 붙잡을 수 없고, 붙잡으려고 하면 늘 도망가는 접근할 수 없는 그런 비밀로 휩싸인 것인데, 그것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요, 사랑이신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 mistero 를 주십니다. 당신의 그 존재자체 그대로를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단계에서 "관상" 의 단계는 어 떤 이에게만 특별하게 주어진 높은 영적의 단계가 아닙니다. compemplatio 콘템플라시오 라고 부르는 관상의 단계에서 사람은 이 mistero 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그분은 빛이신가? 그분은 사랑이신가? 관상속에 있는 이는 거기에 침묵합니다. 관상은 그분의 십자가의 신비를 마음에 그대로 품는 사람. 마치 밑빠진 독을 연못에 던져 그 독안에 물이 가득차게 하는 것 같은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관상은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기본적으로 주어진 영적 진실이 됩니다. 신앙이 솟아 나는 원천이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열어주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 희생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라고 성호를 긋습니다. 어찌면 너무나 익숙해진 이 기도는 뜨거운 당신 모든 은총의 불길이 터져나오는 그 물길의 초입을 여는 행위이고, 가장 근원적인 샘을 다시 기억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영적 은총이 샘솟는 그 십자가 제사를 기억하며 삼위일체 하는님을 기억하는 것은 진리를 "직관" 하는 일이고, 바로 내가 믿고 생각하는 그 진리와 내가 일치하는 가운데 내 삶의 진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아주 강한 빛과 힘으로 올곧하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미사" 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세우신 영원한 영적 샘을 가운데로 하고 모든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며, 우리 신앙의 중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과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신 "그 일" 로부터 사실 모든 것이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백성공동체와 모든 교부들의 신학과, 모든 교회의 교도권들이 이 미사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미사는 모든 신학의 중심이며 성경, 성전과 함께 중요한 신앙의 원천이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가장 큰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의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라고 물으시는데, 제자들은 "일곱 개" 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함을 뜻하는 완전수로써 상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적인 신비는 교회이신 어머니 안에, 또한 교회공동체 안에 주어진 완전한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안에서 교회와 함께 이루어지는 일인 것 같습니다. 모든 영적인 가난함이 이 미사 앞에서 살찌워지고 배가 불러집니다. 과연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는 어떠한 것인지요! 행복해지려 살아가는데, 사람은 괴롭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원수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데, 도대체 저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어느날 문득, 내가 괴로운 것은 저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이 내 안에 없기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마음이여! 주님 저에게 마음을 주십시오. 친구가 나를 배신해도 내가 그 친구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채로 내 안에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시험에 낙제를 했어도, 마음에 아무런 슬픔이 일거나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어려움 없이 계속 정진할 수 있는 순수한 성실 안에 내 마음이 깊이 뿌리내려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누군가 나를 비난하여도, 그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거룩한 사랑 안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그 마음이 진실로 내 마음의 진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 마음을 선물로 주셨다면 과연 얼마나 마음이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마음에 굶주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아름다운 마음이 없고, 분노와, 질투와, 미움과, 비판하려는 마음과, 상대방을 고치지 않고서는 못 참는 마음과, 맛없는 음식을 참을 수 없는 마음과, 왜 저렇게 하는지 왜 저렇게 이야기하는지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는 마음과, 내 문제에만 갇혀있고 내 문제만을 걱정하는 이기심과 하는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마음에 굶주려 있습니다. 이 새로움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잊어버린 채로 굶주려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우상들을 통해서 그 마음을 채우려고 합니다. “자유로움 속에 잇는다” 하면서 늘 똑같은 것을 찾습니다. 늘 똑같이 내 마음이 집착으로 괴로워하는 그것을 찾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만날 때, 잊고 있던 영적인 진실이 다시 되 살아납니다. 말씀이 인간을 배불리면 인간은 평화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궁굼하며, 참된 것을 구하고 참된 것에 목말라합니다. 그 마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그 길에서 그는 삶의 특별함과 보물을 발견하였고, 하느님을 따라 사는 마음의 평화가 강물처럼, 바다처럼 넘쳐흐르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에 빠지면 죽고, 물에 빠지지 않으면 사는 것처럼. 언제나 선과 악 사이에서 선을 택하게 됩니다. 악을 택하면 도저히 잘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그 필요로부터 모든 삶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빛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양식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토요일 9시에 늘 공동체 안에서 묵주기도를 봉헌합니다. 그 묵주기도가 끝나고 계단을 걸어 올라오면서 함께 공부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저녁도 주님 안에 차분하게 잘 보내야 할 텐데 걱정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는 그러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메일로 써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도 가라앉고 무언가 정리도 되고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제 삶의 작은 계시와 표징이라고 느껴서, 이렇게 아버지의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제 작은 묵상들이 아버지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어머니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사랑합니다.
2014. 2.16
RE: RE: 사랑하는 아버지께.
하느님께로 모든 마음을 열어두겠습니다. 본당 신부님께 메일을 보내서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저의 길을 식별하기 위해서 이냐시오 영성 피정을 다녀올까 합니다.제가 한국 신학교로 다시 들어가든지 아니면 수도자의 길을 걸어가든지 평신도의 길을 걸어가든지 하느님을 더욱 더 사랑하고 그분을 더욱 닮은 자녀로 살아가기 위한 제 생애의 목적을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길로 가기 위해 제 마음에 새겨져 있는 평화와 행복의 길을 위해 그리하려고 합니다. 제 삶이라는 향기로운 기름을 옥합에 잘 담아 그분 머리를 향기롭게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짐은 나중에 신부님들께서 보내주시기 힘든 것들만 집으로 소포로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들고 오는 짐은 가볍게 하고 오겠습니다.
고맙구나.
잘 다녀오고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아뢰어서 자네의 길을 가게
마음의 곤경을 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차분히 잘 준비해서 오시게
공항에서 보자. 아빠도 마음이 편안하구나.
메일로 비행기 시간 번호 등을 보내든지 카톡으로 보내주면 좋겠구나.
엄마 아빠가 공항에 가겠다. 기말시험이라 시간을 바꿀 수 있어 갈 수 있구나.
만날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고 마무리 잘하고 잘 오너라.
아멘
※ 이제 이글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것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2년의 세월속에서 하느님과의 행복한 시간 보내게 되었음을
감사드리고 옛 추억을 돌아보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
